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6 - 216화- 집결하라(1)
3번 섬에서도 아르웬의 출현을 목격했다.
[세상에 맙소사….]
3번 섬 상공에는 분홍색 털로 이루어진 거대한 박쥐가 날고 있었다. 박쥐의 푸른 눈은 1번 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박쥐의 정체는 암살단 대장 스텔라. 3번 섬을 공략하기 위해 스텔라는 자신이 이끄는 암살단과 두 공작단을 동원해 섬을 침공했다. 섬에 주둔한 왕국군은 저항했으나, 끝내 함락이란 결말을 바꾸지 못했다.
이렇게 섬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하고, 포로들까지 붙잡은 스텔라는 이대로 철수하려고 했다. 전리품들을 실은 함선을 타고 카르디안이 이끄는 함대와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럴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1번 섬에서 이변이 발생하고 말았다.
[저런 것도 가능하다고?]
1번 섬은 반파되었다. 섬의 절반이 흔적도 사라졌다. 섬이 있어야만 했던 자리에는 오직 바다만 보였다. 그 자리에 있던 강철 군단은 물론이요, 포로로 붙잡은 왕국군 역시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그 어떤 무기도, 그 어떤 마법도 섬 그 자체를 없애버릴 수준의 위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만약’이라는 것도 있지만, 적어도 스텔라가 아는 선에선 그런 건 없었다.
그랬는데, 아르웬이 저질렀다. 괴수의 힘으로, 거대화에 성공한 괴수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저질러버렸다. 고작 고주파 한 번 발사하는 것만으로도 섬을 소멸시켜버릴 줄이야. 암살단의 대장인만큼 언제나 냉정해져야 하는 스텔라조차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란 건 스텔라 혼자가 아니었다.
-아, 아르웬이 괴물로?
스텔라의 몸에는 동력실이 존재한다. 괴수로 변하면 필수적으로 가지게 되는 기관. 그 기관을 돌리기 위해선 여자를 집어넣어야 한다.
여자를 집어넣고, 촉수로 능욕하고, 끊임없이 절정에 이르게 한다. 제물이 쉬질 않고 절정에 이르러야 괴수는 무한정 행동할 수 있다. 한정 끝도 없이 몸을 갉아 먹는 성욕을 제물의 절정으로 해소하지 않으면 괴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괴수가 된 아트리아도, 이리스도, 탈리아도, 페르포네도, 강림도, 테리스도, 수아도, 그리고 스텔라도 언제나 동력실에 다수의 여자를 집어넣었다.
지금 스텔라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도 동력원에 집어넣은 여자 중 한 명이다.
-왜 아르웬이 저런 모습으로?
카르디안과 아르웬의 어머니, 글랜디였다. 촉수에 자신의 몸을 내준 그녀는 둘째인 아르웬이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스텔라의 생각이 고스란히 글랜디에게 전달되었기에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
-저렇게 되어버리면 안 되는데….
괴물이 되어버린 딸의 모습에 글랜디는 걱정했다.
-저렇게 되어버리면 주인님에게 봉사할 수 없을 텐데….
괴물이 되어버렸기에 사이좋게 주인님을 위로해주는 게 불가능해지는 게 아닌지 글랜디는 걱정했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그런 것에 걱정하지 않겠지만, 세뇌가 완료된 글랜디는 아니었다. 오직 주인님 말곤 다른 건 전혀 떠오르지 않기에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일단 내려가자.'
가더라도 지시는 내리고 가야지. 그렇게 방침을 정한 스텔라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상황은 어때?"
초록색 단발머리에 노란색 눈동자를 지닌 여성이 물었다.
악어족 수장 크로커다. 악어족의 상징인 악어 꼬리가 엉덩이에 달려 있으며, 눈동자도 파충류와 똑같이 검은 동공이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최악이야?"
왼손에 쥐고 있던 여군을 놓으며 크로커는 물었다. 알몸인 여성은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아후으으, 후으으으, 흐아아아…."
여성은 계속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가랑이 사이에선 애액이 흘러내리고,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지휘부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크로커가 이끄는 악어 공작단에 의해 지휘부가 습격당했고, 홍일점인 그녀를 제외하곤 다들 목이 뜯겨나갔다. 살아남은 여자는 크로커에게 붙잡혀 조교 당했고, 막 조교가 끝난 참이었다.
