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2 11 / 친애하는 내 친구 카르티에게 (2)
* * *
(2)
거리는 참… 부산했다.
베어링턴을 습격했던 드래곤, 무슈마헤트는 사라졌지만 그녀가 남긴 파괴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 남아있었고, 이제 그것을 복구하는 것은 남아서 살아가야 할 자들의 몫이다.
깨진 거리의 포석, 건물, 분주하게 달리는 병사들…
그 풍경 하나하나를 보는 느낌이 묘했다. 카르티는 옆에서 내 등을 툭 쳤다.
“너 때문이라고 생각하냐, 혹시?”
…눈치는 이상하게 빨라서.
대답하는 대신 눈을 조금 치떠서 눈꼬리가 도끼 모양이 되게 한 뒤 바라보자, 카르티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번개같이 내 이마에…
“악!”
딱밤을 한 대 야무지게 튕겨냈다.
평소에 힘쓰는 포지션이다보니, 딱밤의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다… 두개골이 옴폭하게 패이는 줄 알았다.
“그런 걸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하는 거야. 이 도시가 조금… 많이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건 너 때문이 아니라고.”
“그럼… 누구 때문인데?”
“우루 늪지에서 그 장난질을 벌인 놈들이 원흉이지. 네가 아냐. 네가 마음 쓸 일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히 우울한 낯짝 하면 이번엔 더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줄 거다.”
적어도 카르티가 생각한 방법이 온건한 방법이 아니라는 건 잘 알겠다.
한숨 한번 푹 쉬고는, 일단 낯빛을 고치기로 했다. 이마에 딱밤을 맞는 건 사양이니까.
“그래, 이제 좀 낫네. 그건 그렇고….”
이번엔 카르티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차례인가보다.
뒤를 돌아보고는, 카르티는 몹시… 마음에 안 든다는 투였다.
“쟤들도 따라오는 거였어?”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카르티 씨.”
나와 카르티를 따라오는 일행이 있다.
한껏 힘주어 차려입은 웬즈데이와, 조금 뒤에서 거리를 둔 채 따라오는 즈왈트였다.
웬즈데이는 내 한쪽 팔에 매달리듯 팔짱을 꼈고, 카르티에게 혀를 베에 내밀면서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 이래.
“…즈왈트 형씨는, 나도 신세 진 게 있고… 든든하다고 생각하지만….”
끄으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카르티와 어쩐지 의기양양해하는 웬즈데이의 사이에서 제일 곤란한 게 나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렇게 매번 사이가 안 좋은 거야, 이 둘은.
“…웬즈데이, 쟤는 왜 날 저렇게 싫어하냐고.”
“이번에는 저도 죽어라 고생했거든요? 카르티 씨 혼자… 재미 보게 두지 않을 거라고요.”
“알아듣지 못할 소리나 하고 있고.”
메롱.
웬즈데이는 골렘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혀를 내밀면서 카르티를 약올렸다… 내가 공들여 만들어준 골렘 몸뚱이를 그런 식으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둘이 좀 사이좋게 지내.”
“누구 때문인데요.”
웬즈데이는 부루퉁하게 볼을 부풀리곤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그게 내 탓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점점 골머리를 썩게 될 것 같아서 즈왈트를 돌아보았다. 즈왈트는 평소에도 말이 없긴 했지만, 오늘따라 한층 더 우울해보였다.
“웬즈데이, 그건 그렇고… 즈왈트, 왜 저렇게 축 처졌어?”
듬직하고 믿음직한 즈왈트의 어깨가 축 처져있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귓속말하니 눈을 한번 깜빡인 웬즈데이가 자기는 다 이해한다는 양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마… 토마스 씨가 사라져버린 것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누구처럼요.”
“으….”
분명 키에리와 토마스가 있는 곳에 즈왈트를 지켜주라고 놔두긴 했었지만…
그렇게까지 책임감을 느낄 일은 아닐 텐데. 아니, 남 말 할 처지가 아닐지도.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상업지구는 무슈마헤트가 직접 내려앉지 않아서, 멀쩡한 편이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장사를 시작한 가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딜 가나 난리통이구만.”
카르티가 혀를 끌끌 차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집과 재산, 혹은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주민들이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있기도 하고 개중에는 하염없이 울어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동정하거나 격려하는 다른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풍경이 스칠수록, 가슴을 가시로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저기 뭐가 와요.”
웬즈데이가 소매를 잡아당겼다.
도저히 라면 먹으러 가자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가운데… 짐마차 몇 대가 상업지구에 들어섰다. 짐칸을 덮은 천막에는 짐마차마다 문장이 박혀있었는데… 그게 꽤 다양했다.
“왕도에서 구호품이라도 온 모양이네. 뭐, 왕가도 고생하는구만. 그래도 베어링턴 하나 정도면 싸게 먹혔지.”
“그러게요. 미친 드래곤이 날뛰는데… 어쩌면 주 하나가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태이긴 했어요. 베어링턴 한 곳 정도면 그래도 다행한 셈이죠.”
카르티와 웬즈데이의 말은 합리적이었지만 어쩐지 울컥하게 된다.
