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인터넷 박제소(2)
* * *
우리는 부산의 대원들이 보내준 자료를 자세히 살펴봤다.
시체는 지난번처럼 양손이 벽에 못박힌 채 방치되어 있었다.
옆쪽의 벽면에는 웃기지도 않은 마크와 문구.
게다가 피해자는 현역 시절 A랭크였던 헌터였다.
은퇴한 뒤에도 비상소집 대상이었다니까, 그를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건은 가짜 그린 더스트의 소행이 틀림없다.
"... 피해자의 죄목은 뭐지?"
"성추행입니다. 실제로 판결이 나왔던 건이군요."
"정확히 무슨 성추행?"
"현역 시절에 길드 가입과 공략 참가를 빌미로 여성 헌터들을 추행한 혐의입니다. 성매매도 상습범 수준이었죠."
김정태는 인터넷 박제소의 자료가 아니라 협회의 데이터베이스를 근거로 말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애꿎은 희생자는 아닌 모양.
나는 머리가 혼잡한 와중에 간단히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가짜 그린 더스트의 소행은 확실해."
"팀장님. 이번 건도 가짜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이서우가 손을 번쩍 들며 묻자 주변의 팀원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냈으나...
다행히 그는 내게 정신이 쏠려있었다.
나는 등 뒤로 작게 손사래를 치며 팀원들을 진정시켰다.
"진짜는 이 정도로 유치하지 않다니까."
"그런가? 진짜도 만만찮은데. 특히 마스크 부분이 좀 별로지."
"엑..."
뒤에서 묘한 웃음을 머금은 앨리스가 딴지를 걸었다.
나는 일단 수사 지시를 내려두곤 그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 몰린 앨리스는 내 눈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나... 난 진짜랑 교전한 기록도 있으니까 한 마디쯤 거들지 않으면 이상하잖아."
"아니, 내 마스크가 그렇게 별로냐고."
"아. 그 이야기였어? 나중에 바뀐 건 좀 괜찮던데..."
"그렇지?"
초기 코스튬이 구렸던 건 어쩔 수 없다.
그 때는 예산 부족, 노하우 부족이었기 때문에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그제야 만족하자 앨리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쨌든, 당장은 놈을 잡는 것이 급선무다.
앨리스와 화해를 한 뒤에 공용 사무실로 돌아가자 김정태가 불쑥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팀장님, 이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만 좀 해라 진짜..."
"아앗. 죄송합니다."
"... 아니다. 정태 네가 무슨 잘못이냐. 또 뭔데?"
해당 사이트는 이미 폐쇄됐지만, 놈들은 일찌감치 새로운 사이트의 주소를 공지해뒀다.
원본의 복제판이나 다름없는 사이트에선 웬 투표가 하나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아주 어이없었다.
인터넷 박제소의 운영진은 공감이 많이 찍힌 범죄자들을 선별하여, 그들에게 적절한 형벌이 무엇인가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인터넷 배심원제.
이미 판결을 받은 범인들을 다시 심판하는 것도 어이없는데, 그걸 인터넷 중독자들 상대로 진행하고 있다.
불쾌감의 정점은 바로 그 다음에 있었다.
[해당 범죄자는 가장 많은 득표를 받은 방식으로 처벌될 예정입니다. 그린 더스트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씹..."
이제보니 사이트가 폐쇄되기 전에 이미 저런 투표를 진행했던 모양.
가짜 그린 더스트와 운영진은 이미 공조하고 있었다.
"사이트 폐쇄는 왜 안 돼? 원래 주소 뒤에 숫자 하나 붙였을 뿐이잖아!"
"위원회에서 심의를 다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
방통위의 입장에선 절차를 지키는 것이겠지만 수사기관의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다.
게다가 이놈들은 이미 퇴근했다.
사실 사이트 접속차단을 해도 소용없는 것이, 어차피 VPN을 쓰면 쉽게 들어갈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국이라서 그런 걸 할 줄 아는 네티즌들이 너무도 많다.
나는 초조한 심정으로 투표 상황을 지켜봤다.
이번 투표의 주인공은 강도살인 전과가 있는 전직 헌터.
이미 헌터 전용 교도소에서 10년 이상 복역하고 나온 사람이다.
이미 500명 이상 참여한 투표의 결과는 사형 쪽이 압도적이었다.
다른 선택지들도 썩 정상은 아니라서, 발가벗겨서 길거리에 던져버리거나 신체 절단을 하는 정도면 온건한 축에 속한다.
감금형도 있는데, 이건 말 그대로 어디 구석진 곳에 짐승처럼 가둬놓는 모양이다.
"이거 지랄났네 진짜."
