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인터넷 박제소(1)
* * *
월요일 아침.
아침 뉴스를 본 나는 간만에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었다.
특수대 수사에 대한 보도제한.
소위,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악법이 마침내 통과된 것이다.
물론 악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론 측이고... 내 입장에서 보면 꼭 필요한 법안이었다.
"주인님, 그런데 이 법이 왜 중요한 건가요?"
"그야 헌터 범죄 수사는 기본적으로 유죄추정의 원칙을 깔고 들어가니까."
다른 모든 수사들도 일단 유죄추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헌터 범죄는 그 특성상 정도가 훨씬 심하다.
한 번 수사대상이 되면 닥치고 구속해놓은 다음, 정말 뭐라도 나올 때까지 뒤져댄다.
실제로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증거를 발견했던 사건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 언론에게 용의자로 낙인찍히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그뿐이랴.
지금껏 언론은 우리들의 발목만 잡아댔다.
그에 반해 수사에 도움이 됐던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보통 경찰들이라면 또 몰라. 우리는 일단 블랑쉬를 이용해서 바로바로 검색 한 번 때리고 가니까...'
꼭 블랑쉬를 이용하지 않아도, 특수대 수사관은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제한없이 접근할 수 있다.
반면 언론은 특수대 사무실 앞에 죽치고 있으면서 우리가 출동할 때마다 방해나 해댔다.
요즘은 그만뒀지만 그것 때문에 위장 출퇴근까지 했을 정도.
언론의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악영향이 너무 많다.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인간의 심리야. 일 터지기 전에 미리미리 막아두는 게 현명하지."
원래는 좀 더 일찍 하고싶었지만 정치계를 '설득'하는 데에 오래 걸렸다.
티아는 그 이야기에 화들짝 놀랐다.
"대통령 아저씨가 안 도와줬어요? 우리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셨던 사이인데?"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네. 그 아저씨 슬슬 임기 말이라서 끗발이 좀..."
"아하!"
물론 재선 가능성이 상당해서 그 양반도 완전 죽진 않았다.
예리엘도 그의 재선을 바라는 눈치였다.
'써먹기 쉬운 소인배라고 했지.'
그대로 사무실로 올라간 나는 간만에 티아의 간식창고를 열어줬다.
내 서랍장 중 한 곳엔 이미 과자가 가득 들어있었다.
티아는 케르와 함께 꼬리를 살랑거리며 입맛을 다시다가 벼락 같은 손놀림으로 선택을 시작했다.
"히힛. 오늘은 감자칩으로 해야지."
나는 물론이고 앨리스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로 구경을 시작했다.
티아의 픽은 상당히 괜찮다.
이 녀석이 다른 건 몰라도 음식에는 한없이 진심이라서, 묶음 상품 같은 것을 만들어서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
덕분에 나도 옆에서 빼앗아먹느라 살이 좀 쪄버렸다.
이건 짜고, 저건 두툼하다며 감자칩 여러개를 비교하던 티아는 그대로 가장 큰 봉지에 여러종류의 감자칩을 부어넣곤 마구 섞어댔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다 먹는 게 최고예요!"
"그렇게 먹고 잘도 점심까지 먹네."
"인간들의 음식은 언제나 맛있는 걸요."
"잠깐, 봉지를 5개나 뜯었는데 하나에 다 들어가는 거야?"
"그렇다니까요. 정말 말도 안 되죠?"
그야말로 질소칩.
내가 그것을 조금 빼앗아먹고 서류를 만지려 하자 티아가 냉큼 물수건으로 손가락을 닦아줬다.
딸랑이 짓도 이 정도면 감탄이 나올 정도.
데스크톱을 켠 나는 회사에서 도착한 메일을 보곤 혀를 찼다.
"블랑쉬 추가 업그레이드라... 매튜 자식, 또 허튼 짓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살짝 불안해하고 있던 중.
김정태가 오늘의 사건을 가져왔다.
"팀장님, 헌터 자살 사건입니다."
"자살? 자살이 왜 특수대까지 와?"
물론 특수대가 자살 사건을 아예 수사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대부분의 사건은 경찰측에서 송치를 받기 떄문에, 자살 사건이 여기까지 오려면 굉장히 명확한 정황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외부의 압력에 의한 자살 정도는 돼야 한다.
김정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데스크톱을 잠시 빌렸다.
티아와 케르가 옆에서 최대한 조용히 감자칩을 깨작이는 사이, 그는 인터넷 사이트로 접속했다.
"자살자는 민간인 폭행 전과가 있는 은퇴 헌터... 심하게 낮은 자존감과 피해망상 증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이트는 뭐야? 인터넷 박제소?"
"예. 최근 유행중인 사이트라는데, 이곳에 자살자의 신상명세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사이트에는 각종 범죄자들의 신원이 사진과 함께 올라와있었다.
