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전 공지 없이 제목을 바꿔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제목 바꾼 이유는 유입이 없어서 말라죽을 거 같아서 소개글과 함께 조금 직관적으로 바꿔보았답니다.
더 그럴 듯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이상 당분간 유지할 것 같네요.
한 주의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물 위의 흡혈귀
* * *
현재는 엘리의 시선을 끌기 위해 수도의 남쪽에 있는 운하와 반대 방향인 북쪽으로 도망쳤다. 그녀를 따돌린 후에는 다른 추적이 붙지 않게 신경을 써서 북동쪽으로 크게 우회했다.
오랜 시간 달려 추적이 다 떨어져나갔으리라 확신한 이후에는 운하 옆길을 향했고, 달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길을 거슬러 황도를 향하다 보니 새벽녘에 운하 위를 흘러가던 익숙한 상선을 만날 수 있었다.
주변에 시선이 없는 것을 확인한 현재는 다리의 각력을 사용해 크게 뛰어올랐다. 100미터가 넘는 거리의 물을 도약해버린 것. 착지도 완벽하여 정확히 갑판 위로 떨어졌다.
다행히도 그 정도 충격에 뒤집어질 일은 없는 커다란 배였지만, 그 위에 올라탄 사람들은 놀라 뒤집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저 거리를 뛰어넘을 수가 있지?"
"내 오십 평생에 이런 일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구만."
갑판을 지키던 선원들과 선장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 감탄했다.
"보고 싶었어요!"
그런 놀라운 영웅적 행위는 신경 쓰지 않고 현재 자체에 주목해 달려드는 여자가 있었다. 케이트는, 선원이 아니기에 갑판을 지킬 필요는 없었지만 현재를 기다리느라 새벽부터 갑판에 나와 있었다.
그녀는 소리지르며 현재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현재는 그녀가 안기게 두지 않고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밀어냈다.
"미아랑, 같이 보낸 꼬맹이는?"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미아는 밖에 없었다. 혹시 배에 타지 못한 건 아닐까 살짝 불안해졌지만,
"선실 안에 있어요. 아무래도 꼬마애 몸이 안 좋은 모양이라."
다행히도 파탈리테를 숨기고 돌보느라 선실 안에 있을 뿐인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하던 일 계속 해. 내 방에는 절대 들어오지 말고."
"그럴 수가! 사흘이나 못했는데!"
케이트의 얼굴은 잔뜩 성욕에 쩔어있는 모습이었다. 하루도 빠짐 없이 정액을 받다가 일 때문에 못 본 사흘 사이에 상당히 굶주린 모양.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다고? 배멀미인가?'
하지만 현재는 파탈리테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케이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저! 윽!"
현재는 다시 달라붙으려는 케이트의 목에 슬그머니 손을 대고 손가락에 살살 힘을 주며 목뼈를 부러뜨릴 듯한 동작으로 위협했다.
"귀찮게 굴면 죽여버린다? 먼저 부를 때까지 나 찾을 생각은 하지도 마."
"히익!"
두려움에 다리 힘이 풀린 케이트는 무릎을 안쪽으로 하며 주저앉아버렸다. 그 눈에는 공포심과 함께 조금의 흥분이 묻어나는 듯 했다.
'죽어……, 죽어버렷?'
'겨우 사흘 쌓였다고 마조히즘이 더 심해졌구나.'
현재는 그런 케이트를 내버려둔 채 선실로 들어가버렸고 남겨진 케이트는 오싹함에 몸을 떨었다.
'멋져. 이래야 내 주인님답지.'
정말로 변태의 귀감이 되는 모습, 방치 당하는 것에도 흥분을 느끼는 케이트였다.
"현재야! 어디 다쳤어? 괜찮아?"
자고 있는 파탈리테를 돌보던 미아는 현재가 문을 열고 돌아오자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옷만 좀 찢어졌지 별 거 아니야. 조금 긁힌 것 뿐이야."
