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화 〉 강성연네에서 저녁 식사 (1)
* * *
상대 팀이 서렌했다. 승리 화면이 떴다. 조금 뻐근한 감이 있어서 목 스트레칭을 했다.
“이제 내려갈까?”
내가 물었다. 강성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가 아직 안 불렀는데?”
“그래도. 두 판이나 했으니까 슬슬 요리 준비 다 됐을 거 같아서.”
“그래. 그럼 가자.”
“응.”
pc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성연이 노트북을 덮고 일어나서 내 옆에 나란히 섰다. 같이 방을 나서고 주방으로 갔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건드렸다. 가스레인지 앞에 강예린이 서 있어서 뒷모습이 보였다. 길지 않은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어서 하얀 목이 훤히 드러났다. 실내활동만 한다는 게 엿보였다.
아마 업장을 돌아다니다가 집에서 운동하고 쉬기를 반복하지 않을까. 근데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사는 걸까. 일하는 게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아주 이해가 잘 가지는 않았다.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하나 포기한 채로 사는 것이니 강예린은 속에 불완전함을 일부분 간직하고 있을 터였다. 어쩌면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기에 부족하다는 느낌을 느껴보지 않은 채 살아와서 별로 개의치 않아 할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한 번쯤은 연인을 만나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성연이에 대한 모성애를 생각하면 부모님이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독신주의자가 되지 않았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엄마 아직 안 됐어?”
강성연이 말했다. 강예린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강성연이랑 나를 바라봤다.
“어, 근데 금방 돼. 조금만 기다려. 일단 앉아 있어.”
“응.”
강성연이 의자를 꺼내 앉았다. 강예린이 나를 쳐다보며 눈웃음 지었다. 눈빛이 살가웠다.
“온유도.”
“네. 제가 도와드릴 거 없나요?”
“응. 이따 옮기는 것만 도와줘. 고마워 온유야.”
“네.”
강성연의 오른편에 있는 의자를 꺼내 앉았다. 테이블에는 감바스랑 텍사스 브리스킷 한 덩이가 놓여 있었다. 도마 위에 올라가 있는 검은 고깃덩이가 거의 사람 머리만 한 크기를 갖고 있어서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다.
“대박이다...”
왼팔을 테이블에 대고 턱을 괸 강성연이 나를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치. 이거 엄마가 너 온대서 하루 동안 준비한 거야.”
“진짜?”
“딸, 그걸 왜 말해, 엄마가 말해주려 했는데.”
“미안.”
강예린이 흣, 하고 웃었다.
“그래. 온유야 잠깐 와서 프라이팬 하나 들어줄래?”
“넵.”
자리에서 일어나 강예린의 왼쪽으로 갔다. 강예린이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프라이팬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에는 브리스킷을 얹을 만한 간단히 조리된 파스타가 있었고, 하나에는 버터에 구운 모닝빵이 있었다.
“파스타 제가 옮길게요.”
“응.”
파스타가 담긴 프라이팬을 테이블에 옮겨놓았다. 강예린이 모닝빵이 올려진 프라이팬을 들고 와 모닝빵들을 집게로 하나하나 집어서 흰 접시에 옮겼다. 그러고는 도마에 깻잎을 올려 듬성듬성 썰고 파스타 위에 얹었다.
“앉아 온유야.”
“네.”
자리에 앉았다. 강예린이 칼을 가져와서 브리스킷을 잘랐다. 단면으로 육즙이 흘러내렸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강성연도 입을 벌리고 봤다. 강예린이 뿌듯한지 은근히 미소 지었다. 평소 무표정할 때는 차갑게만 보이는데, 갭이 커서 더 귀여웠다. 강예린도 진짜 사랑스러운 사람인 거 같은데. 사랑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게 내가 다 안타까웠다.
강예린이 브리스킷을 끄트머리까지 자르면서 입을 열었다.
