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9화 〉 429화. 망나니 인큐버스 (7)
* * *
쾅 콰과과광
아카데미 내부에 들리는 폭음.
땅이 갈라지고 냉기가 지역을 감싼다.
"젠장… 왜 이런 꼴이."
인큐버스는 갈라지는 땅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눈앞에 있는 이호연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본체의 무력도 강한데, 그 옆에서 둥둥 떠다니는 마력구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치 여러 명의 마법사를 동시에 상대하는 느낌.
아무 능력도 없는 자신이 싸우기에는 너무 벅찬 상대였다.
인큐버스는 반격할 생각도 못한 채 계속 회피에 전념했다.
'너무 성급했나?'
이호연과 임솔의 키스를 보고 급하게 튀어나오긴 했지만, 어쩌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막았어야해.'
인큐버스는 이호연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남자가 키스를 했는데 그냥 넘어갈리가 없다.
연구실로 데려가서 다른 짓도 할 생각이었겠지.
파지지직 끼이이이익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뢰.
인큐버스는 다시 한번 바닥에 몸을 구르며 마법을 피했다.
다행히 종족 특성상 도주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이호연의 뒤에 있는 임솔을 바라봤다.
그녀는 괴로운 듯 몸을 숙인 채 끅끅거리고 있었다.
'매혹이 통하지가 않다니….'
원인은 여러가지.
결계가 너무 두껍거나, 저 여자가 마음에 담아놓은 남성이 너무 강하거나.
둘 중 하나만 있었다면 통했겠지만, 생각보다 저항이 거셌다.
그나마 임솔이 순결하기에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을 거다.
'남은 정기는… 아슬아슬해.'
이대로는 당할 수밖에 없다.
전력 차이는 어마어마하고, 마법을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조금씩 상처와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자신이 지는 건 시간문제.
여기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인큐버스는 이호연의 마법을 보며 판단을 내렸다.
지금 목숨을 걸어야 한다.
"방중비기, 채음보양술."
지이이잉
인큐버스의 심장부에 모든 정기가 모였고,동시에 그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채음보양술.
인큐버스와 서큐버스의 최종병기 같은 기술이다.
자신의 매력을 증폭시키고 매력에 반응하는 페로몬을 뿌려 신경을 교란한다.
결계나 실드 같은 물리적인 방어는 통하지않는 인큐버스의 비기.
유일한 약점은 익숙해지는 것.
잦은 접촉으로 매력에 익숙해지면 채음보양술도 견뎌낼 수 있다.
대대로 마왕들이 인큐버스나 서큐버스 중 하나를 첩으로 삼는 이유가 바로 이 기술 때문이었다.
대처법을 찾을 수 없기에 그들의 매력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완벽한 기술에도 단점이 있다.
모든 정기를 사용해야 하는 위험성과 몸에 걸리는 엄청난 과부하.
성공해도 반죽음 상태로 요양을 해야하고, 실패하면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반대로 당해버리는 위험한 기술이다.
'이대로 가면 아무것도 못해.'
인큐버스는 모았던 정기를 양분 삼아 채음보양술을 펼쳤다.
본래 이성에게 사용해야 하는 기술이지만, 지옥의 매혹을 당해본 적 없는 인간이라면 남자에게도 통하겠지.
페로몬에 노출되는 순간 누구든 자신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목표는 임솔과 이호연.
인큐버스는 페로몬을 흘리며 이호연을 바라봤다.
*
"어스 퀘이크."
카드드득
땅이 갈라지며 그 빈자리를 아이스 필드가 가득 채운다.
마천궁 내부에서 내 마력 캐스팅 속도는 훨씬 증가한다.
나는 여러 개의 마법을 펼치며 인큐버스를 압박했다.
전황은 압도적.
인큐버스는 내게 반격할 생각도 못한 채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 바빴다.
임솔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듯 끙끙거렸지만, 다행히 아직 버틸만해 보였다.
"뭐 저렇게 날쌔냐."
인큐버스가 생각 외로 잘 도망치긴 했지만, 몸에 상처가 누적되고 있었다.
