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73화 (73/599)

0073 / 0316 ----------------------------------------------

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혹시나 수호령 오피스레이디가 듣고 있지 않을까 싶어 넋두리를 늘어논 나는 아무 반응도 없는 고요한 대기실에 멋쩍어 볼을 긁적거렸다. 그냥 닥치고 지(智) 테스트 룸에나 입장해야겠다. 과연 99Lv의 지(智) 테스트는 얼마나 토나오게 어려울지 기대해봐야겠군. 일단 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관경부터가 스케일이 다르다. 내 키를 훌쩍 넘는 석판 16개가 관중석 마냥 나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각각의 석판에는 마력 크리스탈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석판의 중앙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었다.

'아케인족의 마스터피스 여기에 잠들다...'

아케인족이라면 은린선에서 공수중대장을 맡고 있는 도르칸 대위의 종족을 말하는건가? 그리고 백신마켓에서 구매한 WAS(Wearable Archane Shield)도 아케인족의 작품이였다. 고도의 기술력을 지닌 아케인족들이 마스터피스라고 부를정도라면 이번 99Lv 지(智) 테스트에는 굉장한 기연이 잠들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나는 오랜만의 기연에 들뜬 기분으로 맨좌측 석판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는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문자에 한해서 자동번역을 해준다. 기존에 지(智) 테스트를 받을때는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고대상형문자가 나와 손도 못썼지만 아케인족의 문자는 제대로 번역되고 있었다. 석판에 쓰여진 대로라면 아케인족은 16이라는 수를 신성시하여 셈법은 16진법을 기반으로 했고 문자도 총 16개였다. 그리고 각각의 숫자와 문자를 상징하는 16개의 색상이 존재한다고한다.

"이게 끝이야? 뭐 어쩌라고 그래서."

최소한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잘 고민해서 풀어봐라고 명시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나는 16개의 석판에 박혀있는 마력 크리스탈을 훑으며 고민에 빠졌다. 사실 저 마력 크리스탈만 캐서 내다 팔아도 왠만한 기연급 이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분명 지(智) 테스트에 실패할것이고 31층으로 가는 길은 영구적으로 막히겠지.

16개의 색상, 숫자, 문자, 석판 분명 뭔가 상관관계가 있을텐데...

잠깐 색(色)이라면 설마 정신망 다발색을 의미하는건가? 나는 불현듯 떠오른 실마리에 재빨리 사령안 제 2형인 샤프마인드(Sharpmind)를 발동했다. 사령안으로 도데카 인공마력기관의 마력이 공급될 수 록 16개의 석판에 박혀있는 마력 크리스탈이 숨겨왔던 색을 발한다. 파랑은 냉기 에너지, 빨강은 열 에너지, 검정은 음 에너지, 무지개색은 변이 에너지, 노랑은 전하 에너지, 흰색은 전이 에너지등...

놀랍게도 16개의 석판에 박혀 있는 마력 크리스탈 모두 전혀 다른 인공 정신망과 연결되어 다른 에너지를 정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한 손가락의 블랙탈론을 꺼내들어 각각의 석판에 일일히 색상이 상징하는 아케인족의 언어를 새겨넣었다. 단순 반복작업이였지만 보상으로 어떤 기연이 주어질까에 대한 기대감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마침내 모든 인공 정신망 다발색이 문자와 매칭되었고 나는 더듬더듬 완성된 문장을 읽어내렸다.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황금날개짓을 펼치리라."

히익! 내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관경은 석판에 새겨진 오그라드는 멘트가 어울릴정도로 장대한 것이였다. 석판에 박힌 마력 크리스탈이 사령안에 마력공급을 중단했음에도 오색찬란한 빛을 발함과 동시에 석판이 땅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16개의 석판이 차례대로 가라앚고 난 뒤 그 자리에 거대한 동체가 떠오른다.

황금장수풍뎅이라는 이명이 어울릴만큼 매끈한 황금날개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순양함이 시야를 가득매운다.

은린선과 같은 전함급은 아니고 구룡대가 타고온 구룡선과 같은 순양함급이였지만 동일선상에 놓는게 미안할정도로 디자인이 예술적이였다. 구룡선이 보급형 순양함에 페인팅만 용 아홉마리로 겉칠을 했다면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는 부품 하나하나가 손수 커스터마이징된 그야말로 장인의 걸작이였다.

