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9 / 0316 ----------------------------------------------
vol.8 Oxogan The Killer Whale, Leviathan
"듀리스, 아무래도 네가 나서서 좀 거들어야겠다."
내 부름에 그림자 속에서 여전히 현대문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착용한 오리지널 뱀파이어 듀리스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튀어나왔다. 혼자서 어떻 비벼볼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역시 바다라고 하는 전투무대는 레비아탄에게 너무나 유리한 측면이 많았다.
"어머나 우리 대단하신 죽음의 주인 아크리퍼님께서 고작 고래 한마리를 상대로 많이 후달리시나봐? 나같은 미천한 흡혈귀가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네."
"뭐야 너 갑자기. 설마 이 몸이 얼티밋 언데드 폼이 아니라고 해서 반기를 들어보겠다는거냐? 그런거라면 당장 덤벼봐. 영혼의 표식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줄테니까."
"흥! 반기를 들거였으면 오히려 얼티밋 언데드 폼이 있는 쪽을 치지 왜 약해빠진 본체를 칠거라고 생각하는거지? 오리지널 뱀파이어의 긍지를 뭘로 보는거냐!"
"아니 진짜 이년이 미천한 흡혈귀랬다가 긍지 높은 오리지널 뱀파이어라고 했다가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구만. 혹시 내가 아야사를 멋대로 건드려서 삐진거냐?"
"그래 삐졌다! 너같으면 찜해놓은 암컷을 다른 수컷놈이 바로 코앞에서 수컹수컹하면 머리에서 피가 거꾸로 안솟을거 같아?"
"그런 일이 있으면 내 머리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게 아니라 그 수컷놈의 불알을 터쳐서 피고름을 흘리게 만들어야지. 그리고 말은 바로 해야되는거 아니냐? 아야사를 목숨까지 구해주면서 내 첩실 1호로 삼은지 벌써 반년도 넘게 지났어 이년아. 어딜 이제와서 숟가락을 얹으려는거야! 아야사 보지구녕은 나 혼자서 쓰기 빡빡하다고."
"이, 이게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VOT 온라인 속 세상에서는 여자 허벅지에 스치기만해도 질질 싸던게...!"
-아크리퍼, 언제까지 망령들의 틈바구니속에서 숨어있을 생각이냐!!!
내 입으로 바닷물과 이매망량간의 소모전은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3박 4일 후의 이야기였다. 바닷물을 창, 이매망량을 방패라고 한다면 지금 당장은 이매망량의 방어력이 바닷물의 공격력보다 훨씬 더 두터웠다.
그러다보니 내가 듀리스와 티격태격하고 있는 동안 레비아탄은 혼자서 물을 뿜는 돌고래 마냥 생쇼를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종국에는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솟았는지 하와이를 가라앉힐때 사용했던 거대 쓰나미의 술법을 다시금 전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거대 쓰나미는 구체 형태의 견고한 방벽을 형성하고 있는 이매망량을 상대로 그리 상성이 좋은 술법은 아니였다. 더욱 날카로운 바닷물의 창을 연성해도 모자랄판에 저렇게 대규모의 마력을 소비하는 발끈 어택을 감행하다니 아무리 태초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짐승은 짐승인 모양이였다.
결국 레비아탄의 악에 받친 고함과 함께 지축을 울리는 파도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지만 나와 듀리스는 그 어떤 실질적인 데미지도 입지않았다. 다만 이매망량의 구체형 방벽이 완전히 밀폐된 공간은 아니였기에 바닷물이 내부로 스며들어와 나와 듀리스의 옷을 훔뻑 적시고 말았다.
그로인해 시스트린이 자신의 종주 흡혈귀인 듀리스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특수제작한 엘레건트 고딕 드레스가 마치 덜마른 빨래처럼 쪼그라들어 나로 하여금 실소를 짓게 만들었다. 옷이 홀딱 젖은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듀리스의 경우 내게서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을때 이상으로 손끝을 부들부들 떨었기 때문이였다.
"이 덩치만 큰 고래놈이 감히 더러운 소금물로 내 새 옷을 더렵혀!?"
심상세계(心像世界) 5번째 달이 지는 밤(Fifth Moondown) 개(開)
듀리스는 옆에서 낄낄 웃고있던 나를 섬찟하게 만들정도로 사이한 오오라를 뿜어내며 이제 막 태평양의 해평선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태양의 퇴근을 앞당겼다. 그러고보니 듀리스 저녀석 의복에 관해서만큼은 극단적인 결벽증을 지니고 있어서 터럭만큼의 얼룩도 용납치 않았었지.
그렇게 비 맞은 생쥐꼴이 된 것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심상을 세계와 융합시키는 지고한 비기(秘技) 심상세계를 발동시킨 듀리스로 인해 가라앉았던 하와이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막 출근한 달의 인력이 모세가 행했던 그 기적처럼 바다를 갈라버렸기 때문이였다.