결국 승자는 내가 되겠지.
그때, 인큐버스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방중비기. 채음보양술."
"…?"
도망치는 것도 힘들 텐데 뭐 하는 거지?
나는 계속 마법을 사용하며 인큐버스를 압박했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상처만 생길 뿐, 인큐버스에게 큰 타격은 주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몸에 모이는 에너지는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근데 방중비기 채음 보양술이면 영어가 아니잖아.'
아쉽게도 저 새끼들은 영어도 쓰는데 한자도 쓰는 거냐고 불만을 제기할 시간은 없었다.
특유의 진하고 어두운 에너지가 인큐버스에게서 새어나왔다.
저게 정기라는 건가.
인큐버스는 정기를 서서히 갈무리했다.
처음 보는 공격 방식.
최대한 두꺼운 룬의 결계를 만들려던 그때.
"… 잠시만."
느낌이 왔다.
저건 막을 수 없다.
마나 감응이 있는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건 마력으로 막을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결계나 실드에 구애받지 않는 능력.
그러니까 비기라는 이름이 붙었겠지.
슬쩍 옆을 바라보자 임솔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임솔을 데리고 도망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아까 저놈의 속도를 보면 내가 금방 따라 잡겠지.
이상하게 몸놀림이 빠른 놈이니까.
고민하던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임솔을 옆에 있던 벤치에 눕히고 그 앞에 섰다.
사실 임솔은 원작의 히로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략에 실패해도 나는 죽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 거면 시작도 안 했다.
한 번 내 여자로 생각했으면 끝까지 책임은 져야지.
이미 여자들을 게임 캐릭터로 보는 날은 끝났다.
"호, 호연아… 끄읍, 안돼…."
"오? 몸이 좀 괜찮아졌어요?"
아마 인큐버스가 정기를 모으는 덕분에임솔의 매혹도 조금은 약해진 모양이다.
나는 반색하며 임솔의 얼굴을 확인했다.
"큽, 나는 괜찮… 도망…."
임솔은 움직이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이며 말했다.
눈가가 촉촉한 걸 보면 곧 눈물이라도 흘리겠네.
"지금 우는 거 다 봤어요. 나중에 놀릴 거니까 각오하세요."
"끄읍…."
나는 눈앞의 인큐버스를 바라봤다.
여유로운 표정을 하는 걸 보니 준비가 끝난 모양.
"설마 너 혼자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큭. 남성이라도 내 매혹에는 저항할 수 없어."
"닥쳐. 새끼야."
누구는 좋아서 이러는 줄 아나.
그래도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내 정신 저항.
그게 매혹을 막아줄지도 모른다.
파아아악
인큐버스의 몸에서 나오는 파문이 내게 다가왔다.
그 기분 나쁜 기운이 몸에 닿자마자, 감각이 비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 계열이기를 기대했는데, 운이 없었다.
생각은 그대로 할 수 있었지만,신경이 내 것이 아닌 느낌.
기분 나쁜 기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몇 번이나 내 몸을 강타했다.
머리가 멍해지고 사고가 둔해진다.
왠지 달콤한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 좋은 고양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몸 전체를 이상한 기운이 덮었다.
결국 인큐버스가 뿜어내는 기운은 모두 내 몸에 흡수되었다.
나는 멍하니 내게 다가오는 인큐버스를 바라봤다.
"여자를 대신해 희생하다니. 멍청하긴. 전투 요원인 네가 없으면 임솔의 정기 흡수를 어떻게 막을 거지?"
저벅. 저벅.
인큐버스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와 턱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들어 올렸다.
"물론 막지 않았어도 결과는 똑같았겠지만 말이야. … 가까이서 보니 너도 대단히 아름답군. 너 정도라면 별미로 남색(男色)을 즐겨도 나쁘지 않겠어. 임솔을 즐긴 후에 즐겨주지. 후후."
"…."
나는 입을 다문 채 인큐버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확실히 인큐버스의 얼굴이 잘생기게 보인다.
찰랑거리는 금발. 날카로운 콧대와 긴 속눈썹.
그리고…
역겹게 올라가 있는 입꼬리.
