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81화 (18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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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분한가? 열심히 싸워 승리를 쟁취했더니 기다리고 있던것이 전리품도 아닌 예고된 죽음이라서?"

"뭐 분할것까지야. 어차피 VOT의 힘을 각성한 이후부터 내 인생은 막장가도였어. 내 앞을 가로막는 남자들은 쳐죽이고 여자들은 겁탈했지. 어디가서 딱 옆구리에 칼침맞기 좋게 말이야. 설마하니 엔도미야같은 초월적 존재가 내 옆구리를 찌르러 올지는 몰랐지만 후회는 없다. 그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면 아바타 하나가 VOT 온라인을 벗어난 것이 이런 소란을 피워야할만큼 민감한 사안이였냐는거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아바타 하나가 VOT 온라인을 벗어났다는건 단순히 아바타 하나가 아니라 그 아바타가 지니고 있는 네임드 아이템, 네임드 스킬, 네임드 하수인까지 유출된다는 소리인데 그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질서의 엔트로피가 손실될지 가늠하기도 힘들군."

"전에도 질서의 엔트로피란 단어를 언급한적 있는것 같은데 어려운 용어 섞어가면서 말할거면 주석 좀 달아주지? 혼자서 똑똑한척 하지 말고말이야."

"남은 생이 10분도 채 남지 않은 주제에 그게 그렇게 궁금하더냐? 하여튼 필멸자들이란. 죽기직전 마지막 소원이라니 내 설명해주지. 질서의 엔트로피란 엔도미야님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절대기준값이다. 이 별의 기상예보시스템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내일의 온도가 33도라는 일기예보가 있다고 해서 너희 필멸자들이 밖을 나갈 수 없는건 아니지.

하지만 엔도미야님은 어떤 행동이 질서의 엔트로피의 손실을 야기할거라는 예보가 있을 경우 절대 그 행동을 할 수 가 없다. 그것이 설사 엔도미야님의 의지에 반한다고해도 말이야. 아니 질서의 엔트로피 그 자체가 바로 엔도미야님의 의지라고 보는게 더 맞겠군. 아무튼 네녀석의 죽음은 바로 그 질서의 엔트로피의 손실을 막기위함이란걸 알아둬라."

고작 그딴 숫자놀음때문에 내가 죽어야 한다고? 나는 마음 속 심처에서 부터 제어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는걸 느꼈다. 초월 인터페이스고 나발이고 다 깨부시고 싶었지만 막장가도에도 정도란것이 있는 법.

탄광을 아우르는 갱도의 끝을 이르는 막장으로 향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고된작업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광석이라는 보상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야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건 둘째치고 그 어떤 보상도 존재하지않는 'High Risk No Return'의 행위.

그렇기에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은 엔도미야를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의 엔트로피란 수치를 인질삼아 협상을 벌이는 것이였다. 물론 영락없인 나를 외통수로 몰아넣은줄 아는 슈퍼로이드 퀼레뮤츠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캐내는 것 또한 중요하겠지.

"그래서 그 숫자 하나만 보고 사람 목숨을 쥐락펴락하는 대단하신 양반은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거기까지다 필멸자여. 이제 곧 죽을 목숨이라고 하나 네게 허락된 정보는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변덕으로 인해 질서의 엔트로피에 대해 알가는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라."

"그래 고맙다 이 깡통로봇 새끼야. 나도 빈깡통엔 관심없으니까 이만 갈란다."

"뭐, 뭐라고!?"

나는 처음으로 무표정한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을 보인 퀼레뮤츠의 머리통을 뒤로하고 술식의 영창을 준비했다. A++의 영력으로는 온전한 형태의 술식을 펼칠 수 없겠지만 이 경우 그걸로도 충분하겠지.

오랜만에 영력을 기반으로 하는 큰 술식을 준비해서일까 이매망량 천인대들이 홀로그램 박스안에서 지멋대로 날뛰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매망량 백인장들이 내 삼방위를 점한채로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감히 어떤 잡령이 나를 노리겠는가?

"설마 전이술식을 준비하고 있는거라면 아서라. 새틀라이트 오메가가 형성한 차원차폐막은 단순히 주변공간과 격리만 시키는게 아니라 모든 전이술식을 방해하는 효과도 겸하고 있으니 말이다. 설마하니 내가 그정도 준비도 안하고 네녀석에게 죽음을 선고했겠느냐?"

"그정도는 나도 기야스한테 들어서 알고있었으니까 깡통로봇은 그냥 찌그러져 있어. 그리고 똑똑히 지켜봐라. 모든 죽은자들의 주인이자, 왕이자, 어버이인 바로 대사신이 행사하는 권능을."

