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6화 〉106화. 주말 (5) (106/648)



〈 106화 〉106화. 주말 (5)



"삼겹살은 100g에 2,200원이고, 목살은 2,100원… 목살이 조금 더 싸네. 삼겹살이 먹고 싶은데… 으음."


어제 여동생을 만나고 교통비까지 쓰고 나니 남다은의 수중에 남은 돈은  3,000원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학생 식당을 무료로 운영하긴 하지만, 학생식당은 평일에만 운영한다.

주말에는 기숙사에서 따로 운영하는 기숙사 식당을 이용해야 하는데, 기숙사 식당은 유료였다.

남다은은 보통 학생 식당에서 밥을 조금씩 남겨서 물통에 담아와 냉동고에 보관하며 끼니를 연명했지만, 가끔은 이렇게 사치를 부리고 싶은 날도 있었다.

"어떡하지… 이걸 먹으면 다음 달에 진짜 돈이 없는데."

이호연에게 갚아야  돈이 약 만 원.

남다은이 받는 용돈은 한 달에 오만 원 내외였다.


품위 유지비는 동생의 입원비라면서  뺏어갔다. 아카데미에서 밥을 주는데 돈이 무슨 필요냐는 말에 남다은은 반박을 포기했다.

어차피 반박해봤자 돈을  주지도 않는다.

"흐으으… 그래. 오늘은 물에 밥 말아 먹자."

기숙사 복도에 정수기는 있었으니, 남은 냉동 밥을 물에 말아 먹으면 나름 먹을 만 하다.


거기에 식당에서 슬쩍 가져온 소금을 처먹으면 별미다.

"스읍."


남다은은 고기를 내려놓고 뒤로 돌았다.

"안녕?"

그리고 그 뒤에는 이호연이 서 있었다.



*


"안녕?"


"…읏!"

남다은은 깜짝 놀란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어… 미안. 인사를 하려고 한 건데."

"… 괜찮아."


남다은은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얘도 참 감정표현이 많아졌네.'

남들한테는 비슷하게 차갑던데,  앞에선 조금 마음을 놓는 모양이다.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호감도 : 48 ]
- [ 성욕 : 15 ]
- [ 식욕 : 85 ]
- [ 피로도 : 33 ]


현재 상태 : 깜짝 놀랐네… 왜 갑자기 나오는 거야.




다행히 1등을 양보해줬더니 호감도가 많이 올랐다.

이 정도면 이득이지.

서바이벌 시험이 끝나고 축제와 동시에 성적이 발표되는데, 그러면 호감도가 더 오르려나?


일단 남다은과는 적당히 친구 관계만 유지해도 된다. 어차피 공략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고기 사러 온 거야?"


"그냥, 구경만 했어."


"아하. 그렇구나."

서 있는 남다은을 내버려 두고 고기를 보러 갔다.

아무래도 요리를 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니까… 훈제 고기나 즉석식품으로 골랐다.

아공간에 보관하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보관 기간이 늘어난다.

'일주일이면… 한 20kg 사야 하나?'

나 혼자만 먹을 것도 아닌데 좀 많이 사도 되겠지.


나는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육류 대부분을 카트에 담았다.


훈제오리나 훈제 삼겹살이 많길래 있는대로 집어들었다.


"어…?"


뒤에서 남다은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긴 이렇게 많이 담으면 놀라겠지.

내일부터 서바이벌 시험이라고 미리 말해줄 수도 없으니 그냥 당당하기로 했다.

"내가 식성이  좋아서."


막상 사고 나니까 양이  많았지만, 혹시라도 부족한 것보단 많은 게 낫다.

옆 코너에서 즉석 밥도 좀 챙겼다.


한국인은 밥심이니까.

"…그렇구나."

캠핑 도구를 보고도 저 변명을 믿는 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그렇다니까 넘어가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 호감도 : 48 ]
- [ 성욕 : 15 ]
- [ 식욕 : 85 ]
- [ 피로도 : 33 ]

현재 상태 : 얘도 사정이 있겠지.

그냥 넘어가 주는 거구나. 고맙네.

이제보니 남다은의 식욕이 85나 된다. 히로인들 성욕이 85일 때를 생각해보면 85가 얼마나 배고픈 건지 상상도 안 된다.

