소설리스트

타임트레인-100화 (100/519)

100화

큰 소리와 무섭게 생긴 장검을 보자 무당이나 노비들은 즉시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모두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아는지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었다. 이제는 산적 패거리로 몰려 저잣거리에서 목이 싹둑 잘리게 생긴 처량한 처지인 것이다.

최인범의 부하들은 빠르게 노비들의 몸을 뒤졌다. 이유는 무기를 소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당집을 에워싸고 사주경계를 했다.

혹시 근처에 산적들이 있을지 모른다. 부하들이 사주경계를 하는 동안. 최인범과 행정병들은 빠르게 당집을 수색하고 짐들을 풀어 확인했다.

“소대장님, 숨겨놓은 물건들이 많네요.”

“모두 마당으로 모아.”

“넷!”

마당에 모아진 짐들은 고급 명주가 있고 경상도의 고급 특산품들이 줄줄이 나왔다. 일반인들은 잘 사용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물건들이다. 짐들에는 멍청하게도 뇌물을 보내는 사람의 신분이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조선 팔도에서 너도나도 윤임에게 뇌물을 보내자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서 보냈군. 진짜로 멍청한 놈들이야.’

당집을 사그리 뒤지자 허름한 헛간의 덤불속에는 면포나 쌀자루, 기름, 솜으로 만든 누빈 천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산적들에게 보내질 겨울을 지낼 생필품들이 틀림없었다.

“됐어. 확실하게 증거를 찾았군.”

“소대장님, 김 초시도 잡아야죠?”

“아니, 그 사람은 우리가 직접 나서서 잡을 필요가 없어. 단양군수가 포졸을 동원해 잡게 놔두자고.”

“넷!”

사법권이 없으면서 군사를 동원해 민가를 덮치면 아무리 잘해도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당집이야 산적들과 직접 거래하는 것을 목격해 덮쳤다고 하면 문제가 안 된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본시 법의 집행이란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월권행위로 매도당하기 쉽다.

단양군수가 포졸을 데리고 오길 기다리는 중에 이윽고 말이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어라? 왜 포졸도 없이 혼자오지?”

하늘에서 사락사락 내리던 하얀 눈은 어느새 점점 커지더니 함박눈으로 변했다. 차가워진 대지는 온통 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주변의 나무들은 하얀 눈꽃이 활짝 피었다.

포졸들과 같이 올 줄 알았던 단양군수가 혼자서 말을 타고 빠르게 당집으로 접근했다.

당집에 도착한 단양군수는 압수해 놓은 물건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품목을 확인하고 나자 잡혀 있는 무당과 노비들에 대한 조치를 내렸다.

“여기서 잡은 놈들은 모두 김 초시 집으로 데리고 가게. 그곳에 있는 형방에게 넘기고 돌아와.”

“그러죠.”

단양군수 옆에 서있던 최인범은 배도치에게 즉시 명령을 내렸다.

“죄수들을 모두 김 초시 집까지 데려다 주고 와.”

“넷!”

명령을 받은 배도치는 무당과 노비들을 이끌고 빠르게 떠났다.

그들이 멀리 떠나고 나자 단양군수는 조금 허둥대는 동작으로 직접 물건에 부착된 글씨들을 모조리 수거했다. 그런 작업을 신속하게 끝내고 나서 종이들을 모아 일일이 확인했다. 작은 종이에 적힌 목록과 철저하게 대조했다.

옆에서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범은 궁금해서 물었다.

“군수님, 지금 들고 계신 그것은 뭐죠?”

“자네는 옆에서 보고도 모르나? 경상도 관리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뇌물들에 대한 목록이지.”

이런 단양군수의 대답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니, 그런 뇌물목록도 있어요?”

“뇌물을 약탈당해 사태가 너무 심각하니 나에게 모두 서찰을 보냈기 때문에 내가 모조리 적어 놓았네. 하나라도 밖으로 세어 나가면 곤란해서.”

단양군수는 소위 폭탄에 해당하는 뇌물의 목록을 가지고 있었다. 엄청난 사건이 분명한데 단양군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표정이다. 생각보다 담담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어라? 보기 보다는 제법 재물에 대한 욕심은 없어 보이네. 어찌 처리하나 지켜봐야겠어.’

단양군수는 자신이 받은 서찰도 꺼내서 뇌물과 확인하고 나자 모조리 불에 태웠다. 목록에 적혀있는 글은 하나씩 지워나가며 꼼꼼하게 확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니고 있는 서찰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목록이 적힌 종이는 검게 변했다.

이윽고 마지막 남은 서찰까지 불로 태우는 것으로 보아 뇌물로 보내진 물건들은 이곳 당집에 모두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단양군수는 안도의 숨을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휴우! 정말 다행이군. 여기에 다 있어서.”

단양군수는 결국 서찰을 먼저 태우더니 마지막에는 자신이 적어 놓았던 목록까지 활활 타는 불속으로 던졌다.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탁탁 털었다. 그는 아주 큰일을 무사히 끝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양군수는 최인범을 따로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최 사맹, 여기에 있는 봉물짐들은 모두 자네의 수하들에게 나누어 주어 빨리 떠나도록 하게.”

“예? 저보고 산적의 장물을 가져가라고요?”

장물을 사사로이 가지라니 너무 이상해서 놀란 눈으로 단양군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단양군수는 태연하게 이런 조치에 대해 설명했다.

