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46화 (346/599)

<-- vol.11 Oxogan The Injured Angel or Fallen Angel -->

"이름은 빅 보이(Big Boy) 줄여서 BB라고 정했다네."

트롤왕 리쿤다룬이 자신의 어깨에 매단 두개의 대포를 지칭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움파카, 롬파카 형제가 오크주제에 벌크업만으로 오우거 이상의 덩치를 키워낸 점을 고려하면 저건 병사가 들고다니는게 아니라 포차가 끌고 다녀야만하는 수준의 대포가 분명했다.

그런 대포를 하나도 아니고 두개나 등에 지고서도 리쿤다룬이 마치 초등학생이 란도셀을 맨것 마냥 편안한걸 보면 Ex랭크의 근력이란게 확실히 어마어마하긴 한 모양이였다. 언데드가 되는 과정에서 분명 근섬유 손실이 아예없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지.

"으흠. 이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건가? 얼굴이 영 탐탁치않은 표정이로군. 개인적으론 심플하면서도 이 무기의 특징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생각하네만."

"뭐 네이밍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지. 중요한건 무기의 위력아니겠어? 사실 겉보기엔 지구에 널린 함포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어 보이거든. 내가 앞으로 싸워야할 괴물들 앞에서 평범한 함포는 폭죽놀이에 불과하다는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물론 지구의 현대무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수준이였다면 내가 아크리퍼 그대를 애타게 찾는 일따윈 없었겠지. 일단 잠시 색향천월관에서 벗어나는게 어떻겠나? 이곳 무기 시험장의 내구도는 지금까지 여러번 실험을 해본 결과 꽤 대단한 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달위에서 화약무기를 시험해보겠다고? 이봐 리쿤다룬 산소가 없으면 불이 붙지 않... 아니, 아니다. 오케이, 오케이. 나가서 한번 빅 보이의 위력을 제대로 감상해보자고."

나는 본체가 아닌 아바타에 로그인한 상태였기 때문에 구태여 아케인 슈트를 챙길 생각도 않고 뒷산으로 산보를 가는듯한 느낌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에서 화약무기를 사용할 경우 산소가 없어 점화가 안된다는 문제도 문제지만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밖에 되지않아 좌표계산에 오차가 생긴다는 점도 무시할 수 가 없었다.

광범위한 지역에 무차별 타격을 가한다면 모를까 고작 두개의 포신으로 가하는 포격에 오차가 생긴다면 화력이 반절로 떨어지리라. 허나 리쿤다룬은 지구가 신비문명 레벨이 제로인것처럼 과학문명이 제로인 행성에서 태엽왕이라 불리운 진성 트롤 공돌이였다. 그런 기초적인 사실도 모른채 달을 무기 시험장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을터.

리쿤다룬 또한 언데드였기 때문에 따로 우주복을 챙길 필요도 없이 우리는 격납고로 직행했다. 그런데 내가 리쿤다룬에게 내준 와일슬레이어 던클레오가 이전과는 사뭇다른 모습으로 격납고 한켠에 쳐박혀 있는게 아닌가? 처음 봤을땐 무슨 무기를 개발하고 남은 고철덩어리들을 뭉쳐놓은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던클레오의 시커먼 비늘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봐 리쿤다룬 던클레오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아하 저건 아직 미완성이니 자세한건 묻지말아주게. 이름만 미리 말해주자면 와일슬레이어 던클레오가 아닌 빅 텐트(Big Tent) 던클레오라고 알아두면 된다네. 저쪽도 빅 보이만큼이나 재밌는 녀석이 탄생할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다네."

"할줄 아는거라곤 몸부림 치기밖에 없던 녀석이 어떻게 바뀔지 심히 기대되는군. 자 그럼 이제 문연다."

쒜에에에엥!

격납고의 출입구중 하나가 열리자 바깥과의 기압차때문에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친다. 이곳에서 이 정도 바람에 휘청거릴 사람은 없었기에 우리는 당당하게 달위에 발을 내딛었다.(사실 한발을 앞으로 내민 순간 균형이 무너져서 이매망량 군단장, 소소가 나를 부축해준건 비밀)

달의 풍경이라고 해봐야 십년이 지나든, 백년이 지나든 뭐 변할게 있겠냐만은 지난번 달의 여신 디아나의 강림 사건 이후 상식을 초월하는 거대 나무가 자라나 지구와 다리를 놓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진짜 다시 없을 대장관이였지만 가까이서 월드컵 경기장 천장을 덮을 수 있을만큼의 나뭇잎을 목격하면 소름이 돋을정도였다.

게다가 다리가 생겼다곤 해도 그걸 직접 건널 수 있는 교통수단따위는 없었기에 이 나무는 애물단지나 다름 없는 녀석이였다. 아직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엄마가 이걸 본다면 좋다고 달려들겠지만 서도.

나는 리쿤다룬을 바라보며 말없이 턱짓으로 나무줄기에 휘감긴 달의 신전을 가리켰다. 어차피 처음부터 폭발시킬 작정으로 건설한 건물이였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빅 보이(Big Boy)의 첫 타겟으로 정해버린 것이였다.

