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52화. 표창 수여식
띠링-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왔다.
루미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
분위기 타서 더 흥분한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앞으로 또 저럴 것 같아서 걱정이다. 히로인들이 다 저러면 진짜 감당 못 하는데 이거….
"아! 저거 씨발! 죽이라고! 죽여! 아악!"
거실에 들어가자마자 방 안에서 쌍욕을 하고 있는 릴리아나의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오랜만에 방송하는 모습을 보니 반갑네.
다시 돈이 복사되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잠시만요! 배달 온 것 같은데? 맛있는 냄새가 나."
킁킁.
릴리아나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안녕? 나 왔어."
난 자연스럽게 릴리아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엥? 뭐야. 배달온 줄 알았는데 왜 네가 온 거야?"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냐? 오늘은 치킨 안 사 왔는데."
"이상하네? 분명 좋은 냄새가 났는데…."
킁킁
네가 개냐고. 왜 자꾸 냄새를 맡니.
서큐버스를 바라진 않을 테니 적어도 인간 행세는 해주면 안 될까?
"잠시만."
냄새를 맡던 릴리아나가 내게 점점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팔을 붙잡고 자기 코에 가져갔다.
"야, 뭐해."
"좋은 냄새…."
아, 맞다. 나 몸에서 달콤한 향 나지.
근데 너 개가 아니라 서큐버스잖아.
다른 사람들은 내 몸에서 냄새 난다고 한 번도 안 하던데.
그리고 저번에 왔을 때는 가만히 있었잖아.
"너 저번에 나랑 얘기할 때는 괜찮았잖아."
"그때는 치킨 냄새에 묻혀서 안 났어. 킁킁."
"…."
치킨한테 지는 달콤한 냄새라니. 이거 사실 쓰레기 능력인가?
"좋은 냄새 나는 스킬이 있어서 그래. 그만해."
"너한테 딱 맞는 변태 같은 스킬이네. 아, 맞다. 그리고 나 내일부터 낮에 다시 따라다녀도 돼?"
"갑자기 왜?"
"이제 열심히 살기로 했는데 집에 가만히 있다 보면 또 자위할 것 같아서."
제발 말 좀 가려서 했으면 좋겠다.
"… 나 따라오면 섹스 같은 거 볼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오히려 성욕이 올라오는 거 아니야?"
"괘, 괜찮거든? 내가 너처럼 여자만 보면 반사적으로 발정하는 짐승인 줄 알아?"
"…."
오늘만은 반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건 다 내가 주인공인 탓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그게 아니면 아싸인 내가 여자랑 섹스 중에 분위기를 탄다니, 말이 안 되잖아.
"그래. 마음대로 해. 대신 난리 치면 안 된다?"
"응응. 알았어."
"난 샤워하고 잘 거니까 너도 적당히 하다가 쉬어."
난 대충 대답하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릴리아나는 방에 들어가 방송을 종료하고 거실로 나왔다.
"으으음. 그래도 내일부턴 좀 덜 심심하겠네!"
솨아아-
이호연의 샤워 소리를 배경음 삼아 힘을 빼고 소파에 몸을 맡겼다.
"의외로 할 게 없단 말이야. 여기는."
처음에는 재밌는 것들 천지였다. 신선함과 새로움이 가득한 세상이었지만…
여긴 너무나도 인간 세상을 잘 표현했다.
지옥에서 릴리아나가 즐기던 미디어들은 인간 세상을 참 좋게 꾸몄다.
길거리엔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한 트럭이고, 약한 마인이라도 인간 한 명 잡는 순간 노예로 만들 수 있는 행복한 세상.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더럽게 못생긴 새끼들이 많았고, 치안은 엄청나게 뛰어났다.
설상가상으로 릴리아나의 힘도 약해져서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행히 방구석에서 게임을 하는 건 재밌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드라마를 봐도 다 못생긴 놈들뿐이었다. 지옥에선 마법을 이용해 엄청나게 잘생기고 예쁜 인간들로 드라마를 만든다.
그 기억과 비교하면 현실의 인간들은 대부분이 잘생긴 고블린이었다.
"아니지, 딱 한 명 빼고."
릴리아나의 계약자 이호연.
지옥에서 마법을 사용해 만든 인간보다 잘생긴 인간.
