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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레서 혹시 에너지 셀 남은거 있어?"
"나도 이제 2개 남았어. 이거 주고나면 나도 쫑이라는 소리지. 드론과 군용헬기는 얼추 정리됐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이번엔 전함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니..."
"전함에서 뭐가 튀어나오면 다행이지요. 전함 자체가 공격해오면 정말 곤란합니다."
"확실히 에너지 셀이 펑펑 남는다 한들 사건군의 브레스정도가 아니면 화이트 티타늄으로 이루어진 전함 크레센트의 외벽에 흠집조차 낼 수 없겠지."
"아아 열받아. 레서, 우리 돌아가면 빚을 내서라도 초진동 빔샤벨이랑 아케인 윙슈트부터 사자."
"살아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지."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난 뒤 땀범벅이 된 라라펠을 매서운 모래바람이 식혀주고 있었다. 이걸 달리는 캠핑트럭위에서 싸울때의 장점이라고 친다면 억지일까?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한 쌍둥이 태양을 보면서 한숨 돌리고 있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든다.
드론과 군용헬기를 동원해 1, 2차전을 치룬 전함 크레센트는 이미 캠핑트럭을 앞지르기 충분할 정도로 전력기관을 회복했음에도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보니 체어맨 그러니까 망월해적단의 선장 데드마스크는 아직도 라라펠을 산채로 납치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그런데 일개대대의 드론과 일개분대의 군용헬기가 전멸한 상황에서 추가로 병력을 파견해봤자 손실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전함이 고작 캠핑트럭의 꽁무늬를 쫓고만 있는 거겠지. 솔직히 함포가 발사됐을때 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지만 과연 라라펠 일행을 모두 보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때문에 불안한 눈빛으로 전함 크레센트와 라라펠을 한번씩 일견하며 마음의 준비를 굳히고 있었다. 여차했을땐 라라펠을 끌어안은 다음 모든 방어수단을 나에게 집중해서 그녀 하나만이라도 살려야만 했다. 냉정한 이야기지만 휘르 행수가 의뢰한 대상은 라라펠 혼자였으니까.
"사건군 최악의 경우 라라만은 살려줄 수 있는거지?"
"레서 갑자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니 사건군의 능력이라면 왠지 라라 하나만은 살릴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라서."
"동료는 절대 버리지않는다는 실버라군 철칙 잊었어? 혼자 살바엔 그냥 같이 죽겠어!"
"고마워, 라라. 수인족 중에서도 하등한 쥐의 핏줄을 지닌 내게 그런 말을 해줘서. 하지만 네가 정말 나나 릭을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망월해적단에게 복수하는편이 좋지 않을까? 전함을 상대할 수 있는건 오직 전함뿐. 비스트코인 소속 전함 실버문의 함장 라라펠 실버코인도 나름 괜찮을것 같은데?"
"레서 너 이 새끼가 진짜! 그 잘난 전함 엄마나 타라 그래. 나는 내 두손으로 데드마스크의 두개골을 쪼개버릴테니까!!!"
"누님 동료애를 과시하는것도 좋지만 말입니다. 데드마스크가 결심을 내린것 같군요. 저희도 준비를 해야될것 같습니다."
해가지기 전에 승부를 볼 생각인지 결국 전함 크레센트의 포문이 개방됐다. 본래 대함선용으로 설계된 함포의 피격범위는 캠핑트럭으로 회피할 수준이 아니였던지라 나는 미리 계획했던 대로 라라펠을 있는힘껏 끌어않았다.
밤이 다가와 야성이 강해진탓인지 터무늬없는 완력으로 저항하는 라라펠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이매망량을 총동원 해야만 했다. 여자를 안은게 아니라 무슨 야생늑대를 한마리 안은 기분이랄까.
그 상태로 아이언 메이든에서 던클레오가 잡아먹은 고래의 견갑골까지 소환해야했으니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란게 쉽지가 않다. 고래 견갑골로 한겹, 이매망량의 방패로 두겹, 나라는 고기방패로 세겹. 이 정도라면 라라펠도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날 수 있으리라.
레서가 초연한 표정으로 나와 라라펠을 지켜보고 있는가운데 릭도 위의 상황을 모르지 않을텐데 침착하게 트럭을 운전해 나가고 있었다. 유일하게 지랄발광을 떨고 있는건 라라펠뿐. 다른이들은 전함의 포격이 머리위로 쏟아지는 운명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과과과과과과!!
과과광!
"옥토끼 이 개자식아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우리 엄마한테 그렇게 잘 보이고 싶었냐? 릭과 레서를 살려내란 말이야!!"
"저기... 라라? 여기가 지옥이 아니라면 나도 릭도 그리고 캠핑트럭도 멀쩡한것 같은데?"