"VOT 온라인에서 얻은 거짓 명예에 너무 취해있군."

"그래서 네놈은 거짓 명예에 취한 주정뱅이 하나 잡자고 몇십억광년을 뛰어온거냐? 심지어 그 주정뱅이한테 훔씬 얻어터지고선 말이 많군. 거짓 명예가 아닌 진짜 실력으로 그 입을 다물게 해주마."

일흔 여덟 갈림길 걷고 걸어

저승 호안성 도착했으나 아직 갈길이 멀어

육로 삼천리 해로 삼천리 또 걷고 걸어서

마침내 저승 연천문 두드렸노라

조왕할망따라 행기못가 이르렀으니

저승꽃 사뿐이 즈려밟고 가겠나이다.

네크로노미콘 강령술식 78번 저승문 개전(開戰)

홀로그램 박스 그러니까 퀼레뮤츠의 말에 따르면 차원차폐막의 상공에 개구멍 크기의 문짝이 떠올랐다. Ex 랭크의 영력을 기반으로 했다면 대귈집 대문만한 저승문이 열렸을 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괴수급 영매사와 반신급 영매사의 클래스 차이란 거겠지.

"크크큭. 갖은 폼이란 폼은 다잡길래 무슨 신묘한 힘이라도 보여주나 싶었더니 실망이군. 설마하니 저딴 개집에나 달법한 문으로 신의 지팡이 12개를 받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더냐? 필멸자의 재롱이 기계인 나조차 웃기게 만드는 구나."

"누가 저걸로 신의 지팡인지 뭔지를 받아 낸데?"

"그렇다면 저걸로 뭘 어쩔..."

나는 이매망량을 타고 부유해 해골모양의 손잡이를 당겨 개구멍만한 저승문을 열어재꼈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벙찐 얼굴을 한 퀼레뮤츠가 입을 벌린채로 다물질 못하고 있었다. 저 녀석도 참 마지막에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군. 나는 그런 퀼레뮤츠를 뒤로하고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저승문으로 뛰어들었다.

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1톤 짜리 금속막대 12개가 대기권밖에서 추락하고 있는 이 곳보다는 나을터. 무저갱에 빠진듯 끝도없이 시야가 어두워지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    *    *    *

VOT(Vaccine Of Things)에도 저승은 존재했다. 명계 혹은 언더월드라 불리우는 그곳은 몬스터에게 죽임들 당했던 PK(Player Kill)을 당했던 죽은 유저라면 부활을 위해서 한번씩은 거쳐야 하는 톨게이트 같은 곳으로 현실의 저승처럼 미지와 공포로 가득찬 곳은 아니였다.

핑계없는 무덤없다고 유저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억울한 죽음에 시부렁 시부렁 불만을 토해내면서도 부활을 위해 성실히 퀘스트를 수행하는 모습이 VOT 저승의 주된 풍경이였다. 그 웃지못할 촌극의 이면에는 아무리 날고기는 유저들도 유령 상태에서는 올 랭크 F의 무능력자가 된다는 점과 무시무시한 명계의 지배자 우버리퍼의 존재가 있었다.

유저들이 살아있을 적에 힘을 합쳐서 레이드에 임해도 고전을 면치못할 네임드 보스몬스터가 떡하니 부활문을 막고 있으니 엄한 생각을 할래야 할 수 가 없었던 것. 그러나 단순히 큰 돌을 산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는 노가다성 부활 퀘스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원체 지은 죄가 많아 다른 유저보다 유난히 많은 돌을 옮겨야 했던 나는 부활문을 통과하고 나서도 분이 삭질 않아 우버리퍼를 향한 복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들을 이끌고 VOT의 명계에 진입할때 사용했던 것이 바로 얼티밋 언데드 폼의 원전이기도 한 리치폼이 수록된 네크로노미콘의 또 다른 칠십번대 강령술.

"저승문 개전이라는 술식을 사용해서 넘어왔지."

"호오 그건 아주 흥미롭군. 이승의 존재가 실수로 저승의 경계에 발을 딛여 이쪽으로 넘어온 선례가 있다는건 알고있었지만 자의로 술식을 펼쳐 저승의 문을 두드린적은 내가 보장하건대 이번이 처음일걸."

"나도 당신이라는 존재가 아주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야. 생긴건 웬 잠자리처럼 생겨가지고 자신을 과장급 사신이라고 칭하는게 좀 웃겨서 말이야."

"흐흐흐. 내 외양을 가지고 놀라긴 아직 일러. 내 친구들중에는 부장급 사신조차 고개를 돌릴만큼 기괴하게 생긴 친구들이 많거든."

