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화 〉 강성연네에서 저녁 식사 (3)
* * *
커피를 절반 정도 마신 강성연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밖으로 걸어갔다. 강예린이 강성연의 뒷모습을 보다가 따라 일어났다. 나도 일어나야 하는 건가 싶어서 일어나서 강예린의 왼편에 나란히 섰다. 강성연이 자기 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강예린이 입을 열었다.
“딸 어디 가?”
“화장실!”
뒤도 안 돌아보고 답하는 말투가 약간 퉁명스러웠다. 소리 없이 일어나고 간 걸 생각하면 왠지 말하기 싫었던 거 같은데. 이런 모습을 보면 강성연도 은근 여자다운 구석이 있었다.
강성연이 제 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강성연의 뒷모습을 좇아보던 강예린이 강성연의 방문이 닫히고 나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잠깐만 나 따라와 볼래 온유야?”
왜지. 감이 잡히는 게 딱히 없었다. 일단 따라가지 않겠다고 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대뜸 부정하는 건 무례한 짓이었으니 따라가지 않겠다 하면 안 될 거였다.
“네.”
“그래.”
강예린이 일어섰다. 따라 일어났다. 강예린이 앞장섰다. 조용히 뒤따랐다. 강예린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이윽고 컴퓨터랑 책장이 있는 어떤 방에 도착했다. 컴퓨터 책상 위에 서류철 같은 게 놓여 있는 걸 보면 아마 사무실 겸 서재인 듯했다.
강예린이 컴퓨터 책상에 딸린 사물함을 열어서 뒤적거렸다. 강예린의 오른손에 서류 파일이 잡혀서 하나씩 책상 위에 올려졌다. 강예린이 뭔지 모를 파일을 계속 꺼내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꺼내는 것들 한번 봐 봐 온유야.”
“네.”
하나를 집어 들고 입을 열었다.
“근데 이게 뭔데요?”
“잠깐만.”
강예린이 마지막으로 보이는 서류철을 테이블에 놓고 허리를 펴서 나를 쳐다봤다.
“최근에 나한테 요리 방송 컨택 왔던 거 정리한 거야. 한번 살펴봐서 할 마음 생기는 거 있음 얘기해 줘. 내가 얘기하면 너 정도는 넣어줄 수 있을 거야. 일단 지금은 대강 훑어보고, 집에 가져가서 차근차근 확인했다가 나중에 편하게 말해줘.”
얼떨떨했다.
“이렇게까지는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아냐. 이런 거쯤은 해야 내 마음이 편해질 거 같아서 그래. 그리고 할 마음 안 생기면 그렇다고 말하면 되니까 일단 한번 봐 봐.”
“네...”
손에 든 걸 펼치고 빠르게 훑었다.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컨택이 온 거였다. 이건 아닐 거 같은데. 일단 파일을 내려놓고 다른 것을 잡아 빠르게 훑었다. 강예린이 꺼낸 것들을 다 눈으로 빠르게 읽어나갔다. 패널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셰프로 섭외된 것도 있었고, 음식에 관련한 토크쇼의 패널로 섭외된 것도 있었다. 음식점을 탐방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나저나 요리 관련으로 이렇게 많은 컨텐츠를 만들 수 있었던 건가. 살짝 신기했다.
“맘에 드는 거 있니?”
“아. 네. 그 캠핑하면서 요리하고 패널 불러서 얘기 나누는 거요. 추억으로 남기기 되게 좋아 보여서 맘에 들어요.”
“으응. 그거 말고 다른 것들은 어떤 거 같아?”
“다 재밌을 거 같기는 해요. 근데 심사위원 같은 거는 제가 못 하니까 그런 거는 좀 아닌 거 같아요.”
“음,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 연예인 석도 있는 것도 있을 거야. 셰프만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거 말고.”
“아아... 네.”
강예린이 눈웃음 지었다.
“근데 별로 맘에 안 꽂히나 봐?”
멋쩍게 웃었다.
“네... 캠핑하는 게 너무 맘에 들어서 다른 게 상대적으로 안 끌려지는 느낌이에요.”
강예린이 살폿 웃었다.
“그래. 그래도 일단 다 가져가서 다시 천천히 살펴봐.”
“제가 가져가도 되나요?”
“응. 그거 내가 복사한 거라서.”
“아, 네.”
내가 답했다. 강예린이 소리 없이 웃었다가 고개를 오른쪽 밑으로 돌리고 몸을 그쪽으로 숙였다. 강예린이 이내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강예린의 오른손에는 하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강예린이 컴퓨터 책상에서 나와서 내 쪽으로 걸어와서 쇼핑백을 양손으로 잡아 양옆으로 벌렸다.
“여기에다 담아 가.”
“네.”
강예린이 벌린 봉투에 서류철을 두 개씩 집어넣었다. 강예린이 책상을 보고 있다가 서류철을 봉투에 다 담아서 책상 위가 깨끗해지자 봉투를 오므려 손잡이를 잡아 나한테 건넸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으며 받았다.
“감사합니다.”
강예린이 미소 지었다.
