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5화 (305/648)

EP.305 305화. 아이리스 길드로 (3)

화요일 밤.

은신처에 모여있는 판데믹의 간부들은 마에스트로의 말에 집중했다.

"아주 잘 풀리고 있어요. 특히 전 세계에 판데믹의 이름이 퍼지고 있고, 우리 사도님도 열심히 활약하고 계시고."

끄악- 아아악-

레베카는 회의실의 바깥에서 들리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무시하며 고개를 숙였다.

세뇌에 걸렸을 때 듣지 못했던 끔찍한 소리 때문에 레베카는 이 자리에 오는 게 싫었다.

"그런데…."

그때 마에스트로가 눈을 찌푸렸다.

"왜 한국 쪽에서는 실패가 많을까요? 특히 아카데미 주변…. 이번에 라인하르트까지 생포되었으니, 벌써 간부가 둘이나 당했어요."

길 스티븐과 라인하르트.

벌써 둘이나 희생되었으니 마에스트로도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레베카.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 자주 실패하는 원인이 뭘까요."

마에스트로는 편안한 얼굴로 레베카를 바라봤다.

"… 라인하르트는 배신을 당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레베카."

"끄흡?!"

꾸욱-

레베카는 마에스트로의 말과 동시에 목을 부여잡았다.

주변의 마력 때문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떨쳐낼 수 있는 아주 약한 마력이었지만,여기서 반항할 순 없었다.

세뇌에서 벗어난 걸 들킬 수 없었으니까.

"라인하르트가 배신당한 건 나도 알고 있어. 문제는 당신이에요."

마에스트로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자신을 배신하면 죄책감에 직접 자신의 심장을 뜯어내도록, 더욱 강한 세뇌를 걸었다.

"당신이 배신 했습니까?"

"끄, 그흡… 아닙니다. 저는…."

레베카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졌다.

마에스트로는 그런 레베카를 지켜보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 마에스트로는 마력을 풀었다.

털썩-

"아직 세뇌는 잘 걸려있는데… 그냥 능력 부족이었던 건가. 쓰레기 같은 새끼들."

마에스트로는 의자에 널브러진 레베카를 내버려 두고 혼잣말을 시작했다.

어차피 모두가 그의 세뇌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레베카를 비롯해 다른 간부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만악의 근원. 사도님을 위한 제물이 더 필요해. 조금 더 빨리. 아니, 사도님을 위해서. 암세포 같은 놈들을 빠르게 제거해야 해. 더러운 놈들. 하지만 지킬 의무는 없어. 어쩌면 이것 또한…."

마에스트로는 평소처럼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미친 새끼.'

그 모습을 본 레베카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지껄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세뇌에서 벗어난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

레베카는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바로 프랑스에 가서 애기 아빠를 지원해야 한다.

'조금 더 안전하게 움직여야 할까. 아니면 그냥 빨리 도망쳐야 하나?'

당장은 판데믹에서 뜯어먹을 게 많았으니 조금 더 있고 싶었는데.

"캐디시."

"예!"

레베카가 앞으로 계획을 생각하고 있을 때, 기도를 끝낸 마에스트로의 부름에 간부 중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일단은 사도님에게 집중합니다. 프랑스에서 사도님 지원을 하도록 하세요."

*

아이리스 길드의 내부를 안내받는 도중.

나는 앞서 걸어가는 스칼렛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 스칼렛. 너 왜 여기 있냐."

"저도 아직은 아이리스 길드원이잖아요."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쉿. 세바스 찬 님이 들을 수도 있으니 제 안내를 따라주세요. 저희 둘이 공식적으로는 모르는 사이거든요."

난 슬쩍 뒤를 돌아봤다.

세바스 찬은 뒤에서 내가 스칼렛과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확실히 들켜서 좋을 건 없어 보였다.

"… 그래. 뭐 이상한 일 시키는 건 아니지?"

"이상한 건 아닌데, 음. 조금 귀찮으실지도?"

스칼렛은 살짝 미소지으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래. 힘든 것도 아니고 귀찮은 정도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지.

