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46화 (46/157)

〈 46화 〉 2 ­ 2 / 기억을 잃어버린 갑옷 즈왈트에게(3)

* * *

(3)

날씨는 화창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질 것 같지는 않은 하늘이어서 나들이 가기에는 제법 그럴듯한 날이었다.

약속한 시각보다 조금 먼저 마차를 불러놓은 역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저쪽에서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는 덩치가 나타났다. 뒤로 아무렇게나 묶어 늘어뜨린 머리를 비롯한 어디 놀러가기라도 하는 듯 편안한 복장은 이제부터 몬스터 토벌을 가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 아가씨. 일찍 나왔구만.”

“안녕하세요.”

대충대충 인사를 나누고, 그 옆에서 나란히 따라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간단했다. 복장만으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투구를 쓰고, 가죽 위에 쇠를 덧댄 움직이기 편한 갑옷을 입었다. 허리에는 한 손으로 다루기 편한 장검을 찼고, 등에는 커다란 원형 방패를 멘 그 사람이 아마 어제 케라우노스가 말한 전위였던 모양이다.

“여.”

뜻밖에 쾌활하게, 투구 안쪽에서도 웃음소리 같은 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인사하며 내미는 손을 잡아 살짝 흔들었다.

“영감이 말한 마법사가 그쪽? 반가워. 카르티라고 한다.”

“로제이아. 로즈든 로제든 편한 이름으로 불러줘.”

저쪽이 말을 까고 들어왔으니 이쪽도 굳이 말을 높여줄 필욘 없겠지.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 보이는데.

그렇게 초대면… 이라고 하기 애매한 첫 만남을 갖고는 짐마차에 올라탔다. 커다란 덩치가 둘이나 되다 보니 이런 마차가 오히려 낫겠지 싶었다.

“그쪽 갑옷 형씨는 누구?”

“이쪽은 즈왈트. 내 전위라고 할 수 있으려나.”

[만나서 반갑네.]

웬즈데이는 헤카이트 당주의 저택에 두고 왔다.

물론 따라오고 싶은 눈치였고 출발하는 순간까지 입이 댓 발은 나온 채 툴툴거렸지만 별 수 없었다. 우루 늪지의 습기 차고 독기 어린 공기에 우드 골렘을 핵으로 한 웬즈데이를 노출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냐.

“영감이 모처럼 사냥이나 가자고 해서 왔어. 제법 큼지막한 건수인 모양인가봐? 평소에는 그냥 혼자 해치우고 보상만 챙겨서 돌아오면서 말야. 아, 그나저나 덥다.”

“투구를 쓰고 있어서 그렇지.”

“아, 그런가. 얼굴 내놓고 다니면 조금 귀찮은 일도 있어서.”

가볍게 말하고는 얼굴을 완전히 덮은 투구를 벗자 발그레하게 물든 갈색 뺨 위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투구 안에 구겨져있던 갈색 머리카락이 목 뒤에서 사각거렸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영 모호한 중성적인 얼굴의 그…는 후우, 하고 답답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역시 전위와 후위가 뒤바뀐 것 같은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카르티가 키득거렸다.

“그런 얘기 자주 들어. 영감이 워낙에 마법사다운 구석이 없어놔서.”

“이래서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니까.”

어라, 부모자식 사이였어? 그런 것치곤 카르티의 태도가 부모를 대한다기에는 조금 공경이라든지 이런저런 게 부족해보이는 거야 둘째치고 전혀 닮지 않았는데. 엄마 쪽 유전자가 몰빵된 건가…?

다음 말로 카르티의 출생의 비밀은 허무하게 풀렸다.

“굳이 말하자면 난 양자야. 영감이 주워서 키워줬지.”

“될성부른 떡잎이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뭔 소리래.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바로 어제 케라우노스가 했던 말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투구를 쓰고 다니는 이유도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걸리버인 자신이 보기에는 별 상관없지만, 그러는 자신도 여기 사람들에게는 자신도 퍽 튀는 외모라는 걸 종종 잊곤 했다.

“걸리버야?”

“어. 난 좀 어릴 때 여기에 와서 저쪽 기억은 거의 없지만.”

카르티는 선선히 긍정하고는 금속 부츠를 벗으며 가죽으로 감은 발을 주물렀다.

…모험가들이 부츠를 벗으면 나는 고리고리한 냄새는 1년 동안 창녀로 굴렀을 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생각만큼 그리 쉽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발냄새란 현지인이건 걸리버건 참 분별이 없는 것이다. 나도 부츠 오래 신고 벗으면 냄새 쩔게 나는 건 매한가지. 그래서 이번에는 헤카이트 당주가 선물로 준 가죽 신발을 신고 나왔는데 어떨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두서없고 맥락없는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슬슬 발냄새 따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지독한 냄새가 희미하게 코를 찔러오기 시작해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슬슬 도착했구만. 우루 늪지다.”

케라우노스가 졸고 있는 카르티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고, 일어나자마자 대번에 얼굴을 찌푸린 카르티도 서둘러 코를 막았다.

“평소에도 별로 좋은 냄새가 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한데.”

케라우노스는 용케 코를 막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속이 메슥거리는 듯 헬쓱한 얼굴을 했다. 일단 가방을 조금 뒤져보았다. 해독용 시약을 좀 가져오긴 했지만 설마 냄새를 쫓으려고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눈 딱 감고 물약을 목 너머로 넘겼다… 지독하게 쓰고 떫어 저절로 뱉고 싶어지는 맛이었지만 적어도 코를 얼얼하게 만들어서 썩은 냄새를 가시게 하는데는 효과가 있었다. …카르티는 내 썩어들어가는 표정을 보더니 손과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데. 내 성의를 그렇게 무시하다니.

