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01화 (301/599)

0301 / 0316 ----------------------------------------------

vol.10 Oxogan The Goddess of the Moon

"아가씨 오셨습니까?" x 10

"모두 고생이 많네요. 할아버님은 안에 계시죠?"

"예,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안그래도 하희재 어르신께서 계속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지방에 있는 진주 하씨의 본가로 오랜만에 내려온 나는 저택관리인들의 성대한 인사를 받으며 현관으로 진입했다. 단순히 한국에 있는 천외천 유저들의 모임에 불과했던 백월교가 하나의 정식교단으로 발돋음 하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더 거센 잡음에 시달리느라 좀처럼 본가를 방문할 틈이 없었는데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어렵게 시간을 낸것이였다.

사실 달의 여신 디아나님을 위한 신앙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백월교를 창설할 당시 나는 교의 이름을 비꼬듯 흑월파를 창설한 아크리퍼 김사건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매드독스 왕루옌을 대리자로 내세워 전국구의 조직들을 통합하더니 막상 조직운영에는 눈꼽만큼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법으로도 조련시키기 어려웠던 들개들이 왕루옌의 주먹아래 잘 조련되어 번견이 되었지만 집주인이 아무런 야욕도 드러내지 않으니 그야말로 집지키는 똥개로 전락한 셈이였다. 실제로 조직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최근들어 눈에 띄게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고 하니 이것은 본말이 전도되도 한참 전도된 부분이였다.

왜냐하면 선의를 갖고 창설했고 지금도 실제로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는 백월교는 각종 종교계에서 이단이라며 지탄을 받고 있는 중이였기 때문이였다. 한때 최고의 스포츠스타였던 자신의 SNS가 사탄의 딸이라는 악플로 도배되고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그것이 국민 전체의 여론은 아니였고 일부 극단적인 종교주의자들의 망발이였지만 너무 조직적인 움직임때문에 함부로 대처하기가 껄끄러웠다. 마음같아선 왕루옌처럼 법이 아닌 주먹으로 그들을 벌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랬다간 스스로 사탄의 딸임을 인정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묵묵히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허황된 신과 달리 나의 디아나님은 실재로 존재하며 언젠가 이 땅에 강림하샤 우매한 자들을 벌해주실 예정이였으니까. 그렇게 딴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할아버지의 방앞에 도착한 나는 저택관리인이 열어준 문을 통해 조심스럽게 안으로 입장했다.

"할아버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많이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듣고 급히 내려왔습니다만 정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에헴. 너는 아직 젊어서 잘 모르겠지만 늙으면 하루하루가 병마와의 전쟁이야. 감기야 약먹으면 낫는다지만 노환에는 약도 없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전에 말했던 그 뭐시냐 젊어지는 약같은건 찾아봤느냐?"

"그것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보고 있습니다만 아직 VOT 온라인의 지식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자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이힝~ 희빈이 네가 이 할애비가 뒷방 늙은이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귀를 닫고 있는줄 알고있는 모양이구나. 희빈이 네가 그 백월굔지 뭐시긴지 세운다고 바빠서 이 할애비 낫게 해줄 약을 찾아보기나 했겠느냐?"

"할아버님 누차 말씀드리지만 백월교를 바로 세우는 것이야말로 할아버님을 구원해줄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사이비 종교의 생명수따위는 비교를 불허하는 진짜 축복을 받게 되실테니 조금만 더 저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에휴. 뭐 그건 그렇다고 치자. 내가 알기로는 그 뭐시냐 너랑 같은 북두십성인 그 김사건이라고 하는 친구말이다. 그 친구가 아주 생명공학에 정통하다고 하던데. 걔 어머니가 무슨 생명공학계의 아인슈타인인가 그렇대요. 미국의 SSS를 본떠 만든 한국의 그 GFT 프로젝트도 그 아주머니가 총괄했다고 하니 핏줄은 목속이는 거지. 그 친구한테 찾아가면 너처럼 활밖에 쏠줄 모르는 애랑은 달리 생로병사에 관해서 많은것들을 알고 있지 않겠니? 돈은 얼마든지 지원해줄테니까 네가 좀 숙이고 들어가서..."

"할.아.버.님 말씀이 조금 지나치시군요. 그 김사건이라는 자야말로 사탄의 현신이라고 해도 모자를 만큼 악독한 자입니다. 세간에서는 인페르노 소탕작전의 주인공이라며 그를 영웅취급하는 무지한 자들이 있습니다만 그 자는 언젠가 아크데빌보다 더 큰 재앙을 몰고올겁니다. 그런 자와 손을 잡는다는건 신성모독 그 자체입니다. 디아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으시다면 할아버님은 앞으로 말씀을 가려해주십쇼."

