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82화 (18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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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갸갸멜은 보기보다 신중한 사냥꾼이였다. 섣불리 내게 돌진하지 않고 자신의 우월한 공중기동력을 살려 쉼없이 주위를 멤돌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매망량의 손아귀가 해동되자마자 산개시켜서 갸갸멜을 잡기위한 그물망을 펼친 나였지만 갸갸멜의 공중기동력은 새틀라이트 알파&베타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였다.

게다가 잠자리와 인간을 합성한듯한 기묘한 생김새와는 별개로 갸갸멜은 엄연히 과장급 사신이였기 때문에 이매망량을 유체화 상태로 바꾼다고 눈치채지 못할 일도 없었다. 사실 저승이라는 곳에 발을 딛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미 미지의 적과 조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지만 분명히 영력 랭크상 한단계 아래인 존재에게 이다지도 애를 먹을 줄이야.

다소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는 드르르르륵!거리는 소리가 저승문쪽에서 들려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저승문의 미닫이문이 약간의 틈만을 남겨두고 닫히면서 나는 소리였다. 앗차! 영력 랭크 미달이 저승문의 크기뿐만 아니라 지속시간에도 영향을 미칠줄이야.

이럴줄 알았다면 신의 지팡이 12개의 낙하로 인한 여진을 이매망량으로 받아내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 더 빨리 이승로 귀환할걸 그랬군. 물론 다시 저승문 개전의 술식을 펼칠 수 도 있었지만 문제는 염라의 보호막이라는 것이 사라진 지금 갸갸멜의 방해공작이 계속될거라는 점이였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녀석의 동료 사신 올지도 모르지.

"문이 닫히고 있구나, 김서방. 이제 얌전히 내 글래셜투스의 먹이가 되어라."

"아이코야 눈도 좋으셔라. 그걸 또 봤어?"

"폼으로 눈을 여러개 달고 있는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 프로즌리퍼 갸갸멜의 눈들은 뒤통수에 접근하는 망령 한마리 조차 놓치지 않지."

갸갸멜이 대화를 걸어온 틈을 노려 이매망량 서넛을 우회시켜 기습을 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갸갸멜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거대한 낫을 휘둘러 이매망량들을 얼음 부스래기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저승이라는 환경덕분에 이매망량 서너기야 아까울것도 없었지만 처음으로 갸갸멜의 배후를 잡고도 아무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말이야. 눈이 좋다는건 인정하겠는데 머리는 더럽게 나쁜가봐? 아까부터 도망치기 바쁜 찌질이 새끼가 저 문이 닫힌다고 용감한 투사로 바뀌는건 아니잖아. 오히려 충분히 시간을 들여 네놈을 요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할까나. 감히 아크리퍼 김사건에게 덤빈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일단 그 날개를 하나하나 뽑는걸로 시작할까? 아니지. 일단 그 징그러운 눈알들부터 모두 파낸 후에 머리, 몸통, 다리를 삼등분 해주마!"

"아크리퍼? 그 칭호는 사신의 낫도 없는 김서방에게는 조금 과한 칭호같군."

"그건 너 새끼도 마찬가지야! 프로즌리퍼라니 그 거창한 칭호는 너같은 날벌레하테는 안어울린단 말이지."

"글쎄. 과연 그럴까? 일전에 김성방이 말한대로 저승이란 곳은 극악무도한 환경을 자랑하지. 때문에 이곳 저승에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강자의 증명이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이지."

Turn on the Soul Weapon, 글래셜투스(Glacial Tooth)

갸갸멜이 공중에서 반바퀴를 돌더니 그 회전력을 거대한 낫에 실어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낫에서 뿜어나오는 냉기가 증폭되더니 어느 순간 거대한 파동이 되어 나를 향해 퍼부어졌다.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던 이매망량 천인대들이 대신 그 냉기의 파동의 희생양이 되어 저승에는 때아닌 얼음조각상 전시회가 열렸다.

다행히 이매망량 백인장 삼인은 금새 냉기를 떨쳐낸 뒤 내 옆을 엄호했다. 그러나 촘촘한 사슬갑옷처럼 나를 감싼 이매망량 천인대의 동태화는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였기에 모든 이매망량을 진토로 되돌리고 다시 이매망량 천인대를 소집하기로 했다. 갈 곳 잃은 망령이 길가의 자갈만큼이나 흔한 저승이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러나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 갸갸멜이 그 작은 틈을 놓치지않고 내게 짓쳐들었다. 이매망량 백인장이 두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었지만 갸갸멜은 마치 동귀어진을 꾀하는 것처럼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않고 내게 시커먼 이빨을 들이댔다.

