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8화 〉 이준권 장례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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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은이랑 서예은이 같이 나타났다. 서유은은 다른 밴드부원들처럼 흰 교복 와이셔츠에 교복 치마를 입고 있었다. 서예은은 강예린처럼 검은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서예은이 몸을 굽히고 구두를 벗었다. 서유은이 따라 신발을 벗었다. 서예은이 먼저 신발장 중간 높이 좌측 구석에 구두를 넣었다. 서유은이 그 옆에 자기 신발을 나란히 놓았다. 오른 옆구리에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저 사람은 왜 온 거야?”
수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은이 친언니라서 왔나 봐.”
“유은이는 누군데? 키 작은 사람?”
“너보다 한 살 언니야.”
“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그래서 말한 건데 뭐.”
“그래.”
수아가 순간 눈살을 찌푸려 나를 째려봤다. 서예은이 명부에 이름을 적고 분향했다. 그러고는 유은이를 이끌고 같이 영정에 절했다. 뒤이어 우리랑 맞절까지 했다. 서유은이 일어나고는 나한테 다가와 와락 끌어안아 왔다. 서예은이 있어서 주저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적극적이었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와줘서 고마워.”
서유은을 마주 안았다. 서유은이 내 등을 쓸었다. 서예은이 뒤에서 서유은이랑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관찰당하는 느낌이 기묘했다. 서예은이 이내 시선을 거두고 윤가영에게 다가가 양손을 내밀었다. 윤가영이 양손으로 맞잡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윤가영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서유은이 나한테서 떨어졌다. 서예은이 윤가영의 손을 놓았다. 서유은이 수아 앞으로 갔다.
“온유 선배 여동생이지...?”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응...”
서유은이 고개를 주억였다.
“안을 거예요?”
수아가 물었다. 서유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살폿 웃었다.
“원하면...?”
수아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뜻한 바는 아닌 모양이었다.
“안아요.”
“응.”
유은이가 수아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서예은이 서유은을 흐뭇한 듯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 돌려 나를 쳐다봤다. 서예은이 오른손을 들어서 내 왼어깨를 두드렸다. 말없이 나를 올려보는 눈빛이 꽤 따스했다. 아까 유은이가 나를 안았을 때랑은 사뭇 다른 눈이었다. 서유은이 수아를 놓자마자 서예은이 수아에게로 갔다. 서유은이 뒤로 물러섰다. 윤가영한테 갈 생각은 없는 건가. 아직 윤가영을 나쁜 계모로 바라보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전에 호되게 말했던 것 때문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서예은이 수아를 안아서 짧게 등을 토닥이고 놓아줬다. 수아가 서예은을 올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오빠랑은 어떻게 아세요?”
“온유 있는 학교에 연극부 강사로 갔거든. 온유도 연극부원이어서 알았어. 온유가 내 동생 유은이랑도 아는 사이였기도 했고.”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예은이 눈웃음 지었다.
“너도 연기나 노래에 관심 있니?”
“연기에 좀 관심 있어요.”
“응... 만약 도움 필요하면 언니한테 연락해. 가기 전에 어머니한테 번호 줄게.”
“음, 네. 감사해요.”
“그래.”
서예은이 시선을 돌렸다. 윤가영이 서예은을 바라봤다. 유은이랑은 눈을 마주치기 힘든 모양이었다.
“밥 드시고 가세요...”
“네.”
서예은이 고개를 돌려 서유은을 바라봤다. 서예은이 왼손을 뻗었다. 서유은이 오른손으로 서예은의 왼손을 잡았다. 서예은이 서유은을 이끌고 걸어갔다. 서유은의 뒷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서예은이 구석 자리에 앉았다. 서유은이 옆에 꼭 붙어 앉았다. 가야 할 것 같았다.
“나 갈게.”
“응...”
“어.”
윤가영이랑 수아가 답했다. 서유은 맞은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젓가락으로 보쌈을 집어 먹은 서예은이 나를 바라봤다. 서예은이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우물거리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문상객이 많이 오시는 거 같은데 자리 안 지켜도 괜찮니?”
“가까운 동생이 기껏 와줬는데 아무 말도 안 나누고 그러면 박대하는 느낌이 조금 들어서요.”
“유은이랑 많이 친하구나.”
“네. 많이 친하죠.”
“그런가 보네. 그렇게 서슴없이 답할 정도면.”
서예은이 서유은을 바라봤다. 조용히 밥을 깨작거리던 서유은이 방금보다 더 소심하게 우물거렸다. 서유은이 음식물을 삼키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빠, 선배가 되게 친절하고 잘 다가와 줘서 친해졌어요...”
서예은이 고개를 주억였다. 뭔가 분위기가 딱딱했다. 서유은을 바라봤다.
“음료수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아 저 괜찮아요...”
“사양 안 해도 돼. 음료수 같은 거 남으면 처리하기 어려워서 다 마셔두는 게 좋기도 하고.”
“아... 그럼 저 사이다 주세요... 감사해요...”
“응. 선생님은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나도 사이다 마실게. 고마워.”
“네.”
자리에서 일어나 사이다를 세 캔 가져와 도로 앉았다. 서유은이 고개를 꾸벅였다. 서예은이 양손으로 두 캔을 잡아 자기랑 서유은 앞에 하나씩 놨다.
“고마워.”
“네.”
