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03화 (103/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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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 Oxogan The Rise Of Venom Dragon

"약속시간을 1시간이나 앞당겨 죄송합니다. 이번에 레이븐의 신곡 발표를 홍보하기 위해서 게스트로 출연하기로한 예능녹화시간이 변경된걸 갑작스럽게 통보받아서 저도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더군요. 이렇게 기탄없이 약속시간을 바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정식으로 크로스데일양에게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이 중화코스요리전문점을 하루동안 전세낸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죠. 그러면 일단 이강건 사장님과 저말고는 초면인듯 하니 간단히 소개시간을 갖도록하죠. 예약한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해서 아직 요리가 나올려면 멀기도 했고요. 저는 의료기기전문 생산기업인 크로스데일사의 한국지부장 아야사 크로스데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해서 고용한 보디가드분입니다. 상당히 유능하신 분이죠. 이분을 스카우트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우리를 제외하곤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중화코스요리전문점의 중앙테이블에 빙 둘러앉은 사람들. 그중 포탈 사이트 그린의 프로필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선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강건 사장이 생긴것 만큼이나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해왔다.

하지만 오체투지 자세로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사과를 해온다 한들 아야사와의 합궁을 방해한 죄는 도저히 용서할 수 가 없다. 김춘복을 먼저 족쳐야해서 침묵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선량한 인상때문에 더 속이 부글부글거리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헌데 선량한 인상과 달리 이강건의 손이 예사롭지 않았다. 솥뚜껑같은 손에 굳은살이 촘촘히 박힌것이 어디가서 황소도 때려잡을 기세다. 그 옆에는 최소 기럭지 177cm에 비율조차 우월해 나 연예인이라고 전신에 써내린듯한 여성 한명과 남성 두명이 눈에 띈다.

아마 저 셋이 레이븐이라는 락 그룹인 모양이다. 그밖에 전형적인 회사원처럼 보이는 안경잡이와 전형적인 사우나 죽돌이 아저씨처럼 보이는 사내가 내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사우나에 온것도 아닌데 땀을 비오듯 흘리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이 아저씨가 김춘복 실장인 모양이다.

지도 찔리는게 있다는건 아는 모양이지?

"저는 B플랫 엔터테이먼트의 사장직을 맡고있는 이강건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차례대로 강루키, 레이디 노아, 엉클김입니다. 각자 기타, 보컬, 드럼을 맡고 있지요. 본명은 따로있습니다만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름은 이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쪽에 안경을 쓴 친구가 이준교 매니저로 레이븐 데뷔시절부터 함께해온 아주 진국인 친구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신 김춘복 실장은 B플랫 엔터테이먼트 창사시절부터 함께 해온 제 고향동생입니다.

아 그리고 저쪽에 있는 친구들은 저희 식구인 경호 1팀쪽 애들입니다. 레이븐은 유난히 극성팬들이 많아서 말이죠."

"저분들도 뭔가 드시고 싶으신게 있다면 시키셔도 됩니다. 오늘 이곳에서 소요될 경비는 전부 제가 지불할 생각이니까요."

"말씀은고맙지만 아무래도 배가 부르면 신경이 둔해져서 말이죠. 저 애들은 제가 나중에 따로 챙기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국민 연하남 강루키입니다. 지부장님 완전 대박 여신이시다. 왠만한 연예인들은 오징어 되기 싫으면지부장님 앞에서 고개숙이고 다녀야겠어요. 지금 쌩얼에 기초화장밖에 안하셨죠? 그런데 cm두께로 화장한 노아누나보다 피부가 하얘."

"cm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피부 숨막혀 뒤질일 있냐? 이게 뒤질려고 어디서 까불어!"

"어허 경거망동하지 마라, 애들아. 투자자님한테 어찌 그리 격의 구는것이냐?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크로스데일양."

나는 슬쩍 경호 1팀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훑었다. 일곱, 여덟, 아홉명이 세명씩 세 테이블에 나눠 앉아 있었다. 세명이 한조 뭐 그런 느낌인가? 혹여나 난투가 벌어졌을때를 대비해 아야사를 지키면서 싸우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강루키라는 놈이 아야사에게 살갑게 말을 건넨다.

역하렘 순정만화에서 연하남 캐릭터를 담당할듯한 녀석이 아야사에게 집적대니 여간 신경이 거슬리는게 아니다. 하지만 진짜로 분노를 폭발시켜야할 순간은 지금이 아니였기 때문에 강루키를 도끼눈으로 째려보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허나 넉살도 좋은 녀석이 오히려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해온다.