패브릭 아케인 슈트나 웨어러블 아케인 베스트가 퀠레뮤츠와의 싸움에서 모두 소실된 지금 그 공격은 내게 제법 위협적이였다. 그때 내 머리 속에 '공격은 최고의 방어'라는 격언이 떠오름과 동시에 근육이 저절로 용린연환각 용린연환각 병(丙)초식 반달차기의 기수식을 취했다.

마샬아츠 더 핑거플릭(Footfprint) 용린연환각 병(丙) 반달차기 일축(日蓄)

용린연환각의 3가지 초식 중 가장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지만 준비동작이 커 허점 또한 많은 반달차기. 그러나 앞뒤생각않고 저돌적으로 내게 달려들어 시커먼 이빨이 달린 턱주가리를 노출한 갸갸멜에게 이렇게나 적절한 카운터도 없었다.

갸갸멜의 겉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키틴질 껍질이 날달걀처럼 으깨졌다. 기새좋던 날개짓도 채 한번 해보지 못하고 볽은사막에 쳐박힌 갸갸멜은 투명한 진액을 쉼없이 흘리며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펼친것이나 다름없는 일련의 동작들은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의 중수를 땀으로 채울만큼 반복했던 초식의 연습과 상대적으로 연약한 지구의 본체로 수행했던 그간의 전투경험이 합해져 이루어낸 결과였다. 타고난 재능으로 작금의 위치까지 올라왔다고 믿는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였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격언을 곱씹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이였다. 물론 덴클레오의 생명석, 귀갑흑석단, 스케일 글래스 그리고 트롤왕 리쿤다룬의 골수세포의 콜라보레이션이라면 갸갸멜의 최후의 일격을 허용했다한들 이변은 없었을테지만 발등이 갸갸멜의 면상에 닿았을때의 감촉은 내게 희열을 안겨다주었다.

"마치 용린정권을 처음 본 마스크 보어에게 꽂아넣었을때처럼 말이지."

"끼이익, 끼이익!"

"어라 아직 안죽었나보네. 역시 귄묘결 일축으로는 살짝 부족했나? 하지만 네까짓 것을 상대할때 쓰기엔 권묘결 연축은 또 너무 과하고 말이지. 불쌍한 것. 그냥 즉사했다면 지옥을 맛보지 않아도 됐을것을. 아참 여기가 바로 지옥이지? 키키킼"

나는 아직까지도 경련을 멈추지않고 있는 갸갸멜에게 다가와 일전에 말했던 대로 곁눈과 홀눈을 잡아뜯었다. 갸갸멜의 몸이 한차례 크게 들썩였지만 그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말그대로 지렁이를 밟았더니 꿈틀했을뿐.

이어서 4개의 투명한 잠자리 날개를 하나씩 잡아뜯고 있으려니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물론 그때는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런게 아니라 단순히 곤충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랬던거지만.

마지막으로 갸갸멜의 머리, 몸통, 다리를 아끼는 프라모델을 다루듯 해체해 버린 나는 주인 잃은 사신의 낫 글래셜투스를 집어들었다. 에고웨폰이야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에서도 존재하는 개념이였지만 소울웨폰을 그야말로 금시초문의 무기였다. 과연 VOT 시스템이 이 녀석의 정보도 출력할 수 있을까?

[No.90 글래셜투스]

-소울웨폰의 일종으로 주인의 영혼에 귀속된다.

-일반적인 소울웨폰과 같이 주인의 영혼과 링크된 모든 육체에서 소환할 수 있다.

-주인의 영력과 비례하는 냉기를 뿜어낼 수 있는 낫 형태의 방출계 무기이다.

-회장급사신 염라가 한빙지옥의 얼음을 거해지옥의 톱날로 갈아만들고 10대 지옥시왕의 일인인 송제대왕에게 하사했다고 알려져있다.

넘버링이 있다는건 VOT 시스템에 이 소울웨폰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였다. 그런데 왜 VOT 온라인에서는 소울웨폰계열의 무기가 없었을까? 아이템창 설명을 두줄도 채 읽어내리기도 전에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신의 힘이 깃들었다는 신물에게만 내려진다는 구십번대의 넘버링을 지니고 있기때문은 아니였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북두십성의 일인인 아크엔젤 하희빈의 주력무기인 대궁, 천공의 아치 또한 엄연히 90번대의 넘버링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영혼이 링크된 모든 육체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이 소울웨폰의 특징이 엔도미야로 하여금 VOT 온라인에서 소울웨폰계열 무기를 삭제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으리라. 만약 하희빈이 천공의 아치를 VOT 온라인 내에서가 아닌 지구에서 사용한다? 까놓고 말해 지구의 본체로는 승부를 장담할 수 가 없었다.

