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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텀 로즈-3화 (3/157)

〈 3화 〉 1 ­ 1 /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에게(2)

* * *

­ 2 ­

…거기까지 듣고 나서 내 앞에 앉은 여자는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

일단은 내 고용주인 사람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정신이 조금… 아니 상당히 이상한 사람이지만 그것 말고도 따질 게 많으니 지금은 일단 넘어가자고.

그녀는 시즈닝 아줌마가 싸준 쿠키를 오독 하고 깨물고는 물을 탄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시즈닝 아줌마는 넉넉히 쌌으니 가져가서 모두 같이 나눠 먹으라고 했지만, 자신은 한 조각도 맛보지 못했다.

다른 창녀들에게 돌아갈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아무튼 마담 윕은, 초록색 눈동자를 무료하다는 듯 내리깔았다가 다시 치뜨고는 탁탁, 제 앞의 탁자를 손에 든 채찍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저게 바로 그녀가 마담 윕(Whip)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녀에 대한 존경심에 관해서도 뭐, 짐작하시는 대로.

"그래서? 뒤에 더 할 말이 있을 거 아냐.”

“그 날 쉬고 싶어서요.”

할 말이 있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을 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마담 윕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동작으로 쿠키를 들어 입에 물고 따악 깨물었다.

바삭하고 입술 사이에서 쿠키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맛있겠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손에 쥔 채찍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되풀이하다가… 장부를 펼쳤다.

“로즈 너, 비번이 언제였지?”

“어제였는데요.”

모처럼 비번이라 잠 좀 자려고 했는데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이 급한 손님이 들어왔다고 빨리 나가라고 보채대서 허둥지둥 나갔던 건 기억에 없으신가.

없으시겠지.

마담 윕은 제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고 나서의 일은 싹 기억에서 잊어버리는 사람이니까.

그래? 하고 별로 가타부타 반응하지 않고는 몇 페이지 장부를 빠르게 넘겼다.

“어제 손님… 성기사였네. 어땠어?”

“별로였어요.그 손님 그다지 자기 직업이 적성에 별로 맞지 않아뵈는 눈치던데?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것 같고.

그런 식으로는 직업 만족도가 높지 않겠어요. 성기사말고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하는데.

아니, 그러나 저거나 그 손님, 명색이 성기사가 좆 커지는 약 같은 거 몰래 써도 되는 거에요?

그 뭣이냐… 이 동네 성직자들한테는 뭐 그런 계율 같은 것도 없나. 간음하지 말라거나. 뭐 그런 거.”

마담 윕의 어이없다는 눈이 날 향했다. 앗차, '존경해 마지않는'을 빼먹을 뻔했군.

이래서 걸리버(Gulliver)란, 하고 그녀는 짜증 난다는 투로 한 마디 내뱉더니 쿵쿵, 채찍 자루로 제 책상을 두어 번 또 두들겼다. 부서지겠수.

“뭔 소리야. 그런 이야기 말고, 요금 제대로 받아왔냐고.”

“네, 뭐. 현금은 아니지만, 샌즈 상단에서 발행한 어음으로 끊어왔어요.”

그녀의 앞에 돌돌 말린 양피지를 내려놓았다.

봉납을 풀고 그것을 펼쳐본 마담은 내용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 책상 아래에서 금고를 꺼내어 목에 걸고 있는 은열쇠로 열었다.

방금 마담에게 제출한 것과 같은, 여러 상업조합의 인장이 박힌 어음들이 두툼하게 뭉치를 이루고 있었다.

저게 다 여기 창녀들이 손님 받은 값이라 이거지. 자신도 한 지분 할 거고.

“일단 알겠어. 그 날 쉬어도 좋아.”

“네.”

“대신. 우리 스타일 알지? 내려가서 준비해놓고. 나가봐.”

…그럼 그렇지. 곱게 쉬게는 안 해주는구만.

아니, 그래도 쉬라고라도 하는 게 다행인가. 어차피 오늘은 기왕 좆된 몸, 마저 좆뺑이 굴리고 치유 받고 나서 잠이나 자야지.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일단 방을 나왔다. 휴우, 그제야 한숨이 나왔다.

“로즈~”

“으엑?!”

에휴, 하고 스스로의 더럽게도 불운한 삶을 저주하고 있으려니 등에 물커엉, 하고 말랑말랑하고 출렁출렁한 감촉이 달라붙어 비벼댔다.

누구게! 하고 눈을 가리는 것은 덤. 이 쌍팔년도 장난은 이 세계에도 있는 거였냐! 있었습니다, 젠장!