[아마 저것 때문이 아닐까 싶군.]

사방을 자욱하게 채우는 악취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즈왈트가… 저 멀리 커다란 짐승의 시체가 있었다. ‘짐승’이라고 뭉뚱그려 말한 이유는 달리 있는 게 아니라 그 시체가 어떤 짐승의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와 꼬리, 사지가 먹히고 몸도 한입 크게 깨물린 뒤 버려진 짐승의 몸뚱아리에 파리가 꼬여 왱왱거리고 시체 썩은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시체가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 단위로 세야 할 정도로 쌓여있었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래….”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썩은 내 정도는 큰 문제도 아닐 정도로 이상하다. 그렇다고 냄새가 아주 상관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뭐 말할 것도 없잖아? 우리가 지금 잡으려는 건 늪지의 몬스터를 마구 먹어치우는 생태교란종이니까. 그놈의 소행이 분명하지.”

카르티는 어느새 방패와 검을 꺼내 무장하며 빈틈없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질척거리는 늪지가 바로 앞이어서, 마차에서 내려 안까지는 아무래도 걸어들어가야 할 것 같다.

[내가 앞장서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가장 대처가 쉬울 테니까.]

“그래도 조심해.”

즈왈트가 미늘창을 움켜쥔 채 앞서서 늪지에 발을 들였다. 적어도 무거운 갑주 탓에 질척이는 진창에 발이 빠지거나 하진 않는 건 다행이었다. 그밖에 발밑을 기어다니는 실뱀에 독이 있는 걸 밟아 죽이거나, 거치적거릴만한 나뭇가지나 넝쿨을 손으로 끊어버린다든지. 편리한데.

“이야~ 영감이랑 오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니 편하네~.”

“날 박정한 아버지처럼 말하지 마.”

“실제로도 박정한 아버지 아니었어?”

카르티와 케라우노스의 만담은 아무튼, 이제 슬슬 쓴 물약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레벨의 악취가 코끝을 찡하게 맵게 했다. 말인즉슨 점점 더 다양한 늪지 짐승의 시체가 쌓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중 커다란… 털북숭이 원숭이? 오랑우탄? 고릴라? 하여튼 머리 없는 시체를 케라우노스와 카르티가 발견하고 들여다보았다. 즈왈트는 날 따라오진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늪의 진흙탕을 살피고 있었다. 발자국이라도 찾나?

“…? 거기 뭔가 있어?”

가까이 가서 시체를 들여다보고는 표정이 윽, 하고 구겨졌다. 슥이 메슥거렸다.

머리도 없고, 가슴팍도 파헤쳐져 있는데 뻘겋게 내보이는 파먹힌 살점에 파리가 꼬여 웅웅거렸다. 게다가 손가락만큼 굵은 구더기까지 떼를 지어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을 보니… 점심에 먹은 게 올라오려고 해서 입을 막아야 했다.

“이건… 역시 배가 고파서 먹은 게 아니군.”

케라우노스의 중얼거림을 카르티가 받아 고개를 끄덕였다. 케라우노스가 망설임없이 파리가 왱왱대는 가슴팍의 잇자국을 붙들고 쩌저적… 벌려내자 썩은 피와 고름이 팍 튀었다. 우욱, 냄새….

저런 걸 그냥 뒀다간 병균과 감염의 온상이 될 게 뻔해서 서둘러 가방에서 소독제를 꺼냈다. 케라우노스가 뭔가를 하고 나면 반드시 일단 손부터 씻게 할 참이다.

“…심장도 없군.”

“이건 마치 연어를 잡은 곰 같네.”

흠, 하고 카르티가 중얼거렸다. 들은 적이 있었다.

다가온 케라우노스의 손을 해독 작용이 있는 물약으로 씻기면서 생각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곰은 연어의 눈과 내장만 파먹어 필요한 영양소만 챙긴 뒤 남은 고기는 버린다고 했던가. 손에 묻은 물기를 탁탁 털어내곤 케라우노스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고약한 식성이군.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짐승들의 뇌와 심장만은 집요하게 노리고 있어. 평범한 짐승이 아닌 게 분명한데. 대체 정체가 뭐지?”

[그 정체는 차치하고, 어디로 가면 될지는 알 것 같다.]

아까부터 말없이 주변의 바닥만 보고 있던 즈왈트가 입(?)을 열었다.

가까이 가보니…역시, 수상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생물학에 대해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 같지 않은 발자국이 마치 한 생물이 이 주위를 지나간 것처럼 일정한 간격과 보폭을 두고 바닥에 찍혀있었다. 즈왈트의 손을 따라 조금 더 생생한 발자국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정체를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헤카이트 당주의 수업에서도 들은 적 있는 내용이고.

“…키메라란 말야?”

여러 종의 생물을 이종교배하거나 마법, 연금술 등으로 합성해서 만들어낸 생물을 떠올렸다. 숲의 짐승을 마구 잡아먹고 다니는 키메라라… 키메라가 자연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드물지.

어쩐지 조금, 아니 많이 수상한 냄새가 난다. 물론 늪지의 쌓인 시체에서 풍기는 썩은 냄새만큼 지독하지는… 않지만. 아직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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