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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419화 (418/438)

〈 419화 〉 이준권 장례식 (7)

* * *

입구에서 백도영이랑 백도식이 나왔다. 둘 다 검은 정장을 빼입고 있었다. 백 씨 부자가 구두를 벗고 각자 눈이 닿는 곳에 신발장에 집어넣은 다음 걸어왔다. 긴장됐다. 백도식이 눈을 마주쳐왔다. 고개 숙였다. 백도식이 우리를 전체적으로 훑으면서 마주 목례해왔다. 백도식이랑 백도영이 명부에 이름을 적고 와 분향했다. 백도식이랑 백도영이 영정에 절을 하고 몸을 돌려 우리랑 맞절했다. 백도식이 윤가영에게 가 악수를 건넸다. 윤가영이 양손으로 맞잡았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윤가영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백도영이 나한테 와서 포옹했다. 이렇게 포옹 많이 해본 적은 또 처음인 거 같았다. 백도영이 내 등을 토닥이다가 포옹을 풀었다. 백도영이 내 양팔을 붙잡고 내 얼굴을 바라봤다.

“도움 필요하거나 힘들면 연락해. 의지해도 되니까.”

“감사합니다...”

“응.”

백도영이 내 왼팔을 다독였다. 분명 위로를 해주는 거일 텐데 부담감이 들었다. 백도영이 내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주물렀다.

“그냥 형이라고 해. 너무 굳은 어투 쓰지 말고.”

“알겠어요 형.”

백도영이 빙긋 웃었다.

“그래.”

백도영이 고개 돌려 수아를 바라봤다. 수아가 깍듯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백도영이 소리 없이 살폿 웃었다. 백도영이 수아의 왼팔을 두어 번 다독였다.

백도식이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나한테 건네왔다. 고개를 숙이고 양손으로 받았다. 백 씨 가문이랑 깊숙이 엮이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갑자기 눈앞이 까마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명함을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어려워하지 말고 전화해라. 연락처 저장해놓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 같이 있어 주는 친척분은 따로 안 계시니?”

“외조부모님 왔다가 가셨어요. 곁에 있어 주기는 힘들 거 같다고 하셔서.”

“으음. 그래.”

“내가 같이 있어 줄까?”

백도영이 물었다. 멋쩍게 웃었다. 무조건 사양하고 싶었다.

“아뇨, 괜찮아요.”

“알겠어.”

백도영이 왼손으로 내 왼 어깨를 토닥였다. 툭툭 손을 내려놓는 느낌인데 묵직함이 있었다.

“식사하고 가세요...”

윤가영이 말했다. 백 씨 부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둘의 뒷모습을 보던 이수아가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오른손 검지로 내 오른팔을 콕 찔렀다. 눈을 마주쳤다. 수아가 오른손을 까딱였다. 몸을 수아 쪽으로 기울였다. 수아가 내 귀 가까이에 입술을 대고 양손으로 감쌌다.

“뭐 하는 사람들이야?”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억지로 눌러 담았다. 큼,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른손 검지로 가족실을 가리켰다.

“나 좀만 들어가 있을게.”

“... 나도.”

“어.”

가족실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수아가 따라 들어오고 문을 닫았다. 바닥에 풀썩 앉았다. 수아가 내 왼편에 붙어 앉았다.

“그래서 누군데? 왜 자기가 누군지 얘기도 안 해?”

수아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백화 그룹 회장 부자.”

“응...?”

수아의 눈이 커졌다.

“그런 사람이 왜 오는데...?”

“여자친구 가족이라서...”

“... 백지수?”

“응...”

수아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들은 오빠 여자관계 모르지...?”

“응... 알면 나 죽었을걸...”

“그랬을 거 같아... 근데 오빠 그 가족한테 완전 매인 거 아냐...?”

“그치...?”

“그치라고 하면 어떡해...?”

“... 잠깐만 생각해볼게.”

“... 응.”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백 씨 부자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나랑 지수가 결혼하는 그림을 그리는 걸까. 일단 백도영이 나한테 매제라고 했던 걸 생각하면 백도영은 나랑 지수가 결혼하는 거에 열려 있는 거 같은데. 백도식도 그럴까. 백도영이랑 백도식이 다른 가족 구성원한테 지수가 나랑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을까. 가슴에 무거운 게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답답했다. 백 씨 부자가 오기 전에 백채영이 미리 왔다 간 걸 생각하면, 백채영은 지수랑 내 사이를 모르는 거 아닐까. 아니, 모르고 있는 게 확실했다. 알았다면 오늘 마주했을 때 사뭇 다르게 반응했을 터였다.

백채영한테는 왜 얘기를 안 했을까. 말을 해놨다면 그만큼 나한테 가해지는 압박 같은 걸 효과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었을 텐데. 왜 알리지 않았을까. 설마 지수가 나랑 헤어질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른 친족한테는 나랑 지수에 대해서 말해놓지 않은 걸까. 치졸한 안도감이 드는 한편으로 모멸감도 들었다. 수치스러웠다. 내가 지수랑 사귈 자격 없고 그다지 미덥지도 못한 놈이라는 건 스스로도 잘 알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지수의 연인인 만큼 존중받기도 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이건 지극히 계산적이다 싶었다.

“생각 다 했어?”

“응...”

“그럼 얘기 좀 해봐.”

“... 매인 건 맞아. 그런데 좀 느슨하게 매였어. 원하면 두 사람이 놓을 수 있을 만큼.”

“당장은 두 사람만 아는 거야?”

“아마도. 확신은 없어.”

“으응... 그럼 나중에 뭐 오빠가 까일 수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고삐 묶인 거네?”

“그거보다는 주시만 조금 하는 방목에 가까운 거 같아. 방생 가능성 열린 방목.”

