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7 - 217화- 여비서, 선전하다
[윽?]
아트리아는 즉시 옆으로 몸을 굴렀다. 굴림과 동시에 거대한 고주파가 그녀가 있었던 자리를 강타했다.
-콰가가가강!
아트리아가 서 있던 지면을 뚫고 수평선 저 너머까지 관통한다. 절반가량 남아 있었던 1번 섬은 또다시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만약 아트리아가 제때 피하질 못했다면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거다.
간신히 남은 땅에 착지한 아트리아였으나,
[죽어라아아아아!]
[…!]
바로 도약해야만 했다. 도약과 동시에 그녀가 있던 자리를 거대한 주먹들이 지면을 강타했다. 지면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렸다.
섬 하나를 그냥 지워버리는 무지막지한 괴력에 아트리아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힘이 저렇게 센 거야?’
섬을 그저 껌으로 취급할 정도의 위력이라니. 고작 몇 번 공격을 가한 것 만으로도 1번 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흑광을 먹었길래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얼마나 자신들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길래 저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걸까?
‘원한 살만한 짓은…많이 했지.’
아르웬이 자신들에게 복수심을 품을만한 이유는 넘치고도 남았다.
‘아비는 토막 냈지.’
아비인 한스는 주인님이 살해했다. 평범하게 죽인 것도 아니다. 돼지를 도축하는 것처럼 머리와 사지를 토막 냈다. 친절하게도 몸에 있는 내장까지도 발라냈다. 그 상태로 주인님은 한스였던 고기를 세이렌 섬에 보내버렸다.
그런 아비를 본 아르웬의 심정은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거다.
‘어미는 세뇌해버렸지.’
어미인 글랜디는 주인님에 의해 타락했다. 육신을 개조해 평생 우유를 짜내고, 평생 병사를 낳는 가축으로 만들었다. 일어서는 것조차 못할 정도로 가슴을 어마어마하게 키워버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인님만 생각하는 색녀로 기억을 조작했다.
사랑하던 남편은 자신을 학대하던 남자로 바꾸었고,
소중한 두 딸은 남편이 아닌, 주인님과의 사랑을 통해 낳은 결실이라는 식으로 바꿨으며,
자신과 두 딸은 주인님을 위해 평생 봉사하는 것이 의무라는 기억을 주입했다.
거짓으로 점철된 기억을 진짜로 받아들이도록 개조했다.
완벽하게 개조했기에 만약 아르웬과 재회하더라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다.
‘언니마저 타락했지.’
언니 카르디안 역시 타락했다. 처음에는 세뇌당했으나, 이후 강림이 세뇌를 풀었다. 푼 다음에 자발적으로 복종할 때까지 떡을 쳤고, 떡 치기에 이기지 못한 카르디안은 영원히 주인님을 위해 평생 봉사하겠다고 맹세했다.
우리 편으로 종속되었기에 아르웬이 설득해도 카르디안이 전향할 일은 없을 거다.
‘주민들도 타락시켰지.’
가족 다음으로 아르웬이 소중히 여기는 자들은 세이렌 섬 주민들이다.
그 주민들마저 노예로 타락했으며, 다신 아르웬 곁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을 모조리 다 빼앗겼으니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을 거고, 당연히 복수하고 싶어 할 거다.
그 복수의 형태가 지금의 아르웬이었다.
복수를 위해 아르웬은 초거대 괴수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괴력의 원천 역시 복수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 보면 이건 심판이라고 볼 수 있을 거다.
이게 천인공노할 짓이라는 걸 주인님은 물론이요,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니까. 만약 여기서 패배한다면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네 마음은 잘 알지만…’
그래도,
‘우린 이대로 당하지 않을 거야.’
아트리아는 얌전히 심판받을 마음은 없었다.
‘우리도 목숨 걸었거든.’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반성한다고 되겠나? 갈 거면 끝까지 가야지. 지금의 주인님도 이리 말씀하셨다.
-놈들이 먼저 망하든, 우리가 먼저 망하든 끝까지 간다! 너희들도 따라와라!
이미 시작된 전쟁이다. 끝을 볼 때까진 중간에 멈출 수 없다. 누가 멈춰 세워도 세상 끝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전진해야 한다. 전진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멈추면 사이좋게 파멸하게 될 거다.
그 꼴을 아트리아는 당하고 싶진 않았다. 새로운 주인님 만드는 낙원이 어떤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니 고작 초거대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얌전히 죽어줄 마음은 1%도 없었다. 반드시 이길 작정이었다.
[어딜 도망가냐아아아!]
[윽?]
물론, 이기기 위해선 아르웬을 어찌 공략해야 할 지부터 찾는 게 관건이지만 말이다. 아르웬이 또다시 주먹들을 휘두르자 아트리아는 위로 도약했다.
도약과 동시에 아르웬의 머리를 향해 입을 벌렸다.
보라색 입자가 아트리아의 입에 모여들었다.
[이거나 먹어라!]
보라색 입자포가 아르웬의 머리를 향해 발사되었다. 충돌과 동시에 연기가 피어올랐고,
[…제기랄.]
아트리아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거리에선 안 되는 건가?]
아르웬의 얼굴은 멀쩡했다. 그을린 흔적만 있을 뿐, 살이 타들어 간 부위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얼마나 단단하면 입자포….]