팔은 얕게 베였고 다리는 좀 긁혔을 뿐. 놔두면 자연치유될 지혈도 필요 없는 상처 뿐이었다. 마땅히 치료할 약이나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때문에 그냥 놔뒀던 것인데, 미아에게 괜한 걱정을 끼친 모양이었다.
"모처럼 골라준 옷인데 찢어버려서 미안해. 클록도 싸우다 보니까 잃어버리고 말았어."
잃어버렸다는 건 거짓말이고 실은 속임수에 쓰느라 던져버렸지만, 왠지 양심에 찔려 그것까지는 말하지 못하는 현재였다.
"옷 따위가 중요해? 네가 얼마나 다쳤느냐가 중요하지."
미아는 허튼 소리를 하는 현재에게 화를 내며 다가와 그의 몸에 난 상처를 유심히 살폈다. 허벅지와 정강이는 그의 말대로 옷만 헤졌을 뿐 긁힌 상처 뿐이었지만, 팔은 확실하게 베인 상처였다.
할짝, 미아는 현재의 베인 상처 위로 눌러붙어 있는 핏물 굳은 것을 혀로 핥았다.
"으악? 그걸 왜 핥아?"
현재는 당황해 팔을 뺐다. 말라붙은 피 위를 지나는 축축하고 부드러운 혀의 감촉이 굉장히 음란한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음란한 것 뿐이라면 그도 좋아했겠지만, 어째선지 상당히 낯간지러운 기분이었다.
"아, 미안해. 무심결에. 역시 물로 씻어야겠지?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내가 따뜻한 물 가져올게."
미아는 물을 가지러 선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현재는 대충 옷을 갈아입고 파탈리테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헐렁한 한 벌 옷을 입고 눈을 감은 채 있는 엘프 소녀는, 빈말로도 잘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 흐트러진 채 일정하지 못한 숨결, 가슴의 오르내림이 엇박을 이뤄 절대 편안하지는 못한 모습으로 보였다.
또한 몸에는 조금씩 식은 땀이 흐르고, 뺨에서는 연갈색의 피부 위로 희미하게나마 벌겋게 달아오른 열기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자냐?"
"……아니."
대답은 조금 늦게 찾아왔다. 현재는 다시 물었다.
"앓아 누운 건 물의 저주 때문이냐?"
"그래."
"몸에 닿지 않아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줄은 몰랐는데."
"직접 닿는 것을 피하기만 해도 괜찮았다면 사막 외의 지역에 살 수 없게 되지는 않았겠지."
"황도에 있는 동안은 괜찮았잖아?"
"그 정도 습도만 해도 몸은 계속해서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 손실을 상회하는 양의 음식을 채워넣어 보충한 것 뿐. 본디, 배를 탄다니 말도 안되는 짓이야. 이 만큼 물이 있으면 보통 엘프는 죽어버리지. 아티팩트가 몸에 쑤셔박혀 있는 내가 아닌 이상은."
아티팩트의 힘을 빌었다. 현재는 그 말 한 마디로 일어났던 일을 정확히 추측해냈다.
"미아의 피를 빨았구나."
"피는 아니었지만, 생명력이라면 그랬다."
파탈리테는 순순히 사실을 토로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미아가 따뜻한 물이 잔뜩 들어있는 물통을 안은 채 들어왔다.
"마침 데우던 물이 있어서 금방 가져왔어. 어서 상처부터 씻자."
"미아, 너 혹시 레벨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어?"
"어? 갑자기 왜? 상태창!"
레벨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현재의 말은 무조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미아는 망설임 없이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걸 확인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러나 미아의 레벨은 여전히 40이었다. 상당히 찾기 힘든 강자. 그러나, 황제의 검 엘리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
"멀쩡한데? 그대로 40이야."
"신의 은총을 빨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바보야? 신에게 저주를 받은 내가 신의 은총을 훔쳐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게 됐으면 진작에 저주 따위 떼어버렸겠지."