“으음... 그럼 오빠 여태 감시 같은 거 당하거나 한 적 있는 거야?”

“아니... 근데 원하면 할 수 있을 거야.”

“... 오빠 망했네?”

“그럴 마음이 있으면. 그런데 여태 프라이버시 존중해준 거인지 별 감시 안 했던 거 같아.”

“지금까지는 안 했어도 나중에도 안 한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치...”

수아가 숨을 폭 내쉬었다.

“오빠 어떻게 숨 쉬고 살아? 난 긴장돼서 숨 쉬는 법 까먹고 최소한 기절했을 거 같은데.”

“나도 내가 어떻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모르겠어.”

“그니까. 오빠 외부활동 안 하고 집에만 처박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럼 사는 게 아니잖아.”

“숨만 붙어 있기라도 해야지. 나 오빠 없음 안 되는데.”

어투랑 표정이 진지했다. 미소 지었다. 수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수아를 껴안았다. 수아가 탐탁지 않은 듯 콧숨을 내쉬다가 나를 마주 안았다. 오른손으로 수아의 등을 쓸었다.

“괜찮을 거야.”

“... 응...”

수아의 왼볼에 입술을 맞췄다. 수아가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았다.

“자신 있는 거지?”

“응.”

“알겠어.”

수아가 두 손을 내 어깨에 올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수아가 나를 올려봤다.

“나가서 그 사람들 볼 거야?”

“응.”

“... 근데 오빠 여자친구 중에 가족까지 아는 사람 더 있어?”

“아니. 지수랑 너만.”

수아가 피식 웃었다. 수아가 오른손으로 내 가슴팍을 때렸다.

“미쳤어?”

수아가 소리 죽여 물었다.

“아마도.”

“하긴. 안 돌았으면 그럴 리가 없겠지.”

“나 덮친 건 너였잖아.”

“그 이전에 우리 엄마 덮친 게 문제지. 여자도 있었으면서. 셋이나.”

“그건 뭐라 할 말이 없네.”

“명백한 오빠 잘못이니까.”

“응...”

수아가 오른손 엄지랑 검지로 내 왼볼을 잡아 조물거렸다.

“나가자.”

“그래.”

수아가 뒤돌아서서 문을 열었다. 뒤따라 나가 문을 도로 닫았다. 윤가영이 수아를 보고 나를 쳐다봤다.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열었다.

“저 얘기 나누러 가볼게요.”

“응...”

백 씨 부자가 있는 곳을 찾았다. 중간 정도 자리에 백도영이랑 백도식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둘 다 소고기뭇국에 밥을 말아먹고 있었다. 백도영을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백도영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피곤했어?”

백도영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에 나오고 지금까지 쭉 깨어있어서요.”

“으응. 많이 자고 싶겠네. 좀 쉬어야 할 텐데.”

“괜찮아요. 커피 좀 많이 마셔서.”

“그래도 몸에 피로가 쌓이지 않니.”

백도식이 물었다.

“아직 어리니까요.”

백도식이 눈웃음 지었다.

“그치. 어리면 가끔 무리해도 회복이 금방 되지.”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도 너무 자만하고 막 굴리는 것도 피해야 한다. 알게 모르게 닳는 부분이 있으니까. 몸이든 마음이든.”

“조심할게요.”

“그래.”

백도식이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음료수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나는 콜라.”

백도영이 말했다. 백도식이 고개 저었다. 괜찮다는 것 같았다. 백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직접 가져올게.”

“아뇨 제가 가져올게요. 제가 가까우니까.”

“그래. 고마워.”

“네.”

음료수 냉장고로 가서 콜라 한 캔이랑 마시다 남긴 커피를 꺼냈다. 자리로 돌아가서 백도영한테 콜라를 건넸다.

“고마워.”

백도영이 콜라를 따 마셨다. 커피 우유를 입에 머금고 삼켰다.

“너도 뭐 먹어야 하지 않겠니.”

백도식이 물었다. 고개 저었다.

“계속 문상객 맞이하면서 이것저것 집어먹다 보니까 배불러서요.”

백도식이 고개를 주억이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말없이 커피만 홀짝였다.

백도영이랑 백도식이 그릇을 비웠다. 잠깐 가족실에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 둘 다 되게 금방 먹은 것 같았다.

“더 드세요.”

백도식이 티슈를 뽑아 입을 닦으면서 고개 저었다.

“이미 많이 먹었다. 고맙다.”

“네...”

백 씨 부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일어섰다. 백도영이 남은 콜라를 다 마셔버렸다. 백 씨 부자가 걸어나왔다. 나란히 걸어서 신발장 쪽으로 갔다. 백도식이 나를 바라봤다.

“언제든 편하게 연락해라.”

“알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보자꾸나.”

“네.”

백도식이 빙긋 웃고 내 왼팔을 토닥이더니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냈다. 백도영이 양손으로 내 양팔을 다독였다.

“갈게.”

“네. 안녕히 가세요.”

“응. 촬영장에 커피차 자주 보낼게.”

“아뇨 꼭 안 그래도 돼요...”

“알겠어. 응원할게.”

“고마워요.”

“그래. 담에 보자.”

“네.”

백도영이 구두를 꺼내 신었다. 둘이 나가기 전에 나를 봤다. 고개 숙였다. 둘이 마주 고개를 꾸벅이고는 윤가영 쪽에도 목례했다. 뒤돌아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입구 쪽을 봤는데 백 씨 부자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둘이 아직 주변에 있는 것만 같았다. 부자가 다 존재감이 강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둘이 부재하는데도 잠시간은 그 존재를 의식하게 될 듯했다. 어쩌면은 꽤 오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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