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인공물(2)
* * *
기지 안쪽에서 나타난 사람들이 순식간에 우리를 포위했다.
언뜻보면 평범한 사람 같지만 죄다 다부진 체격에 기묘한 분위기.
묘하게 무기물같은 느낌을 풍기는 인간들이었다.
앨리스는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더듬더듬 내뱉었다.
"이, 이 녀석들이 그..."
"시작이 좋네."
"도대체 어딜봐서?"
"적어도 다짜고짜 공격은 안 하잖아. 공격성이 적절하게 억제되어 있다는 뜻이야."
다행히 영양 상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의복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효율이 나쁘다고 판단돼서 거의 방치나 다름없는 상태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 살처분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조금 더 놔뒀으면 실미도 2편을 찍을 수 있게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그들은 외부의 침입을 명백히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책임자는 어디있지?"
"..."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곧바로 반응하는 놈들.
불꽃과 전기가 순식간에 내쪽으로 날아들었다.
앨리스는 늦지 않게 회중시계를 휘둘러서 그것을 모두 쳐냈다.
인공헌터들의 능력은 아주 허무하게 튕겨나갔다.
티잉!
바로 이게 문제다.
A랭크, B랭크 헌터들을 썩어빠지게 만들어봤자 S랭크를 못 만들면 말짱 도루묵.
분명 같은 헌터인데 등급의 차이에 따른 능력차가 너무 크다.
헌터업계도 은근히 엘리트 위주다.
헌터들의 숫자가 부족해서 국방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또 몰라.
인공 헌터 제조라는 것은 굳이 크게 투자할 메리트가 없는 기술이다.
그뿐이랴.
인간 한 명을 성인으로 만드는데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어차피 헌터들은 자연발생하니까, 굳이 만들어서 쓰는 것은 가성비가 너무 나쁘다.
지금으로선 그냥 외국산을 수입해서 쓰는 게 훨씬 나은 상황.
"역시 S랭크는 없나."
그리고 S랭크는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S랭크 헌터의 양산 따위가 가능했다면 진작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으리라.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감동을 느꼈다.
"솔직히 한국의 유전공학 기술에는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제법이네."
"지금 감탄할 때야?"
"괜찮아. 진정해."
앨리스의 실력을 보게 된 인공헌터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의 움직임에서는 어렴풋한 야성이 느껴졌다.
야생 동물이라곤 해도 꼭 멍청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야성이 있기에 강한 상대에게 막 덤벼들지 않는다.
"야, 이것들 어떻게 할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거의 다 왔어."
"뭐? 아..."
부우웅...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에 겨우 상황을 눈치챈 앨리스.
딱히 그녀가 어리석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티아를 타고 날아왔는데, 그걸 자동차로 쫓아오는 게 이상한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밟아댔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나중에 교통위반 통지서를 받으면 상당히 볼만하겠지.
철컥!
대원들은 웬일로 무장을 해제한 채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시설의 인원들은 곧바로 동족을 알아봤다.
그들의 부릅뜬 눈에서 갖가지 감정이 휘몰아쳤다.
"..."
"..."
본인들을 차분히 관찰할 수 있도록 뜸을 들이는 서번트들.
앨리스는 과연 설득이 가능할까 의심하는 눈치였다.
다행히, 이런 부류에겐 한국어보다 훨씬 잘 먹히는 언어가 존재했다.
아예 태블릿을 가져온 대원 한 명이 희미하게 웃더니 볼륨을 최대로 높인 채 영상을 재생시켰다.
안쪽에서 흘러나온 것은 제법 그럴싸한 연주였다.
빠밤, 바바밤...
산 중턱에 널리 울려퍼지는 음악.
인공헌터들은 완전히 홀린 듯 멍하니 서서 그것을 지켜봤다.
화면 속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은 그들과 같은 인조인간들이었다.
사람들은 늑대와 개를 잘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늑대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
"뭐, 뭐하는 거냐! 얼른 침입자들을 쫓아내!"
그제야 숨어있던 책임자가 튀어나오며 그들을 닦달했다.
이런 중요한 기밀 시설에 관리자 한 명 없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만들어진 헌터들은 차마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무기를 들지도 않고, 음악을 들려주는 동족들을 어떻게 해치겠는가.
나는 멀찍이 선 채 신분증을 꺼내들었다.
"협회 특별 수사관입니다. 책임자 얼른 나오세요. 아까 나오랄 때 안 하고 뭐하는 짓입니까?"
"아앗..."
그래도 같은 협회 소속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마지못해 다가오는 책임자.
백의를 걸친 그는 제법 솜씨가 있는 연구자 같았다.
아마 협회장에게서 연락을 받곤 연구자료나 증거물을 폐기하는 중이었으리라.
그들에겐 다행히도, 나는 그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 녀석들의 상태를 보면 아주 극단적인 실험을 한 것 같진 않으니까...'
그 사이, 오케스트라 연주가 끝나자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대원들이 다시 말했다.
"너희들도 이렇게 될 수 있다."
"함께 가자, 형제들."
말주변이 없는 그들이었지만 진심은 충분히 전해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인공헌터들은 천천히 기지를 나가서 차량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감정표현이 서투른 것일 뿐, 결코 바보들이 아니었다.
헌터들은 다양한 능력을 활용하여 다채로운 전투를 진행하는 만큼, 굳이 지능을 낮춰서 좋을 것이 전혀 없다.
그들도 이미 눈치챘다.
본인들은 이미 반쯤 폐기된 처지라는 사실을.