“저 물건들을 받게 될 윤임 대감이나 뇌물을 보낸 그 누구도 이곳에 있는 짐들을 다시 찾거나 관아에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네. 그러니 자네는 그냥 부하들이 봉물짐을 가지고 멀리 떠나도록 조치를 취하면 되네.”

“그러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요?”

이런 물음에 단양군수는 정색하며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이런 조치는 내가 임의로 처리하는 것이 아닐세. 물건을 보낸 사람도 없고 받을 사람도 없게 처리해야 하네.”

“그 뜻은 잘 알지만 그래도 저에게 처분해 버리라니 뭐가 뭔지 도통 몰라서.”

최인범이 또 다시 이렇게 답하자 단양군수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설명했다.

“자네의 부하들이 빨리 짐들을 가지고 죽령을 넘어가면 되네. 물론 자네는 나와 같이 산적들의 소탕을 조금만 도와주고. 이번 뇌물 탈취사건은 사실 주상 전하께서도 아시는 중대한 사건일세. 절대로 여기의 물건들을 압수하지 말고 사그리 치워버리라는 밀명을 받았네.”

“그런 밀명도 받았습니까?”

최인범은 계속해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그러자 단양군수는 다시 추가해서 말했다.

“선전관이 이곳을 지나가며 나에게 전한 말일세.”

“선전관이라면?”

“자네도 한정문 선전관이라면 이미 잘 알지 않나? 그가 주상전하의 하명을 은밀하게 구두로 본관에게 전했네.”

단양군수의 설명에 최인범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정문 선전관이 왜 자신을 이번 사건에 개입시키려는지 숨은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슬며시 물었다.

“한정문 선전관께서 저를 만나서 협조를 구하라고 했나요?”

“그렇다네. 자네가 이곳으로 오게 되면 이번 봉물 사건을 같이 잘 해결하라고 했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번 사건은 간단치가 않다네. 이번은 알고도 눈을 감아야 하는 조금 묘한 정치적인 사건이라고 보면 돼.”

이런 말을 듣자 주상전하께서 뭔가 중요한 일을 위해 정치적인 결단으로 이번 사건은 완전히 덮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최인범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보상으로 가져가라니 순간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자 단양군수는 다시 자세하게 설명했다.

“자네도 조정에서 윤임 대감이 어떤 위치인지 잘 알걸세. 주상 전하께서도 이런 식으로 세자 저하의 외숙께서 정치적으로 다치는 일이 발생하기를 원치는 않는다네.”

“그래요?”

“그러니 우선 여기에 있는 물건을 깔끔하게 치워 버리게. 그렇다고 아까운 재물을 모조리 내가 불태워 버릴 수는 없지 않나? 산적 소탕을 도와준 보상금으로 생각하고 받아서 쓰시게.”

일단 윤임 대감에게 보내는 뇌물이란 흔적을 사그리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단양군수의 의견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함정 같다는 느낌이 들어 망설였다. 주상 전하께서도 아시는 봉물 사건이라니 많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이런 요상한 조치를 그대로 따르면 나중에 어떤 억울한 덤터기를 쓸지도 모른다. 설사 주상전하의 비밀스러운 명령이 사실이라도 이것은 너무 허점이 너무 많은 조치다. 나중에 이번 사건이 커지면 자신을 제거해 버리는 구실로 삼을 수 있다. 애써 강렬하게 치미는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쳤다. 재물이나 뇌물도 먹을 수 있거나 먹지 못하는 것은 따로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무슨 뜻인지는 잘 알지만 제가 임의로 재물을 처리할 사안은 절대로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관아로 보낼 것이니 군수께서 알아서 처리하세요.”

단양군수는 최인범의 대답에 오히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쯧! 쯧! 자네의 고집도 어지간하군.”

“이건 고집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 원칙 같아서 그럽니다.”

“정 그렇게 하기 싫다면 관아로 보내게.”

“그렇게 하죠.”

최인범은 이렇게 답하고 부하들이 돌아오길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아랫마을로 갔던 배도치와 그의 부하들이 돌아와 보고했다.

“소재장님, 죄수들은 모두 형방에게 인계했습니다. 김 초시나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모조리 포졸들에게 잡혔더군요. 압수된 짐들이 여기보다 10배는 많더군요.”

보고를 받은 최인범은 배도치에게 급하게 명령했다.

“여기의 물건들을 모조리 말에 싣고 모두 관아로 보내.”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난 배도치는 짐들이 너무 많다고 판단해 건의했다.

“소대장님, 짐이 너무 많아서 말을 모두 끌고 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 여기는 행정병과 칠복이 형제만 남고. 노비들도 같이 떠나고.”

“넷!”

명령을 받은 배도치는 자신들이 타고 온 6필의 말과 최인범의 부하인 일행들이 보유하고 있던 11필의 말에 모든 짐을 실었다. 말에 짐을 실은 부하들은 신속하게 당집을 떠났다.

물건을 가지고 떠나자 단양군수는 헛간과 당집에 불을 질렀다. 허름한 건물인 당집은 빠르게 활활 타올랐다. 너무 뜨거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예 당집을 태워서 흔적을 지우나요?”

“그래야지.”

당집만 태운다고 사건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잡혀 있는 죄인들도 있으니 그들은 증언은 어찌 처리할 것인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주상전하께서 직접 개입하는 정치적인 사건이라니 자신이 함부로 간섭하며 나설 일은 아니었다. 당집이 활활 타오르자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갑자기 당집이 불타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큰일이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수군거리는 마을사람들을 향해 단양군수는 슬며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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