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139화 (139/157)

〈 139화 〉 3 ­ 2 / 골렘에 진심인 마법사 벤 가브롤에게 (1)

* * *

(1)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다시 리제를 따라 지하의 골렘 연구동으로 향했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점은 계단을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비록 탑승감이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는 데다 도르래 소리가 요란한 승강기였지만, 그 긴 계단을 내 다리로 오르내리는 것보다는 당연히 낫다.

리제가 이쪽을 몇 번쯤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어젯밤에는 편안하셨는지요?”

“어? 아… 응. 덕분에.”

무슨 뜻으로 묻는 것인지 모르겠다. 단순한 안부를 묻는 것인지, 어젯밤 루시탄과 나눈 대화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인지… 상대가 골렘이라 그런지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게 제법 곤란하다.

“주인님의 저택에는 오랫동안 사람의 발걸음이 끊겨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저택에 온기가 도는 것을 아신다면 주인님께서도 기뻐하시겠지요.”

“그러려나… 그러고 보니 이 저택을 관리하는 건 리제 씨뿐이야?”

“네. 주인님께서는 다른 골렘들에게는 자유의지를 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까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만, 오로지 저만이 제 의사결정을 자유롭게 처리할 권리를 받았습니다.”

도저히 거짓말이나 날 속이는 것으로 보이지가 않는데.

침착하고 차분한 리제의 말은 무척 투명하고 온화해서 어떠한 나쁜 꿍꿍이를 갖고 사람을 속인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정말 헛된 의심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따끔거려서, 표정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조금 노력해야 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털털거리는 승강기가 겨우 지하 바닥에 닿았다. 한 걸음 먼저 승강기에 내린 리제의 얼굴은 여전히 인조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간적이었지만, 어제부터 들기 시작한 의심 탓에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로제이아 님. 제게 뭔가 하고 싶으신 말씀이라도?”

“어? 아니, 아니. 오늘은… 어떤 골렘을 보게 될지 궁금해서.”

변명치곤 좀 궁색했나. 리제는 고개를 한번 갸웃거렸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왜 이쪽이 더 초조함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다 루시탄이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래.

“그렇습니까? 주인님의 골렘에 그렇게 관심을 두시니 저는 기쁩니다. 가시지요.”

뭐, 완전히 엉뚱한 거짓말인 것도 아니니까. 괜스레 마음에 찔릴 필요도 없다고. 지팡이를 꽉 움켜쥔 채로 이미 봤던 골렘들의 연구동을 지나쳐 다음 구획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대체 어떤 골렘이…

“뭐야, 이건?!”

우드 골렘 연구동을 지나 다음 구획으로 들어서자마자 비명 같은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사방에 완성되지 않은 잔해들이 널렸다. 팔이 있고, 다리가 있고, 몸통이 있고, 머리가 제각각 따로 나뒹굴었다. 문제는 그것들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거대했다는 것이다. 머리의 높이만 해도 내 키의 약 두 배에 달했으니까.

골렘이라기보다는 마치 거인이 입는 갑옷 같았다. 이쪽을 향한 텅 빈 눈구멍은 고요하고, 차가운데다, 공허해서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했다. 지팡이를 꽉 붙든 채 리제의 등에 달라붙었다.

“…이것도 골렘…이야?”

“네. 주인님께서 실험용으로 만드신 성채 방어용 골렘입니다. 하지만 완성시키진 못하셨죠. 이 골렘의 노심(心)에 필요한 촉매를 구하질 못하셔서요.”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어쩐지 갈기갈기 떨어져서 사방을 각기 따로 나뒹굴고 있고.

리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쪽에 놓인 투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반질반질하고 거무튀튀한 표면에 손을 대곤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작게 속삭였다.

‘설마 갑자기 움직이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리제가 뭘 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상식을 벗어난 거대한 골렘까지 공을 들여 만들어내려 한 건 순수한 탐구심의 발로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여기에 있는 골렘들 전부가…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지나친 생각일까.

“잠깐 불러내서 쓰는 거면 몰라도, 이런 거대한 골렘을 만들어두고 그때그때 부리는 건 쉽지가 않을 텐데….”

“주인님께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해둔다고만 하셨습니다. 그 만약의 사태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적이 없었지만요.”

“뭐, 드래곤이랑 싸울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나?”

리제가 말하는 만약의 사태라는 말이 조금 기가 차서 되는 대로 내뱉은 것치곤 꽤… 신빙성이 있어서 조금 놀랐다. 이런 초대형 골렘이 필요할 정도의 사태라면, 얼마 전 무슈마헤트의 습격을 받은 베어링턴 정도였겠지. 리제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결국 보시다시피 미완성입니다. 주인님께서 진행하신 작업 중 미완성으로 남은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가 되었고요.”