이 싸움이 끝나고 여우섬으로 끌려가면 평생 원수의 육노예로 살아가게 될 거다.
[당연히 최악이지.]
크로커의 물음에 스텔라는 대답했다.
[아르웬 녀석, 발악도 정말 좆 같은 발악을 했어.]
성국이 아르웬에게 다량의 흑광을 제공해줬다는 정보를 스텔라도 들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흑광을 가지고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괴수로 변신할 수 있게 만드는 기적의 산물을 그냥 놔둘 리 없을 테니까.
그랬는데, 설마 이런 결과물이 나올 줄은 스텔라조차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얼마나 먹었길래 저렇게 커질 수 있는 거지?]
아르웬이 거대화한 이유는 당연히 흑광 때문일 거다. 괴수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게 흑광이다. 그 촉매제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강화하는 데 쓰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이런 경우도 수뇌부에서 나온 의견 중 하나였다.
다만,
[호랑이족 수장처럼 될 줄 알았는데….]
호랑이족 수장이었던 타이처럼 약간 덩치가 커지는 수준에서 끝날 줄 알았지, 저렇게 대양을 삼켜버리는 게 아니냐는 착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커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제, 어찌할 거야?"
검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단발머리에 은색 눈동자를 지닌 여성이 물었다. 등에는 거북이 등껍질을 매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테가. 현 거북이족 수장인 아켈론의 손녀이자, 거북이 공작단을 이끄는 대장이다. 스텔라와 크로커와 같이 섬에 상륙한 그녀는 자신의 공작단을 데리고 적들의 포병 진지를 박살 내 버렸다. 그로 인해 가뜩이나 불리한 상황에 놓였던 왕국군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끝내는 패배로 이어지게 되었다.
"카르디안과 합류할 거야?"
이렇게 점령을 끝났으나, 아르웬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고 말았다. 이를 두고 어떤 명령을 내릴 건지 테가는 물었다.
[너희들은 가.]
스텔라는 대답했다.
[난 싸우러 갈 테니까.]
저걸 그냥 방치할 순 없다. 여기서 끝내지 못하면 주인님은 파멸할 것이요, 주인님이 세운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 당연히 주인님을 따르던 자신들도 비극을 피하지 못할 거다.
그러니 싸운다. 싸워서 아르웬을 무찌른다. 지금 다들 그럴 목적으로 1번 섬으로 향하고 있는데 자신이 안 가면 뭐가 되겠나? 아르웬이 등장한 시점부터 스텔라는 마음을 굳힌 지 오래였다.
[카르디안에게 이 구역에서 물러나라고 전해. 주인님의 명령이 없더라도 무조건 그러라고 해, 알았지?]
그렇게 말을 남긴 뒤, 스텔라는 1번 섬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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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큰일 났네."
박은 대검을 들어 올리며 헤라는 그리 말했다. 대검 끄트머리에선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목이 떨어져 나간 병사 한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눈을 감지 못하고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한 채로 머리가 베였다. 병사의 얼굴을 보면 죽기 직전까지 어떤 심정인지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병사까지 다 죽인 헤라의 시선은 1번 섬으로 향해 있었다.
"잘 끝날 줄 알았는데…."
현재 헤라가 있는 곳은 4번 섬. 그녀가 낳은 데스나이트 군단을 이끌고 4번 섬을 침공했다. 전투에 나서기에 전용 갑옷을 입고 나왔다.
앞면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찰갑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앞면은 질긴 가죽으로 덮여 있으나, 반투명한 상태라 시체처럼 하얀색 피부는 물론이요, 풍만한 가슴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이를 보고 이게 무슨 전투복이냐고 어이없어하는 분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것만 보고 바보들이라고 판단하면 큰 오산이다.
이 갑옷으로 무장한 데스나이트 군단에 의해 4번 섬에 주둔한 왕국군은 전멸했으니까. 아무리 베어도 쓰러지지 않고, 포탄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도 살아나는 불사의 군대에 왕국군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왕국군은 전멸하고 말았다. 그리드라는 악마에 대한 복수심으로 똘똘 뭉쳤으나,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다 무용지물이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은 오직 여자들 뿐. 목숨을 건진 여자들은 포로가 되어 함선으로 끌려갔다. 이 싸움이 끝나면 이들도 결국 노예로 전락하게 될 거다.
