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7 vol.10 Oxogan The Goddess of the Moon ========================================================================= Reg
나의 은근한 어조로 물어오자 하희빈은 잠시 뜸을 들이는것 같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앱솔루트 모나크와 내가 비밀리에 손을 잡은건 이제와서 부정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선 악을 처단하는 검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는 나의 모토와 한참을 어긋나 있었지. 최대한 중립적인 태도에서 아크이퍼 너와 미하엘로프 소장 사이의 협상을 조율해주도록 하지."
"중립적이라고?"
"...그렇다."
"이미 유혈사태까지 난 마당에 중립이라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겠다는건가? 이거 좀 실망인데, 아크엔젤. 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이딴 태도로 굴었을까!?"
펄럭펄럭.
나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서류들을 허공위로 비산시키며 아크엔젤에게 윽박을 질렀다. 사실 김여령 여사는 간헐적 구토증세와 철분 결핍성 빈혈을 제외하면 아주 멀쩡한(?) 상태였지만 하희빈을 몰아부치기 위해서는 이정도 강짜는 부려줘야 했다.
하희빈은 애써 정리한 서류가 엉망이 됐는데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다시 서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탁탁 서류뭉치의 각을 맞춘 다음 서랍에 보관한 다음에야 담담한 어조로 내 말을 반박해왔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유년시절동안 할아버지 손에서 성장했지.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름 양궁 분야에선 알아주는 스포츠 스타라 모르는 국민이 없을정도의 가정사라고 생각했는데, 대학교 동기가 그런걸 물어올줄은 몰랐군."
"아, 그랬어? 쏴리! 내가 TV를 잘 안봐서 말이야. 그래도 어렸을적 일이면 이제는 어느정도 마음의 상처가 아물었을것 같은데? 이쪽은 실시간으로 심장에서 출혈이 나고 있는 상황이라서 말이야. 이해해 줄거지, 하교주?"
"모친을 잃은 아픔을 간직한 사람치곤 지나치게 업되 보이는군, 아크리퍼. 어쨌든 나는 그때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연쇄적으로 정의가 세번이나 무너졌기때문이다. 손을 마주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부모님을 뺑소니치고 도망간 음주운전자, 지나가던 행인의 신고로 구급차에 실린 부모님을 고작 접촉사고를 이유로 막아선 보험사기꾼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지던트에게 의료과실을 떠넘긴 의과 대학교수. 아크리퍼, 너는 이 세가지 불운이 전부 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우연이겠지. 하인리히의 법칙도 아니고 그 서로 하등 연관성이 없는 세가지 사건이 필연일리는 없잖아."
"아니. 필연이 맞다. 이 땅에 오래전부터 악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정의는 시들었기 때문에 이런 폐단이 하루 아침에 세번씩이나 일어난 것이다. 이 세가지중 하나만 없었어도 부모님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겠지."
"아 그러세요?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떠오른다고 떠드는것만큼이나 당연한 소리를 찌걸이는군. 아크엔젤 너는 인긴이 이기적인게 자연스러운 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언제 한번 시간내서 이딴 서류말고 이기적 염색체란 책 한번 읽어봐. 사고의 틀을 깨는데 제법 도움이 될꺼야가 아니라... 시팔! 내가 왜 너랑 이딴 얘기를 하고있는건데. 앱솔루트 모나크랑 연결이나 해줘.
개똥철학갖고 왈가왈부하는건 딱 질색이니까."
내가 시금치와 브로콜리를 갈아만든 쥬스를 이유식으로 받은 갓난얘기같은 표정을 짓자 하희빈은 뜬금없이 집무실의 방문과 창문을 일제히 잠그기 시작했다. 철커덕, 철커덕. 이건 완전히 미인 비서를 따먹을려고 작정한 사장님들이 하는짓인데 아크엔젤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지금부터 소음과 기척을 차단하는 결계를 피겠다. 인페르노 소탕작전때처럼 악마나 언데드같은 사특한 존재를 봉인하는 종류의 결계는 아니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말도록."
자뭇 심각한 어조로 경고를 한 하희빈이 소매에서 거무스름한 월석(月石)을 꺼내더니 미리 예고했던대로 이 방 전체에 결계를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라리 데스크탑이 가벼워보일 정도의 노트북을 서랍에서 꺼내더니 모서리에서 안테나를 뽑아세웠다.
아니 자기 본거지에서도 이런 철통경계를 한다는건 백월교 멤버들한테까지 앱솔루트 모나크와의 동맹사실을 숨겼다는건가? 세상에나, 세상에나! 나는 겉보기만 사람이지 하희빈이 백년 묵은 여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하는 모냥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조금 있으면 연결될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나는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할 생각이다. 애시당초 그 달의 신전 계획 자체가 내가 미하엘로프 소장에게 요청해서 발주된 계획이기 떄문이다."