어쩌면 리제는 이 초대형 골렘을 태어나지 못한 동생처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감상이었지만, 머리 부분을 쓰다듬는 얼굴이 무척 쓸쓸해보였던 탓이다.

쓸쓸해보였다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몇 년에 한 번 찾아온다는 술라를 제하면 여길 찾는 이는 그다지 없을 것이다. 리제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도 그동안 없었겠지. 그녀를 제외한 다른 골렘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상대는 되어줄 수 없었을 테니.

그 상태로 70년. 내가 리제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 고독을 견딜 수 있었을까? 잠깐 상상해보았다. 별로 자신감은 들지 않았다.

“그러면 여기는 이만 보시겠어요? 아무래도 조금 불편하신 거면…”

“아니, 아니. 좀 자세히 보고 싶어. 잠깐 기다려줘.”

“…편하게 둘러보시길. 기다리겠습니다.”

리제가 선선히 동의한 뒤 문 근처로 물러났다. 아마 자신이 있으면 내가 신경쓰느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할 걸 염려하는 것처럼. 저렇게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배려할 수 있는 골렘이 구태여 뭔가를 숨기려 들 거라는 생각은 빠르게 내 안에서 의미를 잃어갔다. 루시탄의 걱정은 결국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아닐까.

위압감이 들게 하는 초대형 골렘의 머리 앞에 섰다. 가브롤의 지팡이를 이용하면 이 머리에 담긴 기억에 접속할 수 있으려나. 지배하거나 움직이게 하는 건 언감생심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아마 리제도 그러라고 나를 여기에 데려온 것이기도 할 테니까. 그런데, 그건 그렇고…’

난 유독 이 세계에 와서 남의 기억을 엿보는 일을 은근 많이 하는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그 때마다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곤 했다. 거기에 비하면 이번 건은 그렇게까지 골치를 썩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어디 시작해볼까.”

자신에게 이르듯 한 마디를 중얼거리고는 눈을 감고 의식에 집중했다.

이제 슬슬 익숙해지려는 빨려드는 감각에 저항하지 않고, 그 너머의 기억을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시야의 양옆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의 단편들이, 무수하게 흩어져 빛알갱이가 되어가는 것을 흘려보내면서.

자, 그럼 이제 어쩐다.

로제이아가 저택을 관리하는 골렘 리제를 따라서 지하로 내려간 뒤, 다소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루시탄은 이제 두 사람이 올라올 때까지의 시간을 유용하게 쓸 방법을 고민했다.

일단 이 저택에서 가장 수상한 곳은 서재이다.

서재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뭔가 없을지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저택 안에만 수십 기가 돌아다니는 시녀 골렘들의 눈을 피해 서재로 들어갈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지금이야 손님 대우를 받고 있지만, 섣불리 서재에 접근하려 하면 태도가 돌변할 수도 있단 말이지… 뭔가 좋은 방법 없나.’

사실 까놓고 말해 자신은 지금 로제이아의 덤에 불과하다.

그녀는 리제라는 골렘에 꽤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자신의 눈으로 볼 때 그 골렘은… 대단히 수상한데다 비밀을 숨기고 있는 존재였다. 경험상 그런 부류는 상대가 자신을 완전히 신뢰한 순간, 본색을 드러내게 되어 있으니까. 사람이든 골렘이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섣부르게 서재에 접근하는 것을 시녀 골렘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그 순간 로제이아에게 위해를 가하려 들지도 모르지. 누군가 시녀 골렘들의 시선을 돌려주기라도 하면 뭔가 해 보겠는데, 머릿수가 딱 둘뿐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한탄해봐야 소용없나. 이거 참. 쉽게 되는 일이 없네.’

사실, 이런 시골 구석에서 골렘 하나가 뭘하든 크게 신경쓸 필요가 있는 건 아니다. 로제이아의 말에 따르면 이 저택의 원래 주인은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골렘술사라고 하지만 그것도 70년 전에 타계한 인물일 뿐이다. 본인도 아니고, 그가 남긴 골렘 정도가 무슨 짓을 하면 뭘 하겠나 싶기도 하다. 기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하단 말이지.’

그 여자의 오지랖이 옮기라도 했나.

머리를 긁적이면서 여유롭게 차려진 식사를 마치고는 식탁에서 일어섰다.

식탁에서 일어서자마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소리도 내지 않고 시녀 골렘이 다가왔다. 이래가지고서야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것이랑 뭐가 다를까.

‘일단 뭐, 편하게 생각하도록 할까.’

알아낼 수 있는 선에서 알아내고, 그 다음은 천천히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떤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변수를 만들 필요는 있겠다.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대체 어떻게 변수를 만들어야 하나….’

답이 쉽사리 나올 것 같지는 않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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