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71화 (71/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물 위의 흡혈귀

* * *

이 세계를 이해하려면 신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지구의 신화와는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신들은 여전히 실존하며 그 영향력을 대륙에 끼치고 있기에,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 따위는 없다.

잊히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현존하는 신들의 이야기. 아니, 하나의 신은 사라졌지만, 남은 세 신이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한곳에 모여사는, 그러나 나약하고 무력한 종족들이 있었다. 그들의 언어는 하나였으며 생김새는 비슷하였다.

오크, 고블린, 인간, 엘프.

닮은 네 종족이 서로 다툼 없이 힘을 모아 살아가는 모습에 가장 위대한 네 신은 감명을 받았다. 하여 신들은 그들 종족에 축복을 내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로 하였다.

묻겠노라, 오크여. 그대는 무슨 축복을 원하는가?

저는 모든 종족을 지킬 수 있도록 싸울 수 있는 강한 힘과 용맹을 원합니다.

바람의 신이 오크들의 몸에 폭풍에도 맞설 수 있는 활력과 용기를 불어넣었고, 그 강한 힘으로 오크는 위험한 야수와 맹수들을 사냥하여 모든 종족의 안전을 지켜주었다.

묻겠노라, 고블린이여. 그대는 무슨 축복을 원하는가?

저는 모든 종족이 굶지 않고 배불리 먹기를 원합니다.

대지의 신이 고블린에게 축복을 내려, 그들의 손이 닿는 곳마다 비옥한 토지가 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니, 네 종족들은 배불리 먹으며 그 수를 불려 번성할 수 있었다.

묻겠노라, 인간이여. 그대는 무슨 축복을 원하는가?

저는 모든 종족이 밤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빛을 밝히는 힘을 원합니다.

불의 신은 인간들에게 저의 불을 다룰 수 있게 내주었고, 인간은 불로써 고기를 굽고 철을 제련하며 성벽을 세워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은 엘프에게 물었다.

묻겠노라, 엘프여. 그대는 무슨 축복을 원하는가?

저는 신께서 내린 이 축복을 감사하며 오래도록 찬양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쉽게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갖기를 원합니다.

물의 신은 엘프들이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그들의 수명을 길게 늘려주었고, 그 오랜 세월에도 무엇이든 쉽게 잊지 않는 기억력을 주었다. 기억은 쌓여 지혜가 되었고, 엘프들은 다른 어떤 종족보다도 현명한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신들의 기적을 기억하며, 해석하고, 흉내내어, 마침내 마법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사람도 다룰 수 있는 신들의 기적. 그것이 마법이었다.

그리고 마법을 만든 엘프는 착각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우리 스스로를 신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가장 오래 살고 가장 마법에 능한 엘프를 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엘프의 신은 그 신앙을 토대로 힘을 불리며 더 강하고 위대한 신이 되길 원했다.

평범한 신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가장 위대한 신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위대한 네 주신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이므로, 위대한 신의 자리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엘프의 신은 결의했다. 물의 신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겠노라고.

그들은 불의 신과 물의 신 사이를 이간질해 싸우게 만들고, 고블린들을 속여 대지의 신을 강간하게 해 그녀를 진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번식이 좋다면 평생 그리 하도록 해라. 너희는 영원히 번식하나 결코 번성하지 못할 것이다.

대지의 신의 저주를 받은 고블린은 번식에 미쳐 욕정에 휘둘리며 이지를 잃은 괴물이 되어갔다. 팔다리는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졌고 털이 사라지며 추한 몰골이 되었다. 그들의 힘은 약화되고 수명은 겨우 1년이 되어 아무리 번식해도 번성하지 못하는 저주를 짊어지게 되었다.

바람의 신은 이 모든 일을 흘러가듯이 관망하니, 끝내 엘프의 신은 물의 신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으려 했다.

너희를 저주하노라. 너희 어리석음을 저주하노라. 너희를 사랑한 나를 저주하노라. 모든 것을 전부 저주하노라!

물의 신은 죽어가면서 엘프의 신을 저주했고, 저주 받은 신 아래의 종족인 엘프는 모두 저주 받은 생물이 되고 말았다.

받았던 긴 수명을 잃고, 오래 가는 기억력을 잃고, 그로 인해 지혜를 잃었으며, 종국에는 마법을 잃었다. 이것이 엘프와 고블린이 신들의 저주를 받기까지의 이야기다.

현재는 신의 은총이 없어 상태창도 없는 채로 구르면서 고통 받던 시절에, 어떻게든 그 은총이란 걸 구해보고자 이 세계의 신에 대해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인간을 가호하는 불의 신이 현재의 기도에 응답하는 일은 없었다. 그에게 손을 뻗어준 것은 어디에서도 이름 들어본 적 없는 약오름의 신 하나 뿐이었다.