내 사이다 캔을 땄다. 인절미를 집어 먹으면서 조금씩 홀짝였다. 묵묵히 밥을 넘기던 서유은이 나를 올려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근데요 선배...”
주변 말소리에 묻힐 만큼 목소리가 작았다.
“응.”
“완전히 사이 나아지신 거예요...?”
윤가영 말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풀었어.”
“네...”
서유은이 낮게 한숨 쉬었다. 얼굴이 살짝 어두웠다.
“저 사과드려야겠죠...?”
“내키면 해. 당장 하기 어려울 거 같으면 안 해도 되고. 나중에라도 할 수 있을 거니까.”
“무슨 일인데?”
서예은이 작은 목소리로 불쑥 물었다.
“말하기 좀 그런데...”
서예은이 서유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귀에 대고 말해 봐.”
서유은이 나를 쳐다봤다. 허락 맡으려고 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유은이 내 고갯짓을 보고도 잠시 망설이듯 하다가 서예은의 귀 가까이에 입을 대서 양손으로 감쌌다.
“제가 선배 새어머니한테 주제넘게 한마디 한 적 있어서요...”
“무슨 말?”
“선배 어머니 장례식 때 무슨 자격으로 있냐고, 빨리 나가라고 했었어요... 근데 알고 보니까 새어머니도 비슷한 입장이셔서...”
“으응. 알겠어.”
“네...”
서유은이 몸을 뒤로 빼고 바로 앉았다. 서예은도 몸을 바로 세우고 나를 봤다.
“미안. 궁금한 거 있으면 바로 들어야 되는 성격이라.”
“괜찮아요.”
“이해해줘서 고마워.”
서예은이 마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서유은도 다시 수저를 들었다. 인절미를 먹으면서 둘이 그릇을 비우는 걸 마냥 봤다. 애초에 담은 게 별로 없어서인지 둘 다 금방 식사를 마쳤다. 서유은이 나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과드리고 올게요...”
“응.”
나도 일어났다. 서유은이 앞서서 윤가영에게로 걸어갔다. 윤가영이 눈을 크게 뜬 채 서유은을 바라봤다. 서유은이 고개 숙였다.
“전에 잘 모르고 심하게 말해서 죄송해요...”
“으응... 괜찮아... 충분히 들을 만한 말이었으니까...”
윤가영이 답했다. 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 들었길래?”
“선배 어머니 장례식 때 무슨 자격으로 있는 거냐고, 빨리 나가라고 했었어...”
서유은이 말했다. 수아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엄만 그 말 듣고 가만히 있었어?”
“응... 몰랐던 거 아무리 감안해도 내가 잘못했던 건 맞으니까...”
수아가 콧숨을 내쉬었다. 윤가영이 서유은의 왼팔을 쓸었다.
“괜찮아...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 했던 거인지 이해하니까... 사과해줘서 고마워...”
“네... 제가 더 감사해요...”
“아냐. 내가 더 고마워.”
서유은이 울상 비슷한 표정을 짓고 윤가영을 와락 안았다. 윤가영이 살폿 미소 지은 채 서유은을 마주 안았다. 서로 안아주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윤가영이 서유은의 등을 다독였다. 윤가영이 허그를 풀고 서유은을 바라봤다.
“정말 괜찮으니까 마음 쓰지 않아도 돼...”
“네... 감사해요...”
“응... 언니 기다리시는 거 같은데 가봐...”
서유은이 흠칫했다. 안쓰러웠다.
“네... 가볼게요...”
“응...”
“갈게 수아야...”
“네.”
서유은이 나를 올려봤다.
“저 갈게요 선배...”
“응.”
서유은이 뒤돌아 걸었다. 서예은이 익숙한 듯 서유은의 왼손을 잡았다. 마음에 걸렸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뭘 하려고 다가서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됐다. 서예은이 서유은의 신발까지 같이 바닥에 내려놓았다.
“유은아.”
충동적으로 말했다. 서유은이 뒤돌아봤다.
“네...?”
소극적으로 팔을 벌렸다. 서유은이 서예은의 손을 놓고 나한테 총총총 뛰어왔다. 내 앞에 멈춰선 서유은이 멍하니 나를 올려봤다. 막상 와보고 나서야 무슨 짓을 한 건가 하는 체감이 온 모양이었다. 서유은을 짧게 안고 놓아줬다.
“와줘서 진짜 고마워.”
“네...”
서유은이 배시시 웃었다.
“고마워 안 하셔도 돼요...”
“응. 잘 가.”
“네...”
서유은이 뒤돌아섰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서예은이 서유은이 신발을 신으러 오는 걸 보고 구두를 신었다. 서예은이 윤가영 쪽을 보고 목례를 하고 서유은의 손을 잡아 이끌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괜히 자극만 시킨 건가. 잘못한 거 아닌가 싶었다. 집에서 유은이한테 괜히 더 추궁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너무 생각 없이 움직인 듯했다. 후회됐다. 다음에 유은이를 보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할 거였다.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뭔 생각으로 그런 거야?”
수아가 물었다.
“왠지 안아줘야 할 거 같아서.”
“안고 싶었던 거 아니고?”
“그런 건 아니었어.”
“...”
수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언니도 뭐 가정사 있거나 한 거야?”
가정사라고 하는 게 맞을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가 고개를 주억였다.
답답했다.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도와야 할 텐데. 방법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냥 이대로 유은이가 계획을 말할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게 맞는 걸까. 머리가 복잡했다. 나중에 같이 얘기라도 나눠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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