이 자식이 나한테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라는 속담이 통할거 같아? 나 웃는 얼굴에 옥수수 털어버릴 수 있는 무뢰배같은 놈이라고. 저런 능글맞은 녀석에게 힘 빼는것도 바보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린 나는 우연히 레이븐의 보컬 레이디 노아와 눈이 마주쳤다.

쇄골에 새겨진 한자문신에 얼굴을 감쌀정도의 짧은 머리를 샤기컷으로 다듬은 여성은 솔직히 말해 공중파 가수보다는 언더쪽 느낌이 물씬 풍겼다. 갑자기 눈이 마주치자 뻘쭘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였는지 레이디 노아도 급히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린다.

"그런데 아직 그 보디가드분의 이름을 듣지 못했군요. 실례가 안된다면 성함과 어디에서 어떤 호신술을 익혔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글쌔? 그건 그쪽의 김춘복 실장이 알고 있지 않을까?"

"예? 김춘복 실장이요? 그게 무슨... 김실장 자네는 또 왜그렇게 땀을 흘리나. 어디 몸에 이상이라도 있는겐가?"

"아... 아닙니다, 형님 아니 사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그 보디가드분께서 뭔가 착각하신것 같습니다. 아무리봐도 저랑은 초면이신것 같은데요."

"크흐흐흐흐흐흐흐~ 이 가증스러운 새끼가 어디서 오리발이야!"

드디어 참아왔던 분노를 터트릴 시기가 왔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김춘복의 멱살을 집어든 후 얼굴을 용린정권으로 강타해 코뼈를 주저앉게 했다. 일단 시작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곳부터 분질른다. 괜히 엄한곳을 쳐서 억!하고 죽으면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재력있는 투자자와의 교양있는 담화를 기대했을 B플랫 엔터테이먼트측 인사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특히 멀찍이 떨어져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경비 1팀은 잽싸게 나를 둘러싸더니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다. 뭐야 이거. 이 간악한것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달려들어?

나는 김춘복 실장을 테이블위에 쳐박은 다음 핀셋을 꽂듯 이매망량의 검을 박아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총 9명인 경비 1팀을 한명씩 차례대로 조지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회피기동따위는 없었다. 맞아줄건 맞아주는 대신에,

한놈만 이매망량으로 붙들어 둔 후 용린연환각 갑(甲) 초식 다리후리기로 다리몽둥이를 아작내버렸다. 제법 피지컬이 괜찮아 보였던 이강건 사장이나 레이븐의 멤버 엉클김이 혹시나 아야사를 노릴까 주의를 게을리하지않으며 차례대로 경비 1팀의 기동성을 무력화 시켰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도대체 이게 무슨 사단이란 말입니까? 밑도 끝도없이 폭력을 휘두르다니 아무리 저희가 갑작스럽게 약속시간을 바꿨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경비 1팀 너희들도 대화로 풀 생각을 해야지 상대가 주먹을 휘둘렀다고 해서 바로 득달같이 패싸움을 걸어? 내가 그렇게 가르쳤더냐?"

"멍청한척하는거야 아니면 진짜로 멍청한거야? 고작 약속시간을 앞당겼다고 이런 생난리를 피울거 같아? 나이가 있어서 더 뒤가 구린 사정이 있을거라는 논리적 전개가 안되나보지?"

"그렇다면 그 뒤가 구린 사정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보시지요."

"이 빌어먹을 새끼들 버릇을 고치는게 먼저야."

"제가 나이가 있어 머리회전이 예전만 못한것은 사실입니다만 몸만큼은 꾸준히 단련하고 있어 아직 젊은이들 못지않습니다. 고정하시고 천천히 속사정을 이야기 해보시지요."

이제 막 다섯번째 경비 1팀의 다리를 후리려는데 황소같은 힘이 내 사지를 붙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언제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이강건 사장이 양손으로 내 사지가 힘을 쓸 수 없게 저지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에서 적화수오환을 씹어먹으며 단련을 했다해도 그것은 반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당연히 나보다 완력이 뛰어난 지구인이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저 두터운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황소마냥 옹골찬게 신기할 따름이다. 머리도 희끗희끗하신분이 어찌 이렇게 힘이 좋으실까?

힘싸움으로는 승산이 없을것 같아 이매망량으로 이강건 사장을 걷어내려고 하는 순간 다리가 멀쩡한 경비 1팀 다섯놈이 품안에서 일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이 생긴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 귀엽기까지한 수작질에 오히려 이강건 사장이 놀라 나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취했다.