이렇게 아들이 바라던 싸움도 잘 끝냈는데, 난데없이 초거대 괴수라니. 저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헤라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와, 장난 아니게 크네."
백발의 라미아 여성이 아르웬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유노. 인간 시절에는 헤라의 장녀였으나, 지금은 페르포네의 딸로 환생한 라미아가 되었다. 이번 침공에서 유노는 수많은 병사를 죽였으며,
"얼마나 먹어야 저렇게 커질까나."
수많은 여군을 잔뜩 먹어 치웠다. 그 덕에 배가 남산처럼 나와 있었다.
무사히 이 싸움이 끝나면 유노는 먹어 치운 여군들을 자신의 딸로 만들 작정이었다.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눈치 없어?"
그런 유노를 향해 핀잔을 주는 백발의 구미호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무트. 헤라가 낳은 둘째 딸이었으나, 수아와 테미네르에게 구미호로 개조당했으며, 두 사람을 자신의 언니라고 여기고 있다. 두 언니에게 배운 기술들로 테미네르는 왕국군을 모조리 다 불태워버렸다.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싱글벙글 웃는 유노의 태도에 무트는 어이가 없었다.
"눈치 좀 챙겨. 지금 감탄할 때야?" "내가 뭐 어때서. 감탄하는 것도 안 되냐?" "뭐라고?" "해볼까?"
사소한 말다툼이 칼부림으로 일어나기 직전,
"그만해!" "꺄악?" "아흑?"
헤라가 두 딸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세게 맞부딪쳤다. 유노와 무트는 머리를 싸맨 채 쭈그려졌다.
그런 두 딸을 헤라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봤다.
"그렇게 싸울 시간이 있으면 어떻게 도울지 생각을 해야지."
자신들은 저 싸움에 끼어들 수 없다. 아무리 강하다고는 해도 어마어마하게 커진 저 괴물을 어찌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괴수의 힘을 받았다면 당장에 가겠으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세 모녀 중 누구도 그 힘을 받지 못했다. 민폐를 끼치지 말고 카르디안에게 합류하는 것이 나을 거다.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고 싶지만은 않다. 그럼 어찌하면 좋을까? 어찌하….
"아, 맞아."
순간, 헤라는 떠오른 게 하나 있었다.
"두 사람, 어서 그 녀석을 데려오렴." ""네.""
헤라의 명령에 따라 두 자매는 어디론가 향했다.
잠시 뒤, 사지가 구속된 한 마법사가 헤라 앞으로 끌려왔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이 마법사는 기술자다. 대 괴수용 무기를 통제하기 위해 마탑에서 파견된 자였다. 본래라면 자신이 만든 무기로 강림 일행을 요격해야 정상이나, 4번 섬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바람에 제대로 써먹지 못하게 되었다. 기술자 본인도 포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여자와 눈을 마주친 상태에서 헤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신, 당장 우리에게 협력하세요." "뭐?" "마탑에서 만든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말하세요. 아르웬을 요격할 거니까." "웃기지 마!"
기술자는 반발했다.
"내가 아무리 파견되었다고는 해도 자존심이 있지, 누가 너희들을 위해 일할 것 같아?"
세계 정복을 노리는 놈들이다. 모든 여자를 노예로 삼으려는 쓰레기들이다.
그런 놈들을 향해 어찌 고개를 숙이겠나? 마탑 학회장님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을 거다.
"훗."
그런 기술자의 모습에 헤라는 비웃었다.
"그런 게 통할 거라고 여기나요? 당신 같이 발악하다 무너진 여자들 제국에 엄청 많이 있어요." "그딴 협박 통할 것 같아아아악?" "협박 아닙니다."
헤라가 기술자의 가슴을 세게 틀어쥐자 기술자는 비명을 질렀다. 뜯어버릴 기세로 움켜쥐며 헤라는 말했다.
"말 안 들으면 고문할 겁니다. 안 그러니?"
그 말에 유노는 입맛을 다셨고, 무트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으으…."
그 모습을 본 기술자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아아악! 아, 알았어요, 협력할게요, 협력할게요오오오!"
기술자를 굴복시킬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