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113화. 서바이벌 시험 (6)
선천적 마력 장애의 치료법.
나는 당연히 알고 있다.
마인 집단 판데믹의 주요 간부인 메데스.
마인 중에서도 심장 자체가 마석으로 변한 특수한 개체다.
몇십 년간 메데스의 마력을 흡수하면서 점점 강해지고 있는 메데스의 심장이 필요하다.
그게 있으면 마력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메데스는 원작 후반부에 등장한다.
그 말인즉슨, 지금 당장 엘리스의 마력 장애를 치료할 수 없다는 거다.
근데 왜 이런 블러핑을 치냐고? 어차피 엘리스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천적 마력 장애는 초거대 길드인 아이리스 길드가 온 힘을 다해서 치료 방법을 찾았지만 실패한 병이다.
엘리스가 '이호연은 선천적 마력 장애를 치료할 방법이 있다'라고 믿는 이상은 무슨 개소리를 지껄여도 괜찮다는 말이다.
아무도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치, 치료 방법. 나도 알려줘. 부탁이야."
"알려줄게."
"저, 정말?"
엘리스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하지만 여기서 호구처럼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엘리스 공략은 내 여자관계가 들킨 이상 원래 루트대로 가기 힘들어졌다.
이미 다른 여자들이 먼저 나를 선점하고 있으니, 원작에서처럼 정실의 관대함을 보여주진 않을 거다.
결국 내가 갑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 마력 장애 극복이다.
'반응을 보니 빠르게 호감도를 높일 수는 없어.'
나라도 문어발인 남자를 좋아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
목표는 메데스가 등장하고, 엘리스의 언니인 아이린과 반목이 시작될 때까지 내가 갑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공략 루트에 들어갈 때까지 자연스럽게 내가 갑인 관계를 유지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대신 공략이 들어가는 시점에 원작보다 호감도가 높아야겠지. 이미 내게 여자가 있는 걸 아는 상태로 시작하는 거니까.
즉, 나는 엘리스에게 갑을 유지하면서도 호감도를 높여야 한다.
'어려운데?'
일단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엘리스에게 말했다.
"엘리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게 있잖아."
"…?"
"설마 모르겠어?"
엘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내 표정을 보고는 생각난 듯 고개를 숙였다.
"아… 뒷조사를 해놓고 그걸로 협박하려고 해서 정말 미안해."
"그래. 알았어. 나도 그냥 기분낸거야."
솔직히 뒷조사가지고 사과를 받을 것도 없긴하다. 기분이 나쁘지만 헌터계의 당연한 관행이나 마찬가지니까.
당장 문수린도 내 뒷조사를 했다.
하지만 형식상이라도 사과를 받긴 해야지.
이런 사소한 것도 갑이 되는 과정 중에 하나다.
"일단 치료 방법에 대한 건데, 적어도 1년 이상 시간이 걸려. 괜찮지?"
"응. 치료만 할 수 있다면… 상관없어."
메데스가 나오려면 1년은 걸리니까,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으면서 호감도도 높일 수 있는 방법….
내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스쳤다.
루미의 수련을 도와주면서 다른 사람 몸의 마나를 컨트롤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럼, 내 마나를 직접 넣어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 정도면 시간을 벌기에 충분할 거다.
그리고 호감도까지 높이려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마나를 넣어주면 되겠지.
"마나 마사지라고 알아?"
"뭐?"
엘리스는 처음 듣는 표정이었다.
당연하지. 내가 방금 만든 말이거든.
"나랑 내가 아는 분들이랑 연구해서 만든 건데… 마나 운용력이 높은 사람이 필요해. 잠깐 이리 와봐."
엘리스의 어깨를 잡고 내 마나를 조금 주입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엘리스의 마나 회로에 같이 녹아들게 만들었다.
"아? 이게 무슨…."
"네 마나가 조금 늘어난 게 느껴져?"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야?"
"노력의 결과지. 나도 내 마력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했거든."
