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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01화 (101/131)

〈 101화 〉 출장(2)

* * *

내 걱정과 별개로, 첫 강연은 제법 성공적으로 끝났다.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괜찮은 질문들도 심심찮게 던져줬다.

예리엘과 함께 강연을 끝낸 다음, 느긋하게 관광을 즐기던 나는 앞으로의 일정을 되새겼다.

이제부터 이틀간 도쿄에 머물다가 교토와 큐수에서도 강연을 한 번씩 더 하고 돌아가는 일정.

당연하지만 초록색 머리를 탈취하는 작전은 그 전에 실행해야 한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모두가 모여있는 가운데 블랑쉬에게 요청했다.

"작전은 수립됐나?"

[지금부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블랑쉬는 아예 3D 입체도까지 띄워올리며 작전을 제안했다.

[한국 정부에서 파악한 목표물의 위치는 바로 이곳입니다. 어제 서번트들이 2중으로 확인을 마쳤죠.]

일본 헌터 협회가 초록색 머리를 숨겨놓은 곳은 호텔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도쿄 국제 공항 옆의 자그마한 섬.

컨테이너가 가득한 화물 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협회의 비밀 시설이 숨겨져 있었다.

외딴 창고를 개조한 건물은 아주 삼엄한 태세로 경비가 되고있다.

"섬에서 관리하는 건가..."

"아무래도 도시는 너무 눈에 띄니까. 국제 공항 옆의 화물 터미널이라면 눈치보지 않고 경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지."

"경비 인력은 어떻게 되지?"

[현역 S랭크 1명이 상주 중이고, 전문 경호 인력도 다수... 시설 돌입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싸워서 못 이길 것은 없겠지만, 역시 일이 너무 커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목표물의 이송을 강제하는 겁니다.]

"강제 이송?"

[해당 시설은 존재 자체가 기밀사항으로 방어력보다는 은밀성에 기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만약 위치가 노출되어 공격을 받게 될 경우, 오래 버틸 수는 없으므로 목표물의 이송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렇다.

만약 놈들이 방어력을 중시했다면 아예 자위대 기지나 헌터 협회 본부 같은 곳에 처박아놓았겠지.

아무래도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서 저런 식으로 처리한 것 같은데... 우리가 알게 된 시점에서 놈들의 경비 작전은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다.

블랑쉬는 차분히 세부사항을 설명했다.

녀석이 띄워둔 입체 지도에서 갑자기 불길이 솟아올랐다.

[탈취 작전 시작과 동시에 서번트들을 동원하여 시설 주변을 정밀 포격합니다. 해당 시설은 화재 진압 능력이 없으므로, 공격을 받음과 동시에 무조건 목표물을 이송하게 됩니다.]

"이송 경로는 예상이 되나?"

[해당 지역에는 총 4개의 다리가 있지만, 시설에서 다리로 향하는 도로는 2개 뿐입니다.]

"좋아."

2곳이라면 우리 인원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된다.

"탈출루트는?"

[수석 에스콰이어가 부품을 확보하는 즉시, 무선으로 거짓 정보를 흘리고 수중으로 퇴각합니다. 마스터께선 작전 완료 이후 호텔로 복귀해주시면 됩니다. 관련 정보는 모두 제 쪽에서 통제하겠습니다.]

"완벽하군."

목표물을 확보하기만 하면 끝나는 건 아니다.

우리 회사의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라클의 보호 및 운영은 오라클의 향상보다 우선순위가 높다.

나는 작전에 만족하며 내일 밤에 결행하기로 했다.

앨리스와 예리엘도 함께하고 싶어했으나, 그녀들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호텔에 잔류.

호텔 전체가 회사의 소유인만큼 알리바이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후딱 해치우고 돌아올테니까, 적당히 놀고있어."

"저, 주인님. 만약 초록색 머리가 살아있고, 협조를 잘 하면 어떻게 해요?"

"그 때는 너 대신 걔가 특수대 마스코트가 되는 거지."

"아앗, 말도 안 돼요!"

소파 위에서 호들갑을 떨던 티아가 내 대답에 기겁했다.

나는 녀석을 붙잡곤 다시 한 번 물었다.

"초록색 머리가 체력 담당이라고 했지? 좀 느긋한 성격이라고..."

"맞아요. 다른 머리들은 몰라도 걔는 정말 협조할지도 몰라요."

"그럼 그 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어차피 초록색 머리의 능력을 발동하는 매개는 녀석의 뿔이다.

여차할 때엔 뿔만 대충 잘라서 가져와도 되는 것이다.

나는 티아와 적당히 놀아주다가 내일의 강연 내용을 복습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완전무장을 갖춘 채 호텔의 옥상으로 향했다.

평소와 조금 다른 느낌의 슈트는 몸에 살짝 끼는 느낌이었다.

윙슈트.

흔히 날다람쥐 옷이라고도 부르는, 활공용 특수복이다.

원래부터 위험천만한 물건이지만 소형 제트팩이 붙어서 더더욱 위험해졌다.

'예리엘이 알면 기겁하겠네.'

윙슈트의 위험성은 정말 엄청난 수준으로,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 착륙은 낙하산을 이용하기 때문에 잘못 박으면 그대로 죽는다고 봐야한다.

심지어 헌터들도 안심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작전 돌입에서 이탈까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하여 윙슈트를 선택했다.

옥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번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보냈다.

"준비 끝났습니다. 언제든지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1팀부터 보고해."

[선제 타격 담당 1팀, 작전 지역 배치 완료.]

[탈취 담당 2팀, 3팀. 작전 지역 배치 완료.]

[도주팀 배치 완료!]