퀼레뮤츠의 함정을 피해 입장한 현실세계의 저승. 그곳은 너무나 황량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다. 생명체를 찾아볼 수 없는 거야 저승이니까 기본 옵션이라지만 마치 사람이 살지않는 행성마냥 인위적인 손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붉은 사막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있었다.

만약 이 곳에서 살라고 하면 한시간도 채 지나지않아 미쳐버리고 말리라. 그러나 폭발의 여진이 모두 가신 후에야 이승으로 돌아갈 계획이였기에 어쩔 수 없이 최소 한시간은 버텨야 했다. 그나마 우연히 이 붉은 사막을 지나던 잠자리 모양의 사신이 말동무라도 해준덕에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고있는 실정이랄까.

"그러고보니 친구들 한테도 댁을 소개해주면 신기해 할텐데. 죽은 인간의 영혼이야 질리도록 보지만서도 산 인간은 처음일테니까."

"심장에 안좋을것 같으니까 그만둬. 그리고 나는 좀 있으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야할 몸이거든."

"그렇게나 빨리? 조금 더 있다가지 그래."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조금도 더 있기 싫어. 나는 술과 도박은 없어도 상관없지만 여자는 하루에 한번씩 안아줘야 하거든."

"맞는 말이야. 저승 보다는 이승이 백배 천배 낫지. 왜 이승에는 그런 속담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뭐 그런 말. 저승에 있는 모든 존재들 또한 본능적으로 이승을 갈구하고 있기에 네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야. 그러면 가기전에 우리 통성명이라도 할까? 나는 프로즌리퍼 갸갸멜이라고 한다."

"갸갸멜? 그것참 이상한 이름이군. 나는 김사건이라고 한다."

"김사건이라 네가 도깨비들로부터 소위 김서방이라고 불리우는 존재로구나."

서로가 통성명을 끝낸 이후로 프로즌리퍼 갸갸멜은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보통은 통성명부터 한후에 대화를 나누기마련인데 우리는 그 반대가 된 격이다. 붉은 사막위에 누워 빛 한점 없는 하늘을 쳐다보던 나는 슬슬 시간이 된 것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난 이만 간다, 갸갸멜. 잠깐동안이지만 말동무가 되줘서 고마웠다."

"혹시 저승의 생리같은거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아? 내가 얘기해줄 수 도 있는데."

"이런 삭막한 동네 돌아가는 일따윈 관심없어. 나는 쭉쭉빵빵한 여자들이 있는 이승으로 가련다."

"저승에 꼭 이런 곳만이 있는건 아니야. 죽은 사람도 사람인데 번듯한 건물하나 없겠어? 사신들의 업무를 처리하는 처부도 있고..."

"아 그만 작작하라니까 이 잠자리 새끼가! 하여튼 이승놈이나 저승놈이나 좋게 말하면 들어쳐먹질 않아요."

"...3, 2, 1, 땡. 드디어 보호막이 풀렸구나 김서방."

"뭔 개소리야 이 새끼가?"

"염라의 보호막. 정상적이 않은 루트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흘러들어온 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회장급 사신 염라가 이 저승 전체에 걸어버린 천체술식."

"그래서 그게 풀린거랑 너랑 무슨 상관인데?"

"김서방의 몸을 내가 차지해서 내가 대신 이승으로 갈꺼야!"

프로즌리퍼 갸갸멜이 잠자리 날개를 파드득 거리며 날아올랐다. 홀눈과 겹눈을 번뜩이며 나를 타겟으로 잡은 갸갸멜은 꼴에 사신이라고 거대한 낫을 들고 내게 돌진해왔다. 이제는 손발을 다루는것 보다 익숙한 이매망량의 손아귀를 형성한 나는 지금껏 그래왔던것처럼 무자비하게 갸갸멜을 찍어눌렀다.

그러나 스스로를 과장급 사신이라 밝힌 갸갸멜은 관성을 무시하는듯한 움직임으로 회피기동을 펼치더니 원거리에서 거대한 낫을 휘둘러왔다. 정체불명의 냉기가 뿜어져나와 이매망량들을 손아귀채로 얼려버렸고 내 마음 또한 차갑게 식어내렸다.

신의 지팡이 12개의 동시낙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타파하고 너무 방심했던 걸지도 모른다. 정체불명의 적을 상대로 다시 전의를 가다듬은 나는 이매망량 백인장을 앞세워 방어선을 펼침과 동시에 용린연환각의 기수식을 갖췄다.

"어디한번 와바 이 빌어먹을 잠자리 새끼야! 아주 피곤죽을 내버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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