“좀 많이 기다렸지? 이게 요리들은 시간 얼마 안 걸리는데, 이게 브리스킷이 조금 더 해야 됐어서 되게 오래 걸렸어.”
“아뇨, 저 성연이랑 같이 게임하느라 시간 금방 가 가지고 괜찮았어요.”
“으응. 그럼 다행이네.”
“네.”
브리스킷을 조각낸 강예린이 흠, 하고 소리 내며 고기를 잠시 내려보다가 직사각형의 플레이팅 나무 도마를 가져와서 브리스킷 조각을 옮겨 순식간에 플레이팅했다. 그냥 단순히 색깔 좀 다른 도마로 옮겨서 간단하게 툭툭 건드린 거 같은데, 완성된 모습은 모르고 본다면 많이 공들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보기 좋았다. 브리스킷이 그리 많이 하는 요리는 아닐 텐데 짧은 순간에 이렇게 예쁜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내고 구현한다는 게 감탄스러웠다.
“좀 어떤 거 같아?”
강예린이 물었다. 지금 나한테 질문한 거 맞나? 살짝 당황스러웠다. 강성연이 입을 열었다.
“예쁜데.”
“그렇게 건성으로 답하지 말랬지.”
“아니 뭐 보기 좋은데 어떡하라고 그럼.”
강예린이 콧숨을 내쉬었다. 약간 불만족스러운 듯했다. 강예린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네가 보기엔 어떤 거 같니 온유야?”
“아니 엄마 그러지 말고 그냥 앉고 좀 먹자. 식사 대접하기로 했으면서 뭘 그런 걸 물어.”
강성연이 투덜대며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스럽게도 들렸을 텐데 애가 어머니한테 투정 부리는 상황이라서 귀엽게만 느껴졌다. 살폿 웃었다.
“아냐 괜찮아. 이런 거 질문 좀 할 수 있지.”
고개를 돌려 강예린을 쳐다봤다.
“제 눈에도 보기 좋아요.”
“으응. 그럼 됐네.”
강예린이 내 오른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강성연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니 왜 내가 말할 때는 뭐라 하고 얘가 말한 건 그냥 넘어가. 그리고 왜 거기로 가서 앉아?”
“앉으면 안 돼?”
“아니 엄마가 옆에 있음 얘가 부담될 수도 있잖아...”
강성연이 나를 쳐다봤다.
“너 안 불편해?”
“난 괜찮은데?”
강성연이 콧숨을 내쉬었다. 강예린이 가만히 나를 올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옆에 있는 거 부담스럽니 온유야?”
“아뇨 저 진짜 괜찮아요.”
“으응. 자리 다시 바꾸는 것도 주책맞으니까 그냥 앉을게 온유야.”
살폿 웃었다.
“네.”
“아니 주책 안 맞으니까 얘 부담 주지 말고 내 옆에 앉아.”
강성연이 말했다. 강예린이 의자에 엉덩이를 떼지 않은 채 나이프로 모닝빵을 가로로 갈랐다.
“딸, 자꾸 부담된다고 말하면 안 부담됐어도 부담스러워져.”
“그러라고 말하는 거 맞거든.”
강예린이 히죽 웃었다.
“딸 요즘 왜 이리 귀여워졌어?”
“아 뭔 소리야...”
강예린이 히히 웃으면서 모닝빵을 자르다가 나를 쳐다봤다.
“온유야. 네가 보기에도 우리 성연이 좀 귀여워지지 않았어?”
“네 요즘 좀 그런 거 같긴 해요.”
“아...”
두 팔을 테이블에 대고 있던 강성연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는 짓이 은근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강예린도 입꼬리를 올리고 보고 있다가 오른팔을 테이블에 대고 상체를 숙여서는 왼손 검지로 강성연의 오른손등을 쿡 찔렀다. 강예린의 몸이 내 앞쪽을 가로질러서 샴푸향이 맡아졌다. 플로럴한 향이 왠지 모르게 야릇했다. 등을 등받이에 붙이고 고개를 약간 뒤로 젖혔다.
