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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이빨좀 닦고 살아 이 생선대가리 자식아! 해수에 가글링만해도 이런 기생충이 생길일은 없을거 아니야!"
나는 이매망량으로 쥐어 으깨도 끊임없이 나에게 달라붙는 기생충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였다. 사실 와일슬레이어(Whaleslayer)의 몸 내부로 진입만 하게되면 게임셋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고래도 잡아먹는 물고기라도 몸 내부에서 난동을 부리는 불청객을 막아낼 도리따윈 없을테니까. 하지만 설마하니 타란튤라만한 덩치에 기이한 생김새를 지닌 기생충들이 살아있는 물고기의 구강속에서 살림을 차렸을줄이야...
제발 좀 떨어져라 이 거머리같은 놈들아!
블랙탈론이 달린 두 손을 와일슬레이어의 혓바닥에 박아넣어 내 몸을 지탱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오직 이매망량을 이용해 기생충들을 압사시켜야만 했다. 그걸로 끝이면 다행이겠지만 터져버린 기생충의 몸에서 유충이 흘러나와 내 비위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해충퇴치회사도 아니고 와일슬레이어만 좋은 일을 계속하는 꼴이였으므로 나는 혓바닥에 박힌 블랙탈론을 뽑아냈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기생충들아 나랑 같이 위액 샤워하러가자! 나는 아무리 압사시켜도 계속해서 달라붙는 정체불명의 기생충들과 밀려오는 해수때문에 와일슬레이어의 구강속에서 응전하는걸 포기했다. 깔끔하게 블랙탈론을 뽑아내고 성게마냥 내 몸에 달라붙은 기생충들과 함께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이매망량으로 온몸을 감쌌기 때문에 빈틈따윈 없었지만 기생충들은 계속해서 집요하게 허공을 깨물었다.
"지구로 돌아가면 기생충약부터 먹어야지, 이 지긋지긋한 것들."
와일슬레이어의 덩치가 덩치인 만큼 식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데도 10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와 함께 와일슬레이어의 위로 추정되는 공간에 도착했다. 기생충들은 위액에 닿기도전에 비실비실거리더니 나가떨어졌다. 그제서야 주위상황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나는 이매망량을 딛고 공중에 부양했다.
아무리 우월한 재생력이 있다고 해도 위액에 피부가 녹아내리는 경험은 전혀 달갑지않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미끼로 던졌던 자이언트 윔 좀비가 위액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처음에 던졌던 자이언트 윔은 이미 형체도 없이 사라진 모양인지 보이지않았다. 혹시나 싶어 소화중인 자이언트 윔의 언데드 서킷과 동기화를 시도해봤지만 반응이 없다. 뭐 언데드 서킷이 멀쩡하길 바라는게 욕심일려나. 어찌 됐든 와일슬레이어의 내장에 잠입하는대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어떻게 난동을 부려야 잘부렸다고 소문이 날까를 고민해야할 차례군. 나는 변이 에너지를 밀어넣어 블랙탈론을 10m가량 확장시켰다. 머리카락처럼 얇아진 언옥타늄(Unobtanum)이였지만 강도는 바위가 쪼갤정도였다. 즉 연약한 내장따위는 두부처럼 쪼개버릴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신명나게 칼춤을 추기시작했다. 박자도 절도도 없는 움직임이였지만 팔을 한번 휘두를때마다 위가 종잇장처럼 찟겨나간다.
"괜히 덩치만 보고 쫄았네. 이렇게 손쉬운 상대인줄도 모르고."
자신의 내장이 찟겨나가는데 와일슬레이어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밖의 동굴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일 것이다. 위액이 요동치며 공중에 부양해 있는 나를 덮친다. 하지만 이매망량으로 전신을 감싸 위액이 닿지만 않게 만들면 피격 데미지는 제로다. 오히려 요동치는 위액이 찢겨진 위주머니 밖으로 새어나가자 오히려 만신창이가 되는건 와일슬레이어쪽이였다.
그러나 역시 덩치가 덩치인만큼 위주머니가 누더기가 됬음에도 와일슬레이어는 여전히 난폭한 유영을 이어간다.
