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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7화 (7/236)

〈 7화 〉 [용사] 그 날의 밤

우리는 텐트를 하나 더 세워서 조금 이른 야영준비를 했다.

세리아는 아린, 유나랑 같이 한 텐트를 쓰고, 나랑 제렌 씨가 남은 텐트를 쓴다.

이렇게 길가나 산속에서 야영하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 오히려 숙소에서 자는 게 더 어색했다.

편안한 침대에서 불침번 걱정도 없이 푹 쉬고 있으면 왠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하루라도 빨리 마왕을 쓰러뜨리고 모두를 구해야하는데.

나만 편히 쉬는 것 같아 마음 속 한 켠이 찔렸다.

다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해주지만 여전히 어딘가 불편하다.

그래서 이런 야영이 정신적으로 더 편했다.

몸이 힘들수록 세계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감각이 드니까.

“용사님?”

너무 깊이 생각에 잠겨있었나보다.

제렌 씨가 제자리에 멀뚱멀뚱 서있는 나를 불렀다.

“아,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닙니다. 그냥 서 계시길래 왠지 걱정되어서 불러본 것뿐입니다.”

“그, 그렇군요…….”

내가 그렇게 불안해보였나?

아린이 언젠가 말해줬던 것처럼 남들의 눈에 나는 항상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말이다.

혹시 나 때문에 다른 파티원들도 괜히 불안해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조심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고민할게 좀 있어서 잠시 생각을 좀 했을 뿐입니다. 이제 저녁이나 먹죠!”

나는 괜히 더 활기차게 행동하며 파티의 분위기가 처지지 않도록 신경썼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날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유니가 불의 정령에게 부탁해 밤새 꺼지지 않을 모닥불을 피웠다.

슬슬 불침번을 정할 때다.

환자인 세리아를 제외하고 나와 유니, 아린 셋이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설 계획이었지만, 혼자 빠질 수는 없다는 세리아의 강력한 요구로 그녀도 불침번을 서게 되었다.

몸도 안 좋은데 오늘 하루 정도는 쉬어도 괜찮다고 내가 말했지만 도무지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정말 괜찮은 걸까.

걱정되지만 그녀가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그래도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불침번 초번은 그녀에게 맡겼다.

불침번을 해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그나마 편한 곳이 처음과 마지막이다.

깼다가 다시 잘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첫 불침번은 세리아에게, 마지막은 유니에게 주기로 했다.

저번에는 아린이 마지막이었으니 공평하게 돌아가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자진해서 중간을 맡았다.

그녀들 모두가 여신에게 점지 받은 용사의 동료라고는 하지만 마왕을 쓰러뜨리는 건 어디까지나 내 역할이었다.

사실 이렇게 고생하면서까지 나와 함께 다닐 필요는 없다.

그녀들에게는 거부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세계를 구하는 쪽을 선택해주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다는 게 내 심정이다.

물론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 놓인다는 약간의 이기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렇게 불침번 계획을 짜고 있자 제렌 씨가 나한테 다가와 부탁을 했다.

“용사님 저도 불침번을 서고 싶습니다.”

“네?”

제렌 씨가?

제린 씨도 우리 파티원이기는 하나 그는 어디까지나 짐꾼이라 이런 일을 맡길 생각은 없었다.

“저도 용사님의 파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의 굳은 결의를 나는 그의 눈동자에서 엿볼 수 있었다.

제렌 씨까지 이렇게 파티를 위해 헌신할 줄이야……!

나는 이렇게 좋은 동료들과 만나게 해준 여신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제렌 씨는 제일 힘든 자리라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세리아, 제렌 씨, 나, 아린, 유니의 순서로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아린은 공평성을 위해, 그리고 제렌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유니가 저번에 고생을 해줬으니 그녀를 마지막에 배치했다.

제렌 씨는 내 의견이 맘에 들었는지 활짝 웃었다.

그가 웃는 건 처음 봤기에 조금 놀랐다.

나머지도 딱히 불만은 없는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리아만 빼고.

“나, 나 다음이 누구라고……?”

그렇게 묻는 세리아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제렌 씨도 불침번을 같이 서고 싶다고 하시더라. 우리 파티에 힘이 되고 싶대.”

“……그, 그렇구나.”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돌리는 세리아.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순서를 바꿔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러기에는 또 미안했는지 상관없다고 했다.

제렌 씨가 다음 순서인게 불만인걸까?

같이 불침번을 서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싫다면 바꿔줄 생각은 있었다.

“아, 아니야. 상관없어. 응, 어차피 교대만 할 뿐이잖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잘 모르겠지만 납득한 것 같으니 다행이다.

