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18화. 임솔 교수와 밀회
『히로인과의 성적인 스킨십이 확인되었습니다. 히로인 공략 시스템의 보상이 지급됩니다!』
『장비 상태창 오픈!』
이게 뭐지? 내 눈앞에 나타난 문장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봤지만, 너무 뜬금없었다.
히로인 공략시스템에 보상시스템이 있었다니, 왜 말을 안 해주는 거야.
참 불친절한 게임이다.
"장비 상태창은 또 뭐야?"
방 안에 장비로 취급될 만 한 물품이 있나 둘러봤다.
마침 창문에 방범석이 달려있었다.
창문에 달려있는 방범석을 바라보면서 '장비상태창'이라고 되뇌었다.
────[ 방범석 ]────
▶ 등급 : 하
▶ 마력석에 약간의 마나술식을 첨가해서 만든 돌이다.
▶ 신체 정보가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 다가오면 경보가 울린다.
────────────
"오 뭐야, 좋은데?"
장비의 능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능력인 것 같다.
게임에서야 볼 수 있었지만, 현실이 되고 나서는 당연히 못 보는 줄 알았는데 괜히 반가웠다.
69자세 한번 했다고 이렇게 좋은 능력을 갑자기 얻게 된다니, 훈련이고 나발이고 그냥 히로인들하고 섹스만 하러 다니는 게 제일 강해지는 방법 아니야 이거?
어쨌든 이런 게 있는걸 알았으니,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겠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빨아먹을 수 있는 꿀은 다 빨아먹어야 한다.
*
월요일 아침. 오늘은 특히 바빴다.
아침에 슬쩍 기숙사로 들어와 씻은 후에 생도복을 챙겨입고 나왔다. 다행히 누구한테 들키진 않은 것 같다.
"좋은 아침~!"
남자 기숙사를 나와서 걷고 있는데 김영한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피곤한 얼굴인데? 혹시 금요일날 사고 후유증 같은 건 아니지?"
"어, 딱히 아무것도 아니야."
금발 양아치 주제에 나를 걱정해주다니, 루미랑 서로 빨아주느라 피곤하다고 할 순 없으니 대충 얼버무렸다.
둘이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면서 1학년 수업동에 도착했다.
김영한은 강의실에 오자마자 다른 생도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고, 나는 루미가 잘 등교했나 주변을 둘러봤다.
"루미, 왜 그래? 오늘따라 얼이 빠져있어."
"응. 응? 아니, 아무것도? 헤헤."
"얼굴도 약간 붉은데, 혹시 몸살이야? 아니면 그 날?"
"응… 쉿."
루시와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니 상태는 괜찮다. 몸살이라도 난건지 얼굴이 빨갛긴하지만 문제가 있어보이진 않는다.
★ 히로인 상태창
[루미]
- [ 호감도 : 65 ]
- [ 성욕 : 57 ]
- [ 식욕 : 30 ]
- [ 피로도 : 45 ]
"뭐야,"
호감도랑 성욕이 말도 안 되게 올랐다. 호감도는 그렇다 쳐도 성욕이 왜 오른 거지?
나랑 물고 빤 게 기억에 없으면 성욕도 안 올라야 되는 거 아닌가? 아니면 그냥 몸이 기억한다. 뭐 그런 건가.
별문제는 없다. 올라가면 좋은 거니까 상관없겠지.
드르륵-
"안녕하세요. 여러분~"
화사한 핑크 블라우스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교수가 강의실 문을 열고 등장했다.
"와, 강효린이 이론 교수로 왔다고?"
"강효린이 누군데?"
"강효린 박사 몰라?"
솔직히 나도 강효린은 잘 모른다.
이론 교수 강효린 박사. 뭐, 던전과 몬스터연구, 그리고 헌터학 분야에서 꽤 유명하다는 건 아는데, 그렇게 비중이 큰 인물은 아니다.
"올해 신입생들 수준이 엄청나다는데, 눈빛부터 무시무시하네요~."
