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결전(3)
* * *
이시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힘을 한 번에 방출해서 지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방금 전의 한 수는 기린의 정수를 흡수하고 번개를 뿜은 것이었다.
파괴력은 과연 절륜했다.
힘을 실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중격에 해당하는 마수들이 많이 분포한 쪽으로 향했다.
마침 상격에 해당하는 마수도 있어서 한번 번개를 뿜어봤는데 이 정도다.
‘문제는 내가 예상한 범위보다 훨씬 더 넓게 퍼진 것인데.’
이시우는 주변을 훑었다. 원래대로라면 반경 50m를 태웠어야 할 번개가 반경 100m를 통째로 태웠다.
‘그래도 마나는 문제없다.’
임나연이 가진 대해의 마나가 내 마나를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우는 전방을 봤다.
상격에 해당하는 마수. 여덟 개의 팔을 가진 마수가 팔 세 쪽을 잃은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계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이시우는 잠깐 마수를 바라보다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검성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놈은 내가 맡겠다.”
“……그러실래요?”
이시우는 굳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면 한종우도 힘겹게 이길 수 있는 수준이다.
이시우의 입장에서는 검으로 목을 내리치면 바로 죽일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일전에 삼신기 중 하나인 천총운검을 날려 먹은 게 아직까지 미안해서.
“그나저나 강해…졌구나.”
검성이 이시우를 힐끔 보며 말했다.
“완전히 상격에 들었다고 들었는데, 직접 보니 상상 이상이로군. 이시우, 너는 아마 내가 아마노무라쿠모의 검(??雲?)을 들었을 때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야.”
도대체 뭐라는 거지.
자기 자신을 높게 쳐주는 것도 정도가 있다. 이시우는 잠깐 그를 보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검에 너무 의존해서 자기 기량까지 떨어진 위인이다.
그만큼 천총운검을 잃은 것이 타격이 크겠지. 물론 그때로 돌아가도 이시우는 망설임 없이 천총운검을 빼앗았겠지만.
이시우는 눈을 돌렸다. 한쪽에서 윤채린이 날뛰고 있었다.
각인.
혹은 개념. 윤채린은 그것을 개화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새겨진 개념은 파천무.
그것은 이시우도 들어봤던 개념이다. 윤채린으로 플레이했을 때는 얻어보지 못했던 희귀한 각인.
“흐읍!”
쿵!
윤채린이 땅을 박찼다. 그녀의 눈앞에는 20m가 넘는 마수가 있었다. 상격의 마수였다.
뱀을 닮은 마수는 먹잇감을 발견한듯한 움직임으로 윤채린을 향해 다가갔다.
“마수 따위가 어딜 천마님한테 덤비는 거야!”
윤채린의 손아귀에 마기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주변의 있던 마수들의 마기가 응집된다.
이런 곳에서 윤채린은 무적이나 다름없다.
‘이 정도면 쓸 수 있겠는데.’
마수는 살아 숨을 쉬는데도 미약한 마기를 뿜어낸다. 그리고 중격에 도달한 마수들은 각기 특별한 능력을 쓴다. 그리고 그 능력들은 모두 마기를 뿜어낸다.
뿐만 아니다.
마수는 죽어서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기를 남긴다.
천상의 마.
고오오오오오오──!
마기가 한없이 이곳에 넘쳐 흐르니, 그녀에게 공급되는 마기는 비유가 아니라 한계가 없었다.
윤채린은 주변의 마기를 모조리 끌어모았다.
우우우우우우웅──!
윤채린은 이 자세를 잡았다. 양손을 단전 위에다가 모았다. 칠흑의 바퀴가 그녀의 손아귀에 머물렀다.
천마신결(????)
암천파신륜(?????)
그리고 칠흑의 륜이 터지면서 주변의 마수들을 모조리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치 블랙홀처럼, 윤채린을 기점으로 주변의 마수들이 그녀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한계까지 응축한 칠흑의 바퀴가 폭사하듯 터져나가며,
주변의 마수들을 몰살시켰다.
윤승하는 그 장면을 보며, 조용히 정령들을 나열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그녀가 새로이 새긴 각인을 풀었다.
율령법(?).
윤승하는 생각했다. 과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윤채린은 근접박투에 능하다.
상격에 이제 막 들었으면서도 상격 끝자락에 있는 존재들과 싸워도 절반 이상의 승산을 먹고 들어갈 정도다.
천마신결을 익히고, 역대 천마라 불리는 망령들이 달라붙었다. 거기에 이연아가 그녀의 천마신결을 완성해줬다.
윤채린이라는 인간에게는 약점이 없다.
공중전, 수중전, 대인전은 물론이고 다수를 상대로도 강점을 지닌다.
스스로를 천마라고 칭하면서 천년무림의 정수를 이었다고 주장하며, 무(?)의 길을 걷는 이들이 그렇다고 증언할 정도로.
그녀를 상대로
‘그러면 나는.’
윤승하는 강하다.
비유 대상이 이시우나 윤채린이 아니라면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대인전으로 싸우면 누구든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그녀는 이시우나 윤채린이 비교 대상으로 들어가면 그녀는 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없다.
‘그렇다면.’
윤승하는 자신의 강점을 살렸다.
극한으로 단련했다. 요 몇 달 사이, 계속해서 고민했다. 이시우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까, 혹시 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윤승하는 이시우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간단했다.
이시우가 자신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들면 되었다. 이시우가 자신을 포기할 수 없게끔 강해지면 된다.