'뭐, 받았으면 됐지. 받은 게 아니라 빌린 거라고 해도 말이야.'

아무튼 이 신화에서 현재가 주목한 점은 이랬다.

신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죽일 수 있다. 그들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냥 조금 많이 센 괴물들이라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야. 조금 많이가 조금 많이라서 쉽게 이길 수는 없겠지만.'

신들을 이기겠다고 상태창에 능력치를 아무리 쌓아봤자, 그것은 신에게 빌린 힘이며 언제든 빼앗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이었다.

그러나, 상태창이 아닌 힘을 쌓는 방법도 이 세계에는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아티팩트. 여러 신의 여러 가지 힘을 담은 그 보물은 위대한 네 주신 외에도 수많은 신들의 힘을 담고 있었다. 이 세계에 신이라는 존재는 무수히 많이 존재하며, 그 중에 가장 위대하게 모셔지는 것이 인간을 보살피는 불의 신과 오크를 보살피는 바람의 신인 것이다.

즉, 약한 신의 힘이라도 많이 모으면 강한 신의 힘을 이길지도 모른다.

실제로 엘프는 엘프의 신이라는 만들어진 신의 힘으로 물의 신을 죽였으니, 그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했다.

'파탈리테의 몸에는 아티팩트가 담겨 있고, 녀석은 그 아티팩트의 힘으로 신과 같은 힘을 얻으려 했다.'

그렇기에 현재는 파탈리테가 필요했다. 몸에 신의 힘을 담는 방법, 그리고 신을 죽이는 방법, 두 가지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

그녀를 파티원으로 삼은 것은, 그 지식을 옆에 두고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파탈리테, 네 목적은 신보다 강한 힘을 얻어 물의 신의 저주를 모조리 떨쳐내고 너의 종족을 구원하는 거지?"

"그것만으로는 안돼."

파탈리테는 조용히 제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를 읊었다.

"인간에게는 불의 신, 오크에게는 바람의 신이 있다. 그러니까 엘프에게도 그에 걸맞는 신의 은총이 내리지 않으면 이 비참한 처지는 피할 수 없어. 어설프게 저주에서 벗어나기만 해봤자 인간과 오크들에게 붙잡혀 노예나 장난감으로 쓰이다가 죽임당할 뿐이겠지."

"그러냐. 그럼 네가 바라는 건, 물의 신의 저주를 떨쳐낼 뿐 아니라 주신의 하나가 될 정도로 강한 힘을 손에 넣는 거지?"

"왜, 불가능하다고 조롱하려고?"

"아니, 전에도 말했지. 내 목표도 대충 비슷하다고 했잖아. 신에게 휘둘리지 않는 존재가 되겠다고. 꼭 그들과 동등해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 쥐새끼는 궁지에 몰리면 나를 물 수 있겠구나, 그 정도 힘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어."

"쥐새끼?"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내가 자란 곳에 있던 속담이다."

"별로 뜻있는 속담은 아니네. 그래봤자 쥐는 고양이를 이길 수 없잖아?"

"없어도 있다고 믿어야지. 벌레면서 사자를 죽이려 하는 우리보다는 낫잖아?"

"사자……, 그런 동물은 본 적 없어."

"아니 그런 비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너의 몸 안에 아티팩트를 집어넣은 기술, 그건 대체 뭐야? 마법이냐?"

상태창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힘, 아티팩트. 현재는 어떤 경위로 파탈리테의 몸에 아티팩트가 들어가게 됐는지 매우 궁금했다.

"마법은 유실되어 신이 아닌 존재는 쓸 수 없어. 아니, 신이 아닌 자가 쓰는 신의 힘을 마법이라 하는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 마법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니라고 방금 말했잖아. 그래서 네가 쓴 방법이 대체 뭐냐고 묻는 거라고."

"주술, 아주 깊이 바라고, 또 원하며, 생명을 태워 새겨넣어서야 발동할 수 있는 주술."

"주술이란 게 있었어?"

현재에게 그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마법 같은 힘이라곤 꼼짝 없이 아티팩트 뿐인 줄 알았는데. 비슷한 게 있었다니?

"마법과는 어느 정도 체계를 공유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달라. 마법은 마력을 쓰고, 주술은 생명을 쓴다는 것이. 그리고 그 효율은 마법에 비해 처참할 정도로 낮아서, 불꽃 하나를 피워내는 데에도 다섯 명 쯤은 제물로 바쳐야 하지."

"불 하나 피우는 데에 다섯의 제물? 잠깐, 그러면?"

