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면 불청객은 떠난다
프롤로그.
나양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어두웠다. 감았다 떴다 몇 번을 반복해도 눈을 뜬 것과 감은 것이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는 건 어둠뿐이다.
또 그 꿈이구나. 내 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밤, 그 밤에 잠겨 가는 꿈.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어둠에 가장 먼저 익숙해진 것은 귀였다. 꽉 막혔던 귓가에 빗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축축한 공기가 팔을 감싸 오고, 짙은 물 내음이 코와 목구멍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꿈이 아니다. 천천히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을 때, 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이 보였다.
습기 찬 차창 밖으로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어디쯤인지 알았다. 남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해 여섯 시간에 달하는 긴 여정 중이었다.
“시상에, 인제 일어났구먼!”
불쑥 차 안으로 들어선 버스 기사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붙였다.
“아가씨! 일단 내려유! 여기 종점이유. 아이구,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넘의 차에서 정신을 못 채리고 자는지 몇 번을 불러 제껴도 일어나야 말야! 좀만 더 있었음 경찰 부를 뻔했구먼.”
노년의 버스 기사가 투덜대며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짐을 챙겨 들고 고분고분 차에서 내렸다. 발을 딛자마자 푹 하고 물웅덩이로 빠졌다. 바닥은 온통 진흙탕이었다. 엉망이 된 구두에 짜증 날 새도 없었다. 빨리 와유! 터미널 문 닫아야 된단 말이유. 기사가 팔까지 휘저으며 재촉해대는 통에 나는 우산도 없이 그를 뒤따랐다. 그 와중에 비는 거세졌다.
터미널로 보이는 작은 건물 앞에 전등 하나가 아스라이 켜져 있었다. 기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는 나를 잽싸게 등졌다.
“저 짝이 읍내유.”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황망하게 바라봤다. 뭐가 그리 급한지 빠르게도 사라졌다.
주위 어디 하나 불 켜진 곳이 없었다. 색 바랜 빨간 벽돌 위에 얹어진 파란 슬레이트 지붕이 보였다. 우스꽝스러웠다. 짓다 만 것 같은 지붕 위로 ‘나양 시외버스 공용 터미널’이라는 간판이 겨우 매달려 있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간판은 몹시 낡아 나양이라는 글씨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나양.
태어나 처음 와 보는 마을이었다.
소리 내어 나양, 이라고 말했을 때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