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2 2 / 기억을 잃어버린 갑옷 즈왈트에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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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게 수색을 시작한 지 아무 성과도 없는 사흘이 훌쩍 지났다. 발자국을 찾았을 때만 해도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이한 일이었다. 즈왈트가 찾아낸 발자국을 추적해도 어느 지점에선가 이상하게 끊겨버리고,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니.
“게다가 사냥도 멈췄어. 녀석은 우리를 이미 눈치챈 거야. 누군가가 따라붙었다는 것을 알고 흔적을 남기지 않을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단 얘기지.”
카르티가 짜증난다는 듯 중얼거리면서 꼬챙이에 꽂은 뱀고기를 물어뜯었다. 잘 익은 뱀고기에서 노릇노릇한 냄새가 났다.
…아, 배고파. 하지만 아무리 배고파도 뱀고기를 먹는 데는 조금 저항감이 있어서 이쪽은 꼬챙이에 꽂아놓은 생선을 집어 한 입 야무지게 깨물었다. 소금간 정도는 해 뒀지만 조금 감칠맛이 부족한 건 역시 아쉽다.
“어쩌면 그대로 늪지에서 다른 곳으로 도망간 게 아닐까?”
생선의 가시를 발라내면서 투덜거렸지만, 주위는 그다지 동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고개… 아니 헬멧을 가로저으며 즈왈트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건 아닐 것 같군. 발자국은 꾸준히 남기고 있는 데다가 녀석의 것으로 생각되는 배설물도 발견되고 있지. 먹지 않는다고 뱃속에 쌓아둔 먹을 것까지 내보내지 않을 순 없을 테니까.]
“아니면 아예 먹잇감을 통째로 삼켜버려서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고.”
케라우노스도 한마디 보태면서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만나기만 하면 최강의 전격 마법으로 단번에 골로 보내버리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지만 일단 만날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 흔적을 계속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냥감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는 데서야 짜증이 날 만하지 않나. 실제로 짜증이 부글거려서 생선의 내장부위를 콱 물어뜯었다. 쓰다. 아, 너무 쓰다.
…배가 고파서는 아니다. 생선 내장조차 아까워할 정도는 아니라 아직 가져온 식량과 식수는 충분했고, 설령 떨어진다 하더라도 곳곳에 자생하는 약초로 식량과 물을 정화해서 조달할 수는 있었다. 처박혀서 마법 공부나 하고 있을 때보다는 살갗도 그을렸고 몸도 튼튼해졌다구.
문제는… 생각보다 길어지는 추격전과 대치를 예상하지 못한 탓에 정신 쪽이 먼저 한계에 다다르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뭐어, 아직은 죽는 소리를 하는 녀석은 없었지만.
비장의 카드, [노신왕의 각인안(Odin’s Sphere)]도 아직은 쿨타임 중. 시험을 치른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틀은 지나야 쓸 수 있을 것이다… 아, 짜증나. 괜시리 발밑의 돌을 콱콱 밟으면서 부글거리는 초조함과 짜증을 풀었다.
“앗따거!”
불을 쬐고 있던 카르티가 별안간 소리를 냈다. 장갑을 벗고 잠시 맨손을 드러낸 채 쉬고 있던 차 하필이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늪지의 잽싼 벌레가 문 모양이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망할 놈의 모기는 어디에라도 있었다. 굳이 없어도 되는데.
아니, 이쪽의 모기는 잘못 물리면 재수 없으면 며칠씩이나 드러눕게 되는 게 예사였으니 더 악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쯧, 하고는 가방을 열어서 양초를 갈아서 만든 고약을 꺼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대체 왜 나만 물리는 건데?”
내민 고약을 붙이며 카르티가 투덜거렸다. 뭐… 모기라든지 이런저런 늪지에 서식하는 벌레들이 유독 카르티에게만 달라붙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친절하게도 케라우노스가 내 대신 거드름을 피우며 이야기해주었다. 아니, 그렇게 고소해할 거 없잖아. 아버지가 자식 불행을 그렇게 고소해해도 되는 거요?
“나는 평소에도 미약하게 전기가 흐르고 있으니까 벌레가 애당초 접근을 하지 않지.”
“그럼 로제는?”
“아가씨는 식물을 다루는 마법사이다보니 벌레가 싫어하는 냄새를 풍긴다고 하더라고.”
피톤치드인가 뭔가. …살아있는 방향제나 모기향처럼 취급하는 것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벌레에게 물리는 일이 많지 않은 점은 나쁘지도 않았다.
즈왈트에 이르러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고. 결국, 만만한 카르티에게 벌레의 집중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불쌍하기도 하지.
[…불운이지, 그건. 카르티. 오늘도 부탁해도 괜찮겠나?]
“아후… 뭔가 억울해. 아? 응. 잠깐만 기다려.”