“그럼 세리아, 힘들겠지만 초번 잘 부탁해. 혹시라도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아픈 거 아니라니까…. 난 정말 괜찮아!”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세리아.

그래도 모습을 보니 많이 나아진 한 것 같다.

아침만큼 얼굴이 붉지는 않다. 내일이면 다시 출발할 수 있겠지.

나는 세리아를 믿고 잠을 청하러 텐트로 돌아갔다.

이미 제렌 씨는 침낭을 깔고 잘 준비를 마친 뒤였다.

“하하, 한 건 없지만 왠지 피곤해서 금방 잠들 것 같군요.”

“그러네요. 피곤하시면 먼저 주무시죠. 저도 곧 잘테니까요.”

나도 맞장구를 치며 침낭을 깔았다.

“그럼 죄송하지만 먼저 눈을 좀 붙이고 있겠습니다. 용사님도 좋은 밤 보내시지요.”

“네, 편히 쉬세요.”

그리고 제렌 씨는 곧장 눈을 감았다.

많이 피곤했나보다. 하긴 그 무거운 짐을 하루 종일 들고 다녔으니 지칠 만도 하겠지.

그가 오기 전까지는 내가 짐을 들었으니 조금이나마 그 피로를 짐작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둬야했기 때문에 나도 옷만 갈아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 누웠다.

내일이면 다시 출발할 수 있고, 그러면 적어도 사흘 뒤에는 데론에 도착하겠지.

사천왕……. 정말 이길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나는 잠에 들었다.

***

“용사님, 용사님!”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무슨 일이지? 아, 불침번이구나.

“네… 일어났습니다.”

피곤해서 더 자고 싶었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 용사님. 일어나셨군요.”

제렌 씨였다.

이제 막 불침번을 끝내고 돌아와서인지 겉옷을 하나 걸치고 있었다.

“불침번에 자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렌 씨. 그냥 주무셔도 됐는데.”

내가 멋쩍게 감사의 말을 건네자 그가 히죽 웃었다.

요즘 그가 웃는 모습을 많이 보는 것 같다.

“뭘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불침번이 즐거울 게 있나?

잠깐 의아했지만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겠거니 싶었다.

“그럼 고생하십쇼. 용사님.”

제렌 씨는 피곤할 텐데도 내가 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역시 좋은 사람이다.

텐트 밖으로 나오자 조금 서늘했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이정도면 겉옷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모닥불 앞에 앉아있을 거니까.

조금 엉성하게 쌓아둔 장작들을 연료로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의 정령이 피우고 갔으니 불은 관리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나는 유니가 흙의 정령에게 부탁해 만든 의자에 앉았다.

“응?”

그런데 뭔가 의자의 촉감이 이상하다.

일어나서 확인해보니 의자가 살짝 축축했다.

뭐지?

의자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다른 곳은 다 문제가 없는데 유독 윗부분만 축축했다.

물에 젖은 것 같은데 만져보니 따뜻했다.

여기가 왜 젖어있지?

어차피 교대할 때까지 할 것도 없어 잠깐 고민해봤지만 전혀 알 수 없었다.

혹시 유니가 흙 위에 물을 뿌려서 의자를 단단하게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닐까?

내 머리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물을 너무 많이 부어서 아직 다 안 말랐다던가 그런 게 아닐까.

왠지 유니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여전히 덜렁대는 구석이 많은 소꿉친구다.

그렇지만 나 혼자만 보낼 수는 없다고 같이 따라오는 등 다정하고 상냥한 측면도 있었다.

이건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아린과 세리아는 비교적 늦게 만났기 때문에 우리는 한동안 둘이서 돌아다녔다.

처음으로 들개를 잡고, 주변 마을의 의뢰를 해결하고,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면서 아린과 세리아를 만났다.

처음에는 둘 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아 고생도 많이 했다.

정령사가 됐지만 정령을 부르는 법을 몰라 울상으로 도망치던 유니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유니에게 미안해졌다.

유니. 그녀는 사실 촌장님의 딸이다.

당연히 마을 내에서 가장 집도 크고 돈도 많았는데, 나를 따라오지 않고 마을에 남았으면 편하게 평생을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걸 포기하고 나를 따라와줬다는 사실이 고맙고도 미안했다.

내가 조금 더 앞가림을 잘하는 아이였다면 그녀가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옛날 생각을 하며 잠시 상념에 잠겨있자 옆 텐트의 입구가 잠시 흔들거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쏘옥 밖으로 나왔다.

유니였다.

그녀는 잠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나를 보고선 환하게 미소지었다.