"으음 역사적 가치가 꽤 높아보이는 유적같은데 함부로 파괴해도 괜찮겠는가?"

"지은지 한달도 채 안된 건물이 무슨 역사적 가치가 높긴 개뿔. 나무줄기때문에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는것 뿐이니까 빨리 대포를 쏴보기나해. 신성결계가 남아 있는게 아니라면 아마 일격에 박살날거다. 세계수쪽은 또 어떨지 모르겠다만."

"으흠 공방에서 연구에만 매진하다보니 저런 신전이 지어지고 있는줄도 몰랐군. 트롤 주술사들중에 고대 제왕들의 신전을 건들였다가 3대에 걸쳐 저주를 받은적이 있어 그러니 너무 노여워하지는 말게. 그럼 빅 보이를 쏘아올리겠네. 나도 야외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해보는건 처음이군."

리쿤다룬이 조준을 위해 허리를 살짝 숙이더니 오른손에는 자신의 머리를, 왼손에는 군용나침반을 들고 요리조리 움직이며 각을 재기 시작했다. 누가 트윈헤드듀라한 아니랄까봐 기괴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였으나 리쿤다룬의 눈빛은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적당한 입사각을 찾았는지 한쪽 무릎까지 꿇고 자세를 고정한 리쿤다룬이 VOT 단말기로도 해석되지 않는 묘한 트롤어를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빅 보이의 포신이 번쩍이더니 무슨 소라껍데기 같은게 수십, 수백개가 쏟아져 나오는게 아닌가?

본체도 아니고 아바타의 육안으로도 보일정도면 탄속이 어머어마하게 느리다는 반증이였기에 나는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한술 더 떠서 여지없이 신전에 골인할줄 알았던 소라 껍데기들이 갑자기 살아움직이기 시작한 나뭇잎 키퍼들 때문에 튕겨져 나오자 꼴이 우습게 되고 말았다.

이게 씨발 개발비만 몇만 VP가 든 신 무기의 진면목이라고? 방산비리도 이런 방산비리가 또 없구만 젠장할! 나는 계속해서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며 내 발 근처로 굴러들어온 소라 껍데기를 집어들었다. 리쿤다룬 너 이 새낀 아주 뒤졌어!! 척추 골수뿐만 아니라 뇌골수도 뽑아 먹어주마.

"안돼네, 아크리퍼! 황린탄을 집어들어선 안돼네. 아무리 자네의 재생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안돼긴 뭐가 안돼. 넌 이제부터 받은거 다 토해낼 준비나... 으아아아아아아악!!!"

치이이이이이이익!

내가 리쿤다룬의 경고를 무시하고 소라 껍데기안에 뭐가 들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안을 들여다본 순간 갑자기 매캐한 냄새와 함께 황갈색 액체가 흘러나와 내 얼굴을 덮쳐버렸다. 아바타에는 환수갑옷 그레이트 쟈칼도 아케인 쉴드도 없었기에, 그 신원미상의 액체로 때아닌 세수를 하게된 나는 얼굴피부가 녹아내리는 극심한 고통에 달이 떠나가랴 통곡의 비명을 내질렀다.

다행히도 얼티밋 언데드 폼의 뼈를 이루는 언옥타늄은 녹지않았지만 얼굴가죽이 산채로 벗겨지는 경험은 끔찍하기 그지없는 것이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찐득찐득한 황갈색 액체가 피부재생을 방해해 계속해서 나의 고통을 끊임없이 가중시켰다. 이러다간 쇼크로 기절할지도 모르는 일이였기에 나는 감각을 담당하는 언데드 회로를 일부러 과부화시켜 끊어버렸다.

파직!

그제서야 몸이 진정되서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겨 빅 보이가 뿜어낸 다른 소라 껍데기를 살피니 하나같이 주변에 황갈색 액체를 토해내며 달의 대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뭐 원래 달의 표면이야 여드름을 짜낸 자국으로 도배된 황폐한 땅이였지만 이젠 아예 회생불가능한 영역에 이르렀달까?

세계수가 갑자기 살아움직이며 저 소라 껍데기 그러니까 황린탄을 튕겨낸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아무리 신이 급성장시킨 신비의 나무라고 해도 저런게 나무 표피에 닿으면 버텨낼 재간이 없으리라. 나는 얼굴에 남은 부식성 액체의 찌꺼기를 블랙탈론으로 긁어낸 다음 리쿤다룬을 사정없이 노려보았다.

"미, 미안하군. 아크리퍼. 설마하니 저 나무가 살아 움직여 황린탄을 튕겨낼줄은 꿈에도 몰랐네.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을 고려해서 미리 황린탄의 효과를 말해줬어야 했는데 깜짝 놀래켜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보니..."

"아, 그랬어? 그럼 나도 신무기 탄생기념으로 서프라이즈 파티나 해야겠다. 이거나 쳐먹어 늙다리 트롤 새끼야!!"                  34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