아트리아는 그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분노한 아르웬이 주먹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아트리아는 바로 옆으로 몸을 틀었고,
[잡았다.]
[이런!]
아르웬이 내지른 두 팔에 붙잡히고 말았다. 한 손으로는 몸통을,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붙잡은 아르웬은 힘을 주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살이 뜯어지는 소리가 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뜯어진다!’
이대로 머리와 몸통을 분단할 작정이다. 머리를 잃어도 죽지는 않지만, 한동안은 움직일 수 없다. 최악이 벌어지기 전에 어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 걸까? 아트리아는 빠르게 머리를 회전했고,
‘그거라면 될지도 모르겠어.’
바로 답을 찾아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아트리아는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콰가가가강!
[으아아악!]
아르웬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았다. 덕분에 아트리아는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빠져나온 아트리아의 몸에서 보라색 입자가 흩날렸다.
‘통해서 다행이야.’
입자를 전신에 골고루 살포했다. 그런 다음에 입자를 터트렸다. 제아무리 입자포에 견디는 녀석이라도 이것에는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는 견디지 못할 거다. 이런 아트리아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 증거로 아르웬의 두 손바닥은 새까맣게 타들어 있었으니까.
다만, 대가는 있었다.
‘윽, 몸이 부서질 것 같아.’
자기 자신을 폭탄으로 사용했기에 아트리아의 몸도 멀쩡하지 않았다. 보라색 갑주 곳곳에 균열이 생겼고, 갑주가 덮이지 않은 곳에는 검은색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아직 싸울 수는 있으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다들 올 때까지 버텨야 해.’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오고 있는 주인님이 있다. 동료들이 있다. 그들이 모일 때까지 버텨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녀석에게 타격을 줘야만 한다.
그렇다면….
결론을 내린 아트리아는 다시 한번 더 도약했다.
[어딜!]
아르웬은 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여섯 개의 팔을 마구 휘두르며 아트리아를 공격하려고 시도했다. 아트리아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주먹들을 모조리 다 피해냈다. 전부 피해낸 아트리아는 아르웬의 등 쪽으로 몸을 날랬다. 그대로 목덜미가 있는 곳에 발을 내디뎠다.
내딛음과 몸을 숙였다. 숙이고, 입을 크게 벌렸다. 벌린 상태에서 입자포를 발사했다.
-쿠가가가가강!
쏘고, 쏘고 계속 쏜다. 더는 입자포를 발사할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계속 쏜다.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고통스러운지 아르웬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악!]
아트리아는 멈추지 않고 입자포를 쏘아댔다.
‘통하고 있어!’
조금씩이지만, 목덜미 부위가 타들어 가고 있다. 근거리 사격이라 아트리아 본인도 입이 타들어 가고 있으나, 개의치 않고 입자포를 마구 쏘아댔다.
이렇게 계속 쏘아대면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계속 입자포를 쏜다. 턱이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계속 쏜다. 쏘고, 쏘고, 쏘아서 녀석을 박살 낸다.
하지만, 포격은 중단되고 말았다.
[으윽?]
무언가가 아트리아의 몸을 옥죄었다. 고개를 돌린 아트리아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게 무엇인지 보았다.
‘꼬리?’
아르웬의 꼬리였다. 꼬리를 이용해 아트리아를 포획한 거였다. 아트리아를 칭칭 감은 꼬리는,
[크아아아악!]
괴력으로 아트리아를 옥죄었다. 토마토가 터지듯이 아트리아의 사지는 순식간에 비틀어졌고, 뱃가죽이 터져 장기가 쏟아졌다. 보라색 괴수의 입에서 더는 비명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아르웬은 꼬리는 옥죄는 걸 멈추질 않았다.
더는 미동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아르웬은 아트리아를 집어던졌다.
[비, 빌어먹을….]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트리아는 자신이 수면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을 쏟아내는 바람에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으며,
[재롱은 다 떨었냐?]
아르웬 앞으로 끌려왔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이제 끝내주마.]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 아르웬은 입을 벌렸다.
[날 죽여도 괜찮을까?]
그런 아르웬을 향해 아트리아는 말했다.
[날 죽이면 주민들도 같이 죽을 텐데?]
[…뭐?]
[지금 이 몸에는 네가 사랑하는 주민들이 들어있다고.]
아트리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끕, 우끕, 우끕, 우끕!
-후끅, 후끅, 후끅, 후끅!
-우끄으으윽, 후끄으으윽, 흐끄으으윽!
아트리아의 동력실에는 세이렌 섬 주민들이 들어있다. 이들을 동력원으로 삼은 이유는 간단하다.
아르웬이 쉽게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주민들을 아끼는 그녀라면 인질들을 보고 망설일 수밖에 없을 거다.
이대로 다들 올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다면 좋겠으나,
[그래서, 어쩌라고?]
유감스럽게도 실패했다. 아르웬은 퉁명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주민들이 죽는다고 내가 신경 쓸 것 같아?]
[영주가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당연하지. 복수를 위해서라면 뭐든 희생시켜야 하는 게 도리잖아?]
[젠장….]
이미 복수에 미친 아르웬의 눈에는 주민들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인질이 소용이 없다면 이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주인님….’
아르웬의 입으로 마력이 모이는 걸 보고 아트리아는 체념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콰아아앙!
어디선가 날아온 고주파가 아르웬의 머리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