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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02화 (102/131)

〈 102화 〉 출장(3)

* * *

놀랍게도, 몬스터에게 가장 빠르게 덤벼든 것은 가짜 그린 더스트였다.

녀석은 그림자를 일으켜 전방위에서 적룡을 압박했다.

제법 거창한 공격이었지만, 적룡은 불똥을 터뜨리는 것으로 그것을 순식간에 물리쳤다.

단순한 발화 능력이지만 티아마트의 조각답게 체급이 다르다.

게다가 저 능력은 척 봐도 그림자 능력과 상성이 최악이었다.

적룡은 불꽃을 크게 방사하며 기세 좋게 외쳤다.

"내 불꽃은 그림자를 찢어!"

화르르륵!

한편. 내가 몰래 뿌려놓은 그린 더스트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딱히 저쪽에서 노린 것도 아닌데, 압도적인 화력에 타버리거나 열풍에 휩쓸려서 날아가버린 것이다.

지금껏 화염계 능력자는 몇 번 상대해봤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는 없었다.

"염병..."

"마스터!"

불꽃이 나를 덮치려던 찰나, 수석 에스콰이어가 아공간 수납 능력을 발휘하여 불꽃을 거둬들였다.

적룡은 그 모습에 살짝 놀라며 불꽃을 넓게 휘둘렀다.

"재주도 좋군. 하지만 이건 어떨까!"

"윽!"

이번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다 흡수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피.

수석 에스콰이어는 무생물이라면 거의 뭐든 아공간에 넣어버릴 수 있지만, 능력의 범위가 상당히 좁은 편이다.

저런 공격이라면 직격은 막을 수 있어도 화상을 입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짝 고전하고 있던 중.

적룡은 계속 불길을 뿜어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곤 화염 너머에서 직접 달려들었다.

티아마트의 붉은색 머리는 자매들 중 힘을 담당하는 개체.

저 녀석에게 한 대 맞으면 목숨은 커녕 시체도 제대로 못 건질 확률이 아주 높다.

콰앙!

다행히 적룡은 우리에게 도달하기 전에 혼신의 날아차기에 맞아서 옆으로 튕겨나갔다.

가짜 그린 더스트는 앞선 공격이 무산되자 그림자 능력을 응용해서 가속, 본인의 몸을 총탄처럼 쏘아낸 것이었다.

나는 불길한 격돌음에 작게 혀를 찼다.

"야, 너 다리 괜찮냐? 그러게 왜 일본까지 기어들어와선..."

"지금 그런 소리 할 때에요?"

바닥을 뒹구는 녀석을 놔두고 적룡에게 향한 나는 두 용들에게 외쳤다.

"굳이 이럴 필요 없어. 우리는 이미 황금색 머리를 보호하고 있단 말이다. 너희도 안전한 곳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지낼 수 있어."

"거짓말 하지마라! 이미 인간을 습격했던 우리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받아준다고?"

놀랍게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나는 다시 한 번 설득을 시도했으나 적룡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초록색 머리는 제자리에 멍하니 서있을 뿐이다.

"분명 황금색 머리도 끔찍한 짓을 당하고 있겠지!"

"야, 서운한 소리 하지마! 걔가 우리집에서 제일 잘 처먹고 다녀!"

억울함을 가득 담아서 그린 더스트 수류탄을 투척.

적룡은 용케 파편을 피해서 다시금 달려왔다.

아찔한 열기를 향해서 똑바로 들어올린 내 손에서 녹색의 돌이 빛났다.

"티아는 간식을 하루에 다섯 번씩 먹는다고!"

"애칭이냐? 고고한 용족이 애첩으로 전락했구나!"

고고하긴 개뿔.

나는 더 이상 봐주지 않고 그린 버스트를 날렸다.

밝은 녹색의 섬광과 함께 열기와 방사능의 폭풍이 전방을 휩쓸었다.

치지지직!

폭발음 대신 가이거 계수기의 소음이 치솟았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적룡이 잽싸게 화염의 방벽을 쳤으나, 이번에는 선택이 나빴다.

그린 버스트에 관통당한 녀석은 잠시 휘청거리다가 이어진 저격에 당했다.

퓻, 퓨숫!

현장에는 이미 그린 더스트 탄환으로 무장한 저격수들이 대거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주저없이 적룡을 공격했다.

파바밧!

적룡의 강건한 육체는 초음속으로 날아드는 그린 더스트 탄환에 허무하게 뚫려버렸다.

결국 핏물을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지는 녀석.

나는 녀석에게 살짝 미안함을 느끼며 초록색 머리에게 다가갔다.

만약 시간적인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제압이나 설득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데, 안타깝게 됐다.

초록색 머리는 붉은색이 당하는 것을 보고도 잠자코 인형처럼 서 있었다.

내가 그 모습에 우려를 느끼던 중.

돌연 내 머릿속으로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만두세요.]

"뭣?"

반사적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그린 더스트를 끌어올리자, 목소리에 급격히 노이즈가 생기며 알아들을 수 없게 됐다.

눈앞에 있는 초록색 머리의 소행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눈치다.

나를 보고 살짝 당황한 수석 에스콰이어가 황급히 초록색 머리를 포박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읏..."

초록색 머리는 그린 더스트제 구속구를 채우자마자 풀썩 쓰러졌다.

내가 반사적으로 그린 더스트를 거둬들이자... 아까전의 목소리가 다시금 찾아왔다.

녀석은 내가 또다시 그린 더스트를 사용할까봐 다급히 본인의 정체를 밝혔다.

