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3 2 / 골렘에 진심인 마법사 벤 가브롤에게 (2)
* * *
(2)
한탄이었고,
통곡이었고,
오열이었다.
남자는 울고 있었다. 운다는 말만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온몸의 수분을 모조리 눈을 통해 뽑아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몸에 흐르는 피마저도 토해내어 목숨을 끊으려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울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입니까? 대체 어째서… 그 아이를 내게 돌려주지 않는 겁니까, 여신이여! 그 아이의 운명을 그렇게 당신의 손에 쥐고 있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남자의 비탄이 폐부에 스며들듯이 전해져왔다.
들이마시는 공기, 내쉬는 공기, 그 하나하나에 감정이 강하게 스며든 것 같았다. 그의 절망과 절규는 독과 같아서, 엿보는 이의 숨통마저 옥죄었다.
이건 기억이다.
미완성되어 방치된 거대한 골렘과 그의 지팡이에 남아있는 기억의 파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누군가의 일기를 몰래 읽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기억은 지나치게 생생했다. 마치 그 자리의 누군가의 눈을 빌어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있는 것처럼.
[필요한 것은 전부… 전부 준비했다. 뭐든 준비했다! 몸을 이룰 그릇도, 그릇에 담길 기억도, 그 끈이 될 주문도… 그런데도, 왜 응하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나의 골렘 마법이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 아직도!]
그는 누군가를 되살려내려 하고 있었다.
이 저택의 모든 골렘들은 예행연습에 불과했다. 가장 적합한 재료에, 가장 적합한 영혼을 담아, 가장 적합한 주문으로 묶으려는 준비였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무엇인가 잘못되었던 것이리라.
그는 여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여신이 움켜쥐고 돌려주지 않는 것은… 아마도 영혼이겠지.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영혼을 저렇게 부르짖는 것일까. 문득 루시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녀 골렘들이 말했던 ‘아가씨’라는 이의 존재가 있었다. 벤 가브롤은 아이를 잃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골렘 마법을 이용해 아이를 되살리려 했던 것이고.
하지만 실패했다.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가 준비한 그릇에 그가 찾던 영혼은 내려오지 않았다. 절망은 그로부터 기인되었다.
[모독하리라, 모독하리라! 여신이여, 여신이여. 운명을 관장하는 여신이여! 그대를 모독하리라, 그대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대의 가르침을 더럽히고, 그대의 섭리를 모독하리라! 그대의 자식이 아닌 인간을 만들어 보이겠다, 머지않아, 그대의 자식이 아닌 인간이 내 손에 의해 빚어져 이 땅에 오리라, 그대의 존재를 아무도 신봉하지 않으리라, 여신이여!]
피눈물을 흘리며, 남자는 하늘을 우러러 저주의 말을 토해냈다.
[이 땅의 지하에, 그대의 대적자를 만들리라, 내가 만들어내리라! 내가 그리하리라, 그대의 폭압에…!]
“…읏!”
문득 두통이 뇌를 나이프로 저며내듯 강하게 찔렀다. 엿보던 기억에서 튕겨나가, 가브롤의 지팡이를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두개골에 강하게 남은 이명(??)이 징징 울리면서 욕지기를 느꼈다.
“…괜찮으십니까? 로제이아 님.”
“우왁?!”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이, 등 뒤에 다가온 리제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자수가 놓인 손수건을 보고 나서야 이마가 땀으로 젖어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고마워. 휴, 놀랐네. 안 그래도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네. 한동안 거기에 그대로 서 계셨습니다. 제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더군요. 무엇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음….”
벤 가브롤의 기억을 리제에게 말해줘야 할까. 창조주의 기억이다. 그녀에게도 알 권리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 직감적으로,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에게 이 기억을 알려주면 모든 일이 틀어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직감에 거스를 기분은 들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다소 괴롭다.
“…이 골렘의 구조를 분석했어. 너무 정밀한 구조라서 복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잘 판단이 되질 않더라. 조금 지나치게 들여다보느라고 좀 무리했나봐.”
“그러셨습니까… 너무 몰두하시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만 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양심에 찔린다.
이렇게 착하고 친절한 골렘을 루시탄은 왜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로서는 의심할래야 의심할 건덕지가 보이지 않는데.
아무튼 리제의 말대로다. 기억을 들여다본 대가인지 머릿속이 저릿저릿해서,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아무래도 오늘 골렘에 담긴 기억이나 구조를 보는 것은 여기까지일 것 같은데… 마지막에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벤 가브롤이 했던 말은 대체 뭐였을까.
‘여신의 대적자… 라….’