조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즈왈트가 불쑥 말을 건넸다. 카르티가 고약을 붙인 손을 내려다보며 툴툴거리고 있다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그가 가진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카르티의 스킬에는 장소 선정이 조금 중요했다. 어지간하면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공터가 베스트이고 아니면 적어도 거치적거리지 않을 만한 것이 없을 정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베이스캠프를 세울 때도 그 점을 꼼꼼히 고려한 장소를 골라야 했을 정도니까.
카르티가 양손을 뻗어 스킬을 발동하자 아무것도 없게 티운 공터에 ‘작업장’이 덧씌워졌다. 망치와 모루, 화로, 풀무 등이 갖춰진 간소하지만 어엿한 대장간이었다. 모루 위에 놓인 망치를 손에 쥐고 다른 손에 에르고의 미늘창을 쥔 다음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두들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저래 봬도 이 세상의 방문객, 걸리버에게 주어진 스킬이다. 불에 달구어졌다가, 망치에 두들겨지고, 날을 갈아내는 동안, 온종일 야생 몬스터와의 싸움이나 독기어린 공기, 습기 등으로 부식되고 무뎌진 미늘창의 날이 본래의 예리함을 되찾고 있었다.
스킬, 「블랙스미스」… 라고 했던가. 알기 쉬워 좋다.
자신과 비슷하게 스킬의 한계를 돌파한 2차 해금을 시켜둔 모양이지만 공교롭게도 쿨타임이라서 특전의 사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스킬인지를 물어도 대답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당연했다. 지금은 같이 몬스터를 쫓고 있지만, 나중에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그 특전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는지 아닌지가 목숨을 빼앗느냐 빼앗기느냐의 기로가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케라우노스가 시험관으로 나섰을 때도 자신의 특전을 완전히 사용하진 않았었고.
[상상 이상으로 무기가 빨리 삭더군. 이 늪지는 정말 지독한 곳이야.]
“그런 것치곤… 갑옷은 멀쩡한데.”
[나 자신도 그 이유는 모르겠으되… 이 갑옷에 무엇인가 주문이 걸린 게 아니겠나? 듣자 하니 주인의 스승이 가지고 있던 갑옷이라고 들었으니.]
헤카이트 당주의 컬렉션이라면 부식 방지 주문이 걸려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미늘창을 얼추 수리한 카르티가 잠시 쉬면서 휴, 한숨을 내뱉고는 케라우노스가 내민 장비도 수리를 시작했다. 그가 내민 것은 지팡이였다. 보통의 지팡이가 나무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그의 지팡이는 금속으로 되어있었다.
…보통 대장간에서는 마법 장비의 수리는 해 주지 않는데, 아마 카르티의 스킬에는 ‘손상된 무기나 장비든 금속으로 된 것이라면 그게 뭐든 복구’ 같은 옵션이라도 달린 게 아닐까?
아무튼 금속 지팡이도 카르티의 망치에 견디지 못하고, 아아, 복구되어버렷. 하는 느낌으로 고쳐졌다. …난 별달리 고칠 만한 금속 장비가 없었기에 카르티에게 부탁할 일도 없었고. 아쉬워하지 마라, 이 걸리버 녀석아.
다시 미늘창을 받아든 즈왈트가 한번 그것을 붕 휘두르며 손안의 감촉을 확인했다. 만족스러운 듯 어깨에 걸치면서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 이외에 하루 동안의 수색에서 손상을 입은 장비를 철거한 뒤 카르티는 대장간을 철거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다니는 것은 성과가 없는 짓이야. 조금 방법을 달리하는 게 좋겠어.”
“달리한다면… 어떻게? 영감. 덫이라도 만들어서 놓을까?”
…덫으로 잡기에는발자국으로 보면 놈은 꽤 덩치가 크다. 그만큼 커다란 덫이 있겠어?
게다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녀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무엇인가를 잡아먹으면 잡아먹을수록 거대해지고, 강해지면서, 교활해지고 있다.
혹시 녀석은… 설마 우리 넷을 상대로 한꺼번에 싸워서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싸움을 피하면서 덩치를 불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도저히 평범한 키메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키메라가 자연발생했을 리가 없다고. 누군가가 실험을 위해 풀어놓기라도 했나?
하지만 케라우노스는 상황을 아직 낙관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을 더없이 신뢰하는 자 특유의 웃음이었다.
“일단 내게 생각이 있어. 이런 놈을 상대할 때는 가장 중요한 건 미끼라고.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내놓으면 어떤 녀석이든 결국 걸려들게 되어있으니 말야.”
케라우노스가 조금 생각하다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즈왈트는 신중하게 들으면서 수긍한 눈치였고, 카르티는 조금 미심쩍은 듯이 반신반의한 눈치였다. 나는… 별로 그 작전에 기대가 가지 않았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이 아저씨에게 읽히고 싶은 책과 그 내용이 떠오르고 있었다.
케르 씨, 혹시 어니스트 시튼이라는 사람이 쓴‘늑대왕 로보’라고 아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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