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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이것참 화랑대의 엘리트께서 한쪽 다리도 불편한데 고생이 많아."
"에?"
이 아저씨가 갑자기 뭐라는거야? 소속 대학별로 집합했다가 다시 주특기별로 소대편성을 받은 나는 왠 갓소위 한명과 함께 화랑대 뒷산으로 올라가는 루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역한지 얼마됐다고 앓는소리가 끊이지않는 예비군 소대의 틈에서, 묵묵히 불편한 다리로 걷고있노라니 외간남자가 비꼬는 투로 말을 걸어왔다.
"화랑대쯤 되면 집안이 꽤 든든할텐데 어쩌다 군대에 다녀오셨을까? 그저 천한것들이 좆뱅이나 치는 곳인데 말이지."
"왜 화랑대를 다니면 집안이 든든할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입영통지서 나와서 간거지 시팔 뭐 이유 있어?"
"호오 보기보다 애국심이 투철한 타입인 모양이군."
"애국심은 개뿔이."
"킼. 화랑대를 다니면 집안이 든든한 이유라 정말 몰라서 물어? 똑똑하신 양반이니 교육의 양극화라는 말을 너도 들어봤겠지. 같은 초등학생이라 해도 누구는 구온학습지를 누구는 수학의 정석을 때는 시대야. 차라리 천자문, 사서삼경을 붙들고 달달 외우기만 하면 됐던 조선시대에는 개천에서 용이날 수 있었지만 지금 개천에서 난 놈은 시궁창으로 흘러들어가지... 빌어먹을!
네놈도 어렸을때 부터 수백만원어치 사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겠지?"
"아니 나는 그딴거 받은적 없는데."
"그래서 교과서 위주의 공부에 학교선생님 말씀만 잘들었다고 말하고 싶은건가?"
"공교육이고 사교육이고 나한테는 수준이 맞지않아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 왜냐면 나는 날때부터 용이였으니까. 치밀한 논리적 사고력만 있다면 인터넷에 게재된 논문으로 공부할 수 있걸랑."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방안에 어지럽게 널부러진 엄마의 논문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는 육아보다 자기 연구에만 관심이 많은 외골수 였기 때문에 애시당초 내 교육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전교 1등 성적표를 갖다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화랑대학교에 합격 통지서를 갖다드렸을때도 시크하게 등록금 포함 1억원을 쥐어주며 '키워줄만큼 키워줬으니까 앞으로는 네가 알아서해.'라고 할정도였으니. 아니 빨래, 음식, 청소 모두 내가 했는데 누가 누굴 키워줬다는거야?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니 새삼 내가 참 손이 안가는 아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걸핏하면 칭얼거리고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보채는 철없는 아이였으면 우리 엄마는 고생 꽤나 했을 것이다. 뭐 엄마라면 징징되는 순간 그냥 고아원에 갔다 버렸을지도.
"거참 잘난척을 그렇게 재수없게 하는것도 재주로군. 아무튼 내 말의 요는 세상이 한번 뒤집어질 필요가 있다는거야. 시궁창의 쥐들에게도 승천할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지."
"예, 예. 열심히 해서 승천하세요."
"흥. 자기는 이미 엘리트 노선에 올라탔다 이건가? 조금만 기다려라. 인생은 실전이라는 말의 의미가 피부에 와닿게 만들어줄테니."
"뭐래 병신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기분나쁘게 내 어깨를 툭치고 지나가는 남성. 정말이지 열등감으로 똘똘뭉쳐서 진액이 줄줄 흘러내리는 놈이였다. 내 성질같아선 당장 얼굴을 콘크리트 바닥에 쳐박은 다음 박박 갈아서 감자전을 해먹어야겠지만 갓소위도 간부는 간부였다.
그런 짓을 했다간 나는 군법에 의해 내일 부터 선량한 한국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없게 될것이고 얼마남지 않은 인연도 다 끊길것이다. 아니지 아야사야 기야스함으로 불러들여서 궁둥짝을 두들겨주면 되고 엄마랑은 외국계 메일계정을 통해서 안부를 전하면 되는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예비군 소집도 대학교 학점도 모조리 덧없게 느껴진다. 이 참에 지구정복이나 해볼까? 우주 스케일에서야 당장에 은리 사저의 방문조차 넘기 힘들다지만 지구정도의 사이즈면 충분히 찜쳐먹을 수 있으리라.