구라다.
특전인 [마나 감응] 덕분이다.
마나를 조절하는 건 내 전문분야다. 아마 다른 사람은 불가능할 거다.
남의 몸에 마나를 넣어서 공격하거나 영약 흡수를 보조해주는 것과 내 마나를 그 사람의 마나로 바꿔버리는 것은 아예 다른 문제다.
"제대로 하려면 최고급 마석이 필요하긴 한데… 내가 약식으로 해줄게."
엘리스의 등에 내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어 줬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몇 시간은 활동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 마사지를 꾸준히 받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질 거야."
"고마워. 서바이벌 시험 때만 조금 도와줘. 밖에서는 방법을 알려주면 내가 직접 연구를 해볼게."
"그래. 일단 내 쪽에서 가능한 사람은 나밖에 안 남았어. 원래 해주시던 분이 이제 현역에서 물러나셨거든. 안 되면 내가 도와줄게."
"응. 고마워. 이건 나가서 꼭 보상할게."
"아니야. 친구끼린데 뭐."
어차피 엘리스는 서바이벌이 끝나도 나한테 다시 찾아오게 되어있다.
[마나 감응]이 없는데 그런 고도의 마나 운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번 맛을 보면 더 찾아오겠지.
마석으로 마나를 채우는 건 몸에 마나를 흡수시키는 느낌이라 효율도 안 좋고 버려지는 마나가 많지만, 나는 직접 마나 회로에 마나를 전달한다.
내 마나를 강제로 넣는 것이다 보니 마나 회로도 강제로 넓어지게 된다.
물론 회로가 잠깐 넓어진다고 해서 치료가 될 만큼 만만한 병이 아니다.
하지만 마나 회로가 좁은 엘리스는 그 과정조차 치료의 일부라고 느낄 거다.
"일단… 서바이벌 시험 때는 같이 다니자."
"응. 알았어."
*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뿐이야. 서로 귀찮게 하지 말자. 난 널 믿어. 정확히는 엘리스라는 사람의 자존심을 믿는 거야. 대가 없는 호의를 받아 갈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 좋은 생각이야. 난 자존심은 지키는 사람이거든."
우리는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뒷조사야 뭐, 솔직히 안 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괜찮아. 당장 나도 너희 길드장님께 요청권을 받는 입장인데."
"아… 맞다. 요청권. 아버지한테 받았어. 서바이벌이 끝나면 줄게."
"그래? 고마워."
요청권은 남다은을 위해 사용할 거다.
나중에 바이어 길드를 압박할 때 사용해야지.
다른 히로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선 나도 힘이 꽤 있어야 하니까.
"이호연. 나, 그… 부족해."
"이리 와."
몇 시간에 한 번씩 엘리스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마나를 주입해주고 있다.
아주 조금씩.
마음만 먹는다면 한 번에 마나를 꽉 채워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서서히 발전하는 느낌이 안 날 테니 일부러 조금씩 시작하는 거다.
"고마워."
마나를 받은 엘리스는 내게 감사를 전했다.
엘리스는 서바이벌 때만 신세를 지겠다고 하고 있지만, 밖에서도 내게 마사지를 받을 거다.
결국 서바이벌에서 내 마사지를 계속 받는 행위 자체가, 내가 갑이 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루미랑은, 따로 가기로 한 거야?"
"… 내가 루미랑 만난 걸 어떻게 알아?"
이건 이상하다.
분명 엘리스가 가고 나서 루미가 왔다가, 루미가 떠나고 엘리스가 다시 찾아왔다.
나와 같이 있는 모습을 엘리스는 볼 수가 없었을 텐데?
"아, 아… 오는 길에 봤거든. 루미가 네 방향에서 오는걸. 그리고 음식들을 챙겨가길래 당연히 너랑 만난 거라고 생각했지."
"아하… 그랬구나."
