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인공물(1)
* * *
헌터 협회의 앞은 시위 명당이다.
일단 번화가라서 유동인구가 많고, 접근성도 좋은데다 세금으로 지은 건물이라는 통념 때문에 좀 만만해보이는 것도 있다.
'사실 협회 본부 신축에 들어간 돈은 거의 다 헌터 연금에서 나왔지만 말이지.'
이젠 출퇴근 때마다 시위대 한두개 정도 없으면 좀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
물론 매일 저렇게 시위를 해대면 신선함이 떨어져서, 파급력도 줄기 마련이지만...
저들은 그런 사소한 사실 따윈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어쩔 때에는 시위를 일종의 스포츠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그들을 묵묵히 지나치려던 찰나.
시위대가 내 앞을 우르르 가로막았다.
헌터들을 처벌하는 특수대는 시위자들에게 잠재적인 아군으로 보이는 것 같다.
"저, 잠깐만요! 혹시 인터뷰 한 번 할 수 있을까요?"
"아뇨. 일이 많아서..."
"수사관님 말고, 거기 헌터펫이요!"
"... 엥? 저요?"
시위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티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멈춰섰다.
나는 그제야 그들이 들고있는 피켓의 내용을 살펴봤다.
그들은 몬스터와의 공존을 주장하는 이들로, 지난번의 헌터펫 폭행사건 용의자의 반대편 정도 되는 이들이었다.
단순히 헌터펫을 허가하는 수준을 넘어서 몬스터를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따위 시위는 꿈도 못 꿨을텐데...
요즘은 슬슬 게이트가 닫힐 기미가 보여서 그런지 활개를 치고있다.
그들의 입장에선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지능을 지닌 티아가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녀석의 존재 자체가 저들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시위대는 막무가내로 티아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질문세례를 던졌다.
덕분에 발끈한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꺼내려는 것을, 내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네가 티아지? 혹시 협회에서 이상한 짓이라든가 당하진 않았니?"
"아, 아뇨. 주인님은 제게 엄청 잘 해주셔요."
"앞으로 너 같은 몬스터 출신 헌터펫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지?"
"헌터펫이라는 단어 자체가 좀 차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몬스터들도 다들 살고싶을텐데..."
티아는 뒤늦게 그들의 의도를 눈치채곤 안색을 굳혔다.
녀석은 작게 뒷걸음질을 치며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다, 다들 무슨 말씀이셔요! 몬스터는 인류의 적이에요. 저는 감히 인간님들에게 대든 죄인이구요."
"뭐, 뭐라고?"
"인류 만세! 대한민국 만세! 인간님들께 거스르는 몬스터들 따윈 다 죽어버려야 해요!"
"멍멍!"
"..."
시위대가 무거운 침묵에 빠진 사이.
나는 괜히 흐뭇하게 웃으며 티아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얘가 예전부터 스탠스 하나는 확실해서 좋다.
"슬슬 간식비 좀 늘려줄까?"
"충성충성!"
티아가 기뻐서 날뛰던 것도 잠시.
나는 문자가 온 것을 확인하곤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앨리스도 내 안색이 바뀐 것을 눈치채곤 나를 따라왔다.
"뭐야?"
"회사 연락."
"아..."
"블랑쉬, 연결해줘."
문을 닫자 곧바로 벽걸이형 TV가 켜지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오늘 연락을 걸어온 것은 회사의 경영 및 인사 담당인 일레네 윌슨.
그녀는 나와 앨리스에게 웃음을 보였다.
[안녕, 더스트. 마스코트 양도 안녕.]
"마스코트 아니거든..."
"맞잖아.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이젠 내가 도움을 받을 차례인 것 같거든. 더스트, 기억하고 있지.]
"당연하지 마담."
나는 영국 출장 때 일레네 윌슨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곧바로 용건을 밝혔다.
[한국에서 조사하고 싶은 곳이 있어. 블랑쉬를 통해서 보낼테니까, 후속 처치는 알아서 해줘.]
"그러지."
"으, 으응?"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락하는 나를 보고 살짝 당황하는 앨리스.
일레네 윌슨이 만족스레 웃으며 통신을 종료하자 앨리스가 곧바로 항의했다.
"이렇게 막 수락해도 되는 거야?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개인적인 문제 같은데?"
"뭐, 만약 매튜가 부탁했다면 좀 고민해봤겠지만, 마담의 부탁이니까..."
일레네 윌슨은 매튜보다 훨씬 믿음직한 인성을 지닌 마스터다.
나는 그녀의 부탁이라면 못된 짓은 아닐거라 확신했다.
앨리스는 내 설명에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됐다.
"그럼 매튜 마누엘 쪽은 못된 짓을 부탁한다는 거네?"
"가끔씩 말이야. 가끔씩. 블랑쉬?"
[해당 주소를 지도상에 표시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냉큼 화면을 전환하는 블랑쉬.
마담이 조사하고싶다는 장소는 상당히 오래전에 폐쇄된 군부대였다.
대 헌터 시대 시작 직후, 크고 작은 군부대들이 많이 통폐합됐는데 이곳도 그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런 곳에 도대체 뭐가 있다고..."
"글쎄. 마담이 짚어줬으니 평범한 시설은 아닐거야."
"더 자세한 자료는 없는 거야?"
"굳이 필요가 없지. 나는 대충 짐작이 가거든."
살짝 불만스러워하는 앨리스와 함께 방을 나선 나는 곧바로 정식 조사를 준비했다.
기왕 특별 수사관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써먹어야하지 않겠는가.
괜히 블랑쉬의 할당량을 써먹기도 아까워서, 협회의 인트라넷으로 관련 기록을 열람하려는데...