“응. 내려가자.”
“네.”
먼저 방에서 나갔다. 강예린이 나온 것을 보고 나란히 걸어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로 갔는데 강성연이 보이지 않았다. 강예린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직 안 나왔나?”
“그런 거 같아요.”
“으응. 소파에 앉을래?”
“네.”
크기가 꽤 큰 1인용 소파에 앉았다. 강예린이 롱소파에 앉고 왼팔을 팔걸이에 올린 채 나를 바라봤다. 서로 바라보는 각도가 살짝 비스듬하고 자세도 미묘해서 뭔가 내가 상담을 받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어쩌면 강예린의 차분한 분위기가 상담사 같은 느낌을 줘서 더 그럴지도 몰랐다.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고 강예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질문 하나 해도 돼요?”
“응? 맘대로 해.”
“어머님은 방송 한 번도 안 나갔는데 왜 이렇게 컨택이 많아요?”
강예린이 으음, 하고 소리 내면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 나를 바라봤다.
“내가 일만 많이 해왔으니까. 방송 나간 적도 없어 가지고 희소성도 있고, 쌓아온 커리어랑 네임 밸류도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되네요... 얼굴도 예쁘시니까...”
“응?”
강예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강예린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나를 등지고 조용히 웃었다. 원래도 작았던 강예린의 어깨 들썩임이 금방 잦아들었다. 이윽고 강예린이 큼,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가 오른손으로 손 부채질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아, 갑자기 그래서 놀랐잖아 온유야...”
살폿 웃었다.
“죄송해요.”
“아냐. 미안할 건 아니고... 그냥 좀 주의해줘. 내가 그런 거에 면역이 없어서 갑자기 외모 칭찬 같은 거 받으면 되게 놀라.”
“네. 근데 진짜 나이랑 안 맞게 엄청 젊어 보여요.”
강예린이 부끄러운 듯 웃었다.
“네라고 했으면서 또 그러면 어떡해...”
“그렇게 보이니까요. 방송 나가면 이십대 초중반 정도로 보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강예린이 오른손등으로 입을 가리면서 상체를 내 쪽으로 숙여와 왼손으로 내 가슴팍을 약하게 툭 쳤다가 몸을 다시 뒤로 뺐다.
“오바하지 마... 이십대 초중반은 무슨...”
“아니 진짜로요.”
“됐어...”
강예린이 말꼬리를 흐리면서 다른 데를 쳐다봤다. 시선을 좇아 고개를 돌려 봤는데 강성연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성연이 말없이 다가와 강예린의 오른편에 앉고는 입을 열었다.
“엄마랑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어, 그냥 요리 프로그램하고 싶은 거 있냐고 물으셨어.”
“으음. 그거야? 우리 엄마한테 제의 온 거?”
“응.”
“흐음...”
강성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강예린을 바라봤다.
“진짜 쟤랑 같이 방송하게?”
“응. 이 정도는 해야지.”
“아니...”
강성연이 소리 없이 한숨 쉬었다.
“뭐 보답은 해도 내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왜 엄마가 나서서 그래...”
“나도 온유한테 잘못했으니까. 엄마가 대신 보답해주는 게 아니라 너랑 별개로 잘못했던 거에 보상하는 거라고 생각해.”
“아니 그래도...”
강성연이 강예린에게서 시선을 떼고 나를 쳐다봤다.
“네가 보기에도 보상 같은 건 엄마 말고 내가 해야 되지 않아?”
뭐라 답하기 곤란했다. 나는 솔직히 강성연이나 강예린한테 보상이나 보답 같은 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강성연이 내가 말하지 않는 게 답답했는지 입을 열었다.
“너는 우리 엄마랑 하고 싶은 거야?”
강예린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안해준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데 아니라고 답할 수는 없었다.
“생각해봐야지.”
“... 알겠어. 마음대로 해. 너랑 우리 엄마랑.”
“... 너 삐쳤어?”
강성연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뭘 삐쳐. 삐칠 게 어딨다고.”
“으응...”
“...”
강성연이 말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주방 쪽으로 갔다. 강예린이 뒷모습을 봤다.
“어디 가?”
뭔가 데쟈뷰인데.
“나 커피 다 안 마셔 가지고 가져오게.”
“으응.”
강성연이 걷다가 우뚝 멈춰 서고는 뒤돌아 강예린을 바라봤다.
“왜 자꾸 어디 갈 때마다 물어봐.”
“그냥, 딸 뭐 하나 궁금하니까.”
강성연이 콧숨을 내쉬고 다시 뒤돌아서서 주방으로 걸어갔다.
강예린이 가만히 강성연의 등을 보다가 나를 쳐다봤다. 멋쩍게 웃었다.
“어떡할까요? 방송.”
“응?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같이하면 성연이 화나는 거 아녜요?”
“아냐. 내가 타이를게.”
살폿 웃었다.
“알겠어요. 고민하고 말씀드릴게요.”
“그래.”
강예린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같이 하자고 했다가 모녀 사이에 사소한 불화가 생기는 거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최대한 안 하는 쪽으로 생각해둬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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