나는 반격의 실마리조차 잡지못하는 생선대가리를 상대로 전투를 길게 끌고 싶지않았기 때문에 거인족 패밀리를 소환하기로 했다. 위주머니를 기점으로 와일슬레이어의 창자가 차례대로 박살나기 시작했다. 무차별로 휘둘러지는 거인의 주먹이 내장을 다지고 내 블랙탈론이 내장을 채썬다. 생명체의 신체내부는 빈말로도 쾌적하다고 말할 수 없는 환경이였으므로 나는 조속한 탈출을 위해 최후의 일격을 가할 장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심장이였다. 사람처럼 2심방, 2심실 구조가 아니라 심방과 심실이 합쳐진 구조를 지닌 물고기의 심장은 전공과목인 해양생물학실험에서 직접 견식한적이 있었다. 물론 와일슬레이어의 심장도 그러한 구조로 되있을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본래 생명력이 가장 충만한 기관인 심장에는 술식을 익힌적이 없는 사람도 초록색 정신망 다발을 지니고 있었다.
"즉 내 눈에는 이게 심장인지 아닌지 다 보인다 이거야! 이걸로 마지막이다!"
한참동안 내장속을 헤집다가 겨우 심장을 발견한 나는 호흡기관에 음에너지를 집약시키기 시작했다. 생명 에너지를 상징하는 초록색이 선명한 심장을 상극의 에너지인 음에너지로 꿰뚫는다면 와일슬레이어라고 해도 영면에 이르리라. 목이 뜨거워 미치기 일부직전 나는 도데카 인공마력기관으로 부터 썰물처럼 밀려들어온 에너지를 해방했고 달덩이만한 와일슬레이어의 심장은 재가되어 바스라졌다.
발버둥치던 와일슬레이거가 끝내 미동도없이 호수밑으로 가라앉고 있다는것이 내장 속에서도 느껴졌다.
삼투압을 조절하는 생체기능도 정지해 해수가 밀려오고 있었다. 메키가 주었던 인어의 비늘은 그 효력이 간당간당한 상태였다. 어차피 무기호흡 상태로 전환하면 그만이였지만 옷이 젖는게 싫었던 나는 거인족들을 역소환하고 재빨리 와일슬레이어의 몸속에서 벗어나려했다. 헌데 그때 재가 되어버린 와일슬레이어의 심장잔해에서 무엇인가 반짝였다.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을 플레이 할때의 아이템 루팅 본능이 되살아난 나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반짝이는 무언가를 회수했다. 초록빛을 내는 더럽게 못생긴 돌이 기이한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영물의 내단이라고 하기엔 미심쩍은 녀석이다. 애시당초 와일슬레이어는 영물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의 녀석도 아니다. VOT 단말기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물건은 맞지만 물음표 투성이의 정보창이 투영된다.
[No.?? 던클레오의 생명석]
-생명력을 극한으로 증폭시키는 돌로 종의 특이성을 무시하고 괴랄한 성장을 보이는 개체에게서 발견된다고 한다. 허나 발견사례는 지금껏 5손가락을 채우지도 못하고 있다.
-????????????????????????
넘버링을 부여받지 못했다는것은 보통 너무나 희귀하여 객관적 가치판정이 불가하다는 뜻이다. 최소한 VOTO를 플레이 하던 당시 유저들이 통념적으로 알고있던 비넘버링의 정의는 그러했다. 내 블랙탈론의 재질인 언옥타늄도 비넘버링 금속이였다는 점을 생각할때 이 던클레오의 생명석 또한 가볍게 생각할 물건은 아닐것이다.
그러고보니 와일슬레이어의 본명이 던클레오였구나. 진짜 이름을 두고 엄한 이명으로 부른셈이다. 물론 진짜 고래를 잡아먹고 산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이였지만.
해수가 내가 있던 공간을 가득 메운 가운데 나는 몸을 감싸는 불투명한 막이 얇아지는걸 느끼고 재빨리 밖으로 헤엄쳐나갔다. 블랙탈론으로 던클레오의 살점을 뚫고 나온 위치는 동굴 호수의 밑바닥이였다. 나는 밑바닥에 깔린 수두룩한 고래뼈에 턱이 빠질세라 멍하니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메키가 했던 말이 진짜였어!
나는 효력이 다한 인어의 비늘을 벹어내고 인벤토리에서 새 인어의 비늘을 뜯어 입안에 물었다. 고래뼈정도면 강령술식 재료로서 사용할 수 도 있고 그 자체로도 가치가 높은 부산물이였다. 던클레오의 소화기관을 거치고 해수의 부식을 견뎌낸 고래뼈는 뼈부위중에서도 가장 단단하다는 견갑골로 추정됬다. 가릴것없이 아이언 메이든에 쑤셔넣은 나는 오랜만에 아이템 루팅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던전을 탐사할때는 이런 소소한 즐거움도 있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동굴 호수 밑바닥을 깨끗하게 싹슬이한 나는 해수면을 향해 개헤엄을 치다가 호수 밑바닥에 널부러진 던클레오의 시체에 시선을 빼았겼다. 생각해보니 강령술사로서 저런 고급 언데드 재료를 버려두고 가는것도 멍청한 짓이다. 던클레오의 시체까지 아이언 메이든에 담고나서야 뭍으로 올라온 나는 대기실로 향하는 문을 열자마자 대기실에 널부러졌다.