[저는 블랙 로터스입니다.]

"뭐, 뭣? 그 말을 믿으란 거야?"

갑자기 여기서 블랙 로터스라니.

나는 무척 당황하면서도 설득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텔레파시라면 블랙 로터스의 수법 그 자체가 아니던가.

게다가 블랙 로터스라는 범죄자의 이름을 알고있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녀는 본인으로 이어지는 단서를 남기기 싫다는 듯, 간단히 용건만 말했다.

[그 아이의 자연감응 능력을 이용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에요. 부디 믿어주세요.]

"웃기지 마! 너 어디서 개수작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좀 더 단서를 얻고 싶었으나...

블랙 로터스는 그대로 텔레파시를 끊어버렸다.

그 사이 초록색 머리를 완전히 확보한 수석 에스콰이어가 나를 재촉했다.

"마스터, 가셔야 합니다."

"... 그래. 도주팀, 준비됐나?"

[언제든 가능합니다.]

"철수 개시!"

수석 에스콰이어와 팀원들은 즉시 바다를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가짜 그린더스트는 어느샌가 사라진지 오래.

나는 아쉬운 한숨을 삼키며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블랑쉬의 유도에 따라서 죽어라 달리자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차량이 나를 트렁크에 태웠다.

부우우웅!

차량은 터미널 노동자들의 피난 행렬에 섞여서 잽싸게 섬을 빠져나갔다.

수석 에스콰이어 쪽은 수중 잠입 능력자를 통해서 탈출했을 것이다.

도쿄 앞바다의 경계태세가 삼엄하다곤 해도, 블랑쉬를 이용해서 카메라를 끄고 경비 인력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면 구멍이 뻥뻥 뚫릴 수밖에 없다.

"마스터, 바로 올라가주세요."

"벌써 일본 협회에서 찾아온 거야?"

"네!"

나는 호텔 지하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예진의 설명에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각국의 협회들이 원래 공무원 조직 치곤 굉장히 빠릿빠릿한 편이긴 한데...

이놈들은 그런 것 치고도 굉장히 유능하다.

내가 서둘러 객실로 올라가자 호텔 직원들이 몸으로 막고 있었던 협회 사람들이 객실의 문을 두드렸다.

예리엘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밤중에 무척 죄송합니다. 혹시 몬스터 웨이브 경보를 들으셨습니까? 저희 협회 측에서 즉시 경호 인력을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녜요. 오히려 제가 여러분들을 돕고 싶은데요?"

협회의 직원들은 예리엘의 말에 쓰게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혹시 우리 소행이 아닌가 조사하러 온 것이 확실하다.

그 사이 잽싸게 몸을 씻은 나는 목욕 가운을 걸치곤 그들을 맞이했다.

"몬스터 웨이브 경보요? 이곳은 안전한 겁니까?"

"예. 워낙 소규모라서... 아, 조금 전에 다 정리됐다고 합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이야. 일본의 헌터들은 정말로 빠르군요."

우리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한 협회 직원들은 곧바로 돌아갔다.

분명 그새 호텔의 CCTV 영상도 확인해봤으리라.

"저 친구들 일 진짜 잘 하네."

"주인님! 정말 너무하셔요!"

전투 중의 대화를 고스란히 엿들었던 티아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내게 항의했다.

물론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너무해? 다 사실대로 이야기 했잖아. 네가 얼마나 잘 처먹고 다니는지 알면 걔도 생각을 좀 바꿀 줄 알았지."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그렇죠!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란 게 있는 거 아니었나요?"

"오, 우리 티아 진짜 똑똑해졌네. 좀 있으면 케르도 법조항 달달 읊고 다니는 거 아닌가? 근데 너 잘 먹고 다녔다고 소문나는 거 싫었구나?"

"엣... 아, 아뇨. 그건 아닌데..."

내가 살짝 엄포를 놓자 옆에서 예리엘이 득달같이 맞장구를 쳤다.

"아쉽게 됐네요. 내일은 엄청나게 비싼 고깃집에 갈 예정이었는데..."

"아, 아앗?"

"어쩔 수 없지. 싫다는 녀석은 내버려두고 우리끼리 가자고. 앨리스 너 와규 먹어본 적 없지?"

"응. 솔직히 좀 기대되네. 일본산 와규는 수입 금지라서 한국에선 못 먹잖아."

"에엑? 수입 금지?"

"왈왈!"

고기라는 단어를 용케 알아들은 케르가 옆에서 무척 즐겁게 짖었다.

서지유도 은근히 기대하는 표정.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던 티아마트의 황금색 머리는 주저없이 바닥에 이마를 처박았다.

"주, 주인님! 소첩이 잘못했습니다! 저는 하루에 간식을 다섯 번씩 먹는 돼지 드래곤이에요!"

"지금 내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줄 알아? 기껏 잘 먹여놓았더니... 너 앞으로는 콜라도 금지야."

"진짜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차라리 죽여주세요!"

나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비는 티아의 모습을 즐겁게 감상하다가 적당히 녀석을 용서해줬다.

다음 날 저녁.

티아는 야키니쿠 집에서 탄성을 내뱉었다.

"와아! 주인님, 얼음이에요! 불판에 얼음을 굽고있어요!"

"호들갑 떨지 말고 많이 먹어 인마. 나중에 내가 너 굶겼다고 하지말고."

"에이, 그건 죄송하다니까요. 진짜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드래곤이 된 티아는 주저없이 집게를 집어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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