이 도시 하나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래곤이 초래한 위기가 끝난 것이니,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나는 어찌되었든 이 사태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입장이라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짐마차에서 하역하는 일꾼들이 내렸다.
주위에서 눈치를 보던 주민들이 슬금슬금 몰려드는 가운데… 그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갑옷을 입은 노기사의 모습에 안도와 혼란을 동시에 느꼈다. 칼 프레드릭 바츠 경… 발스턴의 기억이 그와 마주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바츠 경.”
하지만 카르티가 먼저 싹싹하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짐마차를 인솔한 책임자와 몇마디 말을 나누던 칼 프레드릭 바츠 경이 이쪽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일행을 휘 둘러보고는, 날 대표자로 생각한 것 같았다.
“안녕하셨는가, 자네들. 어디 다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이네.”
“네. 바츠 경께서도… 그, 무사하셨네요.”
“루시탄은?”
…나와 루시탄을 왜 다들 세트 취급하는 거지?
어깨를 으쓱였다.
“루시탄이라면 아마 숙소에서 쉬고 있을 거에요. 그건 그렇고… 바빠보이시네요.”
“한동안 여기에서 구호 작업에 힘을 보태야 할 것 같아서 말이네. 이들은 페랄 주(?)의 선제후께서 보낸 이들이네. 각지에서 크게 양명(?名)한 이들의 성의를 추렴했다고 하더군.”
그럼 저… 말과 독수리가 섞인 듯한 문장은 페랄 주의 문장이었던 걸까.
페랄 주는 베어링턴과 알브레히트 등을 크게 포괄하는, 이 나라의 남부 지방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토를 말한다고 했다. 페랄 주 내에서는 선제후인 그론 선제후가 왕이나 다름없는 위치라고 들었는데.
그럼 그 주위의 문장은… 눈이 조금 찌푸려졌다.
동항로 회사… 나날이 내 안에서 이미지가 추락해가는 회사가 보였고, 지팡이를 타며 돌돌 꼬고 있는 뱀 문양도 보였다. 카르티에게 귓속말을 했다.
“카르티, 저 뱀 문장은 뭐야?”
“…카두세우스 재단의 문장이라네.”
그 말이 들렸는지, 바츠 경이 대신 대답했다.
눈이 조금 측은하다는 듯 가라앉은 게 보였다. 아니, 왜요. 모를 수도 있지.
“카두세우스 재단…? 뭐 하는 곳인데요?”
“치유사들이 모여서 세운 단체라고 들었어. 역병을 퇴치하고, 병자들을 돌보고… 뭐 그런 일을 하는 곳이라나.”
“좋은 곳이잖아.”
카르티의 부연설명은 간단해서 알아듣기 편했고,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 짐마차에서 하역이 시작되었다. 짐꾼들이 차례차례 짐을 내리기 시작했고, 병사들이 창을 쥐고 나서서 다가오는 주민들을 통제했다.
“…일단 구호품을 급하게 모으긴 했지만 아직은 부족하겠지. 왕가에서 내려오는 구호품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고.”
“우울한 얘기 뿐이네요….”
한숨이 난다.
병사들이 눈을 부라리고 위협적으로 창대를 바닥에 퉁퉁 두들긴 덕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질서를 갖추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가장 앞선 안경 쓴 자가 가져온 탁자에 앉아서는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혼란스럽겠지. 베어링턴을 재건하려면 그론 선제후로서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게야. 선제후가 직접 정무를 돌보기 시작하면 그동안 알음알음 방치되었던 라오후 같은 쓰레기들도 정리되겠지.”
라오후….
그들에게 호되게 당한 나로서는 분명 라오후의 몰락에 상쾌함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걸리버들에게 배타적인 길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고 지나가게 된다고 생각하면, 마냥 상쾌하기만 한 결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럼 베어링턴은 이제 모험가 길드가 한층 더 득세하게 되겠네요. 경쟁자가 사라질 테니까요.”
내 눈치를 보던 웬즈데이가 한 마디를 슬쩍 끼웠다. 잘했어.
손을 들어 웬즈데이를 쓰다듬어주는 사이에, 바츠 경은 잘 정돈된 수염을 쓰다듬으며 흠, 하고 침음성을 내었다.
“그렇지만은 않을 걸세. 그론 선제후는 제법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지. 걸리버에게 이용 가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니… 그 친구가 알아서 조처할 거라네.”
그렇다면 다행이다.
저쪽 세계에 대해서는 요만큼도 애착이 없지만… 그래도 이 세계의 걸리버들에게는 나름의 동질감이 있으니.
“그러고 보니 이제부터 어떻게 할 셈인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만약 그론 선제후를 만나볼 계획이 있다면 내가 추천서를 한 장 써 주겠네.”
…선제후를? 내가? 에이, 농담도.
손사래를 치면서 웃었다.
“이번 일 때문에 높은 분들은 정신없이 바쁠 텐데, 저 같은 사람을 만날 짬이나 내실 수 있겠어요? 괜찮아요.”
“사실, 그 친구가 자네를 좀 소개해달라고 하더군. 이번 일을 수습하는 데 공이 있다고 내가 얘기를 좀 했거든.”
바츠 경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지만 난…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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