"좋아. 최대한 빠르게 치고 빠진다. 블랑쉬?"

[네에.]

끼이익...

녀석의 대답이 나오자마자 호텔 전체는 물론이고 옆 블록들의 불도 일제히 꺼졌다.

병원이나 항공 관제센터 등등, 몇몇 필수적인 시설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정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헬멧을 착용하곤 망설임 없이 빌딩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촤악!

고층 호텔이라곤 하지만 비행 고도가 살짝 불안하다.

아니. 말만 비행이지, 사실은 조금 느리고 우아한 추락에 불과했다.

내가 매튜의 솜씨를 믿고있자 곧바로 윙슈트에 장착된 제트팩이 작동을 개시했다.

위이잉!

조금이나마 추력을 얻게 된 윙슈트가 훨씬 안정적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빌딩 건물의 벽을 빠져나가며 타이밍을 알렸다.

"앞으로 약 2분 30초 뒤에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

[선제 타격 30초 전!]

엄청난 바람이 온몸을 때려댔지만, 나는 동작 하나 마음 편히 할 수 없었다.

내가 머리를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비행의 방향이 크게 바뀐다.

윙슈트를 이용한 비행은 자유로운 낙하와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는 바람의 고문을 견디는 것이나 다름없다.

"으윽..."

그런데, 저 멀리 화물 터미널을 눈에 담기 무섭도록.

돌연 굉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나는 온 도시의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대는 것을 들으며 1팀에게 항의했다.

요즘은 몬스터들 때문에 저런 경보체계가 잘 발달되어 있다.

"선제 타격 팀, 너무 빠르잖아!"

[저, 저희가 한 게 아닙니다.]

"뭐라고?"

그럼 누가 했단 말인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도록, 사이렌에서 구체적인 경고가 흘러나왔다.

[긴급 경보! 몬스터 웨이브. 몬스터 웨이브입니다. 시민분들은 조속히 가까운 대피 시설로...]

"몬스터 웨이브라고?"

나는 경보팀이 잘못 판단한 것으로 의심했으나...

블랑쉬는 그런 내 의심을 곧바로 부정했다.

[도쿄 앞바다와 상공에서 마력 반응 감지! 소규모 몬스터 웨이브가 확실합니다!]

"그, 그런..."

내가 아직까지 활공하고 있던 중, 시설 밖으로 우르르 뛰쳐나오는 경비 요원들.

다년간의 실전 경험을 쌓아온 그들은 주저없이 초록색 머리의 이송을 결정했다.

현금 수송차를 개조한 호송용 차량이 등장하자, 군용 차량들이 그것을 호위했다.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무전이 내 귀를 때렸다.

[마스터? 작전은...]

"1팀은 도주팀과 합류! 일단 속행한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

[예!]

어차피 목표물의 이송은 시작됐다.

누가 공격을 시작했는진 모르겠지만, 이제 저것을 가로채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일찌감치 낙하산을 펴서 체공시간을 늘리며, 놈들의 도주 경로로 향하자...

돌연 거대한 그림자가 호위팀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직후. 아까 시설에 떨어졌던 시뻘건 화염이 놈들을 덮쳤다.

화르륵!

"끄아아악!"

"누, 누구냐!"

타다다당!

총성은 허무하게 밤하늘을 때릴 뿐, 정작 습격범에겐 조금도 피해를 주지 못했다.

나는 용족 특유의 비늘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망했군. 붉은색 머리다. 아무래도 자매를 구출하러 온 것 같아."

[뭐라구요?]

밤하늘의 어둠 속에서 내려온 것은 집채만한 적룡이었다.

티아의 설명에 따르면, 힘을 관장하는 티아마트의 머리.

녀석은 순식간에 도로를 불지옥으로 만들어버리며 호송용 차량을 발톱으로 움켜쥐었다.

방탄 사양의 화물차량이 무슨 알루미늄 캔처럼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끼이익...

아주 손쉽게 차량을 '개봉'한 적룡은 인간형으로 변신해서 부서진 문을 내던져버렸다.

센 언니 스타일의 녀석이 데리고 나온 것은 티아보다 조금 커다란 녹색 머리의 여인이었다.

나는 녀석을 유심히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야, 네가 확실히 최약체다. 쟤도 너보단 크잖아."

[지금 그런 말 하실 때에요 주인님?]

"음? 뭐야, 날벌레가 하나 남아있었군."

마침내 착륙해서 낙하산을 벗어던지자 붉은색 머리가 내쪽을 노려봤다.

나는 늘 그랬듯 순순히 대화로 풀고싶었다.

"친구야, 걔 좀 놔두고 가줄래? 아니면 뿔만 좀 떼어줘도 되는데..."

"..."

녹색 머리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붉은색 머리가 대답 대신 불길을 뿜어내려던 찰나.

그녀의 후방에서 그림자가 높게 일어나며 적룡을 덮쳤다.

그녀는 이쪽 대신 그림자를 태워버리며 날카롭게 외쳤다.

"네놈은 또 누구냐!"

"야! 그 아저씨 놔둬."

"... 너는 또 왜 여기있어?"

난데없이 전투에 끼어든 것은 다름아닌 가짜 그린 더스트였다.

아무래도 내 출장 소식을 접하곤 여기까지 쫓아온 모양.

내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자 도주팀에 합류해있던 수석 에스콰이어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마스터. 현재 주변 지역의 통신을 차단하고 있지만, 전투부대 출동까지 길어봤자 5분입니다."

"일본 친구들 출동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국제공항 주변이니까요. 얼른 처리하죠."

3방향에서 포위당한 붉은색 머리가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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