게다가 슬쩍 봤을 때 자지도 엄청났다. 만약 나한테 들어온다면 끝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의심일 정도였다.
릴리아나는 손을 최대한 일자로 펴서 배에 갖다 댔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사이즈가 안 맞아.
끼익-
그때, 이호연이 샤워실에서 나와서 머리를 툭툭 털면서 내게 다가왔다.
"뭐하냐? 방송 끝냈어?"
두근.
릴리아나는 갑자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변태 새끼야! 옷 좀 입고 다녀!"
"아니, 다 벗은 것도 아니고 내 집에서 상의만 벗는 게 뭐가 문젠데."
"몰라! 나 방에 들어갈 거야!"
쾅!
문을 닫은 릴리아나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뭐야, 나 왜 이래! 미친년 아니야?'
샤워를 끝내고 나온 이호연의 잘생긴 얼굴, 그리고 동시에 풍겨온 달콤한 향기.
그 순간 릴리아나는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시발! 미친년! 저 변태 새끼가 나한테 또 무슨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야! 으악!"
쿵쿵! 괜히 옆에 있는 벽을 때렸다.
"시끄러워! 잠 좀 자자! 미친 서큐버스야!"
"닥쳐! 변태 새끼야!"
릴리아나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
오늘은 임솔교수의 마법사 특화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마 이론 수업 할당량은 채웠으니 또 실습하면서 피드백을 받는 형식일 것이다.
- 와, 밖에 진짜 오랜만이야!
"축하한다. 바깥 공기 좀 쐬면서 마음을 안정시켜보려무나."
- 알겠어. 근데 말투 왜 그따구임? 극혐인데.
"응. 네 말투가 더 극혐이야."
오랜만에 밖에 데려온 릴리아나를 목에 걸고 교정을 걸었다.
평소랑 똑같이 등교하면 사람이 많아서 릴리아나와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그래서 조금 일찍 등교했더니, 수업동 강의실에 사람이 얼마 없었다.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서 릴리아나를 관찰했다.
붉은 보석이 박혀있는 실버 체인 목걸이.
참 예뻤다. 릴리아나가 예뻐서 이것도 예쁘게 나온 건가?
목걸이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관찰했다.
- 아, 뭐 하는데! 어지럽잖아!
"이걸 움직이면 너도 어지러워?"
- 그건 아닌데 시야가 움직인다고, 멍청아!
"아하."
곱게 릴리아나를 목에 걸었다.
이제 뭐 하지? 에브리데이라도 보고 있을까.
"이, 이호연!"
"응?"
마침 등교했는지, 루시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뒤에는 루미가 서 있었다.
"자! 이거 먹어!"
루시가 내미는 손 위에 무언가 올려져 있었다.
쿠키가 가득 담긴 귀여운 분홍색 유리병이다.
"웬 쿠키야?"
"그, 그냥 원래부터 취미로 자주 만들어! 어제 좀 많이 만들어서 나눠주려고 가져왔지!"
뭔 개소리지 이게.
루시는 집에서 쿠키를 만들 시간에 나가서 뛰어다닐 애인데.
"별 의미 없이 주는 거니까 그냥 먹어봐!"
그러면서 반짝반짝 눈빛을 보낸다.
- 쿠키 되게 예뻐 보이는데? 남겨서 나도 줘!
릴리아나 말대로 일단 겉보기는 이쁘긴 하다.
유리병을 열고 쿠키를 꺼내서 입에 가져갔다.
'씨발.'
쿠키에서 어떻게 떫은맛이 나는 거지? 쿠키에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루시는 초롱초롱 내 맛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표정 관리를 했다.
"마, 맛있는데? 뭐야! 의외네 루시?"
"흐흠! 내가 못하는 게 어딨겠어!"
루시는 심하게 좋아하는 티를 내고있다.
일부러 맛 없는걸 가져오는 장난인가 했는데, 그러려고 가져온 건 아닌 모양이다.
'얘는 얼마나 음식을 안 만들어봤으면 자기가 먹어보지도 않고 가져오냐….'
루시가 양 손을 이리저리 비비면서 좋아하고 있다.
귀여우니까 봐준다.
자세히 보니 손에 반창고도 여러 개 붙어있다.