이시우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는 강함에 집착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시우 정도의 강자가 왜 강함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 중에서 이시우와 가장 같이 붙어 다녔던 그녀는 알고 있다.
훗날, 먼 미래를 대비해서 그는 차근차근 강해지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윤승하는 자신이 가진 고유 능력을 갈고닦았다.
그리고 세계의 운명은 그녀의 바람에 호응했다.
‘세계의 운명은.’
세계 그 자체다.
상격에 발을 들이면서, 고유 능력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그녀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탄생한 각인이 바로 율령법(?).
윤승하가 각인을 발동했다.
그리고 세계가 뒤집혔다.
‘……뭐지?’
처음에 가장 먼저 이변을 감지한것은 이시우였다. 초월경이 아니라면, 이시우는 감각이나 눈은 최상격 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서 이시우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뭐지? 이게 가능한가? 그가 생각하고 있는 개념이 일그러진 것 같았다.
각인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며 세계의 법칙을 무너트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가 영역이라고 지정한 부분에서 세계가 만든 법칙을 무너트리고, 자신의 법칙으로 재구성한다.
……미친. 저, 저, 여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이게 인간에게 허락된 힘이라고?
비염이 나타났다. 이시우는 그녀를 소환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염이 나타났다.
뿐만 아니었다. 마수가 쓰러지면서, 나온 피에서 정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일그러지며 대기의 정령들이 나타났다.
온갖 법칙에서 태어난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율령법은,
윤승하라는 인간이 지정한 영역을 정령계로 만들었다.
정령계의 일부를 지구에 구현시킨다.
정령과 합일이니, 정령들의 수를 늘리니 해도 윤승하는 이시우나 윤채린을 당해낼 수 없다.
반대로 생각하자.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하면 된다.
답은 간단했다.
내가 가장 강해지려면, 정령계를 지구에 구현하면 된다고.
윤승하의 눈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정령들이 그녀의 뒤에 늘어섰다. 온갖 개념에서 태어난 정령들이 수십 채를 이루고, 수백 채를 이루었다.
“조져버려.”
정령군주가 정령들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온갖 원소가 부풀어 올랐다.
***
“저게 되네.”
나는 윤승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윤승하에 대한 논문을 쓴적이 있었는데, 윤승하가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그녀가 가진 세계의 운명을 극대화 시킨다면 저런 방식으로 싸울 수 있다고 했었는데.
설마 진짜일 줄 몰랐다.
쿠오오오오오!
거대한 마수가 울부짖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100m에 달하는 마수가 울부짖고 있었다.
조심해 계약자. 저거 곧 탈각할 놈이야.
비염이 조심하라고 했다. 탈각, 조만간 최상격에 들지도 모르는 마수란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비염. 그러고 보니 아직 내 힘을 제대로 모르지?”
어?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는 마수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일만에 도달했던 마수는 이미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전투 시간은 이제 2시간으로 접어든 지금, 마수 토벌은 과연 성공이다라고 할만 했다.
그리고 내가 잡은 마수의 숫자는 2,000여 마리가 넘는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초반부터 활약하던 광성자와 천추, 검후 남다윤 등의 전력이 모조리 마수왕을 타격하러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기린검을 들었다.
‘이것도 수리해야 하는데.’
좀 험악하게 굴려버린 탓인가. 조금 날이 빠졌다. 마음같아서는 엘도르를 쓰고 싶지만, 여기서 냅다 나는 용사다라고 하는 건 좀 그래서.
나는 약식으로 일월천뢰검을 준비했다. 태양이 떠있으니, 일식.
그리고 여기에 기린의 정수를 더 했다.
파지직.
회색빛의 번개가 기린검에 머물렀다. 여기에 오버로드.
단기전이 취향이지만, 여기서 저놈을 잡겠다고 육체에 부하가 심해지면 답이 없다. 마나는 넘쳐 흐른다. 대해의 마나 때문에.
그래서 오버로드를 체력으로 치환했다.
태극지체로 진화한 탓에, 태양의 마나는 기린의 정수와 제대로 융합되고 있다. 여기에 뇌신이 호응했다. 다만 색깔이 혼탁해졌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걸 ‘그것’에 더하면 어떨까.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슬슬 해가 지려고 한다.
계약자, 한눈 팔 때가…!
일월천뢰검
일식영허낙뢰검(??雪?)
회색빛의 번개가 질주했다.
“슬슬 이동할까.”
어? 어? 어라?
100m가 되는 거대한 마수는 사타구니부터 머리까지.
반으로 갈라졌다.
***
“많이 컸네.”
이연아는 흐뭇한 눈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바라봤다.
비록 자신이 배 아파서 낳은 애들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낳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시우에게 손도 안 대지 않았는가. 딸들의 남자를 건드리는 게 조금 내키지 않았다. 물론 이시우가 유혹했다면 그녀는 바로 넘어갔겠지만.
너, 뭐냐.
당황하는 음색이 들려왔다. 마수왕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완전무결.
그녀는 결점이라 부를만한 게 없었다.
마수왕이라는 존재가 가진 모든 방식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그녀를 이긴다는 광경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혁월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가장 오만한 용이 그랬다.
하지만 그건 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여자랑 비견되는 존재가 또 있다니?
전대 용왕.
그리고 세계를 멸망시키고, 천계를 무너트렸으며, 이윽고 신마저 살해할뻔한, 신살자에 도전했던 묵시록의 용은 그런 존재였다.
“불쾌하네, 그런 광녀랑 날 비교하다니.”
이연아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할까? 그 광녀가 오기 전에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시우 씨가 막타 칠 정도로 양념은 해야 되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