“미카 씨인 거 다 아니까 좀 이거 놔주시지 그래요?!”

“아니~ 틀렸어. 난 미카 씨가 아니다~?”

“네네, '아리땁기가 오월 튤립 같은' 미카 씨! 이제 놔주실래요?!”

참고로 이름 앞에 붙는 뭐시기들은 주로 높으신 분을 손님으로 받을 때 받는 거랜다.

즉, 이 사람… 머리를 연분홍색으로 물들인 창녀, 미카 씨와의 잠자리에서 '넌 아리땁기가 오월 튤립 같구나' 같은 소릴 잘도 지껄인 귀족 나리가 있었단 뜻이다.

그리고 그게 마음에 들면? 제 이름에 포함시키는 거고. 나름대로 중요한… 셀링 포인트다.

참고로 나한테는 없다.

어제 받았던 근육투성이 가슴털 성기사가 뭔가 붙여줬으면 썼을지도 모르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양반은 평소 직장 스트레스가 극심했는지 제 자지 휘둘러대는 데만 바빠보였다고.

뭣보다 그 가슴털 기르는 센스로 봐선 제대로 된 걸 붙여줄 거란 기대는 일단 접는 게 나아보였고.

“어제 일 힘들었지~? 비번인데 쉬지도 못하구. 언니랑 가서 코 잘까~?”

“…저기요, 미카 씨. 미카 씨 머리가 조금만 더 빨갛더라면 저 대신 어제 미카 씨가 갔을걸요? 아우, 허리 아파 죽겠네.”

“어휴. 우리 예에쁜 로즈를 그렇게 씹창으로 만들어놓은 거야? 페리링한테 가? 힐 받으러?”

“그건 나중에. 지하 내려가야 해요.”

지하, 라는 말이 나오자 서글서글하게 장난을 걸던 미카 씨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아씨, 그런 동정어린 눈으로 보지 말라고요. 난 이미 전생에서도 충분히 동정받으면서 살았단 말야.

여기서도 뭐, 동정받을 만한 삶이긴 한데 별로 달갑지 않다고.

“또 마담한테 어울려주는 거야? 로즈 오고 나선 부쩍 로즈만 찾네, 마담.”

“아 네, 뭐어… 제대로 치료도 해 주고 그 때마다 돈도 나오니 아직은 뭐 그냥저냥 받을만해요.”

“마담은 그걸 교육이라고 부르지만 말야.”

참고로 마담 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교육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조교라고 불렀으면 불렀지.

에휴, 하고 서로 한숨을 짓는 가운데, 눈가에 꾹 하고 달라붙는 말랑말랑한 감촉에 읏, 하고 잠깐 신음을 내었다.

미카 씨의 촉촉한 입술이 눈가에 꾹 닿았다가, 떨어졌다. 정말 스킨쉽이 두서가 없는 사람이라니까. 애정표현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마담한테는 살살 해 놓으라고 얘기해놓을게.”

“그래주시면 참 고맙겠어요… 몸이 축날 것 같다니까.”

미카 씨가 안고 있던 팔을 풀고는 마담의 방을 노크했다.

들어와, 하고 목소리가 들려오자 가벼운 발걸음으로 종종종, 한 마리 티티새처럼 들어가는 미카 씨.

후우, 하고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눈가를 매만졌다가, 내 팔자야 하고 우울하게 중얼거리며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두꺼운 철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면, 마치 고문실이나 감옥 같은 살풍경함이 나를 반겼다.

여기에 익숙해지는 건 요만큼도 달갑지 않다고요.

“아, 싫다싫어….”

그럼 슬슬 내 사악하고 사기적이면서도 사특한 스킬을 공개하도록 할까.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 입으로 '커스텀 창 오픈'이라고 중얼거리면, 마치 의식이 어디론가로 쭈욱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블랙홀 안으로 사방의 풍경이 빨려 들어갔다가, 그 모든 풍경이 사라진 컴컴한 어둠 아래 자기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 있는 감각.

이렇게 되면 바깥에서는 어떻게 보일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마담 윕의 규칙으로 절대 남들이 보는 데서 스킬을 사용하지 말 것을 명령받았으니까.

자신이 서 있고,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 옆쪽에 빼곡하게 들어찬 각종 항목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처음 봤을 때는 기겁까지 했지. 뭔 메뉴가 이렇게 많냐고. 이런 스킬을 준 신이라는 새끼는 혹시 엄청난 변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건 있는 게.

[안녕하세요, 장미 씨? 어제 뵙고 또 뵙네요. 간밤은 평안하셨나요?]

