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수요일 (8)
* * *
폰을 켜봤다. 네 시 사 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든 잿더미만 바라보면서 쓰다듬고 있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제 곧 있으면 유치원에 가야 했다. 유치원에 가면 웃어야 하는데. 웃을 자신이 없었다. 폰을 다시 내려놓고 잿더미를 끌어안았다. 잿더미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며 냐아 울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왼팔로 잿더미의 등을 감싸안고 오른손으로 잿더미의 왼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잿더미가 내 왼 가슴팍에 머리를 박고는 배를 까고 누운 채 눈을 감았다. 이내 잿더미가 골골거렸다. 잿더미의 입이 살짝 벌어져서 이빨이 보였다. 아무 걱정도 없어 보였다. 부러웠다. 잿더미의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차라리 고양이로 태어났더라면. 잠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근심하지 않고 삶을 즐겼을 텐데.
조금 더 잿더미를 쓰다듬다가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잿더미가 깨지 않게 조심히 다리를 움직여 침대에서 나와 일어섰다. 백지수에게 침대에 잿더미가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1층으로 내려가 양치하고 얼굴을 씻은 다음 코트를 걸치고 오른손에 우산을 챙긴 다음 밖으로 나섰다. 비가 우산을 두드려댔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와 투두둑거리는 소리만 귀에 들려왔다. 유치원으로 들어가고 원장실 앞에 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강혜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었다.
“온유! 이제 왔구나!”
의자에 앉아 있는 강혜린이 나를 쳐다보고 눈썹을 올렸다.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
“비 와서 그런가봐요.”
“으응... 비 되게 싫어하나봐?”
“조금 싫어해요.”
“근데 오늘은 기타 없네?”
“네.”
“음... 그래. 애들 기다릴 건데 빨리 반 들어가.”
“네.”
반에 들어갔다. 유강은이랑 인사를 나누고 애들을 보며 반갑다고 했다. 유강은이 아이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얘들아. 오늘 온유 쌤 오시는 마지막 날이니까 사진 찍자.”
“온유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안 돼요!”
“내일 또 와주면 안 돼요?”
“선생님 선생님이잖아요!”
“얘들아 사진 찍어야지. 선생님 붙잡지 말고.”
““네!””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유강은이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강혜린을 불러왔다. 강혜린이 사진을 찍어주고는 자기도 찍히고 싶다면서 다른 반에 있던 선생님을 불러와서 자기도 찍혔다. 사진을 찍고 나서 아이들이 달라붙어왔다. 정신 없이 다섯 시가 되었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성하윤이 다섯 시면 돌아가는 아이들이 반에서 빠져나가자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쳐다보며 두 팔을 벌린 채 달려왔다.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벌려 안아줬다.
“안아주세요!”
“응.”
“흐흫!”
미소 짓는 성하윤을 안아 들고 일어섰다. 성하윤이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내 얼굴을 살폈다.
“선생님.”
“응?”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별일 없었어.”
“무슨 일 있는 사람처럼 생겼어요.”
“나 진짜 괜찮아. 그냥 좀 잠이 부족했나 봐.”
“으으음... 거짓말이죠.”
“아니야.”
성하윤이 배시시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내 왼 볼을 어루만졌다.
“할아버지가 거짓말은 안 좋대요. 단기적으론 좋아도 장기적으로는 무조건.”
“음, 그래? 되게 훌륭하신 분이신 거 같다, 하윤이 할아버님.”
“흐흫. 맞아요. 교육감이에요! 우리 할아버지.”
“그렇구나.”
“그니까 선생님 저 초등학생 되면 저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되고, 중학생 되면 중학교 선생님 되주세요. 고등학생 땐 고등학교 선생님 되주시고.”
“그럼 하윤이 대학생 때는 교수님 되고?”
“흐흫. 네.”
“너무 어려운데? 우선 대학교 가서 교직원 자격 얻는 것만 해도 군대 끼고 하면 우리 하윤이 중학생 때는 돼야 나 선생님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럼 우리 중학생 때부터 다시 봐요.”
미소지어 보였다.
“근데 내가 선생님 돼서 고등학교까지는 어떻게 볼 수 있다 쳐도 교수님은 되기 힘든데 어떡해? 진짜 막말로 교수님 된다 해도 하윤이가 내 수업 안 들으면 소용도 없고.”
“음! 그건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대학생 되면 굳이 학교에서 안 봐도 될 거 같아요!”
“그럼?”
“그냥 만나요! 그럼 되잖아요!”
“그렇네. 그럴 수도 있겠네.”
“흐흫. 들썩들썩 해주세요.”
“알겠어.”
두 팔에 반동을 줘서 성하윤을 들썩여줬다. 아이들이랑 놀아주던 유강은이랑 눈이 마주쳤다. 유강은이 미소 지었다. 마주 미소 지어 보였다. 유강은이 왼손 검지로 문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따 밥 먹고 저랑 잠시 얘기 좀 할래요 온유 선생님?”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성하윤이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었다. 왼눈을 감았다.
“뭐 해 하윤아.”
“흐흫.”
“선생님 얼굴은 장난감이 아니에요.”
“근데 왜 이렇게 재밌어요?”
김세은이 똑같은 말을 했었는데. 뭐라 답하려 해도 목소리가 안 나왔다. 살짝 목이 멨다. 괜히 침을 삼켰다.