강효린은 신난 듯이 생도들에게 프린트를 나눠주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은 현대헌터학 첫 수업인 만큼, 여러분의 수준 측정을 위해 간단한 테스트를 준비했어요. 평가에 반영할 거니까 최선을 다해주세요~."
시험지는 문제지와 답안지로 나뉘어있었는데, 답안을 답안지에 마력으로 새기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도 있구나.'
게임에서 답안을 직접 써본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었다.
경망스러운 교수와는 달리 문제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 아니 수준이 높다기보단 더럽게 어려웠다.
참고서를 읽을 때 오른쪽 구석에 작게 [참고하세요]라고 쓰여 있는 부분만 긁어서 낸 문제 같았다.
[1. 2032년 1월 16일에 도쿄에서 첫 발견 됐으며 인간형 모습에 머리 위로 솟아난 4개의 뿔이 특징인 몬스터는?]
'후미타케 오니'
물론 문제의 난이도는 나랑 관련 없는 이야기였다. 내 특전인 [기억보완능력]을 적극 활용해 이미 현대헌터학의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 관련 논문까지 1회 독을 끝냈다.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읽기만 하면 되는 거라서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답안을 다 작성하고 나서 슬쩍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수석인 엘리스는 술술 문제를 풀고 있지만, 다른 학생들은 모두 표정이 어두웠다. 수준 체크라면서 이런 문제를 내고 평가에 반영한다고 하니 똥줄이 타겠지.
남다은은 풀 생각이 없는지 엎드려있고, 루시와 루미는 끙끙대며 첫 문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몇 개 틀려야 하나?'
일부러 몇 개 틀릴까 생각하긴 했지만, 그냥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어차피 장학금도 받아야 한다.
테스트를 끝낸 후, 학생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던 강효린이 긴급한 전화를 받더니 사정이 생겼다고 오후 수업을 미뤄버렸다.
갑자기 생긴 빈 시간에 뭘 할까. 생각하다가 훈련실에 가기로 했다.
[개안]을 확인해야 한다. 원래 주말에 해야했는데 계획과 달리 루미랑 자버려서 실행에 옮기질 못했다.
훈련동에 도착했다.
3층 마나훈련실. 저번에 갔던 프라이빗룸이 아닌 트레이닝 룸으로 들어갔다.
트레이닝 룸에선 여러 가지 커리큘럼으로 실전 같은 훈련을 할 수 있다.
[훈련을 선택해 주십시오]
"마법 회피 기동 훈련 1단계부터."
회피 기동 훈련은 마법사보단 근접계열 각성자가 하는 훈련이다. 하지만 내가 실험하고 싶은 건 개안을 사용한 내 회피 기동 능력이다.
[100%]
천장 홀로그램에 내 남은 체력 퍼센트가 표시된다. 마법을 회피하지 못하고 몸에 직격당하면 위의 체력 포인트가 떨어진다. 체력이 0이 되면 훈련종료다.
[마법 회피 기동훈련 1단계. 시작하겠습니다]
전방에서 형형색색의 마법들이 쇄도해온다.
'개안.'
지잉-
[개안]을 발동함과 동시에 시야가 넓어진다. 나에게 날아오는 마법의 '길'이 보인다.
"할만한데?"
1단계는 루시와 했던 대련보다 쉬운 난이도였다. 날아오는 마법들은 형태가 단순한 원소계 마법들이었고, 속도는 좀 빨랐지만 경로가 직선이었다.
[2단계. 시작하겠습니다.]
*
[축하합니다! 5단계 72초. 개인 신기록입니다! 랭킹에 남길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와, 씨. 뒤지겠네."
2단계까지는 할만했다. 1단계에서 속도만 빨라진 마법이 날아왔다.
하지만 3단계부터 속박, 매혹,마비 등 상태 이상 마법들이 섞여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4단계는 나오는 양이 두 배 이상 많아졌다.
5단계에선 마법의 양,속도, 종류까지 늘어났다. 결국, 72초 만에 체력 포인트가 0이 되었다.
"랭킹이 뭐지?"
게임에서 안 나왔던 시스템들이 뭐 이리 많은지 모르겠네.