도대체 쿠키를 굽는데 무슨 짓을 했길래 손에 상처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심히 한 건 알 것 같다.
날 향한 눈에 호의가 가득 깃들어있다. 물론 이렇게 대놓고 호감을 표현하면 기쁘긴한데…
그런 루시를 보고있으면 양심이 찔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내가 쿠키를 받았다며 기뻐하는 루시 뒤에서 혀를 내밀고 입술을 핥고 있는 루미가 눈웃음을 내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걸리면 좆되는거 아니야 이거?
*
마법사 특화 수업을 위해 훈련장으로 모였다.
"안녕. 다 모였으면 실습 시작하자."
임솔은 오늘도 귀찮은 표정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듣자 하니 나 때문에 연구 거리가 많아져서 좋긴 한데, 귀찮은 일도 많아졌다고 한다.
안 그래도 오늘 찾아가려 했는데, 가서 좋은 아이디어나 전해줘야지.
그럼 기분이 좀 풀릴 거다.
"사로 하나씩 잡고 서서 실습하고 있어. 내가 한 명씩 찾아갈게."
임솔은 맨 앞 사로부터 피드백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맨 마지막 사로에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 자리가 임솔 교수랑 얘기하기 젤 편할 테니까.
"으음, 구현이 너무 느려. 그 속도로 마법진을 그리면 이미 배에 구멍이 나 있을 거야."
"죄, 죄송합니다!"
임솔에게 지적을 당하는 남학생은 얼굴이 붉어져서 기뻐 보였다.
참 취향 특이한 놈들 많네. 여자한테 매도당하면서 기뻐하다니.
다시 눈앞의 사로로 눈을 돌렸다. 그 때 내 목걸이에서 말 소리가 들렸다.
- 내 생각엔 말이야. 저 가슴 큰 여자애가 널 암살하려는 것 같아. 쿠키에서 독약 맛이 났어.
"아니라니까."
- 너도 먹어봤으면 알잖아! 네가 힘들게 마인한테 구해줬는데도 고마움을 모르고 널 죽이려는 게 분명해!
"너나 좀 고마움을 알아라. 제발."
처음에 양아치들한테서 구해준 걸 벌써 까먹은 모양이다.
임솔은 아직도 앞쪽이었다. 내 차례까진 아직 많이 남았다. 그동안 나도 무언가 연습을 해야 했다.
- 근데 사로에서 무슨 연습을 하려고? 너 마투술사 아니었어?
"마투술사? 그게 뭔데?"
- 몸을 강화해서 싸우는 미친 마법사들 있잖아.
"나한테 미쳤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근데 릴리아나가 오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사실 안전하게 싸운답시고 마법사를 골라놓고, 요즘 근접전만 하는 느낌이다.
[전투 감각]이 켜지면 나도 모르게 가장 효율적인 루트로 움직이다 보니, 근접해서 싸우는 경우가 생긴다.
아직까지 목숨이 위험할 만 한 싸움이라고 해봤자 펠릭스 정도였지만, 앞으로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더 개 같은 새끼들이 많이 나온다.
그때도 앞에서 깝죽거리다간 죽창 맞고 훅 가기 십상이다.
'마법의 수준을 더 올리면 해결되려나?'
내 마법의 장점은 빠른 발현이다. 가진 마나량 자체는 낮기에 한 발 한발을 빠르게 사용해서 속도전으로 가야 한다.
그럼 거기에 딱 맞는 스킬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릴리아나. 너는 좀 전투에 효율적인 지옥만의 마법 아는 거 없냐?"
- 사실 서큐버스는 전투력이 높은 종족은 아니여서, 딱히 없네. 왜 그러는데?
얘는 한결같이 돈 복사 빼고는 도움이 안 되네.
"그냥, 전투 방식에 좀 변화를 주고 싶어서. 멀리서 안전하게 싸우려는데 효율적인 방법이 안 떠오르네."
- 이건 어때? 너 전에 보니까 매혹 마법도 바로 익히던데, 그냥 마법을 많이 익혀서 대응할 방법 자체를 늘리는 거지.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한데…. 스킬 창 한계도 있고. 숙련도 문제도 있어서."