"뭐.. 뭐? 이 날개는 뭐야? 옥토끼 네가 한거야? 함포를 막을 수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하지. 괜히 너한테 싫은소리를 늘어논 나만 뻘쭘하게 됐잖아!"
"아뇨. 제가 한거 아닙니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캠핑트럭을 덮친순간 나 또한 충격에 대비하고 있었으나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품안에서 내 팔을 물어뜯은 라라펠의 송곳니 자국이 아려올 뿐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위를 살펴보니 족히 15m는 될법한 거대한 날개가 어미새가 아기새를 감싸듯 트럭을 보호하고 있었다. 너무나 뜬금없는 상황에 라라펠을 풀어주는것 조차 잊고 벙쪄있으려니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괜찮으신가요, 아저씨? 조금 위험해보여서 도우러왔는데 오지랖이였을라나요?"
"글쌔 오지랖까지는 아닌것 같다만 네가 올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옥토끼 이녀석은 도대체 누구야? 15m짜리 날개를 지닌 종족은 풍문으로도 들어본적도 없다고. 거기에 함포를 막아낼정도로 단단한 날개라니."
"일단 사상누각의 후계자다툼에서 밀려난 몰락귀족으로 해두죠."
"그게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야?"
"말이 안돼는건 저도 알고있지만 어찌됐든 이 녀석이 릭과 레서를 구해준 은인이라는건 명백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너무 꼬치꼬치 캐묻지 말죠."
"라라 뭔가 속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그냥 넘어가자고. 우리 셋이 다시 실버라군의 이름으로 뭉칠 수 있다는게 중요한거 아니겠어?"
전함의 주포로부터 우리를 지켜준건 다름아닌 디파일러 킹 대붕공자 카트랏슈였다. 전생유적앞에서 맺은 인연이 설마 이런식으로 돌아올줄이야. 새하얀 터번을 착용한채로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있는 왕은 소년과 청년 사이를 걷고있어 여전히 연배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잠깐 카트랏슈 혹시 나를 딱 한번 도와주겠다는 약속 아직도 유효하냐?"
"물론이죠. 아저씨를 지켜준건 어디까지나 제 자의였으니까요."
"그렇다면 저 전함 좀 격추시켜줄 수 있냐?"
"야 옥토끼! 나보고는 꼬치꼬치 캐묻지 말라고 면박을 줘놓곤 너야말로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거 아니야?"
"못할것도 없죠. 사실 제 권역인 백토성을 멋대로 활보하는 저 기계덩어리가 거슬리기도 했고."
수왕성에서 디파일러 로열 나이트 쿠자르와 결전을 펼친 이래로 나는 디파일러 킹의 힘을 최소 Ex랭크의 네임드 보스몬스터급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전함을 격추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힘. 하지만 디파일러 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는 자존심 문제가 섞여 있었다.
나 혼자라면 어떻게든 이매망량의 힘을 빌어 전함에 안착한 뒤 벽을 통과할 수 있는 악령천인대로 망월해적단을 쓸어버렸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라라펠 일행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맹점이였고 그것이 곧 내 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분한 일이긴 하지만 휘르 행수의 의뢰를 생각해서 이번 한번만 타인의 힘을 빌어 큰산을 넘으리라. 공중에서 트럭위로 안착한 카트랏슈는 자신이 왜 대붕공자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별을 상처입히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번정도는 용서해주겠죠."
디파일러 킹 더 스텔라 비타 제 1성기 백익만개(Feather Storm)
백토성의 마른하늘에 때아닌 자기모래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토네이도가 몰려들더니 카트랏슈의 거대한 날개짓 앞에서 하나로 뭉치는 기현상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신기했던건 그 거친 바람이 우리에게는 산들바람처럼 느껴졌다는 것.
그리고 카트랏슈의 새하얀 깃털이 하나로 뭉친 토네이도 속으로 빨려들어감과 동시에 전함 크레센트를 향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걸 느낀 전함 크레센트가 눈에 띌정도로 쉴드에 전력을 몰아넣었지만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돼지 삼형제중 첫째가 지푸라기 만든 집이 늑대의 콧김에 바스라지듯 함선이 백익에 찢겨나가고 있었다. 선미갑판부터 허물기 시작한 날개 폭풍은 쉴드로 어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였으니 그들이 살고싶었다면 차라리 엔진에 전력을 모두 때려박아 백토성을 벗어났어야 했을 것이다.
"저런 친구를 후계자싸움에서 밀어내다니 엔츄라 여왕은 도대체 얼마나 괴물이라는 거야?"
"힘이 아니라 외교력으로 밀어낸 모양이죠."
"퍽도 대단한 외교력이군. 옥토끼 너는 뭐가 그렇게 숨기는게 많아?"