돌연 승인 거부라는 알림창이 뜨며 인트라넷의 연결이 강제로 해제됐다.
"... 뭐야 이거? 내 보안 레벨은 협회장 바로 아래 정도인데?"
당혹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당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다음 순간. 협회장실에서 내선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 협회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거긴 건드리면 안 돼!]
"... 왜죠?"
[그야 군사 시설이니까! 군대에서 헌터들과 협회를 얼마나 눈엣가시로 여기는지 알잖은가!]
협회장의 말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지만, 그는 거짓말에 재능이 없었다.
게다가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그나저나 갑자기 군사 시설에는 무슨 일인가?]
"근처에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신고?]
참고로 신고자의 이름은 일레네 윌슨이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비아냥거리며 순순히 납득하는 체 했다.
"알겠어요. 그럼 군부대랑 빨리 협의 좀 해주세요. 그쪽에 헌터 범죄 조직이 숨어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그런가? 조금만 기다리게.]
덜컥.
나는 전화가 끊기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최소 인원만 남고 전원 출동! 서우 씨, 사무실 좀 부탁해."
"예, 예에?"
"잠깐. 진짜 갈거야?"
"협회장이 뭔가 숨기고 있어. 순순히 말 안 하면 우리가 알아서 찾아야지."
괜히 인트라넷으로 뒤져봐서 시간제한이 생겼다.
만약 가만히 놔두면 저쪽에서 증거를 은폐하려 할지도 모른다.
앨리스는 그제야 감이 잡힌 듯 굳은 얼굴로 회중시계를 매만졌다.
"협회와 정부가 거기서 뭔가 저질렀다는 소리야?"
"맞아."
아니면 이런 식으로 정보통제를 시도할 리가 없다.
당장 협회장의 말만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군대에서 협회를 눈엣가시로 여기는데, 왜 군부대 관련 자료가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있겠어?"
"아..."
대부분의 인원들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지만, 나는 티아를 데리고 옥상으로 향했다.
미리 준비해놓은 안전띠를 녀석의 본체에 결속하곤 곧바로 비행.
황금빛 용으로 변한 티아는 작게 투덜거리며 열심히 날갯짓을 했다.
"여긴 빌딩풍이 강해서 날기 힘들어요."
"나도 윙슈트 쓸 때 좀 무섭더라. 서둘러!"
"그런데, 주인님께선 이미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고 계신거죠?"
"오, 이제 티아 너도 눈치가 생겼네. 만약 눈치가 좀 더 좋았다면 그냥 입 다물고 날갯짓이나 열심히 했겠지만."
"..."
나는 협회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을 무시하며 문제의 장소로 향했다.
사실 일레네 윌슨이 의뢰한 시점에서 이번 건의 테마는 대충 짐작이 됐다.
앨리스가 티아의 형편없는 탑승감에 살짝 감탄하는 사이, 마침내 목적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버려진 군사 기지의 근처는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서 초목이 무성했다.
기지 내부도 얼핏 보면 그냥 버려진 것 같다.
하지만, 잘 보면 도로는 제법 깔끔하게 관리가 되어있었다.
"이런 산 위에서 도대체 뭘 한다고..."
"앨리스, 슬슬 전투 준비해. 선제 공격은 하지말고, 죽이지도 말아줘."
"너무 늦기 전에 무슨 일인지 말 좀 해주시지?"
나는 티아와 함께 착륙하자마자 기지의 입구로 걸어들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뻔한 이야기야. 정부와 협회가 오래된 군사 기지를 이용해서 무슨 재밌는 짓을 하겠어? 그놈들은 끽해야 인체실험이나 개조인간 같은 거나 만들겠지."
"뭣?"
인공적인 헌터 제조.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비밀리에 시행되고 있는 실험이다.
요즘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으나,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다들 헌터가 부족해서 난리였다.
나름대로 비전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라면 한 번 정도는 시도해볼 수밖에 없는 테마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들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 이게 상당히 어렵거든."
"... 너도 한 번 해본 것처럼 말한다?"
"내가 직접 해본 건 아니고... 사실 네 주변에도 많아."
"뭐어?"
앨리스는 웬일로 아직까지 갈피를 잡지 못한 모습이었다.
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지난번에 서지유가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우리 팀원들 꽤 유능하지? 묵묵히 맡은 일도 잘하고, 각종 군사 기술도 마스터했고."
"..."
"그런 애들을 도대체 어디서 다 구해왔겠어?"
"서, 설마..."
그렇다.
우리 팀원들 중 서번트들은 모두 인공 헌터 제조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앨리스는 무척 억울한 얼굴을 보였으나, 내가 그녀에게 아예 귀띔을 해주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내가 회사의 구성에 대해서 설명해줬을 때 뭐라고 했지?"
"엇? 아아..."
하나의 오라클.
3인의 마스터.
9명의 에스콰이어.
그리고 81체의 서번트들...
잘 보면 서번트는 단위 의존명사의 느낌이 많이 달랐다.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챈 앨리스가 걸음을 딱 멈춰버렸다.
"걔, 걔들이 모두 인조인간이었다고?"
"인조인간이라곤 해도 아주 거창한 건 아냐. 마력 친화력이 높은 유전자를 이용해서 체외수정 시켰을 뿐이지. 성장 속도는 일반인과 똑같고, 교육도 제대로 받았어. 걔네들의 감정표현이 좀 희박한 건 군사교육 때문이야."
"말도 안 돼. 게이트 터지고 나서 바로 실험을 했다 쳐도 고작 20살인데, 걔들이 어떻게 20대야!"
"그거 걔네들 앞에선 말하지 마라. 상처받는다."
수다를 떨면서 기지에 진입하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움직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앨리스에게 선두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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