강예린이 왼손의 네 손가락으로 강성연의 오른손등을 간질였다.
“딸, 저녁 먹어야지. 빨리 나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강성연이 피식 웃었다.
“재미없어...”
“얼굴 안 보여주면 계속 재미없는 개그할 거야.”
“아 하지 마.”
“그럼 빨리 밥 먹자.”
“알겠어.”
강예린이 그제야 몸을 뒤로 물렸다. 강성연이 얼굴에서 두 손을 뗐다. 이제 식사하는 분위기가 된 건가. 등을 등받이에서 떼고 조용히 콧숨을 내쉬었다. 강예린이 나를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어, 미안. 방금 좀 불편했니?”
“아뇨 괜찮아요.”
강성연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엄마가 뭐 했는데?”
“아냐, 뭐 하신 거는 없어.”
“내가 딸 쿡쿡 찌를 때 앞에 좀 가려가지고 불편했을 거 같아서.”
“그러게 왜 그랬어.”
강예린이 멋쩍게 웃었다.
“순간 의식을 못 했네.”
“초대해놓고 손님을 의식 못 하면 어떡해 엄마.”
“미안.”
강예린이 나를 올려봤다.
“미안해 온유야.”
“괜찮아요. 안 불편했어요.”
“그래. 이제 먹을까?”
“네.”
답을 하고 테이블을 보는데 브리스킷 말고도 파스타에 감바스까지 있어서 이걸 언제 다 먹지를 넘어서 다 먹을 수는 있을까가 의문스러웠다.
“근데 양이 진짜 엄청 많네요.”
“응. 네가 뭐 좋아할지 모르니까, 일단 하나 꽂히면 그것만 먹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 가지고 다 많이 했어.”
“저 원래 가리는 거 별로 없이 잘 먹어요. 그리고 어머님이 해주신 거라서 맛은 보증된 거니까 뭐 해주시든지 다 잘 먹었을걸요.”
강예린이 미소 지었다.
“그래?”
“네.”
“근데 네가 어머님이라고 해주니까 왠지 장모님 된 느낌이다.”
“아 엄마 뭔 소리야!”
강성연이 질색했다.
“엄마 지금 엄청 주책맞은 거 알지?”
강예린이 히히 웃었다. 악동 같은 웃음이었다.
“방금은 조금 아니었나?”
“조금 아니었거든.”
“흐흫. 미안. 근데 농담이었는데 왜 그렇게 반응해.”
“아니 농담이어도 선을 넘었잖아.”
“그래, 알겠어. 미안해.”
강예린이 나를 바라봤다.
“미안해 온유야.”
“아, 네...”
“아 엄마 얘 당황했잖아.”
강성연이 인상을 찡그리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부끄러워 죽겠는지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아 진짜...”
강성연이 나를 쳐다봤다.
“미안. 엄마 좀 이상하지. 나 관련되면 팔불출 기질 생겨 가지고...”
“아냐 괜찮아.”
강예린이 나랑 강성연을 보면서 눈웃음 지었다. 귀엽다는 듯 사랑스레 바라보는 눈빛에 즐거움이 살짝 묻어났다. 의외로 장난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강성연이 소리 내어 한숨 쉬었다.
“이제 좀 먹자 그냥...”
“그래. 파스타 먹을래 온유야?”
“네. 좀 주세요.”
“응.”
강예린이 접시에 파스타를 담고 브리스킷을 조금 올린 다음 내게 건네줬다. 포크로 면을 한 입 넣고 브리스킷을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씹을 때마다 브리스킷의 육즙과 더불어 깻잎의 향긋함과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 씹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진짜 맛있어요.”
강예린이 눈웃음 지었다.
“고마워. 많이 먹어.”
“네.”
다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이거는 진짜 싸가서라도 다 먹어치울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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