"뭐라는 거야. 이 씨발놈이."
파악
나는 인큐버스의 배에 오른 주먹을 강하게 꽂았다.
내 얼굴을 보며 남색이니 뭐니 지껄이던 인큐버스는 크흑 소리를 내며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남색 같은 소리 하고 있어. 나는 여자가 좋아."
"마, 말도 안 되는… 어떻게 내 매혹을 막은 거지?"
"글쎄다. 내가 정신력이 강하긴 해."
"정신력으로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대체 무슨 수를…."
그건 나도 궁금하다.
나는 내 양손을 살폈다.
포로가 된다는 놈의 말과 다르게 내 몸은 아주 자유로웠다.
왜 매혹이 통하지않은거지?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몸은 인간인데.
어쩌면 이것도 정신 공격이라고 치는 걸까?
하지만 릴리아나가 말하기를, 인큐버스의 매혹은 단순히 매력을 높이는 거라고 했다.
매력적인 상대를 보는 게 정신 공격이라고 하기엔 좀 뭐하지 않나?
"인간 주제에, 그것도 처음 당해보는 인간이 마왕의 후계자의 매혹을 버틸 리가 없어…!"
그때, 인큐버스가 중얼거리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 마왕의 후계자의 매혹?"
"그래. 내가 바로 마왕의 후계자인 알베도. 내 매혹은 지옥에서도 손꼽힌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인 네가…."
나는 알베도라고 소개한 인큐버스의 말을 무시하며 생각했다.
놈이 마왕의 후계자인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나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 우리 집에도 마왕의 후계자가 있잖아.'
그것도 매일 나한테 달라붙는 서큐버스가 있다.
임솔의 연구실에 오기 전, 인큐버스를 대비하기 위해 릴리아나에게 질문을 몇 가지 했었다.
그리고 인큐버스의 매혹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는 질문에, 릴리아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아니면 내성이 생기는 방법도 있어. 비슷한 강도의 매혹을 계속 받다 보면 내성이 생길 거야.
"…."
릴리아나를 만난 이후, 며칠에 한 번 꼴로 계속 몸을 섞고 있다.
심지어 단 둘이 기숙사에서 살 때는 하루에 몇 번이나 몸을 섞는 날이 다반사였다.
그러는동안 내 몸에 지옥의 매혹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는 가능성은… 의외로 높았다.
"운이 나빴구나. 인큐버스."
"이, 이거 놔! 커헉."
나는 인큐버스를 마력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놈은 밧줄에 묶이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워했다.
내 주먹 한 방에 뻗은 걸 보면 방금 쓴 기술의 반동이 꽤 큰 것 같았다.
"너는 거기 가만히 있어라."
"내, 내가 임솔의 매혹을 풀어줄테니 협상을…."
"그래? 그럼 빨리 풀어봐. 그다음에 생각해볼게."
"나를 먼저 풀어주면… 커흑!"
나는 인큐버스의 배에 사커킥을 날렸다.
인큐버스는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구나.
"빨리 매혹 안 풀면 죽인다?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어."
"방법을 알고 있다. 네가 그녀를 흥분시키면…."
"그건 원래 아는 방법이야. 탈락."
"크윽…."
인큐버스는 절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 알베도라고 했었나?
남자의 이름은 기억하기가 싫네.
나는 알베도를 내버려 두고 임솔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임솔은 알베도의 공격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지만,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내가 모든 정기를 흡수할 순 없었으니 임솔에게도 조금은 영향이 갔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고통을 참느라 끙끙대고 있었다.
화동 던전에서 매혹을 당했던 아이린은, 단순히 가슴을 몇 번 만지는 걸로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임솔은 그때보다 심한 상태였다.
조사팀 전부를 공격한 그때와 다르게 임솔은 혼자였고, 임솔은 처녀였기 때문이다.
"하아, 흐으…."
"… 이거 치료하는 거니까 화내면 안 돼요."
임솔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숨을 몰아쉬었다.
… 가슴 정도로 해결하면 좋겠는데.
나는 임솔의 몸을 쓰다듬으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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