만약 이 사람들을 진짜 배심원으로 출석시켰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 배심원들은 본인이 피고의 인생을 결정하게 됐다는 것을 법원에서 피부로 실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배심원들은 형량을 조금 약하게 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익명성이란 굉장히 잔인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이슈가 되고있는 사이트에 굳이 찾아온 이들의 사상과 태도는 무척 뻔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불판 위에서 날뛰고 싶었다.
"SNS쪽은 어때?"
"부산에서의 살인사건 때문에 난리군요."
법원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범죄자.
그들을 본인들의 손으로 처형한다니, 얼마나 통쾌한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지금껏 나온 정치체제들 중 가장 덜 나쁜 제도일 뿐.
지금 네티즌들이 무작정 주장하고 있는 엄벌주의도 문제가 아주 많다.
엄벌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엄벌주의네."
엄벌주의는 '모든 범죄'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건 좀 봐주고 저건 강하게 처벌하는 식으로 하면 엄벌주의의 의미가 없다.
문제는 무작정 형량을 세게 때려봤자 범죄 예방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징역 3년이나 징역 20년이나 생각만 해봐도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
평범한 사람들은 일단 감옥에 들어가는 순간 인생이 박살난다고 느낀다.
실제로 대부분의 강력 범죄범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놈들을 감옥에 오래 가둬놓는 것이 당장은 좀 도움이 될지 몰라도...
어차피 진짜 중요한 것은 처벌을 공정하게, 빠짐없이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처럼 사람 죽여놓고 보석금 내고 풀려나거나 하면 어차피 사법불신은 지속될 것이다.
엄벌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돈이 굉장히 많이 들기 때문에 결국 극단적인 유전무죄가 될 수밖에 없다.
말로 할 때엔 번듯하지만, 애시당초 실현이 불가능한 이상.
마치 사회주의 같다.
사이트의 운영자들이야 구제할 방법이 없는 쓰레기들이라 쳐도, 가짜 그린 더스트까지 동참해버리다니.
나는 답답한 마음에 속이 활활 타들어갔다.
"블랑쉬, 빨리 좀 와. 나 진짜 미칠 것 같아..."
"블랑쉬는 VPN 써도 잡을 수 있는 거지?"
"당연하지. 일단 이놈부터 보호하자고. 가능하면 예리엘도 와줬으면 좋겠는데..."
"잠깐. 가짜 그린 더스트가 그 정도야?"
앨리스가 나를 붙잡고 작게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그림자 이동 및 활용 능력은 암살에 특화되어 있어서, 나와 앨리스가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호위 대상을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 자식 너랑 거의 동시기에 각성한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걔는 능력이 워낙 사기인데다 실전 경험도 거의 없어서... 분명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을 걸?"
"으음..."
다행히 보호 조치는 제법 쉽게 처리됐다.
SNS에서 본인의 현상수배를 발견한 대상자가 스스로 근처의 경찰서에 보호를 요청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해당 서에 연락했다.
"그럼 지금 당장 보호 대상자를 협회로 이송해주세요. 최대한 조용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지, 지금 당장이요? 날이 너무 늦어서 인력도 모자란데...]
"만약 경찰서가 헌터에게 습격을 받으면, 여러분들이 대처할 수 있습니까? 부산에서 이미 한 명 죽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이송하죠.]
과연 그렇게까지 할까 싶은 회의감이 남아있는 경찰들이었으나...
부산 사건 덕분에 순순히 협조를 해줬다.
가짜 그린 더스트는 진작에 선을 넘어버렸다.
나는 도저히 안심하지 못하고 앨리스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마중 나간다!"
"그, 그렇게까지요?"
"사이트 운영진들은 몰라도 가짜 그린 더스트는 바보가 아니야. 분명 투표가 시작되기 전부터 준비를 마쳐놓았을 거야."
해당 투표는 사실상 범죄 예고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보를 전해들었다.
[보호 대상자, 이송 도중 탈취!]
"뭐? 탈취?"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는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빨리 털려버릴 줄이야.
역시 놈이 계획을 제대로 준비했다.
"피해자를 감시하고 있던 건가? 부산 원정까지 다녀왔으니 시간이 꽤 빠듯했을텐데?"
"애초에 피해자를 감시하고 있었다면 경찰서까지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 같아."
"그건 모르지. 우리에게 선전포고 하는 걸지도...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위험부담이 너무 큰데?"
이런 식으로 당하면 경찰도 절대 그냥 넘어가진 않는다.
우린 원래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고 쳐도, 그쪽도 한없이 진심이 될 것이다.
현재 가짜 그린 더스트는 거의 폭주 상태다.
결국 나는 운전석에 앉은 채 고민하다가 반칙을 쓰기로 했다.
현재 블랑쉬는 사용할 수 없지만, 어차피 가짜 그린 더스트를 체포하는데엔 큰 도움이 안 되는데다...
나는 그보다 더한 반칙수단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대로 퇴근한 나는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그것을 사용했다.
"자기야, 도와줘."
예리엘은 내 부탁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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