하루종일 굶은 건가?


"점심 먹었어? 푸드코트에서 밥이라도 같이 먹을래? 내가 살게."


정육점에서 2,000원짜리 고기를 들고 고민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약해진다.


밥 같이 먹는 다고 공략에 가까워지거나 하진 않겠지만, 밥 정도는 사줄  있다.

"괜찮아."


"친구끼리 밥 정도는 먹을 수 있잖아."

"… 그런가?"


부담을 느끼는 것 같길래 친구라는 말로 부담을 좀 완화해줬다.

쪽팔림은 배고픔을 이기진 못하는 법이니까.

"응. 마침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

1대1 결투 결승전이 끝나고도 계속 생각했던 의문점이 있었다.

남다은은 의문인 표정으로 내 뒤를 따라왔다.

캠핑 도구와 음식들은 1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텐트가 이렇게 비쌀 줄이야. 원 터지 자동 텐트라 그런가.

방독면 같은 쓰잘데기 없는 것도 많이 사서 예상외인 지출이 많았지만,  정도는 별 부담 없는 금액이다.

남다은은 뒤에서 내 계산을 말없이 바라봤다.


*




"괜찮다니까…."


"내가 배고파서 그래. 많이 먹자."

피자와 치킨, 빵 안에 고기가 들어 있는 베이크까지 종류별로  시켰다.

남다은은 괜찮다고 하지만 상태창의 식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엄청나게 시켜버렸다.


"고마워…."


음식은 바로 나왔고, 우리는 자리 잡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원래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남다은이 너무 열심히 먹어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냠. 냠. 냠. 냠.


아까 괜찮니마니 할 때는 언제고, 음식이 나오니까 손이 쉬지를 않는다.


'그냥 다 먹고 얘기하지 뭐.'

나도  수 없으니 피자를 한 조각 집어 먹었다.






*





"잘 먹었어."

"아니야. 뭘 이런 거 가지고."


결국, 둘이서 피자 두 판에 베이크 두 개를 깔끔하게 먹었다.


피자가 더럽게 커서  먹으니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는데, 남다은은 거뜬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여동생은 잘 보고 왔어?"

여동생을 보러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잘 보고 왔겠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어제 보고 왔어. 그러고 보니 할 얘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밥을 사줬더니 애가  고분고분해졌다. 그래도 여동생 얘기는 약간 꺼려하는 것 같다. 역시 저번에 여동생과 통화를 보여준 건 단순 변덕이었나?


아니면 다음에 문수린이랑 갔던 한식집을 데려가봐야겠다. 효과가 좋을 것 같다.


"할 얘기가 있긴 해."

나름대로 고민을 해봤다. 남다은이 힘을 숨기는 건 그렇다고 쳐도, 1년 뒤에   있는 스킬들을 벌써 익히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남다은이 그 정도로 힘을 숨기고 있었다면, 원작에서 주인공에게 패배할 리가 없다.

왜냐면 나는 이미 원작 주인공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년 더 성장한 남다은이 지는 건 말이 안된다.

하지만 실제로 남다은은 힘을 숨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애초에 원작 2학년의 남다은과 현재 남다은의 수준이 같다는 거다.

"너, 훈련  하고 있지?"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말도 안 되는 재능을 타고난 탓에 어린 나이에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자신이 강해져봤자 소용이 없는 걸 깨달은 거다.

어차피 자신은 길드의 도구가 될 운명이니까. 강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겠지.


그래서 아예 훈련을 멈춰버린 것이다. 그래서 2학년에 주인공에게 패배한거다.

"… 무슨 소리야?"


남다은은 갑작스러운 내 말에 당황한 듯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훈련해. 나는 다음 시험 때  강해질 거야. 다음에는 봐주지 않을거야."


남다은은 주인공에게 패배하고, 완전히 구원받을  까지 훈련을 멈춘다.

그러고도 엄청나게 강한 남다은이 지금부터 강해진다면, 무슨 결과가 생길지 상상도  간다.


그만큼 지금 시기의 1년은 중요하다.


"… 그래. 그때는 꼭 정정당당히 싸워서 이길 거야. 그리고 저번 일은 꼭 보답해줄게."