남자의 피가 끌어오른다! 나는 기야스에게 달려들어 황금빛 동체에 얼굴을 비비적 거렸다. 어렸을때 여자라면 마법소녀물에, 남자라면  열혈로봇물에 매료된적이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성향과는 별개로 남자라면 이 아트 레벨의 순양함에 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빨리 이 녀석을 타고 달나라로 드라이브를 가고 싶은 심정이다.

-영혼 동기화 터미널 용린검 TM2 인식되었습니다.

-기야스 메인 제어 시스템이 용린검 TM2와 동기화 중입니다.(1/100)

-기야스 메인 제어 시스템이 용린검 TM2와 동기화 중입니다.(33/100)

-기야스 메인 제어 시스템이 용린검 TM2와 동기화 중입니다.(53/100)

-기야스 메인 제어 시스템이 용린검 TM2와 동기화 중입니다.(74/100)

-기야스 메인 제어 시스템이 용린검 TM2와 동기화 중입니다.(100/100)

-기야스 메인 제어 시스템이 용린검 TM2와 동기화 완료.

"아이고 기야스야, 앞으로 내가 너 세차도 자주하고 흠집안나게 서행운전할게."

-안녕하십니까? 탈 순양함급 우주선 기야스, 함장님께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우주의 그 어떤 오지를 탐사한다해도 쾌적한 비행이 될 수 있도록 함장님을 보좌하겠습니다. 현재 위치는 수왕성 해저 7700km에 건설된 미확인 건물입니다. 항해일지에 본 건물의 관리자가 남겨둔 도킹채널이 아직 유효해 보입니다. 기야스에 탑승하시고 본 건물을 빠져나가시겠습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야. 네가 말했던 건물의 관리자한테 아직 볼일이 남았거든. 일단 아이언 메이든의 이공간 안에 들어가 있어. 아참 아이언 메이든안의 공간이 좀 척박하거든? 영하 백도를 오르락 내리락하고 산소도 없는데 괜찮겠니?"

-그 정도의 조건은 오히려 기야스의 동체에 쾌적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환경입니다. 다만 선장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아이언 메이든이라는 이공간의 지리를 탐색해 지도를 만드는 소일거리를 하고 싶습니다. 이는 탈 순양함 기야스가 특정 목표가 없는 대기상태에서 주위 지리를 탐색해 지도를 만들어 저장하는 행동 우선순위가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며 함장 명령밖의 일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인공지능 오류가 아닙니다.

"뭐 좋을대로해. 나도 가끔 아이언 메이든 안의 공간은 어떻게 되있을지 궁금했거든."

-지(智) 테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지(智) 테스트 레벨이 99Lv에서 더 이상 상승할 수 없습니다.

-전층의 지(智) 테스트 입구가 폐쇄되었습니다.

-30층으로 향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탈것에 해당하는 기연인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를 획득하셨습니다.

나는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를 아이언 메이든 안으로 역소환 시키고 테스트 룸 밖으로 향했다. 이제 수호령 오피스레이드를 만나기 전까지 단 한발자국만 남았다. 하지만 익숙한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른 내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99Lv의 체(體) 테스트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智) 테스트가 골치가 아프긴해도 심장을 옥죄어오는 긴장감은 없었다.

하지만 거대악어 2마리와의 사투 이후로 나는 체(體) 테스트를 진행할때마다 우월한 재생력이 있음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상황을 여러번 겪었다. 특히나 언데드 크리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근접격투를 연습한답시고 몸으로 때우다보니 그런 상황이 자주 연출됬던 것이다. 엘리베이터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가장먼저 원목탁자를 확인했다. 30층의 원목탁자에 올려진 음료수는 미숫가루를 탄 물이였다.

쿠키와 함께 먹자 고소함이 2배가 되는 기분이다. 이제와서 뜸을 들이는것도 내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였으므로 나는 바로 체(體)가 새겨진 문으로 향했다. 지(智)가 새겨진 문은 철창으로 차단되어 문고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이번 무대는 과연 어디일까? 긴장감 반, 기대감 반으로 문을 여니 광대한 동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더 자세히 살펴보니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이 안가는 지하수가 동굴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다.

"도대체 이번에는 어떤 괴물을 선보일려고 이런 무대를 준비한거야. 야호!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혹시 아크리퍼 옥사건이 무서워서 숨어있는거라면 지금 나와주실래요? 두대 맞을거 한대로 끝내드립니다."

대놓고 도발도 해봤지만 돌아오는건 메아리 뿐이였다. 노래방 에코수준의 메아리가 이곳이 동굴임을 재확인 시켜줬지만 어떤 괴물이 살고 있을지는 짐작도 가지않는다. 조심스럽게 발걸음 옮겨 동굴 중앙의 호수에 접근한 나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시퍼런 물길에서 공포를 느꼈다. 왠지 모르게 물속에 뭔가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잠깐만, 정말로 뭔가 시커먼게 지나간듯한 기분이 드는대.

