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114화. 서바이벌 시험 (7)
[보물 no. 19. 100% 체력회복권]
'원작에는 없던 보물이네.'
아마 백아영이 아카데미로 오면서 새로 생긴 보물인 것 같다.
"예비 목숨 같은 느낌이야."
'… 글쎄. 과연 그렇게 쓸려나.'
엘리스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실 나도 예비 목숨으로 쓸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 밤이나 내일 밤에 이런 동굴에서 쓰지 않을까.
"일단 나가자. 더 얻을 건 없을 것 같아."
"응."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정오 즈음이 되자 하늘에 커다란 헬기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저게 보급 헬기인 것 같아."
이제 진짜 시작이다. 보물이나 보스 몬스터는 그 위치를 몰라서 먼저 발견하는 게 주인이지만, 보급 상자는 대놓고 하늘에서 떨어진다.
그렇기에 싸움도 많이 일어난다.
"어? 저 정도면 갈만한데?"
지금 위치와 가까운 곳에 보급 상자가 떨어졌다.
식량이 충분하긴 하지만, 보급 상자에선 식량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생존에 도움이 되는 물건이 있다.
노숙을 피하기 위한 취침 용품이나 식사를 위한 조리도구, 서바이벌 시험에서만 사용 가능한 훈련용 아티팩트 등 유용한 물건들이 많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보급 상자 내부의 코드를 스마트 워치로 찍을 때마다 서바이벌 시험 어플이 업데이트된다는 점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위치를 확인할 수도 있고 몬스터나 보물의 위치를 찾을 수도 있다.
"엘리스. 저거 먹으러 가자."
"괜찮겠어? 생도들이 많이 몰려올 텐데."
"우리 둘이 같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나와 엘리스는 재빨리 발을 옮겼다.
꽤 가까운 위치에 떨어졌으니 곧 보여야 하는데…
"아, 저기 보이네."
이왕이면 취침 용품이 나오면 좋겠다. 엘리스랑 같은 텐트를 쓰기엔 아직 좀 그러니까.
앞장서던 엘리스가 보급 상자를 열었다.
"… 아무것도 없는데?"
"뭐? 벌써 가져갔…"
두근.
내 [전투 감각]이 위험을 알림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오른쪽에 코튼 가드를 만들어냈다.
차자장-!
"아니 시발, 이걸 막히네. 마나 숨겨준다면서 개구라 아니야?"
"상대를 봐. 그냥 쟤가 이상한 거야."
"엘리스랑 이호연이 손을 잡았다고? 너무 밸런스 붕괴잖아."
"이건 아니지~."
오른쪽 수풀에서 4명의 생도가 튀어나왔다.
내가 마나를 느끼지 못한 걸 보니 보급 상자에서 기척을 숨겨주는 아티팩트라도 얻었나 보네.
웬만한 아티팩트는 내 [마나 감응]이 뚫어버리지만, 서바이벌 시험에서만 쓸 수 있는 훈련용 아티팩트들은 제한을 받는 대신 성능이 워낙 좋아서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내 스마트 워치와 뭔가 연동을 했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마지막에 알아챘으니 다행이다.
"깜짝 놀랐네."
"… 놀란거 맞아? 도대체 어떻게 안거야."
"그냥 직감."
엘리스는 습격을 느끼지 못한 자신이 약간 창피한 모양이었다. 나는 전투를 준비했다.
"아오, 진짜 운도 없지."
"그래도 4대2인데 할 만하지 않을까?"
우릴 습격한 생도들은 자주 보는 A클래스 생도들이었다. 물론 친한 애들은 아니라 이름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아마 A클래스 4명이 뭉쳤으니 꽤 자신만만한 상태였나 본데… 아쉽게 됐네.
"얘들아. 아티팩트 잘 받아 갈게."
나는 후방의 여자 생도가 들고 있는 초록색 나무 지팡이에 눈을 고정했다.
*
"음, 나쁘지 않네."
당연히 4명은 우리에게 박살이 났고, 쓸쓸히 섬에서 퇴장했다.
그러니까 누가 덤비래.
우리 클래스 생도들을 처리하고 얻은 전리품을 확인했다.
[신록의 장막]이라는 아티팩트였는데, 기척을 지워주는 물건이었다.
가지고 있다 보면 어디든 쓸 곳이 있겠지.
난 주머니에 아티팩트를 박아넣고 눈앞의 보스몬스터에게 다가갔다.
내가 위치를 알고 있는 유일한 보스몬스터였다.
몬스터들은 보물과 다르게 계속 움직이는 놈들이 많아서 찾기가 힘들다.
거대 타란툴라만이 이 동굴 안에서 가만히 위치한다.