그만큼 신물이라 불리우는 구십번대 넘버링의 네임드 장비들이 지닌 파급력은 어마무시했던 것이다. 구십번대의 마도서나 무공비급이야 그 내용을 이해하고, 익히고, 기술을 펼칠 그릇을 만들어야 꽃을 피우지만 장비는 착용하는 그 자체만으로 효력을 발휘하니까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그건 그렇고 이 잠자리 새끼가 어떻게 이런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던 거지?"

고작 과장급 사신의 영력을 지니고 있던 갸갸멜이 나를 고전시킨 이유가 밝혀지고 나자 새로운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VOT 온라인의 명실상부한 최강자 북두십성의 일인이였던 나조차 구십번대 장비는 구경도 못해보고 칠십번대의 낫인 나이트스토커를 들고다녔다.

그것도 네임드 아이템도 아닌 커스텀 아이템, 즉 이미테이션에 불과해 아바타가 수왕성으로 넘어온 순간 증발해버렸지만 그런 나이트스토커를 구하는 과정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였다. 좀처럼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였다.

이번에야 말로 저승문이 닫히기 일부직전이였기에 나는 글래셜투스를 영혼안쪽에 갈무리하고 지각한 신입사원처럼 저승문으로 달려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저승문의 미닫이문을 미끄러져 들어간 내 시야로 붉은사막의 저승풍경이 아스라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    *    *    *

"여기에 왕루옌이 있다는건가?"

저승문을 빠져나와 목격한 난징성의 풍경은 내가 아직 저승에 있는건가?라는 착각을 일읔였다. 번화한 도시가 한시간 남짓한 시간 사이에 완전히 사막으로 변모해 있었던 것이다. 나 하나 잡자고 수백만명의 민간인을 희생시키다니.

나는 퀼레뮤츠가 말한 질서의 엔트로피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정상적인 세포가 괴사하더라도 암세포를 긁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질서의 엔트로피는 상승한다는건가?

이해할 수 있을것 같으면서도 미묘한 그들의 논리에 나는 헛웃움을 삼키며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를 호출했다. 퀼레뮤츠가 륭 사부를 탈출시킨 방법은 전이술식이 아닌 워프 드라이브의 일종으로 기야스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추적할 수 있는 수준이였다. 그리하여 내가 도착한 곳이 바로 눈앞에 있는 징쑤성의 낡은 빌라였다.

여기저기 도색이 벗겨진 흉한 외관은 화려했던 영빈관과는 대조되어 마치 왕루옌의 운명을 암시하는듯 했다. 그닥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곳도 아니였던지라 이매망량을 풀자 금새 왕루옌의 거취가 드러났고 나는 정문에 걸어들어가는 것 조차 귀찮아 이매망량을 타고 부유해 창문을 깨부시고 들어갔다.

"웬놈이냐!"

"거 함부로 놈놈 거리지 말아라. 앞으로 네년의 주인될 몸이니까."

"왕루옌공 이 아지트를 아는 자는 십이지천의 형제인 견소룡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이자는 도대체..."

"오호라 율리시안 이 벌레새끼도 여기 있었구만. 이거 완전 럭키!"

비산하는 유리조각 사이로 왕루옌이 날카로운 일권을 뻗었지만 이매망량의 방벽을 뚫지는 못했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것을 왕루옌은 강신술의 힘을 발휘해 뇌전의 힘이 담긴 날라차기를 강행했다. 거기에 율리시안이 품에서 자동권총을 꺼내 사격을 가해오니 성가시기 그지 없는 일이였다.

난징성이 쑥대밭이 된 일로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중국에서 전투를 길게 끌어봤자 좋을게 없었기에 나는 이매망량 백인장을 파견했다. 왕루옌에게 파견한 이매망량 백인장 2명이 각자 한손씩 결박해 왕루옌을 죄인처럼 무릎꿇쳤고 율리시안은 이매망량 백인장의 손가락 하나에 개구리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율리시안이야 원래 장인계열 천외천 유저라 그 상태로 쪽도 못쓰고 있었지만 왕루옌은 사정이 달랐다. 전신에 뇌전의 검기를 방출하는 일종의 기공술을 펼쳐 이매망량 백인장의 손길로부터 강렬히 저항했다. 그 길로 왕루옌의 목뼈를 꺽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얻어내야할 것이 있었기에 나는 이매망량 십인대분량의 손아귀로 명치를 후려갈겼다.

한번, 두번, 세번. 명치를 강타하는 횟수가 늘어갈때마다 왕루옌이 토혈량도 급격히 늘어났다. 그리고 네번째 주먹을 얻어맞으면 정말로 죽을 수 도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뇌전의 검기가 수그러들었다. 꼴에 북두십성 유저라고 발악하는 모양새가 귀엽군.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심문을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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