나는 무심코 진주 하씨 가문의 3대 독녀로서가 아닌 VOT 온라인 북두십성 유저 아크엔젤로서의 기세를 내뿜고 말았다. 아무리 지방의 땅부자로 현대판 호족으로 군림하고 있는 할아버지였지만 결국 그 본질은 일반인이나 다름없었기에 눈에 띄게 기세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무리 역린을 건들였다고 하지만 친할아버지에게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기세를 갈무리하고 준비해온 선물을 꺼냈다.

"젊어지는 약까지는 아니지만 심마니들을 수소문해서 얻어온 20년근 산삼으로 만든 산삼주입니다. 식사하기 전이나 자기 전에 약주삼아 한잔씩 드세요. 너무 과음하진 마시고요."

"그, 그래 알았다. 희빈아 바쁜데 불러서 미안했고 이제 그만 들어가서 일봐라. 이 산삼주는 내가 아껴가면서 아주 잘 마시마."

"그럼 이만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약식으로 절을 올리고 들어올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방문을 나섰다. 원래 할아버지는 저런 분이 아니셨는데 VOT 온라인의 신비문명이 지구로 조금씩 흘러나오면서 사람이 바뀌고 말았다. 나이를 먹고 돈과 명예따위는 부질없는 것이라며 만인에게 인자하신 분이였는데 나이를 되돌릴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자 유례없이 악독해지셨다.

물론 그 악독함으로 쌓아올린 부와 정계와의 연줄이 백월교를 확장시키는 토대가 된 것은 사실이였지만 저렇게 욕심이 많으셔서야 디아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나 있을지가 의문이였다.

'디아나님은 대가를 바라는 신앙을 그 누구보다 혐오하시니까 말이지.'

"아주머니 제가 쓰던 방 아직 남아있나요?"

"예, 항상 깨끗이 쓸고, 닦고 환기까지 시켜뒀기 때문에 바로 사용하셔도 괜찮을겁니다. 혹시 묶고 가실 예정이신가요? 그렇다면 제가 서둘러 목욕물을..."

"아뇨, 그건 아닌데 잠깐 쉬었다 갈려구요. 새벽행 기차를 탔더니 조금 피곤하네요."

나는 아무리 본가의 저택이 넓다지만 내 방으로 향하는 길까지 안내해주려는 아주머니를 물리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예상에 없던 스케쥴을 소화한 탓에 중요 인사와의 연락에 차질이 생긴것이다. 누가볼세라 익숙한 정취가 느껴지는 방안으로 골인한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난번 인페르노 소탕작전때 쓰고 남은 월석(月石)을 이용해 결계를 펼쳤다.

지금부터 나누는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들어가서는 안되는 극비사항이였기 때문에 내 방에서조차 아니 내 방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주의가 필요했다. 서류케이스에서 미리 준비해둔 군용노트북을 꺼내둔 나는 무려 64자리의 비밀번호를 입력한 다음 상대가 신호를 받는 것을 기다렸다.

약속시간으로부터 크게 늦은 것은 아니였으나 상대가 워낙 시간약속에 빡빡한 자였기 때문에 그 기다림은 초조할 수 밖에 없었다.

-치직, 치직. 본래 접촉 시간에서 1분 21초정도 늦었군, 아크엔젤. 9초만 더 늦었으면 너와 연결된 위성 회선을 파기할뻔 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주의를 해줬으면 좋겠군.

"미안해요, 미하일로프. 예정에 없던 스케쥴이 생겨서 조금 늦었네요. 지금도 백월교의 지하벙커가 아니라 일반가정집에서 연락하고 있는거에요."

-뭐? 보안에 문제는 없는 거겠지?

"월석으로 결계를 펼쳐뒀으니까 상관없어요. 그것보다 제가 전에 부탁한 달의 신전 계획에 진척은 있나요?"

-흐음. 그것에 관해서라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두가지가 있다만 무엇부터 듣겠는가?

"나쁜 소식부터 듣도록 하죠. 당신 정도의 인물이 나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만든 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본래 러시아 항공우주 방위군에서 달에 설치해둔 모든 관측장치들로 부터 일시에 연락이 끊겼다. 백억달러짜리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순간이였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미국 나사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거? 날린 돈으로 따지면 그 쪽이 한수 위일테니까 말이야.

"...좋은 소식은요?"

"러시아나 미국뿐만 아니라 전 국가의 달 관측 장비를 무력화 시키고 달 위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세력의 단서를 손에 넣었다는거지. 그것도 우리 항공우주 방위군만이 유일하게 말이야. 운이 좋았어. 관측 장비가 정체불명의 전자기펄스 공격에 무력화 되기 직전 한장의 사진을 보내왔거든. 지금 그쪽으로 전송할테니 머리속에 기억해두고 바로 삭제하도록. 아참 한자문화권이라면 아크엔젤 네가 더 익숙하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그 사진에 나온 한자의 해석본도 같이 보내겠다. 색향천월관. 솔직히 말해서 수십권의 암호학 책을 정독한 나조차 뭔지 감이 안와. 뭔가 단서를 얻게 된다면 다시 연락하도록 이만 끊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