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72화 (7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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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이 늙은이와 체스한판 두어보겠나?"

지(智)가 새겨진 문안에서는 백발과 흰수염이 성성하다 못해 땅까지 내러온 난쟁이 노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여진 체스판은 분명 지구의 체스판과 동일해 보였다. 사실 지(智) 테스트가 형이상학적인 고대문자따위를 해석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이정도면 무난하다고 봐도 좋을것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내가 체스에 능한것은 아니였지만 여차하면 체스말들의 위치를 기억해두었다가 로그아웃을 한 뒤 인터넷에서 훈수를 받으면 그만이다.

"체스라 좋죠. 그런데 혹시 시간제한 같은게 있습니까?"

"나이를 먹다보니 젊을때와 달리 성격이 느긋해져서 말이야. 시간제한같은게 있어도 깜박하고 넘기기 일수더군. 젊은이가 갈길이 바쁘지않다면 그냥 무제한으로 두지."

"저도 그게 좋습니다."

나는 난쟁이 노인과 맞으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처음 몇 수 정도는 내가 직접두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대 난쟁이 노인이 내 진영에 있는 나이트와 룩을 한개씩 체스판에서 쳐내버렸다. 장기판에서는 소위 차포때기라고 알려진 핸디캡이였다. 문제는 그 핸디캡을 난쟁이 노인쪽에서 멋대로 내게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저기 어르신, 제 나이트랑 룩을 들고 가실땐 들고가시더라도 이유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어허 노안이 와서 코앞에 있는 체스말도 구분하기 힘든 노인네랑 동등한 조건에서 게임을 하고 싶은겐가? 내가 한참 젊을때는 10수 앞도 내다보고 그랬는데 자네는 그게 안되는 모양이지?"

"아뇨, 그게 아니라 말씀하신대로 흥미진진한 게임을 위해서는 나이트랑 룩 말고도 폰도 하나 치우셔야 할것 같은데 왜 나이트랑 룩만 들고가시는지가 궁금했던거죠."

"그런가? 그러면 사양않고 자네 진영에서 폰도 하나 치우겠네."

난쟁이 노인이 나를 무시하는듯한 뉘앙스에 무심코 던진 좌충수덕분에 나는 나이트, 룩 그리고 폰이 하나씩 없는 상태에서 체스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간제한도 없겠다 인터넷의 힘을 빌리면 질리야 없겠지만 일말의 불안감이 남아있는건 사실이다. 난쟁이 노인이 알고보니 왕년의 그랜드체스마스터라는 설정이라면 지나가는 체스지식인의 훈수를 받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것이다.

난쟁이 노인이 백의 체스진영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먼저 흰색 기물을 움직였다.

나는 100%의 승리를 위해 섣불리 흑색 기물을 움직이지 않고 말들의 위치를 기억해두었다가 로그아웃했다. 시야가 아득해지고 익숙한 자취방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최근 학과수업도 도외시하고 수왕성에서 살다시피해서 그런지 자취방 노트북 전원을 키는것도 오랜만이다. 얼굴을 어루만지며 잘 생긴 얼굴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노트북 부팅이 완료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탈사이트인 그린을 뛰운 나는 'open source chess'를 검색했다. 오픈 소스라 함은 전 세계 사람들이 참여하여 코드를 수정 및 추가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이였다. 비록 내가 컴퓨터 공학과는 아니였지만 화랑대학교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 교육 보편화 정책차원에서 필수교양학점에 프로그래밍 관련 과목 이수를 확충하고 졸업요건으로 프로그래밍 관련 자격증을 요구하고 있었다.

"윗사람들이 학생들 고문할려고 시행하는 정책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매번 체스말의 위치를 기억해뒀다가 인터넷에 훈수를 효청하는것 보다는 체스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는게 낫다. 노트북을 야한 동영상 보는 미디어 플레이어쯤으로 알고있던 나였지만 학교에서 들들볶아 수강신청한 프로그래밍 관련 교양과목을 수강한 덕분에 남들이 짜놓은 코드를 컴파일하고 실행하는법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는 수백개의 검색 결과물에서 고르고 골라 미국 유명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이 기말 인공지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한 체스 인공지능 프로그램 베타버전을 선택했다.

비전공자인 내 눈에는 외계어처럼 보이는 코드를 컴파일러에 올리자 자동으로 실행파일을 만들어준다. 나는 하나씩 비어있는 내 진영의 나이트, 룩 그리고 폰 그리고 난쟁이 노인의 첫 수까지 디폴트 설정으로 입력한 뒤 결과물을 출력했다. 맨우측 폰을 일보전진인가? 나는 노트북을 앞에 두고 바로 옥사건 아바타로 로그인했다.