-체(體) 테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체(體) 테스트 레벨이 99Lv에서 더 이상 상승할 수 없습니다.
-전층의 체(體) 테스트 입구가 폐쇄되었습니다.
-31층으로 향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영약에 해당하는 기연인 던클레오의 생명석을 획득하셨습니다.
결국 해냈구나... 전생유적에 입장할때만 해도 스스로가 실패할거라고 단 한순조차 생각해본적 없다. 하지만 테스트를 거듭할 수 록 팔구십번대의 테스트가 절대 만만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고 긴장감이 전신을 옥죄었다. 하지만 종국에는 아크리퍼(Arcreaper) 옥사건이라는 이름이 지니는 가치를 증명해냈다. 마음의 긴장이 풀리자 솔솔 수마가 몰려온다. 로그아웃한 뒤 자취방에 있는 침대에 몸을 누이는것조차 귀찮게 느껴진다.
아 딱딱한 바닥에서 자면 허리 아픈대 버틸 수 가 없ㄷ...
* * * *
다시 눈을 떴을때 나는 온몸의 활력이 충만함을 느꼈다. 이 기세라면 수호령 오피스레이디는 상처에 잘듣는 연고를 준비해야할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궁둥이가 시뻘게지도록 두들겨줄 생각이였으니까. 감히 나를 무시했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31층에 등장하면 과연 수호령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30번이나 반복했던 엘리베이터 탑승이지만 이번에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엘리베이터가 개방되고 내 시야에 들어온 관경은 익숙했던 대기실이 아니였다. 해저에서 전생유적의 입구역할을 했던 신전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었다면 이렇지 않을까하는 장소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주위지리를 익히는대 익숙한 건물뿐만 아니라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바로 천주랑을 위시한 구룡대였다. 뉴페이스의 등장에 기립했던 구룡대가 내 얼굴을 확인하고 긴장을 풀었다. 어허 긴장을 풀면 안될텐데? 너희 대주인 뇌신검(雷神劍) 천주랑의 최대 경쟁자인 아크리퍼 옥사건님의 등장이라구. 천주랑은 마치 내가 올줄 알았다는듯한 표정으로 나를 마중했다. 사실 내가 먼저 31층에 도착해서 천주랑에게 능글맞은 표정으로 '조금 늦으셨네요?'라고 입방정을 떨었어야 했는데 안타깝군.
"조금 늦으셨군요. 옥사건 준위라면 더 빨리 오실줄 알았는대 말이죠."
"예상치못한 시행착오가 조금 있어서 말이죠. 솔직히 말해서 한걸음만 삐끗했어도 31층에 도착하지 못했을겁니다. 어떻게 오시는길에 소정의 성과는 있으셨나요?"
"저와 구룡대의 것을 포함해 3개의 기연을 손에 넣었습니다. 기연 자체가 본래 목적은 아니였지만 거래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인 일이죠."
"거래의 수단이요?"
"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옥사건 준위, 3개의 기연을 받고 수호령의 마지막 시험에서 기권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추가적으로 VP를 지불할 용의도 있습니다."
"흐음 이거 죄송합니다. 저는 이미 기연을 4개!나 얻은 상태라 굳이 3개가 추가적으로 필요하진 않을것 같군요. 사실 기연이 7개나 되면 소화하기도 벅차지 않겠습니까? 과유불급인 법이지요."
천주랑의 표정이 내 거절의사에 일순 낙담했다가 얼마안가 평상심을 되찾았다. 사실 천주랑정도의 실력이면 이런 제안을 할 필요가 있겠냐만은 처음부터 수호령의 계약자가 되는것이 주목적이였던 모양이다. 이솔다 공주로부터 전생유적 입장권을 구입한것까지는 좋았지만 31층에 도달할 수 있는 DF 등급 술사인 나라는 존재의 변수가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였겠지.
하지만 던전 보상을 양보하는 일따윈 아크리퍼 옥사건이 10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불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