불길한 어감이 머릿속에 파리처럼 달라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운명의 여신이라면 일전에도 만난 적 있었던 죽음의 여신, 발 헬을 의미하는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헤카이트 당주가 말하길… 벤 가브롤은 70년 전의 인물이지만, 발 헬은 그보다도 훨씬 후부터 반역을 일으킨 원래의 주신을 축출하고 주신의 자리에 앉았다고 했다.
즉, 벤 가브롤이 말한 여신이란 이 세계에서 최고신으로 여겨지는 여신 ‘라에라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만물을 창조했다는 태양의 여신에게 맞서는 대적자라니, 그 거대한 골렘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도,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결국 성공하지는 못한 모양이지만….’
뭘 했든, 벤 가브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 것만은 분명했다.
지금도 라에라드를 섬기는 율령교회는 이 세상에서 강대한 교세를 떨치는 종교이고, 그 교세가 흔들릴 조짐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희대의 연금술사라고 해도, 될 일과 불가능한 일은 있는 법이니까.
일개 인간이 신에게 반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도르래 장치에 실려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쿠웅, 하고 지상에 도달했을 때… 뜻밖에도 승강장에서 루시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꽤 빨리 왔군?”
“…왜 기다리고 있어? 언제 올 줄 알고…”
“거기 계신 친절한 레이디께서 미리 언질을 해 주셨지.”
루시탄의 말에는… 약간의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다. 나름대로 오래 알고 지낸 나 정도나 알 수 있을 정도의 아주 가벼운 조롱이었다. 루시탄에게 리제를 믿으라고 강변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왜 이렇게 불신하는지 정도는 들어두고 싶기도 한데.
“마중하러 나와준 건 고마운데…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니 좀 이상하네. 뭐 따로 할 말 있어?”
“따로 할 말까지는 아니지만, 전해둬야 할 건 있어서 미리 와 있었지. 네가 반가워할 사람들이 왔다.”
“에?”
내가 반가워할 사람들이라니, 누구… 그렇게 고개를 한번 갸웃거렸을 때, 모퉁이에서 가볍게 달려온 작은 그림자가 쏙, 하고 나와 루시탄 사이에 끼어들었다. 팔을 둘러 끌어안고는, 보드라운 뺨을 부비적거렸다…
“웬즈데이?! 너, 여기에 어떻게…?!”
“장미 씨! 절 그렇게 오래 팽개쳐두고 루시탄 왕자님이랑 두 분이서만 재미보고 그러셨던 거에요?!”
“재미를 보다니, 대체 누가!”
아니, 재미를 보긴… 했지만, 그래도 리제도 있는데 그런 말은…
…이미 진즉에 들킨 사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말하진 말아줬으면 하는데!
“…이거야 원. 나는 인사할 틈도 얻지 못하겠군. 오랜만이다, 주인. 아니, 사실 그다지 오랜만인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그렇게 인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더군.”
“즈왈트… 그러네. 그나저나….”
즈왈트와 웬즈데이, 내 골렘들은 왕도에 있는 헤카이트 당주의 탑에 잠시 머무르도록 보내두었을 텐데, 왜 이 녀석들이 여기에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뭐 거기 붙어있으라고 한 건 아니었지만, 여기를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내가 데려왔네. 퍽 오랜만이군. 가시의 마녀, 로제이아여.”
세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술라였다.
흰 로브에 흰 수염을 기르고, 떡갈나무 지팡이를 손에 쥔, 마치 신선과 같은 풍모를 지닌 노마법사가 아무런 풍파도 일지 않는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예의를 갖추지 않을 수 없는 상대였다.
“안녕하세요, 술라 님.”
리제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용으로 변신하는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용이며, 제 정체를 숨기고 알트슈타인 왕가의 궁정마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 리제도 알지 못했다. 다만 여기에 들르는 것은 리제의 창조주인 벤 가브롤의 오랜 친구여서, 라고 했던가.
“자네와는 참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네. 물론 여기에 언제고 발길이 닿을 것이라는 것은, 그 지팡이를 줬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네만.”
술라와 헤카이트 당주, 그리고 케라우노스 씨가 시험관으로 참가했었던 마법사 시험이 떠올랐다. 그때… 술라가 내건 부상인 가브롤의 지팡이는 아주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그리고 이 지팡이를 내게 넘겨준 것이 우연이나 선심이 아닌… 내 존재가 포함된 어떤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겨우 파악했었다.
“리제도 건강해 보이는구나.”
“술라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리제를 향한 술라의 눈은 나를 향했을 때보다 다소 부드러웠다.
내가 모르는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뭐, 둘 다 사람은 아니라지만. 잠시 눈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용과 골렘은, 다시 천천히 서로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어떤 내용의 대화가 무언으로 오고갔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시지요. 시녀 골렘들에게 식사를 준비하라고 전해두었습니다.”
아직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쌓인 이야기를 하기에는 퍽 괜찮은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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