“와아, 에…… 아차.”

큰 소리로 나를 부르려다 옆에 동료들이 자고 있는 걸 깨달았는지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에릭이 서있을 시간이었구나. 헤헤, 잘 맞춰 일어났다.”

그녀가 방실거리며 웃었다.

“응?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 피곤할 텐데 더 자두지 그래?”

나 혼자서도 불침번은 설 수 있으니 굳이 그녀까지 깨어있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말을 건네자 유니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역시 세리아 언니랑 아린 언니 말대로야. 에릭 바보.”

“어? 왜?”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흥, 바보는 몰라도 되는 일이야.”

유니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다가왔다.

같이 앉으려는 듯 잠시 기웃거리더니 역시 자리가 모자란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의자가 좀 좁네.”

그러더니 유니는 흙의 정령을 불러 내가 앉은 의자를 더 넓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크기로, 아니 그보다 더 길어졌다.

“왜, 왜 이렇게 길게 만드는 거야?”

내가 당황하며 묻자 유니가 수줍게 웃었다.

“내 차례가 올 때까지 여기서 자려고.”

“어?”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의자 위에 슬쩍 올라오더니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헤헤, 에릭 베개!”

“유니…….”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허벅지에서도 느껴졌다.

유니가 내 허벅지를 만지작거렸다.

“간지럽잖아.”

“후후, 벌이야. 에잇! 에잇!”

“그, 그만해! 간지럽잖아! 대체 무슨 벌인건데?”

“벌이 뭔지 모르는 벌! 에잇!”

“아하하!”

그렇게 나와 유니는 잠시 서로에게 장난을 치며 놀았다.

“……에릭 이러고 있으니 왠지 옛날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만지작거리며 웃다 지친 유니가 가만히 모닥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타닥타닥.

모닥불에서 불똥이 튀었다.

“둘이서 다닐 때?”

“응.”

당연히 생각난다.

조금 전까지도 그 때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땐 둘이서도 즐거웠는데.”

“지금은?”

“지금도 즐거워. 세리아 언니도, 아린 언니도 좋은 사람이니까.”

그녀가 후후 웃었다.

“아, 제렌 씨도.”

“제렌 씨?”

여기서 그의 이름을 들을 줄은 몰라서 살짝 놀랐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다니는데도 불평 하나 안하잖아. 그밖에도 되게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시거든.”

“……그랬구나.”

솔직히 몰랐다.

내 시선은 앞만 보고 있었으니까.

“그럴 것 같았어.”

그녀가 몸을 빙글 돌려 무릎 위로 나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그녀의 눈동자는 내 눈을 직시하고 있었다.

“에릭은 항상 열심이지만, 가끔씩은 조금 쉬면서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그녀는 한 팔을 들어 내 얼굴을 살짝 쓰다듬었다.

불을 쬐고 있어서일까? 그녀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붉어보였다.

“지금은 어때? 무슨 소리가 들려?”

모닥불이 타는 소리.

벌레가 숲에서 우는 소리.

그리고 심장소리.

그녀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모를 거센 심장박동이 내 귀에서도 들렸다.

내 생각을 읽은 그녀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건 너와 함께하는 소리야.”

나와 함께하는 소리…….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것.

너무나 당연해서 잊고 있던 소리였다.

“……고마워.”

나는 너무 조급해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하루 종일 그녀를 끌고다니기만 했지 안색을 살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유니는 화를 내는 대신 부드럽게 타일러주었다.

부끄럽다.

나를 위해 말을 꺼낸 그녀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침착해지자.

주변의 소리를 들을 정도의 여유를 갖도록 하자.

“응. 그거면 충분해.”

그러고선 그녀가 팔을 내렸다.

따스함이 멀어지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앗…….”

“미, 미안!”

화들짝 놀라 손을 떼자 그녀가 잠시 멍한 눈으로 자기 손을 바라보더니 다소곳하게 가슴 앞에 손을 모았다.

“아니야. 나도 고마워.”

그러고선 그녀는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유니의 갈색 머리카락이 어지러이 흩어져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정돈해주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내가 한 말 조금 멋지지 않았어?”

“응. 솔직히 감탄했어.”

“그거 사실 내가 정령을 처음 부를 때 들었던 말이야. 우리 스승님이 가르쳐줬어.”

“……그런 거였어?”

어쩐지 유니치고는 너무 시적이다 싶었다.

“아! 지금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 지었지!”

“아, 아닌데?”

그녀가 내 가슴을 투닥투닥 두드렸다.

나는 그 기분 좋은 감촉을 느끼며 다음 순번인 아린이 스스로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올 때까지 유니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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