덩달아 지구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인 흰수염고래 보다 거대한 동체를 지닌 상처투성이의 묵빛 고래 또한 바깥 공기를 쐬게 되었으니 이런 절호의 찬스가 또 없었다. 아무리 스텔라 비타 제 1성기 괄목상대를 통해 백호패왕권이라는 상승의 무공절학과 어린세가의 수공을 대성했다고 한들 레비아탄을 잡으러 직접 바닷속으로 들어가는건 내심 꺼림직 했던 것.
그리하여 듀리스가 합동공격을 하기위해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있었지만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매망량의 방벽을 해제하고 레비아탄이 있는 곳으로 하강했다. 홧김에 거대 쓰나미의 술법을 펼쳤지만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격을 가해올줄은 몰랐는지 육지위에 올라선 거대한 동체가 당황에 떠는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 일격으로 개구리처럼 터쳐서 죽여주마!'
심상세계(心像世界) 심연의 메아리(Abyss's Echo) 개(開)
만약 본체가 아니라 얼티밋 언데드 폼을 지닌 아바타쪽이 레비아탄과 결전을 벌였다면 싸움을 최후의 최후까지 질질끌어서 지쳐 나가떨어진 레비아탄을 베히모스처럼 언데드로 만들 수 도 있었지만 나는 아직 본체의 내구력을 신뢰하고 있지않았다.
트롤왕 리쿤다룬의 골수세포를 이식한다거나 매드알케미스트 블루아주 크로스데일의 유작인 스케일 글래스로 뼈를 코팅하는등 각종 시술을 감행했지만 아직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그런 완벽주의를 고집하는 나조차 레비아탄을 내려치기 바로 직전에 내가 환술에 빠져들거라곤 미처 생각치 못했다.
비록 태양만큼 밝지는 않았지만 한 치 앞의 사물을 육안으로 구별할 정도는 되었던 은은한 달빛은 사라지고 칠흑같은 어둠이 가득한 심해속에 가라앉은 나와 그런 내 위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레비아탄.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를 밟아죽이기 직전이였던 방금의 구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나는 침음성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아크리퍼, 네 잘난 망령 하수인들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어디한번 이번에도 그 주둥아리를 나불거릴 수 있는지 지켜보도록 하지.
"호오 내 이매망량들이 잘났다는건 레비아탄 너도 인정하는 부분인건가? 그런데 말이야. 보통은 하수인이 잘나면 그 주인은 그보다 훨씬 더 잘난법이거든? 어금니 꽉 깨물어라. 요즘들어서 내 주먹의 위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나도 감당하기 힘들정도거든."
-이 미천한 인간놈이 끝까지...! 도대체 이 심해의 밑바닥에서 네놈이 뭘 할 수 있다는 말이냐? 어서 네녀석의 무력함에 젖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굴복하거라!!
"굴복한다라... 새삼스럽게 이제와서 무슨 심보로 항복선언을 받겠다는건지 모르겠군. 너처럼 무식한 짐승놈이 나처럼 적을 언데드 수하로 만들 수 있는 재주가 있는것도 아닌데 말이야. 응? 그렇지않아? 그러니까 너야말로 그 주둥아리를 나불거릴 에너지를 아껴서 어서 내게 덤벼보라고. 최소한 내가 나무토막을 상대로 싸웠다는 느낌을 주고싶지 않다면 말이야."
나는 소위 썩은 미소라고 불리우는 표정을 지으며 레비아탄의 겁박을 맞받아쳤다. 심상세계라고 하는 기술은 기본적으로 세계의 법칙을 비트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무예나 술법을 통해 구현된 불꽃은 물을 만나면 그 기운이 쇠한다.
그 경지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세계의 법칙에 귀속되는 한계를 지닌다는 소리다. 하지만 심상세계로 구현된 불꽃은 물을 만나도 그 기운이 쇠하지 않을뿐더러 그 어떤 연료도 없이 영원히 타오를 수 도 있었다. 물론 그런 사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데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첫째는 가상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게 만들만큼의 상상력. 둘째는 심상세계를 발동하려는 존재의 타고난 신성. 셋째는 앞의 두 조건을 기반으로 세상의 법칙을 비틀 수 있을만큼의 거대한 마력. 평범한 인간 태생인 나와 달리 태초의 마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레비아탄이라면 앞의 두 조건은 만족하고도 남겠지만...
'세상의 법칙을 비틀만한 마력은 턱없이 부족할테지.'
처음에야 아크데빌이 인간들을 산제물로 바쳐 축적한 마력을 펑펑 쓸 수 있었겠지만 마력원천이 없는 지구에서 소모한 마력을 재충전할 방도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런 상황에서 거대 쓰나미의 술법을 두번이나 사용한데다가 저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는데조차 마력을 소비하고 있을게 뻔하니 레비아탄의 심상세계가 오래 지속될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