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6 vol.10 Oxogan The Goddess of the Moon ========================================================================= Reg
순번을 무시한 내가 대놓고 아크엔젤 하희빈과의 접견을 성사시키자 주위에서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왁자지껄 지들끼리 내 험담을 하더니 종국에는 나를 사탄의 자식이라 지탄하며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하여튼간에 종교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물타기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나는 사탄의 자식이 아니라 사탄의 아버지다!'라고 되받아쳐주고 싶었지만 입이 씨거워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나를 태풍의 눈삼아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십만 이매망량의 기세때문에 나에게 섣불리 접근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영매능력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망령들이 이 정도 밀집되어 있으면 마치 저주받은 폐가에 들어갔을때처럼 오한과 섬칫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였다. 내가 의도적으로 망령들의 기운을 억제한다면 모를까 보통 사람들은 내 눈을 쳐다보고 얘기를 하는것도 쉽지않은 것이다.
여기서 한번 더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매망량들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저정도일진데, 영력을 갖고 있는 소위 귀신을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 볼때 나는 그야말로 살아움직이는 귀곡산장 그 자체일것이다. 아까 계량한복을 입은 무당 꼬맹이가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시퍼래져서는 딱 한마디만 건넸을뿐인데 꽁지가 빠져라 도망친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크리퍼님 하희빈 교주님께서 만남을 허락하셨습니다. 따라오시지요."
그렇게 나를 둘러싼 신도들이 수근거리는걸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있는데, 하희빈을 데리러 갔던 무당 소년이 아닌 무당 소녀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 또한 내가 하희빈과 고급 중식레스토랑에서 담판을 지을때 자리를 같이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이목구비가 무당 소년과 미묘하게 닮은게 남매가 확실한 것 같았다.
누나인지 여동생인지는 민증을 까봐야 알 수 있는거겠지만, 적어도 무당 소년쪽보다는 의연하게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나는 하희빈이 나와의 만남을 허락했다는 표현이 다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일단 그녀를 만나야 미하엘로프 소장과 관련된 일이 진척을 보일 수 있었기에 묵묵히 무당소녀의 뒤를 쫓았다.
고전적인 디자인의 새하얀 대리석 복도를 지나다보니 내가 고대 그리스로 시간여행을 온건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정도였다. 그러다가 눈앞의 무당 소녀가 입은 계량한복 치마를 목격한 나는 실소를 내뱉었다. 풋! 이쪽은 또 조선시대로구만.
"왜 갑자기 웃으시는겁니까?"
"아니 그냥 요즘 시대에 보기드믄 장치마같아서 말이지. 요새 치마는 보통 무릎부터 스타트 라인을 끊으니까 말이야."
"그쪽이 이상한겁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들춰지고, 의자에 안거나 계단을 올라가기만해도 노출을 걱정해야하는 옷을 입는 처자들을 저는 이해할 수 가 없더군요."
"글쎄. 과연 장치마라고 해서 들춰지는 일이 없을까? 아이스께끼!"
펄럭.
나는 도저히 끝이 안보이는 성당 복도를 하염없이 걷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무당 소녀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었다. 좀 유치한 장난이긴 하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두터운 장치마에 가려져 있던 곰돌이 캐릭터 팬티가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 무당 소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것이다.
이미 중력의 법칙에의해 한복치마는 가라앉은지 오래였지만 무당 소녀는 허겁지겁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가려버렸다. 누가 영매능력자 아니랄까봐 육체적인 반사신경이 반박자정도 느린듯 했다.
내가 무당소녀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접근하자 그녀가 내 손을 찰싹! 쳐내더니 화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 이게 무슨짓인가요!"
"보이는 그대로 네 팬티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치마를 들춘건데?"
"그, 그 무슨 파렴치한...! 듣던대로 예의가 없다못해 후안무치하신 분이로군요!!"
"딩동댕! 정답이야. 바로 맞췄어. 그런데 말이야 이 정도는 장난기가 심한 초등학생들도 심심치않게 하는짓이고 여기까지 해줘야 진짜 후안무치한 사람이라고 어디가서 자랑하고 다닐 수 있는거란다."
더듬더듬.
나는 무당 소녀에게 거절당한 손으로 이번에는 한복 치마 위로 도드라진 엉덩이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워낙 한복치마가 두꺼워서 그런지 지금 내가 만지고 있는게 궁뎅이인지 아니면 그냥 솜베게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는 한복치마밑으로 손을 넣어 곰돌이 팬티를 직접 만져보려고 하는데 뒷골이 찡할정도의 살기가 나를 덮쳐왔다.
오싹.
서둘로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무쇠로 만든듯한 석장이 내 면상을 덮쳐오는게 한 반자 반은 더 빨랐다. WAV(Wearable Archane Vest)의 아케인 쉴드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내가 무의식적으로 코뼈가 박살나는 이미지를 떠올린 순간 이매망량 군단장 소소가 나타나 한손으로 석장을 막아내 보였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석장의 주인을 쳐다본 순간 나는 성당이라는 공간에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불교의 야차동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겉보기로만 야차동상처럼 생긴거고 실제로는 이매망량 백인대장정도의 영력이 느껴지는걸보니 스펙트럴 띵(Spectral Thing)이 분명했다.