나는 납득한 척하면서 상태창을 켜봤다.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33 ]
- [ 성욕 : 57 ]
- [ 식욕 : 40 ]
- [ 피로도 : 79 ]
현재 상태 : 하마터면 들킬 뻔했어… 말실수 하지말자.
'…수상해.'
뭘 들킬 뻔했다는 거지?
루미와 내 관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내게 말해놓고, 들킬 만한 게 있나?
일단 확실하게 말해야 할 건 있다.
"내 여자관계에는 신경 쓰지 마. 서로 자신의 영역은 챙겨줘야지."
"응, 미안해.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일단 보물이나 보급상자를 찾으러 가자. 아니면 보스몬스터. 이 셋이 보상이 좋을 거 같아."
엘리스는 말실수를 한 걸 덮기 위해 다른 주제를 꺼내왔다.
'일단은 넘어가자.'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여기서 더 실수하진 않을 거다.
지켜보다 보면 감이 올 수도 있으니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는 산을 타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서바이벌 시험은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보물도 몇 개 발견했고, 보스 몬스터의 위치도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 기억하는 위치로 향했다.
게임 플레이 시에도 보물의 위치는 똑같았지만, 종류는 회차마다 달랐으니 무슨 보물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뭐든지 있으면 이득이니까.
촤락-
엘리스가 앞에서 검으로 나무를 베면서 길을 뚫고 있었다.
내가 마사지를 해주니까 자기가 앞에 나서긴 한다. 양심은 있네.
참고로 검은 내가 혹시몰라 챙겨왔다.
"이 쪽으로 가보자. 뭔가 있을 것 같아."
"… 확실해?"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냥 내 말대로 가보자."
"알았어."
엘리스는 열심히 나무를 베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진짜 수상한 게 나왔네...."
엘리스는 어안이 벙벙한 듯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여기가 맞네.'
우리는 대놓고 수상한 커다란 바위를 발견했다.
"내가 부수기엔 너무 단단해."
쿵쿵.
확실히 보기만 해도 단단해보인다.
"내가 뚫을게. 비켜봐."
나는 손에 마나를 나선형으로 응집하며 '스파이럴'을 발현했다.
콰아앙-!
내 '스파이럴'과 맞닿은 바위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박살 났고, 그 뒤에 있던 동굴의 입구가 나타났다.
"들어가자."
"응."
쫄쫄쫄-
아침부터 우리 뒤를 쫓아오던 드론도 같이 동굴로 들어왔다.
엘리스와 내가 같이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
아마 유망주 둘의 동맹이라면서 감시하고 있겠지.
엘리스는 앞에서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여기는 몬스터 없는데.'
이 커다란 바위 동굴은 바위를 부수기만 하면 끝이다.
함정도 없고 몬스터도 없다.
물론 엘리스가 그걸 알 리가 없으니 나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틈틈이 불의 구체를 소환해주며 시야를 밝혀줬다.
엘리스가 뒤를 돌아볼 때면 나도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연기했다.
십 분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자, 누가 봐도 보상이요. 라고 말하는 보물상자가 있었다.
"열어보자."
"잠깐. 미믹일 수도 있어. 긴장 풀지 마."
"어, 응."
하긴, 여기도 미믹이란 몬스터가 있긴 하다.
나는 불꽃 마법을 소환하며 보물 상자를 그을렸다.
미믹이 아닌 걸 알지만 열심히 연기하며 보물 상자를 공격했다.
"괜찮은 것 같아. 내가 열어볼게."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알았어."
나는 보물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뭐지 이건?'
[보물 no. 19. 100% 체력회복권]
"체력회복권?"
의문을 가지고 종이를 살펴보려는 데, 내 스마트 워치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마트 워치의 서바이벌 시험 어플을 확인했다.
- [보물 no. 19. 100% 체력회복권]을 발견하셨습니다!
- 스마트 워치의 체력회복권 버튼을 누르면 그 즉시 성녀님이 당신에게 찾아와 100% 체력을 회복 시켜 줍니다.
- 일회용입니다.
"……."
백아영 또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