[HYL]
평범하게 이호연의 이니셜을 입력하고 등록을 했다.
[앞으로 HYL이라는 이름으로 랭킹에 남겨집니다!]
[회피 기동훈련 22위에 랭크되셨습니다. 높은 등수를 위해 노력합시다!]
"회피 기동 랭킹 보여줘."
--------------------------------
회피 기동훈련 RANK 1. 부회장
2. 서도일
:
:
:
22. HYL
'22등? 나쁘지 않네.'
처음 시도해서 22등이다. 나중에 반복적으로 훈련하면 등수는 언제든지 올릴 수 있다.
이니셜을 남기고 나서야 생각난 거지만, 덜컥 1위라도 했다가 쓸데없는 주목을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아, 근데 뭔가 아쉽네."
[개안]의 활용은 회피 기동 말고도 무궁무진할 거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내 머리에선 획기적인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어디서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없나……?
"어?"
그러고 보니 이 분야 전문가를 알고 있는데 나 혼자 끙끙댈 필요가 없다.
임솔 교수한테 물어보면 될 일이다. 뭔가 힌트를 줄지도 모른다.
실제로 만나본 입장에서 못 미덥긴 하지만, 일단은 마법 분야 전문가니까.
훈련을 종료하고 훈련소를 나왔다.
회피 기동훈련 때문에 땀을 많이 흘렸다. 일단 샤워를 하고 나서 여분의 생도복으로 갈아입고 임솔의 연구실로 향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마법 교수들은 대부분 개인 연구실을 가지고 있다.
마법 관련 교수들이 모인 건물 마도관. 그 거대한 건물의 2층 전체가 임솔 교수의 연구실이다.
기숙사에서 1학년 수업동을 지나서 20분 정도 걸어가자 마도관의 모습이 보였다.
게임에서만 보던 건물을 실제로 들어가려니 의외로 긴장됐다.
현실에서도 교수를 찾아가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찾아갈 줄이야.
마도관은 총 17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건물답게 거대하고 화려한 외향이다.
이 건물에서 50명이 넘는 마법 관련 교수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1층에는 로비가 있다.
그러면 16개층을 50명이 넘는 교수들이 나누어 쓴다는 건데, 그중 한 층계를 통째로 임솔 교수가 쓰고 있다.
마법계에서 임솔 교수의 입지를 알 수 있는 설정이었다.
마도관의 입구로 들어가자, 큰 규모의 편의점과 카페, 베이커리 등 편의시설이 보였고 가운데에는 로비, 로비 양옆으로 엘리베이터들이 늘어서 있었다.
로비를 지키고 있는 안내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2층에 계신 임솔 교수님께 용무가 있어서 왔는데요."
"임솔 교수님은 명단에 계신 분들 빼고는 절대 출입금지라고 항상 당부하시거든요. 혹시 약속을 잡고 오신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나도 약속을 잡고 오고 싶었지만, 연구를 돕니마니 해놓고 정작 연락처를 안 받아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게 다 미인계에 빠진 탓이다.
얼이 빠진 상태로 기숙사로 돌아오느라 번호 따는 것도 까먹었다.
"혹시 '이호연'이라는 사람이 오면 들여보내라는 말은 없었나요?"
"딱히 언질은 없으셨어요. 명단도 학장님하고 이사장님만 등록돼있어요."
"그래도 교수님하고 연락망은 있지 않나요? 임솔 교수님께 '이호연'이라는 생도가 찾아왔다고 연락 좀 해주시겠어요?"
"그게, 교수님이 이상한 사람이 찾아와도 연락하지 말라고 하셔서…."
"아니, 이상한 사람 아니라니까요. 제가 다 책임질 테니까 이호연이 찾아왔다고 연락 좀 해주세요."
진짜 답답한 상황이다. 아니 그 교수는 뭔데 이렇게 폐쇄적으로 사는 거야. 스토커라도 있나? 스토커는 문수린한테 생기는데.
"쯧쯧, 저렇게 막무가내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저러다가 쟤도 퇴학당해야 정신을 차리지."