내 시야가 자취방에서 다시 백발이 성성한 난쟁이 노인과 체스판을 비춘다. 난쟁이 노인은 체스를 두기로한 사람이 첫 수를 두기도 전에 멍을 때리는 상황에 이렇다할 불만을 재기하지 않았다. 일전에 말했던대로 성격이 정말 느긋한 모양이다. 나는 체스 프로그램이 출력했던 결과대로 맨우측 폰을 일보전진 시켰다. 난쟁이 노인은 기다렸다는듯이 룩을 대각선으로 치고 들어왔다.

"체스란 실시간이 아닌 턴제 게임일세. 일수에 1초가 걸리든, 1일이 걸리든, 1년이 걸리든 두는 사람의 최선의 한수라는 점이 중요하지. 왜냐면 흑과 백의 최선의 한수가 격돌할때 체스 본연의 재미를 느낄 수 있거든. 나야 남는게 시간인 노인네니 시간이 아무리 걸리더라도 소신껏 후회가 남지않을 한 수를 두게나."

"예, 어르신의 배려 감사합니다."

난쟁이 노인은 설마하니 내가 아바타 시스템을 이용해 체스 인공지능의 훈수를 받고 있을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할것이다. 이런 공정치 못한 체스게임이 어디있겠냐만은 나는 덕(德) 테스트 1Lv도 통과하지 못할정도의 파렴치한이였다. 1%의 양심찔림과 99%의 꼼수희열을 느끼며 나는 다시금 로그아웃을 시도했다. 그렇게 나와 난쟁이노인의 대결이 아닌 체스 인공지능 베타버전과 난쟁이 노인의 대결이 시작됬다.

흰색 기물과 흑색 기물이 체스판 위를 종횡무진하는 가운데 전사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본래 체스나 장기가 그렇듯이 체스말들이 전부 살아있는 대국 초기보다는 살아있는 체스말이 죽은 체스말보다 적을때 흥미진진해 지는법이다. 뿐만아니라 체스판 위에 올라선 말들이 적어지자 경우의 수가 줄어들어 나 또한 판을 대충이나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흑백 양측에 살아있는 말들의 숫자는 같았지만 내 진영에 더 가치있는 말들이 많아 유리했다. 하지만 나는 내 개인적인 사견을 배제하고 오직 체스 인공지능에만 의존했다.

이제와서 섣불리 내가 말을 옮기면 게임의 흐름이 엉킬지도 모른다. 분명 내 진영의 나이트, 룩 그리고 폰을 치우고 시작했는데 이 정도이니 체스 인공지능의 성능 자체는 전적으로 신뢰해도 무방하다. 대국 초기에는 로그아웃을 하느라 멍을 때리는 내쪽이 한수를 두는데 시간을 더 많이 잡아먹었지만 이제는 그 반대였다. 게임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난쟁이 노인은 두눈을 감고 좀처럼 체스말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월이 야속하구만 좀처럼 수가 보이질않아. 바쁜 젊은이를 계속 붙잡아둘 수 도 없는 노릇이니 명상은 여기까지 하겠네."

난쟁이 노인이 그렇게 말하고 백색기물을 옮긴다. 그 덕분에 아까부터 내가 눈여겨보았던 체크메이트 수가 열렸지만 나는 정말 신중을 기하기 위해 로그아웃했다. 방금 난쟁이 노인이 두었던 수를 입력하자 체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비프음을 내며 체크메이트의 한 수를 출력한다.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 수였지만 결국 체스 초보자인 나조차 킹을 노릴 수 있을정도로 길을 닦아둔것은 바로 체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였다.

"체크메이트입니다."

"그렇군, 이 늙은이이 깔끔한 패배일세. 이렇게 빈틈없이 노련하게 체스를 두는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군. 졌지만 아주 좋은 경험을 했네. 게임에 이겼으니 역시 보상이 있어야겠지? 여기 원래 자네것이였던 세가지 체스말중에서 한가지를 골라보게."

3층에서 철갑교룡피를 얻고난뒤 바로 다음 테스트에서 또 기연을 얻다니 지구에 돌아가면 속는셈치고 복권이라도 구입해야할 판이다. 난쟁이 노인의 손에는 처음 내 진영에서 핸디캡으로 들고간 검은 체스말인 나이트, 룩 그리고 폰이 놓여있었다. 각각의 체스말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짐작도 가지않는다. 하지만 본래 난쟁이 노인의 손에 들려있어야 했던 말들은 오직 나이트와 룩뿐이였다는 사실이 내 전두엽을 콕콕찌른다.