“안녕. '웬즈데이'. 별로 평안하진 못했네. 창 간략하게. 프리셋 보여줘.”

그나마 나 혼자 맨땅에 헤딩하라는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거기다가 이 세계에서 내 원래 이름을 불러주는 건 얘가 유일하기도 했고. 사실 여기서 쓰는 이름을 제안한 것도 얘이기도 하고.

냉정히 생각하면 이중인격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깊게 생각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참고로 얘 이름이 웬즈데이인 것은 내가 죽은 날이 수요일이라서. 간단하지?

[자, 오늘은 어떤 스타일로 커스터마이징하시겠어요? 쭉쭉빵빵? 청순가련?]

“쭉빵하면서 청순하게.”

[장미 씨도 참! 살아생전에 헤어숍 가면 욕 좀 쳐들으셨겠어요!]

“그리고 이제 숍 같은 데는 안 가도 되겠고.”

그래도 얘랑 대화하는 게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정신만 잠시 집중하면 대화 상대가 필요할 때 언제라도 불러낼 수 있으니, 적어도 토끼처럼 외롭다고 죽거나 하지는 않겠지.

웬즈데이는 손에 든 완드(Wand)로 허공에 원을 그리듯 둥글게 움직였고, 끝모를 듯이 늘어서 있던 커스터마이징 창이 간략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전에 세이브해둔 프리셋이 그 창 옆에 떡하니 나타났고, 한숨만 나오는 타이틀의 프리셋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왕가슴 3번.”

[어휴, 오늘도 조교군요?]

“말도 마라. 여자가 왜 이렇게 여자 젖탱이에 환장하는 거야?”

출러엉, 하고 내 눈앞의 내… 마네킹의 젖가슴의 지방량이 순식간에 대폭 증가했다.

손으로 받치지 않아도 되려나 싶은 압도적인 질량은 실로 출렁출렁하다못해 푸룽푸룽, 이란 의성어가 어울릴 정도였다…

눈앞의 내가 무표정이라서 더 이상해.

“얼굴이랑 머리색, 헤어스타일, 피부색, 키, 전부 내 디폴트로.”

[시력도 디폴트로 조정할까요?]

“조교 받다 안경 깨먹을 일 있어? 시력은 지금 그대로 유지해줘. 그리고….”

[네, 음모 무성하게. 체중은요?]

“……지금 그대로.”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웬즈데이.

눈앞의 자신은 생전 자신의 원래 모습… 조금 우울한 낯빛을 한 여자의 얼굴로 변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생전과 계속 마주하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데. 사실상 눈앞의 여자는 자신과 얼굴만 같지 몸은 거의 딴판이지만….

…털 꼼꼼하게 정리하고 살았다고. 왜.

“손님 받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만 하자. 완료.”

[네, 변경 사항 반영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웬즈데이의 머리 위에 뜬 빈 막대가 천천히 노란색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읏, 하고 자기 몸의 변화를 내려다보았다… 붉게 물들인 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닿는 검은색으로 물들었고, 아마 눈동자 색도 그렇게 바뀌었을 것이다.

조금 하얀 색조로 바꿔두었던 피부색도 조금 탄 원래의 색으로 짙어졌고, 갑작스럽게 몸을 움찔거리게 하는… 비대해진 젖가슴.

제 손으로 만져봐도 현실감이 들지 않는 크기에 신음했다.

살아생전 가슴이 이 정도 컸다면 먹고사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려나 어땠으려나. I컵? 그런 컵이 실존하기는 해?

조금 늘려놓았던 키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키는 약 10cm 정도까진 조절할 수 있었다.

체중…은 넘어가자. 넘어가자고.

마지막으로 배꼽 아래에서부터 보지까지 관리 안 된 것마냥 무성하게 자라난 음모까지 확인하곤 이 변태스러운 취향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건 여자로서의 자존심 문제인데. 하아, 씨발.

[모든 변경 사항 반영되었습니다, 장미 씨! 오늘은 좀 살살 넘어가시길 바랄게요~?]

손을 흔드는 웬즈데이. 나타날 때와 다를 바 없이 어딘가에 빨려들 듯 사라져가는 주위의 아무것도 없는 풍경들에서 가벼운 정신적 멀미를 느꼈다.

원래 자신이 서 있던 살풍경한 조교실로 다시 풍경이 바뀌었을 때, 쿠르릉, 하고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준비됐어, 로즈? 그럼 시작해볼까.”

그게 말이죠.

몸의 준비는 다 되었는데 마음의 준비가 아직 덜 됐는데, 그냥 가서 쉬면 안 될까요?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응 안 될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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