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0화 〉 430화. 망나니 인큐버스 (8)
* * *
나는 임솔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남은 손은 가슴에 올렸다.
부드러운 살결이 내 손에 감기듯이 달라붙어왔다.
"읏, 아…."
임솔은 조금씩 몸을 떨며 거친 숨을 삼켰다.
사실 결계가 유지되는 동안 아무도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가슴을 만지는 게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만져보려고 해도, 주저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주저하지 말자.'
여기서 더 시간을 끄는 게 멍청한 짓이겠지.
나는 원을 그리듯 손가락을 돌리면서 가슴을 주물렀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손을 통해 내게 전해졌다.
"아, 앙… 하, 하아…. 후우…."
"교수님, 괜찮으세요?"
어느 정도 가슴을 주무르다 보니 임솔의 숨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흥분도가 올라오면서 매혹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임솔은 힘들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이게… 치료하는 거야?"
"… 네. 인큐버스의 마력을 빼내려면 다른 이성이 흥분시키는 수밖에 없대요."
"어쩔 수 없네…."
임솔은 걱정 말라는 듯 배시시 웃었다.
마치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임솔의 가슴을 양손으로 모으며 유두 뿌리 부분을 주물렀다.
다행히 상태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몸에 정기가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솔이 교수님. 어때요?"
"아직 머리가 아파."
"… 아무래도 조금 더 해야 할 거 같아요."
나는 더욱 열심히 가슴을 애무했다.
하지만 곧 벽이 찾아왔다.
임솔은 지금 아픈 상태.
컨디션이 나쁜 임솔을 분위기도 안 잡힌 지금 흥분시키는 건 평소보다 어려웠다.
물론 아래를 건드린다면 자신이 있었지만… 가슴만으로는 한계였다.
"교수님."
"역시 가슴으로는 부족하겠지?"
"… 네."
"마음대로 해. … 너무 강하게 하지는 말고."
임솔은 눈을 살짝 감은 채 말했다.
나는 임솔의 허락에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도 흥분하는 걸 보면 남자라는 생물은 어쩔 수 없는 동물이 아닐까.
꿀꺽.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천천히 손을 내렸다.
처음인 여자를 건드리는 건 언제나 긴장이 된다.
임솔의 가슴에서 배를 지나 배꼽 밑까지 오자, 임솔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임솔도 많이 긴장했겠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임솔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임솔의 눈을 보자마자 흥분했던 내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무언가 포기한 듯 생기를 잃은 눈빛.
허탈한 듯 동공이 풀려 초점이 흐릿해진 임솔은 허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는 차가워진 머리로 생각했다.
그녀가 포기한 건 뭐지?
자존심?
체면?
긍지?
어쩌면 그 모두일지도 모른다.
평소에도 항상 나를 제자라고 부르며 놀리는 사람이니까.
의외로 자신이 어른이라는 걸 대접받길 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솔이라고 부르면 화를 내는 거겠지.
사실 나도 내심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끝까지 가야 한다.
아니, 운 좋게 클리토리스 애무에서 끝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곳을 건드리는 순간 임솔이 지키던 순결함도 퇴색된다.
나중에 대련으로 임솔을 이기더라도, 그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빛바랜다.
나는 미국에서 임솔과 같이 잤던 밤을 떠올렸다.
그날 밤, 내가 잘 구슬렸다면 임솔과 첫날밤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결국 거절했다.
임솔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그녀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결국 나와 그녀를 위한 방법이었다.
"… 하아. 잠시만요."
나는 임솔의 몸에서 손을 뗐다.
저런 표정을 봤는데 애무를 이어가는 건 예비 남자 친구로서 할 행동이 아니다.
혹시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한 건 아닐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나는 뒤를 돌아봤다.
마력 밧줄에 묶인 채 몸을 꿈틀거리는 알베도의 모습이 보였다.
임솔을 보여주기 싫어서 뒤로 돌려놨는데 그 사이에 탈출 시도를 하는 모양이다.
내가 알베도를 향해 걸어가자, 놈은 다시 죽은 듯 엎드렸다.
나는 알베도를 툭툭 치며 얘기헀다.
"야. 매혹을 푸는 다른 방법 없냐?"
"이걸 풀어준다면… 그만. 말할 테니 발로 차지 마라."
"뭔데?"
"지구에서 가능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다른 인큐버스의 매혹을 받으면 된다."
"… 서큐버스는 안돼?"
알베도의 말을 듣자마자 릴리아나가 생각났다.