아이고 어르신 고맙긴 하지만 날붙이 따위에 겁먹을 내가 아닙니다. 패브릭 아케인 슈트를 입은 상태는 아니였지만 피부에 이식된 웨어러블 아케인 쉴드에 도검불침의 외공경지에 이르게 해주는 귀갑흑석단까지 복용한 나는 오히려 반갑게 단검을 맞이하러 나갔다. 깡! 깡! 깡! 깡! 깡!

"이놈들! 너희들이 양아치도 아니고 어디서 날붙이를 꺼내드느냐! 내가 노쇠했다고 이제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듣는게냐?"

"하지만 사장님 저녀석이 경비 1팀장님을..."

"다 시끄럽고 너희들은 날붙이를 들이댄 죄로 손모가지까지 아작내주마."

나는 일일히 처리하는것도 귀찮아 단검을 꺼내든 다섯 경비 1팀을 이매망량으로 찍어눌러 바닥에 넙적 엎드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용린연환각 을(乙) 초식 내려찍기로 손수 한땀 한땀 사지를 골절내 주었다. 난데없는 부하들의 칼부림에 충격을 받은 이강건 사장이 나를 제지할 생각도 못하고 가까운 곳에 있던 의자에 주저않았다.

"보디가드 양반, 이제 설명해주시겠소? 도대체 이 사단이 난 이유가 뭐란 말이요?"

"전부 말해주지. 하지만 그전에 공평성을 위해서 피의자의 말부터 들어볼까? 이봐 김춘복 이 어서 니가 지은 죄를 찬찬히 읋어봐. 되도않는 소리를 늘어놓으면 그 자리에서 손가락을 꺽어버릴줄 알아."

"춘복아 너 설마 다시 그쪽일에 발을 담군거냐?"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믿어주십쇼! 형님. 진짜 정말 별거아닌 의뢰가 외국 브로커쪽에서 들어와서 경비 1, 2팀 애들 용돈이나 쥐어줄 생각으로... 끄아아악!"

"뭐? 별거아닌 의뢰? 뒤지고 싶냐? 이 새끼가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을 하네."

"최근에 경비 1, 2팀 애들이 갑자기 말도없이 고향에 부모님 모시러 내려가겠다고 우르르 은퇴한 일이 설마 그 의뢰에 관련되 있는거냐? 춘복아 도대체 뒤에서 뭔짓을 하고 다닌게냐?"

"이제보니 이강건 당신도 문제가 많구만. 밑에 동생이 경호팀을 꼬득여서 범법행위나 시키고 회삿돈 횡령해서 기획사가 부도직전까지 치달았는데 사장이라는 인간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그렇게 몰라? 아무것도 모르는척 순진한척 뒷방에 앉아 점잔만 떨면 전부야? 따지고 보면 이 모든건 아랫사람 간수를 제대로 못한 당신이 자초한 일이라고!"

내가 속사포처럼 이강건 사장을 몰아붙이자 레이븐의 보컬 레이디 노아가 발끈해서 나서려는 것을 엉클김이 붙잡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엉클김이 눈치가 빠르구만. 만약 레이디 노아가 내게 달려들었으면 여자고 나발이고 국민 보컬이고 잡시고 귓방망이를 후려갈겼을 것이다.

자 이제 필요한 무대장치는 모두 갖추었다. 이강건과 김춘복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새드엔딩이냐 베리 새드엔딩이냐로 연극의 결말이 갈릴것이다. 이들에게 해피엔딩따위는 안배되어 있지 않았다.

아야사도 적을 상대로 무자비한 단죄를 아끼지 않는 내 태도에 익숙해졌는지 담담하게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였다. 골절상때문에 신음하는 경비 1팀원들 사이에서 머리를 쥐어감싸고 소리없이 신음하고 있던 이강건 사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런 징후도 느끼지 못한것은 아니였소. 다만 회삿돈이 자꾸 비어서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닐때에도, 춘복이가 음지의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소문을 들었을때에도 어려울때부터 같이했던 동생을 의심하고 싶지 않아 나 스스로의 눈과 귀를 닫았소. 지금 생각해보니 작금의 사태는 모두 내 잘못이였던것 같군.

춘복아 모든 책임은 내가질테니 전후사정에 대해서만 거짓없이 말해다오. 그래야 수습을 할 수 있지 않겠니?"

'누구 마음대로 책임을 진다는거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어찌됐든 김춘복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자기 입으로 자백하는 일은 이번 연극에서 아주 중요한 장치였던지라 일단 두고보기로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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