스킬 개수에 제한은 없지만, 스킬이 많아질수록 다른 스킬을 얻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스킬은 반복할수록 숙련도가 늘어난다.
보이진 않지만 점점 숙련도가 올라가면서 마법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좋은 효율을 내려면 한 분야에 특화하는 편이 낫다.
내가 스킬을 함부로 익히지 않는 이유다.
언제 필요한 스킬이 생길지 모르니, 칸을 아껴두는 것이다.
- 그럼 뭐 어떡하란 거야! 그냥 잘하는 마투술이나 하지 무슨 마법을 하겠다는 거야.
"아니, 나 마투술사 아니라니까?"
- 그럼 마투법사야? 마투술을 하면서 동시에 마법까지 쓰는 애들 있거든.
"마투법사는 또 뭔… 응?"
'잠시만, 마법을 동시에 여러 개 쓰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마법을 쓰는 과정은 간단하다.
마법을 가동하기 위한 마법진을 인지하고, 그걸 마력으로 한 번에 뽑아냄과 동시에 마력을 불어넣어 마법을 발현한다.
이 과정을 하는 데에 큰 집중도 필요하지 않고, 숨 쉬듯이 해낼 수 있다.
그럼 한 번에 두 개의 마법진을 펼치는 일도 가능할 거 같은데?
"일단 해봐야겠어."
고민 없이 실행으로 옮겼다.
오른쪽에는 화염구.
왼쪽에는 화염창을 뽑아냈다.
화르륵-
하지만 곧 화염창이 기세를 잃고 형태가 무너졌다.
"안 되네?"
뭐가 문제지? 분명 마법진은 문제없이 만들어졌는데?
"뭐야, 연습하라니까 연습은 안 하고 농땡이 피는거야? 응?"
내 뒤에서 임솔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지 미소를 짓고 계신다.
"아, 교수님. 한 번에 두 가지 마법을 사용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돼서요."
"더블캐스팅? 그거 쉽지 않을걸?"
임솔이 손 위에 작은 소용돌이와 물방울을 동시에 펼쳤다.
"오! 그렇게 하는 거구나! 스킬이 따로 있는 줄은 몰랐어요."
"좀 팁을 주자면, 몸에 흐르는 마나를 정확히 마법에 필요한 만큼만 떼와서 마법진을 그려야 해. 안 그러면 한 쪽으로 흐르려는 마나의 성질 때문에 마법진이 만들어지질 않거든."
확실히, 아까 마법진이 갑자기 부서지는 듯한 감각이 있었는데, 이런 이유였구나.
그때 임솔의 뒤에서 한 남생도의 억울한 시선이 내게 꽂힌다.
'나는 대충 지적하고 넘어갔는데 왜 너는 그렇게 좋은 말을 듣고 있는 거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친구야 미안하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미리 느껴봐라.
"듣고 있지? 더블 캐스팅은 내가 나중에 다시 알려줄게. 어려운 스킬이거든."
임솔 교수는 당연히 신경도 안 쓰고 내게만 말을 걸어왔다.
"감사합니다. 근데 다시 한 번만 해볼게요."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블 캐스팅은 쓸모가 많은 만큼 어려워서 나도 시간이 꽤 오래…."
화르륵-!
내 양손에 화염구와 화염창이 만들어졌다.
임솔은 말을 하다가 내 양손을 보고 그대로 멈췄다.
"역시 교수님이 마법에 관해선 1타 강사네요. 앞으로 더 자주 찾아갈게요."
잘 안 풀리던 것도 임솔의 한마디면 술술 풀리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 마법을 배우러 갔는데 성교육도 해준다.
이 시대의 참교육자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응? 에에엥? 했네?"
"교수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음… 그래.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야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하지."
다행히 얼이 나갔던 임솔은 금방 자기 텐션을 찾았다.
근데 요즘 계속 저런 말을 하는게 약간 무섭다.
"그리고 오늘 수업이 다 끝나고 찾아가도 될까요? 좋은 연구 거리가 있는데."
"그래, 아 맞다. 내일 표창 수여식인 거 알지?"
"네? 표창 수여식이요?"
"응. 내일 오전에 빅토리아 아카데미 대강당에서 너랑 루시 표창 수여식이야."
아니, 내일이 표창 수여식인데 그걸 지금 말해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