인큐버스는 모르지만 서큐버스는 아는 사람이 있거든.
"서큐버스도 괜찮다. 매혹을 걸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
"그럼 릴리아나를 불러야겠네."
임솔을 데려가든 릴리아나를 데려오든 둘 중 하나를 해야 할 거 같다.
물론 릴리아나를 본 임솔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게 또 문제지만, 임솔의 소중이를 건드는 것보단 낫겠지.
의외로 해결법이 간단했구나.
… 잠시만.
릴리아나에게 연락하기 직전, 불안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야. 혹시 서큐버스한테 걸린 매혹을 풀려면 또 다른 서큐버스가 필요한 그런 시스템은 아니지?"
"당연한 소리를. 매혹은 본래 그 매력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시발. 그딴 게 어딨어."
나는 알베도를 발로 차려다가, 쓸데없이 힘을 빼기 싫어서 다시 임솔의 앞에 섰다.
릴리아나를 부르는 건 소용이 없다.
임솔이 릴리아나에게 호감을 가지는 쓸데없는 상황을 만들 순 없었다.
'… 진짜 방법이 없는 건가.'
생각하자.
다른 방법이 분명 있을 거다.
지금까지 위기를 헤쳐 나온 것처럼, 지금도 묘수가 있을 거다.
나는 고도의 집중 상태에 들어갔다.
동시에 여러 가지 방안이 머리에 떠올랐다.
"… 룬의 결계로 복구해볼까?"
스칼렛이 다쳤을 때처럼 룬의 결계로 시간을 멈추는 방식.
잠시 실현 가능성을 생각해봤지만, 이건 힘들다.
그때 스칼렛은 생명의 불길이 꺼지기 직전이었다.
즉 마력량이 굉장히 적었고, 그렇기에 시간의 흐름을 늦출 수 있었다.
지금의 임솔은 고통을 느끼고 있을 뿐.
마력량은 여전했다.
'아니면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야 하나?'
위기상황을 고유 스킬을 만들면서 극복한 적도 많았다.
내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엄청나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힘들어 보였다.
임솔이 고통받는 원인은 정기.
내가 건드릴 수 없는 정기라는 에너지를 새로운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 일단 해봐야지."
가능할까 아닐까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튼 가장 가능성이 큰 건 새로운 마법.
나는 천천히 마력을 일으켰다.
몸에 있던 마력 회로가 반응하며 내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그리고 그때.
내 마나 회로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낯선 기운을 느꼈다.
알베도를 묶는 마력 밧줄을 꺼낼 때는 느껴지지 않았는데, 집중해서 마력을 의식하다 보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뭐지?"
나는 몸에 흐르는 낯선 기운을 꺼내서 손 위에 올렸다.
검정색이라고 말하기엔 훨씬 어두운,칠흑 같은 마력이 내 손 위에 튀어나왔다.
"… 정기? 아니, 정기와 지옥의 마력인가?"
나는 손 위에 떠오른 마력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마인의 마력을 다룬 적은 있었지만, 지옥의 마력을 다룬 적은 거의 없었다.
결국 인간의 마력에서 출발하는 마인의 마력과 다르게 지옥의 마력은 근본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나 감응을 가진 나도 지옥의 마력은 컨트롤할 수 없었다.
극소량이라면 억지로 움직일 수 있지만, 원하는 만큼 다루려면 릴리아나의 도움을 받으며 가공해야 했다.
물론 비슷하게 모방은 가능하다.
레베카와 만드는 가짜 던전에서도 지옥의 마력을 모방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진짜 지옥의 마력이었다.
"이, 인간이 아니었나? 젠장.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죽이고 싶었다! 너도 인큐버스였구나!"
"넌 좀 닥치고 있어."
나는 내 마력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알베도를 무시한 채 지옥의 마력을 몸 내부에 회전시켰다.
지옥의 마력은 내 마력과 섞이며 마나 회로를 돌았다.
그 중에는 정기도 일부 섞여있었다.
아마 알베도의 정기와 마력이겠지.
전력을 다한 알베도의 공격은 내가 모두 막아냈다.
그 과정에서, 매혹하는 데에 쓰여야 할 정기가 매혹 내성이 있는 나에게 그대로 흡수된 것이다.
"… 오히려 좋아."
의외로 쉬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베도가 정기를 컨트롤하던 방식을 기억하며 임솔의 몸에 손을 올렸다.
"호연아…."
"가만히 있어요."