다행히 남다은은  말에 긍정해줬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아냐고 소리치면서 자리를 뛰쳐나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밥을 사준  꽤 크게 작용한 것 같다.

평소의 무표정 대신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아. 친구잖아. 나는 슬슬 가볼게. 다음에 보자."

"잘 가."

우리는 테이블 위를 정리하고 자리를 나왔다.


돌아가는 남다은의 모습은 처음보다 조금 힘 있어 보였다.






*


기숙사로 돌아와 다시 한번 물건들을 정리했다.


"뭐 이리 많이 샀어? 혼자 이걸 다 먹게?"


"남으면  나눠주고 하지 뭐."


릴리아나는 내가 산 고기들에 놀라서 다가왔다.


"삼겹살 맛있어 보이는데 조금 먹으면 안 돼?"


"… 그럴까. 그럼 냉장고에 넣어놓자."


릴리아나가 먹고싶다면 하나 정도 빼야지.

우리는 보통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서, 냉장고에 먹을  거의 없었다.

잠시만, 생각해보니 내가 일주일 동안 기숙사에 없는데, 내 기숙사로 배달이 오면 이상하잖아.


1학년 기숙사 전체가 텅텅 빌텐데  방에만 주문이 오면 그건 의심당할 수 밖에 없다.

"릴리아나. 너 이거 보고 미리 주문해놔."

"…? 이게 뭐야?"


"즉석식품들인데, 지금 시키면 내일 아침까지 올 거야. 내가 없는데 네가 여기로 배달음식을 시키면  되잖아. 일주일간은 이걸로 버텨."


"…… 역시 나도 데려가!"

릴리아나는 잠깐 표정이 굳었다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안 된다니까."


"네가 우리 가정에 하는  뭔데! 이 나쁜 새끼!"


"가정이 왜 나와! 애초에 가정이란 단어 쓰지 말라고 했지!"

저런 말을 들으면 진짜 무능력한 남자가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다.

"어쨌든, 갔다 와서 매일 놀아줄게. 기다리고 있어."

"진짜? 나 그럼 밖에 가서 놀고 싶어."


"… 알았어."


"야호! 좋아!"


기뻐서 만세를 부르고 있는 릴리아나를 보니, 빨리 밖에 집을 구해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축제 시즌에는 밖에서 돌아다녀도 될 거다.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얼굴에 마스크만 하나 쓰면 사람들도 못 알아보겠지. 아니면 선글라스를 끼던지 하면 된다.


룬의 결계로 릴리아나를  보호하면 지옥 특유의 특이한 마력이 들킬 걱정도 없다.

"집 잘 지키고 있어. 알았지?"

"알았어."

 릴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신…."


"응?"

"오늘 밤에… 일주일 치…."

릴리아나는 얼굴이 빨개진  내게 매달려왔다.


"…."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수린 누나와의 약속까지는 시간이 세 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릴리아나. 일단 이틀 치 먼저 정산하자."


"으응? 우읍…."


저녁 약속은 최대한 빨리 끝내고 와야겠네.



*


"금방 갔다 올게. 기다리고 있어."

"네엣… 주인님…."


숨을 헐떡이는 릴리아나를 침대에 눕혀놓고 문수린과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번 와봤으니 이제 당황하지 않았다.

"문수린 씨 일행인데요."


"아, 이호연 님. 이 쪽으로 오시죠."


룸으로 들어가자, 문수린이 앉아서  반겼다.

"안녕하세요. 수린 누나."

나는 저번에 맛있게 먹었던 기억 덕에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았다.

"어서 와. 1대1 결투 잘 봤어. 아쉽더라."

문수린도 웃으며 날 반겼다.


"에이. 2등이면 잘한 거죠 뭐."

"후후. 그렇긴 하지. 음식은 곧 나올거야. 밥 먹기 전에 먼저 천년 설삼을 보여줄게."

문수린은 옆에 있던 박스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열어봐."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박스를 열었다.


"와아…."

박스 안에는 푸른빛 마나를 뿜어내는 설삼이 담겨있었다.

"감사합니다. 수린 누나. 진짜  쓸게요."


"아니야. 네 덕분에 내 일도 많이 편해졌어. 이 빚은 꼭 갚을게."

"…?"

내가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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