지구의 왕이 된다면 전세계의 미녀들을 소집해 365일 색다른 보지를 맛볼 수 있겠지. 그야말로 슈퍼악당이 할법한 짓거리 아닌가? 즐거운 상상에 입을 헤벌쭉해하고 있는데 우리 소대의 선두에 있던 갓소위가 왼쪽 손을 들어올려 나를 현실이라는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예비군들 잠깐 정지합니다. 모두 잡담하던거 멈추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내지 마세요."
얼굴에 위장까지하고 제법 군인티를 팍팍내고 있는 육사출신의 갓소위가 대열을 정지시킨 뒤, 목에 매단 열원감지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예비군들은 고작 뒷산좀 올랐다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난닝구를 밖으로 끄집어냈으니,
만약 생체교란종과 관련하여 교전상황이 발생할경우 믿을건 저 소위밖에 없어보였다. 물론 내 본신의 능력을 사용하면 뒷산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온다 한들 거뜬하겠지만. 제법 고가로 보이는 망원장비로 한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갓소위가 이내 관찰을 마치고 군장을 내려놓은 다음 k2소총에 탄알집을 결합한다. 뭐가 있긴 있나봐?
"예비군들 지금부터 제 말에 절대복종해주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분들이 있다는걸 모르지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훈련이 아닌 실제 작전상황이고 사상자없이 작전을 끝내기 위해선 여러분들의 긴밀한 협조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면 다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설명들어갑니다. 저기 전방 150m 쯤에 속칭 뉴트리아X의 소굴이 있습니다. 예비군들은 그 지점을 둘러싸서 일종의 그물역할을 해주시면 됩니다.
다시한번 설명하겠습니다. 실제로 교전을 펼쳐서 뉴트리아X를 살상하는건 저 혼자입니다. 예비군들은 그녀석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만 해주십쇼."
"우리한테는 실탄을 주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나? 그래서 혼자 뉴트리아X란 놈을 해치우면 훈장이라도 받기로 되있나보지?"
"바보같은 소리하지 마십쇼. 여러분들은 뉴트리아X가 얼마나 은밀하고 빠르게 번식을 할 수 있는지 모르십니다. 뉴트리아X를 잡았다고 훈장을 받을라치면 대한민국에 있는 금속이 모자랄겁니다."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쥐새끼들이랑 싸우는데 대검 하나 달랑쥐어주고 왜 실탄을 안주냐고! 무슨 훈련병시절 기억을 더듬어서 총검술이라도 펼쳐보라 이건가? 미안하지만 이리저리 둘러봐도 팬대만 굴리던 놈들이 대부분인걸."
"제가 책임지고 예비군들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항명은 거기까지 하시죠. 더이상 작전진행에 방해되는 행위를 한다면 저도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할겁니다."
"흥! 어디 한번 두고보자고."
저 새끼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말을 할때마다 생지랄이야? 내게 교육의 양극화가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설교를 늘어놓던 사내가 이번에는 갓소위에게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실탄까지 장전한 지휘관한테 무슨깡으로 저렇게 덤비는거지?
사내의 공격적 태도때문에 다른 예비군들의 시선도 점점 비호의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저 친구는 군대에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눈에 띄면 피곤해진다는 만고의 진리를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예비군 행렬을 한다리로 힘겹게 쫓으며 예의 사내를 별꼴이란 표정으로 노려봐줬다. 제발 쉽게 쉽게 좀 가자! 갓소위의 무언의 제스쳐를 지표삼아 포위망을 좁히다보니 블루아주가 싸지른 숙변의 정체를 나는 마침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흩어진 드론잔해들과 나무의 그루터기를 거품처럼 둘러싼 정체불명의 점막. 한국 도심 한복판에 있다고 생각될 수 없는, B급 에얼리언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싸구려 세트장 느낌이 났다. 그러나 갓소위는 유래없이 긴장한 표정으로 약진한 다음 그루터기 안쪽으로 최루탄을 밀어넣었다. 딸깍! 스르르르르르르르르.
"키아아아아아악!"
"예비군들 당황하지말고 포위망 좁혀요!"
점막을 뚫고 들어간 최루탄이 사정없이 매운연기를 뿜어내자 그 안쪽에서 도사견급의 덩치를 지닌 신형이 튀어나왔다. 어느모로 보나 쥐새끼라는 칭호가 어울릴만한 녀석은 아니였으나 그 속도만큼은 작은 설치류마냥 재빨랐다.