그리 어렵지 않게 해당 페이지를 찾아내는 김정태.
아직 자살자의 페이지가 삭제되지도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재한. 전직 헌터. 민간인 폭행 전과범. 사건일자 XX년 X월 X일. 현재 주소는...]
"자, 잠깐. 이거 도대체 뭐야?"
나는 상상 이상으로 상세한 정보에 화들짝 놀랐다.
해당 사이트에는 간단한 신상명세... 수준이 아니라 현재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고스란히 올라와있는 것이 아닌가.
김정태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범죄자들의 신상명세를 박제해두는 거죠."
"... 왜?"
"운영측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사적제재군. 자살한 신 씨는 이 사이트로 인해서 실제로 피해를 입은 거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도 신 씨의 휴대전화로 악성 문자나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으니까요."
안 그래도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사람의 등을 진짜로 떠밀어버리다니.
민간인 폭행이 잘 한 짓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처벌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나는 언제든지 추가적인 피해자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이트를 자세히 살펴봤다.
사이트의 운영진은 대문짝만한 광고로 본인들의 청렴함을 어필하고 있었다.
'인터넷 박제소는 광고 수익을 목적으로 개설된 사이트가 아니다.'
'박제소에 등록된 범죄자들은 철저하게 선별되었으며,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증거와 함께 게시된다...' 며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이트에 공개된 범죄자들의 '증거'라는 것은 하찮기 짝이 없었다.
인터넷 기사라도 인용해놓은 것이라면 양반이고, 대부분은 '어디서 누가 카더라~' 하는 풍문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들의 수사 능력이란 것은 정말 뻔한 것이다.
"근데 방통위는 이거 안 막고 뭐 해?"
"허위 정보가 방통위의 기준인 70%에 한참 못미치는데다, 공익적 목적도 있어서 일단은 두고 본다고..."
"...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하는 게 공익적 목적이라고? 그게 정부기관이 할 말인가?"
그러다가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본인들이 책임져줄 것도 아니면서 개소리를 막 해댄다.
애초에 70% 기준이라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허위 정보가 69%나 되면 그게 도대체 어딜봐서 정상적인 사이트인가?
물론 무턱대고 검열을 남발하지 않기 위한 기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방통위 본인부터 저 기준을 딱딱 지킨 적이 없다.
특히 음란물과 관련해선 한없이 엄격해지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도대체 접속자가 얼마나 되는가 싶어서 SNS를 살펴보자... 이쪽은 난리도 아니다.
운영측은 아예 본인들을 응원하는 메세지만 모아서 보기좋게 전시해놓았다.
사람들은 범죄자들의 전화번호로 욕설 문자를 보내곤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난리를 치고 있었다.
"벌써 유명해졌네?"
"다들 범죄에 동참하면서 신이 났군. 잠깐 전화 좀 하고 온다."
내가 예리엘에게 전화를 한 통 걸자 사이트는 오래지 않아서 폐쇄됐다.
본인들에게 뭔가 대단한 기준이 있는 것처럼 떠들어댔던 것치곤 매우 빠르게 마음을 바꿨다.
이대로 놔두면 2차, 3차 박제소가 생겨날 것이 뻔한지라, 나는 서둘러 움직이기로 했다.
"운영자들은 못 잡나?"
"해외 서버라서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 그쪽은 경찰에게 맡겨두자."
"주인님. 그런데, 결국 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건데 꼭 잡아야 하나요?"
내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티아.
사실 지금껏 범죄자들의 처벌은 좀 제멋대로 하긴 했다.
나는 최대한 간단하게 해당 사이트의 문제점을 설명해줬다.
"그놈들이 '범죄자들의 신상만' 공개한다는 보장이 어디있는데? 해외서버 쓰는 거 보니까 처음부터 작정하고 저질러주셨구만."
"아앗..."
범죄자들의 신상만 올린다 해봤자, 그것은 운영측의 주장일 뿐이다.
좀 하다보면 평소에 미웠던 사람들도 은근슬쩍 끼워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얼굴도, 이름도 안 밝히고 숨은 놈들의 말을 어떻게 믿어? 나는 적어도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짓은 안 했어."
"그... 그럼 얼른 잡아야겠네요."
"일단 접속을 차단했으니 한 시름은 놓았..."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중.
김정태가 무거운 얼굴로 새로운 소식을 들고 왔다.
"팀장님. 부산 경찰에서 올라온 소식입니다. 인터넷 박제소에 게시된 헌터 범죄자 한 명이 살해당했다고..."
"헌터를 살해해?"
"네. 아무래도..."
김정태는 현장의 사진을 들이밀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나는 익숙한 표식을 보곤 속으로 혀를 찼다.
"가짜 그린 더스트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놈도 이런 거 참 좋아하겠네. 부러진 다리는 그새 나은 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조합이 완성됐다.
우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야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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