난쟁이 노인의 손에 들려있는 폰은 내가 홧김에 주장한 핸디캡이다. 정상적인 흐름이였다면 선택지에 들어있지도 않았을 이레귤러의 존재가 내 마음을 이끌었다.

"폰으로 하죠."

"호오 폰이라. 폰은 모든 체스말들 중에서 가장 가치가 낮지만 상대진영의 끝까지 도달할 수 만 있다면 킹을 제외한 다른 체스말로 승격을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승격까지의 길은 절대 쉽지 않네. 본래라면 소모품으로서 쓰고 버려질 말들이 적진을 가로질러 왕의 권좌를 노리는건 내 평생 수천번 반복되었던 체스게임에서조차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네.

하지만 이 폰이 자네의 손에 들어간 시점에서 이미 룰은 비틀렸고 그 작은 변수가 어떤 파도를 몰고올지 궁금해지는군."

-지(智) 테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지(智) 테스트 레벨이 82Lv로 상승하였습니다.

-4층의 지(智) 테스트가 초기화되었습니다.

-5층으로 향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무기에 해당하는 기연인 폰 글라디우스를 획득하셨습니다.

난쟁이 노인이 품안에서 노끈을 꺼내더니 폰 체스말과 엮어서 목걸이를 만들어 내게 건냈다. 의외로 디자인이 괜찮아 보이는 목걸이를 군복안에 갈무리한 나는 난쟁이 노인에게 가볍게 목례를하고 테스트 룸을 빠져나왔다. 당장이라도 폰 체스말의 효과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거대악어 두마리와의 사투 그리고 수왕성과 지구를 오가며 둔 체스덕분에 그로기 상태에 몰린 심신이 휴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애시당초 하루만에 주파하라고 설계된 던전도 아니였고 자취방으로 돌아가 늘어지게 한숨 잤다가 다시 로그인해서 진행하면 능률이 더 오르지 않겠는가?

*    *    *    *

자취방에서 아침해를 보고 다시 전생유적 탐험에 나선 나는 파죽지세로 층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용린정권과 용린연환각을 수련하기 위해 언데드 수하를 소환하지 않고 수천마리의 리자드맨과 개싸움을 펼치거나 216 타일 큐빅을 풀기위해 노트북에 재귀알고리즘 프로그램을 돌렸는데 정확히 14시간 53분 40초가 걸리는둥 파란만장한 던전 탐험기를 써내려가다보니 어느새 29층에 도착해 있었다.

31층이 코앞이였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아보였다. 지(智) 테스트를 보던 도중에 도저히 지구의 지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분야인 고대상형문자 해석때문에 테스트를 2번 정도 포기해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테스트 레벨이 99Lv보다 살작 밑인 아슬아슬한 수준에 도달했던것이다.

현재 지(智) 테스트과 체(體) 테스트 모두 이전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99Lv에 도달한 상태고 실패없이 99Lv의 지(智) 테스트와 체(體) 테스트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오피스레이디의 궁둥짝을 후려갈기는 일은 수포로 돌아간다. 나는 29층의 원목 탁자에 올려져있는 오미자 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렸다. 비록 철갑교룡피와 폰 글라디우스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기연은 얻지 못했지만 전생유적의 테스트는 정말 값진 경험이였다.

설사 내가 99Lv의 지(智) 테스트와 체(體) 테스트를 실패한다고 해도 그건 그것 나름대로의 수확이 있을것이다. 역시나 인생은 실전이다. 이 몸둥아리로 직접 괴물과 수수께끼와 부비부비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체감할 수 가 없다. 즉 99Lv의 테스트 룸에 무엇이 있든간에 직접 이 두 눈과 귀로 확인하리라.

"어이 수호령 양반 듣고있냐? 뭐 딱히 듣지않아도 상관없지만. 당장 4층으로 가는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던 네 예상과는 달리 나는 벌서 29층이라고. 딱히 네 계약자가 되는것엔 관심없지만 이번 기회에 아크리퍼 옥사건의 이름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게 만들어주지. 네 기준에선 인성은 형편없을지 몰라도 이 정도 힘과 지혜면 절로 주군으로 삼고 싶어지는 남자 아니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미자차 잘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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