"그럼 빨아가는 건 정말로 순수한 생명력 뿐인 거네?"
"그래."
"그럼 내 피를 조금 나눠줘도 문제 없겠어."
레벨이나 능력치를 빼앗기는 건 곤란했다. 여신에게 갚아야 할 능력치가 조금이라도 사라지는 건 탐탁치 않았으니. 그러나 수치화할 수 없는 생명력을 가져간다면, 어느 정도는 다시 채워넣을 자신이 있었다.
"뭐?"
"네가 빌빌대고 있으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돼. 마침 찢어진 부분도 있으니, 여기를 통해 피를 빨면 될 거다."
현재는 다친 팔을 내밀었다. 찢어진 자국은 자연치유력으로 인해 아주 얇게 붙은 상태였으나, 아직 아주 얇게 붙은 것 뿐인 이상 조금만 힘을 줘서 밀어내도 찢어질 것이 분명했다.
파탈리테는 웃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모호하게 입가를 비틀면서 물었다.
"너는 두렵지 않아? 내게 피를 빨게 하는 게?"
"너무 심하다 싶으면 알아서 쳐낼 테니까 걱정 말고."
"그럼 감사히 받겠다."
파탈리테는 현재의 찢어진 팔에 송곳니를 꽂으며 혀를 써서 있는 힘을 다해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낫고 있는 상처를 다시 또 찢다니. 덧나면 흉질 텐데."
"남자 팔에 흉터 좀 있을 수도 있지."
미아는 걱정으로 투덜댔으나 파탈리테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현재가 원하는대로 두기로 하였다.
'바보 같은 놈. 내게 피를 빨린 인간은 전부 나를 거스를 수 없게 된단 말이야. 건방지게 군 대가로 내 노예로 만들어서 조종해주마.'
현재는 아무래도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다. 파탈리테는 그리 생각하며 열정적으로 피를 빨았다. 은발에 핏빛 눈동자와 갈색 피부를 가진 어린 소녀가 팔을 빠는 모습은 어딘가 요염하고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있어 그 어려보이는 외모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초대형 모기가 피를 빨면 이런 느낌인가?'
현재는 팔에서 뜨거운 피가 계속 흘러나가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 정도 쯤이야 거구인 현재가 헌혈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무난한 양이라 그대로 빨아마시게 두었다.
'근데 이 기분 나쁜 느낌은 뭐지?'
꼭 무슨 최면을 거는 것처럼, 자꾸만 눈 앞의 소녀를 존경하고 사랑하라는 언어화되지 못한 울림이 머릿속을 울리는 것 같았다.
그분을 모셔라.
경배하라.
찬양하라.
오직 그분만이 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너의 주인이시다.
'대체 무슨 이미지야 이건?'
무언가, 흐릿한 환상을 본 듯한 느낌. 그곳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파탈리테는, 수많은 엘프들의 경배를 받고 있었다.
아니, 그건 정말 여왕이었나? 어쩌면, 자신들을 대신해 싸워야할 대전사, 또는, 그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 바치는 산제물?
"그만!"
현재는 충분히 피를 주었다고 생각하자 파탈리테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파탈리테는 꽂은 송곳니를 뺄 생각이 없었다. 이 엘프가 자기 피에 맛들렸다는 걸 안 현재는 억지로 그 머리통을 잡고 입을 벌려 자기 팔로부터 떼어내버렸다.
'떨어지라 할 때 떨어지지 않으니까 진짜 모기 물린 기분이네. 무심코 모기처럼 때려죽여버릴 뻔 했어.'
그리 생각하며 짜증을 참고 있는 현재에게 파탈리테는 당당하게도 선언했다.
"자, 나를 숭배하고 싶어졌지? 나는 너의 여왕이니라. 내 발 아래 무릎 꿇고 발가락을 핥도록 해라."