하지만 녀석이 튀어나온 순간 갓소위가 놀라울정도로 정확한 조준사격으로 설치류의 머리를 벌집으로 만들어 우려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실 나가듯 여유롭게 뒷산행에 임했던 예비군들이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으나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그루터기에서 점막을 뚫고 뉴트리아X가 세마리나 추가로 튀어나온 것이다. 나야 독룡 팔타로스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뉴트리아X 수백, 수천마리를 찢어죽인 경험이 있다지만 일상의 평화에 찌든 예비군들에게 그 광경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갓소위가 그렇게 포위망을 풀지말라 당부했거늘, 모세의 기적이라도 일어난것처럼 갈라지기 시작한 포위망. 그러나 뉴트리아X의 목표는 탈출이 아니라 인간이였던 모양이다. 다른 예비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떨어지는 나를 향해 득달같이 앞니를 들이대는 뉴트리아X.
"예비군 조심해요!"
"아 시발 가소로운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뭐 예비군들이 정신없이 도망치는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사실 인간의 육체는 그닥 전투에 적합하지 않아서 도사견정도만 되도 1:1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도사견의 덩치에 외계인스런 얼굴과 이빨구조를 지닌 괴생명체라니 머리속에서 비상벨이 위용위용!하고 울렸겠지.
그런데 내 머리속에선 징글벨이 울리는 구나! M16에 대검이 달려 있는채로 뉴튜리아X의 대갈빡에 선물해준 나는 산타 할아버지의 미소를 지으며 살코기를 꿰뚫는 감촉을 만끽했다. 아바타로 하도 여기저기 쌈박질을 하고다니다 보니까 본체까지 이상해졌는지 지금 이 상황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모르긴 몰라도 순간 스피드 하나는 경차보다 빠를 뉴트리아를 조준사격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대검을 뽑아들어 직접 뉴트리아X의 목을 따버린 갓소위가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온다. 털끝하나 안다쳤으니까 호들갑좀 떨지마라. 이래서 갓소위는...
아니 잠깐만 그루터기에서 나온 뉴트리아X는 분명 3마리였던것 같은데? 대갈통이 꿰뚫린 뉴트리아X를 떨궈내고 주위를 살피니 자꾸 내게 열폭을 시전했던 기분 나쁜 사내가 죽은 뉴트리아X를 품평회하듯 살펴보고 있었다. 그뿐이라면 예비군치곤 임기응변이 괜찮다고 생각했겠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뻗어나온 검은 가시가 일이 꼬였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역시 국가라는건 믿을만한게 못돼는군. 지들은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국민들은 이런 괴물들에게 내몰다니... 용서못해!"
"잠깐만 이봐요. 이번 작전이 매끄럽지 못했다는건 인정합니다. 모두 제 불찰이에요. 하지만 이 모든게 국가탓이라니 무슨 억지입니까? 생각해보세요. 이것들이 시내를 활보한다고 가정했을때의 참사를. 당신에게도 동생이나 부모님이 있을거 아닙니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말이야 소위 양반 그걸 알아야지. 당신처럼 제발로 군에 투신한 경우도 있지만 별의 별 꼼수를 써가며 군면제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는걸. 인류가 태어난 이래로 이 땅에는 단한번도 정의가 바로 세워진적이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진행중이고 미래에도 마찬가지겠지.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악인이 되겠어!
이 더러운 판을 뒤집어서 위엣놈들을 끌어내린 다음 나도 부귀영화란걸 누려보고 싶다고!"
눈이 반쯤 뒤집힌 남자의 손에서 뉴트리아X에 바람구멍을 송송히 내주었던 검은가시가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교전상황이 종료됐다는걸 깨달은 몇몇 예비군들이 근처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다 이마가 꿰뚤려 비명횡사하기 시작했다.
뉴트리아가 눈앞의 현실적인 재앙이였다면 남자의 가시공격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위기를 지각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 탓에 어버버하다가 예비군 사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프랙탈처럼 기하학적인 모양을 그리기 시작한 가시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굶주린 야수처럼 예비군들을 도살하던 가시가 마침내 갓소위를 타겟으로 잡았다. 아무리 신체능력이 우수한 육사출신이라 해도 저건 막기 힘들겠지. 나는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이 사건의 증인으로 내새우기 위해 갓소위를 이매망량으로 끌어당겨 한 목숨을 구명했다.
마음 먹으면 처음 이마를 관통당한 예비군을 제외한 다른 사상자를 구할 수 도 있었겠지만... 글쌔다? 나 또한 이 땅에 정의가 무너졌음을 일치감치 깨닫고 악인으로 돌아선 사람인지라 쓸데없는 일에 힘빼고 싶지 않았다. 저 가시사내와 내가 다른점이 있다면 나는 부귀영화가 아닌 주색잡기를 쫒는다는 점 정도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