어느날을 기점으로 대우가 급격히 나빠지고, 훈련도 건성건성이 되었다는 것을...
이런 곳에 남아있느니 출세한 동족들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낫다.
당연하지만, 책임자 격 연구원은 거의 발광했다.
"자, 잠깐!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저 녀석들은 대한민국 정부와 협회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목소리 낮춰. 그렇게 떳떳한 연구가 아닐텐데?"
"아. 아니..."
"나도 과하게 파헤칠 생각은 없어. 당신도 그저 시켜서 한 것뿐이라고 믿고싶군. 헛짓거리 하지말고 얼른 안내해."
나는 그의 등을 떠밀어서 시설 안쪽을 안내시켰다.
그 사이, 인공헌터들은 티아를 보고 상당히 애매한 표정을 보였다.
금방이라도 공격당할 것 같은 티아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과자를 살짝 내밀었다.
"머, 먹을래요?"
"용케도 챙겨왔구나 그거. 앨리스, 가자."
"으응."
다행히 시설의 내부는 딱 내가 생각한만큼 온건했다.
아무래도 현역 헌터들의 유전자를 이용한 실험 따윈 거의 하지 않은 모양.
덕분에 나는 살짝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으면 꼬마 앨리스나 꼬마 예리엘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소름끼치는 소리 하지마."
"S랭크 헌터들의 유전인자는 특별합니다. 게다가 헌터의 정신상태가 헌터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서... 무턱대고 실험해봤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보기보다 양심적인 연구자의 설명을 들으며 감찰을 완료.
이 정도면 내가 봤던 연구시설들 중에서도 톱급에 속할만큼 깨끗하다.
아무래도 한국은 헌터 사태 초기부터 대처가 비교적 잘 된 덕에 절박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감옥에 자리가 부족하니까 이 정도는 패스. 고문 같은 건 안 했겠지?"
"저희 예산도 엄청 빡빡해서 훈련도 겨우 시켰습니다.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어요."
"오케이, 정리가 다 끝나면 집에 가."
내가 다시 차로 돌아가려던 중.
앨리스가 내 앞을 막아서며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쟤들은 어디로 보내는 거야?"
"당연히 이번 건을 의뢰한 마담에게 보내야지."
"일레네 윌슨? 그 여자가 쟤들에게 뭘 하는데?"
"사회화 교육."
나는 블랑쉬에게 요청해서 회사 소유의 시설을 하나 보여줬다.
"이대로 사회에 풀어줄 수는 없으니까, 이곳에서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지. 먼저 군사교육으로 인한 공격성을 최대한 억제한다. 원래는 약물과 헌터 능력, 폭력까지도 사용하지만 이번에는 안 그래도 될 것 같네."
"야, 약물과 헌터 능력을 쓴다고?"
"어쩔 수 없어. 이번 실험체들은 아주 온건한 케이스야. 원래는 쟤들보다 훨씬 난폭해. 만약 공격성을 제거하지 않으면, 살처분할 수밖에 없어."
"..."
앨리스도 차마 내 말을 부정하진 못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뒤늦게 안심시켰다.
"괜찮다니까. 쟤들은 진짜 얌전한 편이니까."
"그럼 그 다음에는?"
"적성과 능력에 따라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지. 참고로 이런 실험체들은 대부분 전투계 능력을 가지고 있어. 본인이 원하면 우리 회사에 취업하고, 아니면 백수로 지내는 것도 가능해."
"..."
앨리스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심쩍은 반응을 완전히 숨기진 못했다.
"지금껏 많이 해봤으니까 걱정마. 마담이 원래 이런 거 전문이야."
"아, 그럼... 결국 너희 조직이 직접 인공헌터를 만들었던 건 아니네?"
"당연하지. 딱 봐도 시간대가 안 맞잖아. 우리 조직은 겨우 5년 정도 됐는데, 어떻게 20살짜리 실험체들을 만들어내?"
"아하..."
우리 조직이 보유한 인공헌터들은 대부분 타국 정부 출신이다.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서번트 한 명이 웃으며 첨언했다.
"서번트는 자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원제?"
"마스터와 에스콰이어분들을 모시는 것은 가장 보람차고 영광스런 임무입니다. 자리는 81석밖에 없는데, 지원자는 언제나 넘치기 때문에 항상 예비가 있습니다. 제가 임무 도중 사망해도 바로 빈자리가 채워질 겁니다."
"너, 너희들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다른 생활이나 임무에 이만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희들은 해야할 일을 반드시 해낼 겁니다."
아무래도 얘들이 군대 출신이다보니, 이런 사고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것은 영 쉽지 않았다.
나는 협회장이 15번째로 전화를 걸어온 것을 발견하곤 뒤늦게 받았다.
"여보세요."
[당장 멈추게!]
"아니, 그럼 얘네들 어떻게 하실 건데요? 어차피 처치곤란이었잖습니까. 저희쪽에서 알아서 잘 보살펴줄테니 걱정하지 마십쇼."
[아니. 그런 문제가...]
"그럼 이거 까발려줘요? 21세기에 인조인간 생체실험이라니, 모가지가 한두개 날아가는 게 아닐텐데?"
[...]
뚝.
나는 통화를 종료하곤 차에 몸을 실으며 다시 한 번 투덜거렸다.
"꼬마 앨리스도 안 만들어놨으면서 뭘 잘했다고 떠들어?"
"... 그냥 앨리스는 있는데."
내 눈을 피하며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앨리스.
나는 덕분에 웃음을 터뜨리며 서울로 돌아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