"자, 가보자~."
팀의 사기를 위해 텐션을 올리는데, 엘리스가 제동을 걸었다.
"저기… 나. 부족해."
"아, 오케이. 넣어줄게."
나는 엘리스의 어깨를 잡고 마나를 주입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이런 걸 하려니 귀찮았지만, 원래 농사는 귀찮은 법이다. 이 짓거리도 열심히 하다 보면 빛을 보겠지.
"됐지? 가자."
"응. 내가 먼저 갈게."
엘리스는 검에 마력을 씌우고 타란툴라에게 돌진했다.
거대 타란툴라는 거미지만 거미줄을 사용하지 않고, 거대한 몸과 다리로 공격한다.
나는 화염창으로 다리를 견제하며 커다란 눈을 공격했다.
크르르륵-!
거대 타란툴라는 다리를 휘두르며 꽤 분전했지만, 엘리스 혼자서도 충분히 잡는 상대에 나까지 가세했으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해치웠… 아이 씹…?!"
쓰러진 거대 타란툴라의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앞으로 걸어가는 데, 어느샌가 작은 새끼 타란툴라 한 마리가 내 팔에 붙어 살을 깨물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팔을 털어내고 거미를 발로 밟아 터르렸다.
"괜찮아?"
엘리스가 검을 털어내며 내게 다가왔다.
"조금 따갑긴 하네. 팔도 약간 얼얼하고. 독이 들어왔나 봐."
"백아영 선생님 불러. 마침 잘 됐네."
"굳이? 어차피 타란툴라 독은 약한 마비 독이라 금방 풀릴 거야."
좀 있으면 괜찮아 질텐데 이런 곳에 쓰기에는 좀 아깝지않나?
"혹시 모르잖아. 그냥 불러."
백아영을 부르라고 단호히 말하는 엘리스의 표정은 뭐랄까… 내가 안 부르면 화가 날 것 같은 얼굴이었다.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 호감도 : 33 ]
- [ 성욕 : 57 ]
- [ 식욕 : 40 ]
- [ 피로도 : 79 ]
현재 상태 : 신록의 장막을 사용하면 될까? 그래. 공격만 하지 않으면 모를거야.
무슨 소리야 이건.
"… 그래. 일단 보상 먼저 확인하자."
뭐, 나도 마침 백아영을 보고 싶으니까. 깊은 생각은 하지 말자.
거대 타란툴라의 등에 붙어있던 장치를 떼어내고 스마트워치로 인식했다.
[거대 타란툴라 처치! 100포인트를 얻으셨습니다.]
"50포인트 보내줄게."
"응."
포인트 분배는 무조건 절반으로 하기로 했다.
내가 좀 더 받아도 되긴 하지만, 엘리스의 목적은 상위권이니까 그냥 반반으로 양보했다.
- 보스 몬스터 처리 보상입니다.
- 바깥과 한 번 연락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이 기회는 양도 가능합니다.
"… 뭐야?"
바깥과 연락할 수 있는 기회? 이딴 걸 왜 주는 거지.
"엘리스, 너 쓸래?"
"음… 준다면 사용할게."
"그럼 너 써라. 난 필요 없다."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임솔 교수나 문수린, 릴리아나 정도인데 연락해서 뭐해.
아, 백아영도 있긴하네.
근데 어차피 백아영은 당장 볼 수 있으니까 괜찮다.
"그럼 바로 쓸까?"
나는 [보물 no. 19. 100% 체력회복권]라고 쓰여 있는 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응. 마침 여기 동굴이니까. 편하게 써."
"알았어 그럼."
버튼을 누르자, 뿅 하는 효과음과 함께 내 앞에 포탈이 생성되었다.
"괜찮아? 일단 숨 천천히 쉬고… 으응?"
그리고 포탈에선 백아영이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백아영 선생님."
"어… 안녕하세요, 이호연 생도."
백아영은 멀쩡해 보이는 내가 자신을 불러서 약간 의문인 듯했다.
나는 슬쩍 눈짓으로 우릴 지켜보고 있는 드론을 가리켰다.
"아, 이호연 생도. 상의 벗어보세요."
백아영은 찰떡같이 내 신호를 알아듣고, 이제 치료를 시작한다는 명몫으로 드론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고마워요. 아영 씨. 역시 눈치가 빨라."
남 앞에서는 한 번도 아영 씨라고 부른 적 없지만, 엘리스는 어차피 다 알고 있으니 그냥 편하게 대하기로 했다.
"응, 호연… 어?"
백아영은 엘리스가 옆에 있는 데도 편하게 대하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아요. 엘리스한테 저희 관계를 들켰거든요."
"어? 뭐라고?!"
진짜 깜짝 놀란 모양이다.