과연 이정도의 하수인을 부릴 수 있는 영매능력자였기 때문에 내 십만 이매망량을 보고도 의연할 수 있었던건가. 나는 소소와 야차동상이 석장을 줄다리기용 밧줄 삼아 힘싸움을 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그렇게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금강역사 그만해! 하희빈 교주님게서 그자와는 가급적이면 충돌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어. 어서 돌아가!!"
'......'
때로는 침묵이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곤 한다. 금강역사란 이름의 스펙트럴 하수인은 감히 신성한 주인의 팬티를 건든 파련치한을 두고도 돌아가야한다는게 무척이나 분한지 안그래도 더러운 인상을 한층 더 일그러트리더니 결국에는 석장을 거두고 어디론가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아크리퍼님께서 많이 지루하셨던 모양이군요. 애들이나 할법한 장난질을 하시다니. 하희빈 교주님의 집무실은 바로 요앞이니 조금만 더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뭐 걷는거야 이래뵈도 천리행군도 해본적이 있는 몸이라 성당 주위를 100바퀴 돌라고 해도 상관없긴 한데, 생명공학도로서 생물학적 호기심은 도저히 참을 수 가 없군. 아까 본 곰돌이 팬티안에 뭐가 있을지 아까부터 자꾸 궁금해져서 말이야. 잠깐 구경하고 가도 될까?"
"이 씨ㅂ..."
무당 소녀가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는지 입에서 상스러운 말을 반쯤 꺼내려다 말았다. 정갈한 계량한복을 입은 곱디고은 여성에게서 나올만한 말이 아니라는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는지 황급히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는 무당 소녀. 여차했다간 하희빈을 만나기도 전에 금강역사란 강력한 하수인과 한바탕해야할 기세였기에 나는 이쯤에서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농담이야, 농담. 너무 그렇게 열내지마. 설마하니 내가 오늘 아침 청학동에서 서울로 출근한듯한 여자에게 그런 수치스러운 짓을 강요하겠어?"
"이미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수치보다 곱절로 많은 수치를 느꼈습니다. 잔말 말고 염전히 따라오기나 하시죠. 하희빈 교주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것도 예의가 아닙니다."
"아아 오케이, 오케이."
무당 소녀의 말대로 얌전히 그녀의 뒤를 따르자 몇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하희빈의 집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언제 나에게 추행을 당했냐는듯 90도로 폴더인사를 한뒤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무당 소녀. 나는 그 의연함에 감탄하며 휘바람을 불면서 다리를 꼰채로 하희빈의 집무실 책상에 걸터앉았다.
산더미같은 서류와 씨름을 하고 있던 하희빈은 에베레스트 산맥만큼 쌓인 서류보다 골치아픈 문제아가 들어오자 표정을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듯했다. 허나 미하엘로프 소장이 김여령 여사를 납치한 이번 사건의 경우 그녀의 책임 지분이 없잖아 있었기에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네오는 그녀.
"김여령 여사는 결국 사망한건가?"
"뭐 그렇지. 그런 상처를 입고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어. 화타, 허준 그리고 히포크라테스가 서로 힘을 합친다고 해도 그건 힘들어."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네말대로 너와 달리 김여령 여사는 그런식으로 죽음을 당해서는 안되는 인재였어."
"그말뜻은 나는 죽어도 싼놈이라는 뜻?"
"...고인에 대한 위로를 그런식으로 곡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무슨 목적으로 이곳을 찾아왔는지나 밝혀라. 미리 얘기했던대로 나와 사생결단을 하기위해 온건가? 그렇다면 장소를 잘못골라도 한참 잘못골랐다고 말해주고 싶군. 이곳은 백월교의 총본산. 디아나님의 가호가 가장 강렬하게 발동될 수 있는 곳이다. 인페르노 소탕작전때 펼쳤던 임시방편용 결계하고는 차원이 틀리단 말이다!"
"뭐 언젠가는 아크엔젤 너하고 결판을 내야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왜냐하면 못난 불효자라 효도는 못해드렸지만 어머니의 복수정도 해야하지 않겠어? 앱솔루트 모나크의 몸에 엄마랑 똑같이 바람구멍 100개를 내기전까진 우리의 싸움 미뤄두도록하지."
"그렇다면 나를 찾아온 목적은..."
"사실 녀석이 또 내 주변인을 하나 납치해 갔거든. 뭐 별로 중요인물은 아니긴한데 녀석을 역으로 붙잡을 미끼로 사용할까 생각중이야. 근데 그러기 위해선 재협상을 해야하는데 지금으로선 앱솔루트 모나크와 접촉할 수 있는 연락수단이 너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적극 협력해 줄거지, 하.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