나는 스칼렛의 안내를 따라가며 길드를 돌아다녔다.

솔직히 어디를 데려갈까 긴장했는데, 다른 게 아니라 순수한 길드 내부 안내였다.

먼저 아이리스 길드의 회의실.

한쪽 벽이 통창으로 되어있는 회의실에는 고급스러운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아이리스 길드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다 같이 모여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들어오자마자,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지?!"

"옥토퍼스 게임! K - 드라마 너무 재밌어요!"

"…?"

회의실 다음은 아이리스 길드의 식당.

슬슬 배고팠는데 다행이네.

이곳도 마치 영화에서만 보던 억만장자들의 레스토랑 같은 장소였다.

한쪽 벽에는 와인들이 놓여있었고, 반대편 벽은 아쿠아리움처럼 물고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이, 이건 뭐죠?! 혹시 김치인가요!"

"불고기! 김치! K - food 맛있어요!"

"…."

그리고 그런 고급 식당의 내부에는 역시 아이리스 길드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김치를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저 사람들 분명 아까 회의실에서 드라마 보던 사람들이잖아.

언제 여기까지 온거야?

- 저 사람들 김치 먹으면서 울고 있는 것 같은데?

"… 나도 봤어."

내 목에 걸려있던 릴리아나도 의문을 표했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스칼렛의 뒤를 따라 식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스칼렛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 걸었다.

"요즘 식당에서 한식을 제공하는데, 평이 아주 좋습니다. 저분도 오늘 파견 오신 분인데 맛있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합니다."

"… 아, 네. 그렇군요."

- 인간들의 접대는 허접하네. 서큐버스라면 이렇게 얄팍한 대우는 안했을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릴리아나.'

뭐지 이건?

몰래카메라?

저 기둥 뒤에서 마이크를 든 연애인이 카메라와 함께 튀어나오는 건가?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스칼렛을 바라보자, 꿈틀대는 그녀의 입꼬리를 발견했다.

나는 스칼렛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 스칼렛."

"제가 귀찮을 거라고 말했잖아요. 그리고 저는 분명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위에서 시키는 거니까 하는 것뿐."

스칼렛은 자신은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멀리서 세바스 찬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하아… 내가 10년만 늙었으면 통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은 좀."

아니지, 여기서 10년 더 늙어도 저런 멍청한 연기에는 안 속는다.

적어도 배우를 데려다 놓던가.

"오마이 갓! 양궁! 축구! BTX!"

"…."

김치를 먹으며 아이돌의 뮤비를 보는 아이리스 길드원들을 보니 이제는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미간을 꾹 누르며 스칼렛에게 말을 걸었다.

"… 스칼렛 씨. 배고픈데 밥이나 먹으면 안되나요?"

"김치와 불고기 정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니, 나는 프랑스의 음식을 먹고 싶다고…."

- 나도 바게트 먹고 싶어. 파리의 바게트….

스윽- 스윽-

목걸이로 변한 릴리아나를 쓰다듬어줬다. 얘도 배고플 텐데 틈을 봐서 먹을 걸 줘야지.

"여기 있었네?"

그때,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서 있던 스칼렛의 눈이 커지는 걸 보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이린 아가씨. 오셨습니까."

"응. 오랜만이네. 스칼렛, 잘 지냈어?"

"예. 아가씨 덕분입니다."

"내가 뭘 했다고. 아, 이쪽이 이호연 생도?"

아이린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이렇게 보면 참 착한 사람 같지만, 이 사람의 본성을 알고 있다 보니 조금 무서웠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린 님. 개인적으로 팬이었는데 영광입니다."

난 살짝 몸을 숙이며 인사했다.

물론 팬 따위 아니었지만, 뭘 물어봐도 대답할 자신은 있었다.

원작에서 나온 정보나 빙의 후에 주워들은 뉴스를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 이 여자 뭐야. 왜 이렇게 예뻐?

릴리아나가 놀라는 목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나도 놀라긴 했어.

실제로 보니까 진짜 예쁘네.

이 정도는 돼야 엘리스의 언니라고 할 수 있지.