눈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크기로 커졌다.
더 이상한 상상을 하기 전에 빨리 말을 이었다.
"걱정하진 마세요. 어디 가서 말할 애가 아니에요. 그렇지?"
"네. 저는 밖에서 입구를 지킬 테니까 둘이 좋은 시간 보내세요. 아, 나한테 신록의 장막 좀 줄래? 입구를 지키고 있을게."
"어, 고마워."
갑자기 애가 왜 저렇게 고분고분해졌지?
직접 기척을 지우고 보초까지 서주겠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엘리스는 정말로 동굴 밖으로 나가서 기척을 지우고 풀숲에 숨었다.
이제 아무도 없으니 편하게 할 수 있겠네.
"아영 씨. 오랜만이네요. 그렇죠."
"으응… 토요일에 보고 안 봤어."
사실 삼 일 만에 보는 게 오랜만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워낙 자주 봤으니까.
"왜 미리 서바이벌 시험이라고 말 안 해줬어요. 그러면 편하게 준비했을 텐데."
나는 괜히 백아영을 놀려주려고 다그치듯이 얘기했다.
"미, 미안해. 마나의 맹세가 걸려있어서…."
"그런 변명으로 넘어가겠냐고요. 이리 와요."
"흐으응…."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89 ] (+0.5)
- [ 성욕 : 80 ]
- [ 식욕 : 30 ]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이번 주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으으응 너무 좋아.
처음에는 백아영이 유일하게 아카데미 밖에 있는 히로인이라 잘 챙겨주려고 한 건데… 이제는 제일 많이 만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변태 짓에 어울려주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 나도 변태가 된 것 같아서 약간 무섭다.
나는 아공간주머니에서 의자를 꺼내 앉은 뒤에 다리를 벌렸다.
"아영 씨. 오랜만인데 인사해요."
"… 안녕하세요 여보. 츄릅."
백아영은 무릎 꿇고 내 지퍼를 내린 뒤에, 약간 발기되어 있는 자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혹시 내가 아니라 자지를 여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엘리스는 백아영과 이호연을 동굴 안에 내버려 둔 채로 바깥에 나왔다.
일단 스마트 워치를 켜서 방금 이호연에게 양도받은 연락권을 사용했다.
[가능 인원은 1명. 시간은 5분입니다. 아카데미 측에서는 도청이나 녹음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험에 영향을 주는 행위가 발생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한 처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경고문이 떠오르며 연락처 창이 나타났고, 엘리스는 세바스 찬을 눌렀다.
"세바스 찬. 내 말 들려?"
- 아가씨?! 지금 서바이벌 시험 도중 아니십니까?
세바스 찬은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황한 듯 했다.
"응. 바깥에 연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휴가를 방해해서 미안해."
세바스 찬은 일주일간 휴가가 생겨서 좋아했을 텐데, 약간 미안했지만 급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 아니요.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시길래 시험 도중에 전화를?
"혹시 이호연의 여자관계를 조사할 때… 영상이나 사진 같은 자료도 남겼어?"
엘리스는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 영상이나 사진이요…? 루시 루미 생도와 카페에 같이 있는 사진, 성녀 백아영과 같이 보육원에 들어가는 사진 등은 있습니다만….
"아니, 좀 확실하게… 성관계나 점막접촉이 있는 사진은?"
엘리스는 세바스 찬이 처음으로 답답했다.
그딴 사진이 필요할 리가 없잖아. 왜 직접 내 입으로 말하게 하는거야.
- 그건 없습니다. 직접적인 영상이나 사진은 너무 위험해서….
"…이호연과 접촉했는데, 약점을 잡을 게 필요해. 혹시 그런 사진을 찍어줄 수 있을까? 아, 영상이면 더 좋아. 영상은 노골적이고 길수록 좋겠어."
- 어…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일단 이호연 생도의 결계술 수준이 높기도 하고… 영상을 찍으려면 같은 위치에서 몇 분이나….
"알았어. 능력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다른 수단을 찾아볼게."
- …제가 어떻게든 해내겠습니다.
씨익.
왕년에 잘 나갔던 자존심이 있는 사람을 구스리는 법을 엘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알았어.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
- 아닙니다. 아가씨가 오기 전까지 완벽히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고마워. 세바스 찬."
뚜우-
시간이 다 되고, 전화가 끊겼다.
'… 설마 끝나진 않았겠지?'
성적인 지식이 얼마 없는 그녀로선 여자와 남자의 관계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엘리스는 다급하게 신록의 장막을 펼쳐서 기척을 지우고 살금살금 동굴의 벽에 붙어서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꿀꺽.
목을 넘어가는 침소리만이 동굴 밖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