대단한 기적을 이루기 위해선 엄청난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소녀는 말했다.

"내 몸에 아티팩트를 쑤셔넣는 데에는 1만 명의 제물이 바쳐졌다."

정말 아득하기만 한 숫자였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몇이나 될까. 버스에 탈 수 있는 사람 약 서른 명, 학교 강당에 들어가는 인원이 대충 200명, 북적거리는 번화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면 천 명은 될까?

그 열 배, 어지간한 행사에선 볼 수 없는, 커다란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에서나 간신히 눈에 담을 수 있을 인원이, 단지 이 아이의 몸 속에 아티팩트를 집어넣기 위해 희생되었다.

"숫자로 따진다면 분명히 이득이야. 내가 1만 명의 엘프를 잡아먹어서, 이 손으로 구한 엘프의 수는 그보다 더 많으니까."

파탈리테는 일부러 평온한 척 하고,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입에 담는다.

"그리고, 그 끝에 내가 신에게 닿는다면, 결국 구하게 될 동포의 수는 백만이 넘을 것이니까. 그러니까 충분히 할 만한 희생이었다."

엘프들은 모두들 그렇게 얘기했다. 그래서 파탈리테도 그렇게 얘기하기로 했다.

"그래봤자 한 번 인간에게 지고 제압당한 거잖아? 그 괴물 기사랑은 뭔 일이 있었던 거냐?"

"싸웠고, 졌다. 그게 다야."

"어디서 왜 싸웠고, 어쩌다 졌는데?"

"인간의 제국령 남동쪽, 바이젠 평야라는 곳이었나? 나는 동포를 먹여살릴 식량을 약탈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장 강한 전사들을 모아 저주 받은 대지에 들어가 싸우기 위해, 그동안 남겨진 우리 동포를 먹일 식량이 필요했다."

"그리고 거기서 죽인 인간의 수가 13만?"

"세어본 적은 없어. 그녀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아니면 뭐 어때? 그 숫자가 얼마나 정확한지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

"죽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고?"

"전혀. 어차피 세상은 사냥하거나 사냥당하거나잖아? 여우가 쥐를 잡듯 독수리가 여우를 잡듯 우리는 인간을 사냥했을 뿐이다."

"그 고기는 먹어본 적 있냐?"

"질기고 냄새 나고 비리더군."

파탈리테는 웃었다. 결국 다른 종족은, 신의 은총을 받은 인간이란 종족은 자신과 힘을 합칠 수 없겠구나 싶어서.

이미 너무 많이 죽였다.

"동족의 복수를 할 거야? 그럼 진작 했으면 좋았을걸. 아까운 피만 낭비했네. 최후의 만찬이라고 베풀어준 건가?"

그러나 현재의 대답은 파탈리테의 예상과는 달랐다.

"뭐, 네가 몇 명을 죽였던 그건 상관 없어."

"그래?"

"내가 아니고 내 아는 사람도 아니니까."

인간으로서의 무언가가 결여된 듯한 대답. 혹은, 너무나 훌륭한 대답. 그것조차 아니면, 무정함을 연기하는 대답이었나? 파탈리테는 일단은 속아넘어가 주기로 했다.

"매정하구나."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나 죽였는데도 불의 신은 너를 주시하지 않는가? 그런 거지. 제대로 찍혀있어서 심판 같은 게 내려온다거나 하면 곤란한데?"

"처음으론 그의 사도 엘리가 왔지. 다음에는 뭐가 올지 나도 몰라. 왜, 손 떼고 싶어졌어?"

"글쎄, 이런 건 어때? 너를 죽여 불의 신에게 갖다 바치면 뭔가 보상을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 결론도 나올 수 있는 건가. 파탈리테는 납득했다.

"그렇다면 나는 막을 수 없겠네. 내가 너보다 약하니까."

하지만 또 장난이었다는 듯, 현재는 다시 말을 바꿨다.

"하지만 난 불의 신이 마음에 안 들어. 이제 와서 잘 보인다고 뭘 해줄 것 같지는 않네."

"뭐?"

"한 번도 나를 축복한 적 없는 녀석한테 선물 들고 쪼르르 달려가서, 잘했죠 예뻐해주세요 하는 건, 뭔가 배알 꼴려서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야. 내 덩치에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짓 아냐?"

현재는 그리 말하며 웃었다. 거짓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기도를 무시하고 은총을 주지 않았던 불의 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이란 때로는 그런 감정을 구실 삼아 섬길 신과 섬기지 않을 신을 고르기도 하는 것이다.

'내 기도를 무시한 걸 후회하게 될 거다.'

현재는 그러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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