"아이구야 퍽이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시는군요, 하교주님."
달의 신전이 백월교가 서울 한복판에 세운 성당과 유사한 디자인을 띄고 있다는 점, 하희빈이 평소 월석을 매개체로 해서 술법을 펼친다는 점 그리고 그녀가 모시는 신인 디아나가 달이라고 하는 상징성(Symbology)을 중요히 여긴다는 점. 이 세가지를 알고있다면 초등학생조차 하희빈과 미하엘로프 소장 사이에 오간 거래 내용을 유추할 수 있으리라.
'미하엘로프 소장이 달의 신전을 지어주는 대신 무슨 대가를 받을 예정이였는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서도'
-치직, 치직. 아크엔젤, 위성통신은 너와 나 우리 둘이서 1:1로만 하는것이 룰 아니였던가? 설마하니 그 몇만불짜리 노트북에 인체감지센서 하나 달아주지 않았을...
"앱솔루트 모나크 이 새끼야! 무슨 소개팅 어플이냐? 1:1 화상채팅만 가능하게. 닥치고 그 왕 뭐시기 뭐야. 아, 맞다! 왕원희나 몸성하게 되돌려 보내.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네 엄마도 수십개의 바람구멍을 내주마."
-이 목소리는 아크리퍼로군. 설마하니 아크엔젤 지금 나를 배신하고 아크리퍼쪽으로 붙겠다는건가? 도대체 누가 네년의 터무니없는 달의 신전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천문학전인
자원과 인력을 쏟아부었다고 생각하는거냐!!!
"말은 바로해줬으면 좋겠군요, 미하엘로프 소장. 애시당초 내가 동의하지도 않은 범죄계획을 멋대로 한국에서 진행시킨건 당신이야.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고싶은건 바로 나라고!"
-그러면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는건가!! 러시아 국방예산의 약 삼분지 일을 투자한 항공우주 프로젝트가 색향천월관이라는 미증유의 함선때문에 모조리 허공에 증발하고 말았다. 비단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나사를 포함해서 G10 국가의 위성진출 계획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물자를 나르고 어떻게 건설을 진행하냔 말이닷!
"이것들아 내가 말하고 있잖아! 니들끼리 떠들지 말라고!!"
내가 악에 받쳐서 크게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하희빈과 미하엘로프 소장 사이의 무의미한 설전이 멈췄다. 진짜 지붕이 들석거릴 정도로 내공까지 동원해서 있는 힘껏 사자후를 내뱉었는데도 밖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걸 보면 아크엔젤의 결계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지금부터 내가 발언권을 주지않은 사람은 입도 뻥긋하지마!"
-아크리퍼 네녀석이 뭐라고 우리쪽 위성라인을 이용한 통신에 발언권을 운운하는것이냐!
"뭐긴 뭐야. 지구의 우주진출 프로젝트를 올스탑시킨 색향천월관의 관주지. 어차피 우주밖으로 나가봐야 니들은 쨉도안되는 괴물 투성이니까 그냥 지구에서 얌전히 놀아."
-결국 네녀석이 그 오버테크놀로지 함선의 주인임을 시인하는구나. 어떻게 그 함선을 손에 넣은거지? 슈퍼 컨티넌트 온라인에 존재하는 고대의 비행정을 역소환을 한건가? 우리 스노우 엠파이어 길드에서 백방으로 시도해봤지만 실패한 일을 어떻게 성공시킨것이냐!?
"쉿쉿! 네가 발언권을 주기전에는 아가리 묵념하고 있으라 했을텐데. 불귀의 객이 된 우리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좀 조용히 좀 있어봐. 일단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왕원희는 나와 생면부지의 사람이나 마찬가지야. 즉 인질로서의 가치는 제로나 마찬가지라는거지. 내가 만약 정의감이 투철한 히어로였다면 시골에 흔해빠진 누렁이 강아지를 납치해도 설설 기었겠지만 그게 아니라는것 쯤은 너희들도 잘 알겠지? 당장 그녀를 놓아줘. 그렇지 않으면 미하엘로프 너의 새엄마, 마더 러시아에 바람구멍을 내주겠어."
-치직, 치직. 뭐!? 러시아에 바람구멍을? 모친이 돌아가시더니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는 작작해라, 아크리퍼.
"역시 안믿네. 뭐 어쩔 수 없지. 말로 해서 믿질않으니 행동으로 보여줄 수 밖에. 팬텀 지금 당장 인적이 드문곳에 피스메이커Ⅱ 한방 날리고와. 러시아는 넓으니까 포격지점을 잘 설정하면 인명피해가 제로에 수렴할 수 도 있겠지. 그건 팬텀 네 재량에 맡기겠어. 이 정도면 나도 많이 양보했다는거 너도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