"반가워. 엘리스 친구 맞지?"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응. 나는 엘리스의 언니이자 아이리스 길드의 1팀장… 아, 팬이라고 했지? 그럼 다 알겠네. 아무튼 잘 부탁해."

아이린은 아차. 하며 웃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꾸며낸 것 같지 않은 그 모습조차 귀여워서 나는 침을 삼켰다.

"감사합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고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손도 부드럽네.

확실히, 평범한 남자였다면 보자마자 넘어갔을 거다.

나야 히로인들도 많이 봤고 침착함 덕분에 괜찮지만.

'저건 또 왜 저래?'

아이린의 어깨 너머로는 세바스 찬과 스칼렛이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귀신이라도 봤나?

"켄타우로스 추적 팀에 합류한다고 했지? 나도 추적팀 소속이니까 자주 보겠네."

"그렇게 됐습니다."

"으흐음."

아이린은 날 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세바스찬을 쳐다봤다.

"세바스 찬. 나 얘랑 대화 좀 할게."

"아가씨. 이호연 생도는 길드장님이…."

"스읍. 내가 데려갔다고 해. 자, 가자."

"어…."

아이린은 뒤돌아 식당 바깥으로 향했다.

세바스 찬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스칼렛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세바스 찬의 사각에서 살짝 손을 흔들었다.

음, 여기 있어봤자 이상한 짓거리나 볼 텐데 그냥 갈까.

내가 길드 구경하러 온 건 아니니까.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도 궁금하고.

나는 아이린의 뒤를 따라 식당을 빠져나왔다.

*

"하아,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이봐.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이린 아가씨도 있는데 굳이 고개까지 숙여가며…."

방금까지 김치를 퍼먹고 있던 남자 길드원이 식당에서 나오며 중얼거렸다.

아이리스 길드에 이런 거나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닌데.

나름 에이스 취급을 받던 자신이 김치나 먹고 있다니.

"닥쳐. 내가 말했잖아. 너는 정보에 더 신경 쓰라고. 쟤는 영입 1순위야."

"이호연이 그 정도라고?"

"당연하지. 나랑 길드장님하고 면담했던 거 몰라?"

"면담? 정말로?"

"그래. 그니까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

"시발…."

남자에게 쏘아붙인 여자는 길드장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길드장님이 이호연을 어떻게든 영입하라고 소리치던 그때는 생각만 해도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니 봤어?"

"뭐를?"

"아이린 님이 악수했잖아."

"아, 맞아. 나도 보고 놀랐어. 대통령이 와도 악수를 안 하시던 분이 웬일이래?"

"역시 얼굴?"

"에이 설마…. 어? 그런가?"

남과 신체 접촉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아이린이 선뜻 악수를 건넨 것이 신기하긴 했지만, 그들에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저기,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응? 어! 엘리스 아가씨!"

"어머, 오셨어요?"

그때, 오랜만에 온 길드 내부에서 헤매다가 간신히 식당까지 찾아온 엘리스가 아는 얼굴들을 보고 말을 걸었다.

다행히 예전에 본 길드원들이라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응. 그, 스칼렛하고 이호연은 지금 어딨어?"

식당에 김치가 있는 걸 봐선, 방금까지 이호연이 식당에 있었다는 뜻이다.

"아. 이호연 생도는 아이린 아가씨하고 같이 로비로 갔습니다."

"뭐? 언니랑?"

"네네. 저희도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요."

"… 알았어. 로비라고 했지? 고마워."

엘리스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정면으로 걸어갔다.

'잠깐 전화하러 간 사이에 언니랑 만난거야?'

그저 인사를 위해 만난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녀의 가슴을 채웠다.

조금 더 발걸음의 속도를 높이며, 엘리스는 로비로 향했다.

"아가씨? 그쪽이 아니라 저쪽인데요."

"… 아, 응. 미안. 오랜만에 와서 헷갈렸네."

제대로 된 방향으로 총총 걸어가는 엘리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길드원들은 서로 마주보며 살짝 웃었다.

"아가씨는 여전하시네."

"저게 더 귀여운 점이잖아."

둘은 귀여운 아가씨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가던 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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