안내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방향으로 눈을 흘기자, 편의점 앞 벤치에서 열댓 명의 남자 무리가 손에 과자 한 봉지씩을 들고 앉아있었다. 중심에 덩치 큰 남자는 케이크 상자 같은 걸 양손에 들고 있었다. 그 무리의 중심 같다.
그 꼴이 어이없고 웃겨서 안내원에게 물어봤다.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마법연구부 소속 학생분들이에요."
"마법연구부?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마도관에서 단체로 과자를 들고 서 있는 거예요? 과자 파티라도 하나?"
"그게 실은…, 임솔 교수님이 매주 한 번 정도 마도관 편의점이랑 카페에서 초코케이크하고 초코과자들을 엄청 사가시거든요."
"…초코케이크랑 초코과자요?"
"네. 근데 언제부턴가 저분들이 그걸 알고선 저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교수님이 초콜릿을 사러 나오면 준비해놓은 과자를 바치면서 저번 주 동아리 연구 결과를 봐달라고 해요."
"…."
"그럼 임솔 교수님은 대충 훑어보고 한 두 마디 정도 평을 해주고 과자를 챙겨서 돌아가시고요."
무언가 많은 말을 들었는데 뇌의 이해능력이 따라가질 못한다.
이상한 설정 풀지말라고.
"아니, 교수님이 언제 나올 줄 알고 기다려요?"
"제가 알기론 6시간씩 4교대로 지키고 있다고 해요."
뭐지? 마법연구부가 아니라 [할 일없는 새끼들 여기 붙어라 부]인가? 아카데미 생도가 4교대로 마도관을 지키고 있는 게 뭔 개소리야 대체.
임솔 교수가 수업장까지 걸어가기 귀찮아서 순간 이동마법으로 수업을 하러 간다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 그걸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그럼 퇴학은 또 무슨 얘긴데요?"
"작년, 이 맘 때에도, 신입생들이 임솔 교수님의 실물을 보겠다고 한 달 내내 매일 찾아왔거든요. 계속 찾아오면 퇴학시킨다고 경고를 했는데도 계속 찾아오던 학생 한 명이 퇴학당했어요."
"…무서운 분이셨네."
"그래도 비상 연락 넣어드려요?"
"네. 제가 책임질 테니까 넣어주세요."
안내원은 끝까지 불안해하면서 비상연락을 넣었다.
후,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 설마 이래놓고 너 누구냐고 내쫓진 않겠지? 괜히 불안하네.
"거기, 너. 뭐 하는 짓이지?"
아까 무리의 중심에 있던 덩치 큰 대장 놈이 말을 걸어왔다.
"왜 그러세요?"
할 일 없는 새끼들하고 영양가 있는 대화가 오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가슴에 달린 브로치를 보니 선배라서 일단은 존대를 해줬다.
"원래 어중이떠중이들이 자기 주제를 모르는 법이지."
덩치 큰 사내가 위압적인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놀랍게도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신입생이군. 내가 모르는 얼굴인 걸 보니 유명한 집안 자식도 아니고, 어떻게든 임솔 교수님이랑 친해져 보려는 건가?"
"…."
"아, 그럼 내 이름도 모르겠군. 마법연구부의 부장 김현도다. 설마 마법연구부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 가장 유명한 동아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야."
김현도라는 남자는 뒤로 돌면서 마법연구부라고 크게 쓰여 있는 로브를 보여준다.
자신감 있는 얼굴이 포인트다.
'할 짓 없는 새끼가 아니라 그냥 병신이었네.'
이제는 어디까지 뇌절을 하나 궁금해졌다.
"그니까, 임솔 교수님한테 집적거리지 말라는 말이다. 임솔 교수님은 우리 마법연구부의 담당 교수님이시다. 혹시라도 너 때문에 우리 연구 결과를 보시는 데 방해가 되면 어쩌려고…."
디리링-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여성 한 명이 내렸다.
김현도는 로브를 쓴 여성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서는 소리를 질렀다.
저 푸른색 로브는 분명히 저번에 봤던 임솔 교수의 로브였다.
임솔 교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는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