나는 아이언 메이든에서 자이언트 윔 좀비를 한 마리 꺼내들었다.

적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이 정도 비용이라면 싸게 먹히는거지. 휙하고 호수 한가운데 자이언트 윔을 던졌지만 물보라가 일뿐 좀처럼 반응이 없다. 나는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보기 위해 이번에는 물에 빠진 자이언트 윔의 언데드 서킷과 내 손가락의 신경망을 동기화시켜 자이언트 윔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때 동굴 전체가 부르르 떨리며 천장의 종유석이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동굴 중앙의 호수에 심연과 같은 아가리가 튀어나와 자이언트 윔을 집어삼켰다. 당연히 내 손가락과 자이언트 윔간의 동기화는 끊겼고 나는 내 손가락이 끊기는듯한 착각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문득 메키가 말했던 고래를 잡아먹는 물고기 와일슬레이어(Whaleslayer)가 떠올랐다. 저 정도 입크기라면 고래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도 허황된 소리가 아니리라.

"갑자기 나타나서 쫄았잖아! 아우 쪽팔려. 너 생선대가리 물밑에서 얌전히 기다려라. 금방 내려가서 회를 쳐줄테니까. 한 1만인분 정도 나오겠구만."나는 호기롭게 외치며 인벤토리에서 메키에게 받았던 인어의 비늘을 꺼내 물었다. 비록 유통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중고 인어의 비늘이였지만 효력이 다하기 전에 상대를 끝장내겠다는 각오의 표현이였다. 사실 덩치도 덩치지만 내 몸을 온전하게 컨트롤할 수 없는 수중전투라는 점이 부담으로 다가오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섭다, 무섭다라고 생각하면 더 무서운법이다.

반대로 저녀석은 그저 생선대가리에 불가하다, 덩치만 큰 횟감이다라고 생각하면 용기가 날줄 알았는데 역시 시퍼런 물길을 보고 있노라니 두렵다. 흐흐흐 아크리퍼(Arcreaper) 옥사건 진짜 약해졌구나. 덩치가 크다해도 결국 필멸자에 불과한 물고기와 싸우는걸 주저하다니. 나는 헛움음을 연신 반복하며 아이언 메이든에서 자이언트 윔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번에 다시 와일슬레이어가 아가리를 벌리면 무조건 앞뒤가리지 않고 그 안으로 뛰어들것이다. 옥사건 너는 불멸자다. 설사 몸통이 반으로 쪼개져도 너는 죽지 않아, 실제로 은리 사저의 검기를 맞고 두쪽이 난적도 있잖아. 나는 자기암시를 반복하며 각오를 다진뒤 자이언트 윔을 다시 동굴 호수 한가운데로 내던졌다. 그리고 손가락의 신경망과 동기화 시켜 꼼지락거리자 어김없이 심연의 아가리가 덮쳐온다.

"하나둘. 아주 그냥 창자를 도륙내주마. 이 생선대가리야!"

이매망량의 힘을 빌려 도약한 나는 아슬아슬하게 심연의 아가리속으로 진입했다. 바닷물과 함께 삼켜져 와일슬레이어의 식도로 밀려내려가는 일은 절대 유쾌한 경험은 아니였다. 물론 사령안이 와일슬레이어의 빛 한점 없는 몸속을 낮처럼 밝혀주지 않았다면 워터슬라이드를 타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인돌 크기의 어금니와 정체모를 기생충이 서식하는 구강환경을 보다보면 자신이 지옥을 제발로 걸어들어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식도로 넘어가 위액과 함께 소화되는 일만큼은 원치 않았기 때문에 블랙탈론을 꺼내들어 와일슬레이어의 혓바닥에 찔러넣었다. 혓바닥에 고양이에게 긁힌듯한 상처가 많아지자 와일슬레이어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동굴이 무너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물보라를 만들어내며 와일슬레이어가 발버둥친다.

그러나 살고 싶은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더더욱 블랙탈론을 깊게 박아넣었다. 혓바닥이 두갈래로 나뉘어지기 직전이 되서야 나는 밀려오는 바닷물에 맞서 몸을 지탱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걸로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일전에 보았던 구강 기생충들이 오랜만의 따끈따끈한 식사를 놓칠리가 없었다. 피부를 거니는 기묘한 감촉에 나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토해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