거만한 몸짓과 말투, 지배욕으로 점철된 그 눈빛은 파탈리테가 그동안 보여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뭔 개소리야? 돌았냐?"
"응?"
현재가 욕지거리를 뱉자 파탈리테는 당황했다.
'아티팩트의 효과가 듣질 않았어?'
아티팩트의 마력이 꿈틀거리며 정신지배를 거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어째서 저 남자는 저렇게 멀쩡한 건가?
"얼굴을 보니 아주 쌩쌩해진 것 같네. 힘을 받으니까 막 자신감이 차오르냐? 나를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한 가지 가설이 떠오른 파탈리테는 현재에게 물었다.
"너, 설마 마력까지 엄청나게 높은 거야? 아티팩트의 효과에 저항할 만큼?"
그녀는 당황했다. 더이상 인간종이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이래로, 마력에 능력치를 투자하는 인간은 모조리 사라진 걸로 알았다. 그런데, 신의 힘인 아티팩트에 저항할 정도로 높은 마력을 가진 인간이 있다니? 그런 일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 이상한 환상이랑 더러운 기분은 네가 나한테 수작질을 부린 거라는 거지? 그런 수작을 부릴 수 없을 때까지 길들여줘야겠는데?"
현재의 눈 위에 떠오른 불꽃은 분노였던가, 가학이었던가? 그도 아니면 광기?
"아니, 일부러 한 게 아니고 아티팩트 자체의 능력이라 내가 걸고 싶어서 거는 게 아닌데."
당황한 파탈리테는 겁에 질린 눈을 하며 뒤로 몸을 뺐다. 침대를 팔로 기어 뒤로 도망가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물론 현재는 그런 안쓰러움을 알아주는 인간이 아니었다.
"걸고 싶어서 거는 게 아닌데 그딴 태도였다? 이거 아주 악질이네. 장난질 못치게 버릇을 단단히 들여야겠어?"
"잘못했어요! 건방지게 굴지 않을게요!"
"이 녀석이!"
뺨이라도 때릴 듯 들어올리는 현재의 팔을 막아서는 손이 있었다. 그것은 뒤에서 끌어안은 미아의 손이었다.
"그러지 마. 일부러가 아니었다잖아."
현재는 미아의 포옹과 말에 파탈리테를 때리려던 손을 도로 내렸다.
"야, 파탈리테. 만일 미아의 정신에 장난질을 했다가는 너 뿐 아니라 너희 일족 전부 단 한 마리도 남김 없이 지옥을 보게 될 줄 알아."
"이미 엘프는 충분히 지옥을 보고 있는데……."
울컥하는 파탈리테에게 현재는 냉정히 말했다.
"그런 건 상관 없어. 한 놈이라도 빠짐 없이 지금보다 더한 지옥을 보여줄 거니까, 그 사실을 단단히 가슴에 새겨두고 있어."
현재는 손을 뻗어 파탈리테의 심장 위를 콕 찔렀다. 파탈리테는 정말로 가슴이 발달하지 않아 꼭 사내아이의 평평한 가슴팍을 찌른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파탈리테는 왠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서로 협조적으로 가자고. 우리 둘 다 신을 넘어서기로 결심한 동지잖아?"
황도에서는 진심으로 나누지 않았던 이야기들. 이제부터 서로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았다. 다만, 현재는 파탈리테의 목적이 자신과 거의 일치한다고 이미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예 상점 지하에서 처음 만난 파탈리테는 옛날 현재가 지었던 것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을 대가로 치러도 좋으니, 이 지옥에서 반드시 벗어나겠다는 눈빛.'
울분으로 이성도 계산도 흐트러지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천불이 나 자신의 세계를 불태우는 듯한 느낌, 그런 기분은 현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거인 수준의 커다란 몸집과 아이 같이 작고 여린 몸, 성별도 종족도 모든 것이 대비되는 소녀에게도 동질감을 느껴버릴 정도로.
'나의 싸움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