아직 고통이 지속되는 듯 눈을 찡그리는 임솔을 진정시키며 정기를 컨트롤했다.
임솔의 몸에서 깔끔하게 알베도의 정기를 빼내면 좋았겠지만, 내 생각대로 풀리지가 않았다.
매혹은 매혹으로만 풀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인 듯, 몸 깊숙한 곳에 정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매혹은 매혹으로……."
나는 손 위에 떠오른 정기와 지옥의 마력을 바라봤다.
알베도의 정기와 마력이지만, 내가 다루는 이상 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 번 시도해봐?"
내가 인큐버스는 아니지만, 알베도가 매혹을 하는 걸 두 번이나 직접 봤다.
그렇다면 따라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라면 해낼 수 있을 거다.
아니, 우리 교수님을 위해서라면 해내야지.
나는 알베도가 하던 것처럼 정기와 마력을 움직였다.
지옥의 마력은 어떻게든 보충할 수 있겠지만, 정기는 이게 마지막.
내 종족이 인큐버스가 아니다 보니 알베도에게서 흡수한 정기만으로 임솔을 매혹해야 한다.
"… 솔이 교수님."
"호연아, 뭐 하는 거야…?"
"제 눈을 보세요. 저항하시면 안돼요."
임솔은 내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봐도 미친놈 같긴 해.
임솔이 검은 마력을 내뿜으며 내 눈을 바라보라고 속삭인다면 나라도 의심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몸에 남아있는 정기를 다 때려 넣었다.
어차피 임솔은 내 매력에 충분히 적응했을 테니, 알베도의 매혹을 뚫어내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겠지.
혹시 나한테 반한다고 해도 이상한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임솔이 내 매혹을 받아들인다면 문제는 없을거다.
지끈
생소한 정기라는 에너지를 조종하다 보니 두통이 느껴졌다.
마력과 비슷한 원리로 움직이긴 했지만, 사실 개념 자체가 달랐다.
모든 종족중에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만이 쓸 수 있는 능력이니까.
화악
하지만 결국 해냈다.
내 몸에 흡수된 정기의 대부분을 임솔에게 쏟아부었다.
기억 보완 능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알베도가 정기를 움직이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거였으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흐읍…. 아, 아으…."
임솔은 정기에 노출된 채 눈을 찌푸렸다.
매혹의 대상은 알베도가 아닌 나.
남은 정기로 내 매력을 증폭하는 것도 잊지않았다.
몸 곳곳이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인간의 몸으로 정기를 쓰는 건 억지였다.
곧바로 몸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후우. 후우…."
"케흡. 콜록콜록. 크흡…."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임솔은 금방 몸을 뒤척이며 반응했고, 나는 곧바로 임솔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요. 괜찮아."
토닥토닥.
나는 기침하는 임솔의 등을 쓰다듬으며 잠시 정신을 차리도록 기다렸다.
잠시 후.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 임솔은 나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무슨 상황이야? 괜찮아졌어."
"하아…."
임솔의 표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했다.
거칠었던 숨은 가라앉았고, 고통스러운 신음도 없었다.
눈을 끔벅거리며 상황파악을 하는 걸 보면 완전 해결이라고 봐도 되겠지.
다행이다.
내가 생각한 대로 풀렸다.
긴장이 풀린 나는 안심하며 임솔를 끌어안고 볼에 얼굴을 비볐다.
"무, 뭐하는… 아파."
임솔은 당황하며 나를 밀어냈다.
내 볼에 닿는 볼이 이상할 정도로 뜨거웠지만, 아마 임솔도 기뻐서 그런 거겠지.
"교수님은 잠깐 쉬고 계세요."
나는 볼에 손을 얹고 얼굴을 붉히는 임솔을 잠시 내버려두고 고개를 돌려 알베도를 바라봤다.
이제 도망치는 것도 포기한 그는 무기력하게 밧줄에 묶인 채 엎드려있었다.
알베도를 어떻게 할까도 문제다.
당연히 아이리스 길드에 넘길거지만, 그 전에 릴리아나에게 데려가야한다.
문제는 다른 히로인들에게 이 놈의 얼굴을 보여주기 싫다는 것.
인큐버스를 봤다가 나쁜 바이러스라도 생기면 어떡해.
"… 일단 얼굴을 가린 채로 데려갈까."
혹시 모르니까 몸도 가리자.
나는 알베도의 몸을 꽁꽁 묶어 미이라처럼 만들었다.
"읍. 읍읍! 읍!"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이번엔 무슨 반응이 나올 지 궁금하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