"아저씨 저는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인연이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그래 고생했다. 나중에 또 보... 가버렸네."
전함 크레센트를 산산조각내서 사막에 금속비를 뿌리게 만든 장본인이 전생유적에서 그랬던것처럼 소리소문도 사라졌다. 집에 가스불 잠그는걸 깜빡했나? 뭐저리 허겁지겁 사라지는지 몰라.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운전석에서 관망하고 있던 릭은 금속비로 부터 안전한곳까지 캠핑트럭을 몰고간 후 차를 정차시켰다. 곧이어 트럭 지붕으로 올라온 릭이 라라펠과 레서에게 주먹도장을 찍으며 기적적인 생환을 자축했으니 내가 보기에도 그 셋은 뭉쳐있을때가 가장 행복해 보였다.
라라펠이 혼자 살아남았다면 외로움에 사무쳐 객사했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트럭 지붕위에 몸을 누인 나는 한껏 긴장했던 마음을 풀고 싸늘해지기 시작한 사막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걸로 끝난건가?
"오오오오옥사아아아거어어언!!!! 네 이놈! 네 놈이 내가 평생을 쌓아온 모든걸 부셔버리다니이이이!!!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다."
"이런 제기랄! 저 늙은이가 명줄도 기네."
"데드마스크의 정체가 사실 전이술 마에스트로 체어맨이였다고 한다면 매스 텔레포트로 전함이 붕괴되기 전에 빠져나온게 틀림없어."
"차라리 잘됐어! 안그래도 열이 받쳐 죽을것 같았는데 전함에 화풀이를 할 순 없었으니까 선장을 상대로 풀어야겠군. 릭 에너지 셀 남는거 다줘봐. 내가 처리한다!"
"괜찮겠어, 라라?"
"괜찮고 말고! 저기 보름달 떠오르는거 안보여?"
생각해보면 체어맨 즉 데드마스크 선장이 살아남은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였다. 아바타가 전이술 마에스트로에 상아탑의 교수직을 맡을 정도라면 본체도 최소한 그 이상이라는 뜻이였다.
그 엄동설한에 부하까지 텔레포트할 여력이 있었다는 점이 놀랍긴 했지만 지상전은 이제 나도 자신이 있었다. 텔레웨폰의 파훼법은 좌표계산을 빗나가게 하는 것. 에보니 메이든에서 나이트메어를 소환한 나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전투를 벌일 작정으로 달려들었다.
그 뒤를 빔샤벨 출력을 최대치로 올린 라라펠이 따라붙었으니 평소 이상으로 날렵한 움직임이 돋보였다. 데드마스크를 둘러싼 해적부하 수백명이 에너지 웨폰계열인 전기톱을 들고 살벌하게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옥토끼 데드마스크의 두개골은 내가 두손으로 직접 쪼갠다."
"싫은데요? 저 자 목에 걸린 현상금이 얼마인데 아무리 누님이라 해도 양보못합니다."
"그러면 우리 내기 할까? 누가 더 많은 부하들을 해치우는지? 많이 해치운 쪽이 현상금의 8 적게 해치운쪽이 2를 먹는거야."
"감히 강령술사에게 그런 내기를 거시다니 후회할겁니다."
"보름달이 뜬 날의 나는 다르다는걸 알아야지. 그럼 수락한걸로 알고 먼저 간다!"
과연 자신만만한 태도에 걸맞게 라라펠은 한마리의 늑대가 되어 망월해적단의 정예병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진지하게 데드마스크의 무법자 현상금을 노리고 있었으므로 아이언 메이든에서 언데드 대대를 소환하는 한편 악령천인대의 목줄까지 풀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나이트메어를 타고 돌진해 블랙탈론을 휘둘렀으니 전기톱과 아케인 슈트로 완전무장한 망월해적단들이 늑대앞의 양때들처럼 도망가기 시작했다. 데드마스크는 수백명의 부하들을 매스 텔레포트 시키는 과정에서 마력과부하가 걸렸는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그 과정을 지켜볼 따름이였다.
차라리 그 혼자서 탈출해서 텔레웨폰이나 공간블랙홀로 공격해왔다면 더욱 힘든 전투가 됐으리라. 더이상 그를 지켜줄 부하들이 남지않자 데드마스크가 흉측한 가면에 어울리지 않게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부하 상태의 마력기관을 운용해 피까지 토해가며 뒤로 순간이동을 취했지만 사냥감을 노리듯 그를 향해 짓쳐드는 늑대발톱과 마상 랜스마냥 말의 가속도를 얻은 블랙탈론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였다. 푸우우우우우욱!
"쿨럭쿨럭. 최강의 전함이 바로 코앞이였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