“선생님 슬퍼 보여요.”
“아냐... 괜찮아... 비 와서, 조금 졸려서 그래...”
“...”
성하윤이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두 팔로 내 목을 감아와서 나를 껴안았다.
“괜찮아요.”
“... 그래...”
왼손으로 성하윤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목이 멨다. 혼자 있으면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다하다 일곱 살 밖에 안 되는 하윤이에게 위로받을 줄은 몰랐다.
*
유강은이 왼손으로 500ml짜리 콜라를 두 개 꺼내면서 나를 쳐다봤다.
“선생님 하윤이 꼬시는 거예요?”
“네?”
“하윤이 지금 보면 선생님이랑 결혼할 생각도 하는 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예요 그게?”
유강은이 입꼬리를 올리며 계산대로 걸어갔다.
“진짜 모르겠어요?”
“아니 하윤이랑 저랑 지금 나이차가 얼마나 큰데 무슨 이유로 절 좋아하겠어요.”
“열한 살 차이면 결혼이야 할 수도 있죠. 아니 오히려 충분하죠. 온유 쌤이랑 원장쌤 나이 차도 열 살은 나잖아요?”
“으음... 그래도 하윤이는 완전 어린애인데...”
“어린애도 잘생긴 건 알아요. 오히려 우리보다 더 잘 알고 따지지.”
“...”
“설마 하윤이 말대로 선생님 되거나 할 생각 아니죠?”
“아니죠 제가 왜 선생님을 하겠어요.”
“그렇긴 해요.”
유강은이 카드로 계산하고 양손에 콜라를 들어 왼손으로 잡은 걸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받고 뚜껑을 열어 바로 한 모금을 마셨다. 유강은도 한 모금을 마시고 눈을 찡그렸다.
“일단 잠깐 앉을래요 온유 쌤?”
“네.”
의자 두 개만 있는 테이블로 가 앉아 유강은을 마주 보았다. 유강은이 왼손을 테이블에 대고 왼손으로 턱을 괬다.
“온유 쌤.”
“네.”
“온유 쌤은 여기 오고 갈 때 맨날 걸어다닌다고 했잖아요.”
“그쵸.”
“근데 돌아가실 때는 혜린 쌤이랑 자전거 타고 다니시고.”
“... 어떻게 아셨어요?”
“아침에 혜린 쌤이랑 얘기하다가 들었어요. 근데 그게 뭐예요, 제가 차 태워준다는 건 사양하고 혜린 쌤이랑 오붓하게 자전거 타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 죄송해요.”
“죄송할 건 아닌데요...”
유강은이 시선을 내려서 오른손을 테이블에 대고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아니 죄송할 거 맞는 거 같아요. 저 좀 상처받았으니까.”
“... 죄송해요.”
“괜찮아요. 근데요 자전거 탔으면 온유 쌤이 안장에 앉은 거죠?”
“네.”
“그럼 혜린 쌤이 뒤에서 어깨 잡은 거예요?”
“아뇨 저 기타 케이스 들고 다녀서 어깨만 잡고 그럼 약간 안정성 떨어지니까...”
“그럼 혜린 쌤이 온유 쌤 껴안고 그렇게 간 거예요?”
“... 네.”
“와...”
유강은이 왼손으로 콜라 몸통을 잡고 콜라 뚜껑을 열어서 한 모금 마셨다.
“밤에 껴안고 자전거를 탄다... 진짜 좀 너무 막 그렇지 않아요...? 완전 데이트 느낌인데...?”
멋쩍게 웃었다. 유강은이 웃음 지었다.
“온유 쌤이 왜 웃어요. 데이트인 거 인정하는 거예요...?”
“아니에요...”
“으음...”
유강은이 오른손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나를 응시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근데요 온유 쌤.”
“네...?”
“너무 막 다 꼬시고 다니지 마요. 마음 줬는데 아무것도 안 돌아오면 상처받으니까요. 어리든 나이가 많든. 알겠죠?”
“... 네.”
유강은이 왼손에 콜라를 들고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들어가요.”
“네.”
일어서고 왼손으로 콜라를 잡았다. 밖에 나가서 우산꽂이통에 넣었던 우산을 꺼내 펼쳤다. 유강은이랑 같이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놀아달라는 대로 놀아주고 노래를 불러달라고 떼쓰며 신청곡을 말하면 무반주로 노래를 불러줬다. 아홉 시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품에 안긴 성하윤이 나를 바라봤다. 눈가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미소 지으며 왼손 엄지로 눈물을 닦아줬다.
“온유 선생님, 읍, 내일도 와주세요...”
“봉사활동일이 오늘까지라서, 내일은 오기 힘들 거 같아.”
“또, 봉사활동 신청하면, 윽, 되자나여...”
“그치. 나중에 또 금방 다시 올 테니까, 눈물 그쳐주라. 응? 하윤아.”
팔에 반동을 줘서 들썩여줬다. 성하윤이 두 팔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또 와요...”
“알겠어. 이제 내려가자.”
“네에...”
성하윤을 내려줬다. 안아달라는 아이들이 많았다. 한 명씩 안아주고 목마를 원하는 애들은 목마를 태워주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보내줬다. 유강은이랑 뒷정리를 했다.
“사흘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온유 쌤.”
“강은 쌤도요. 잘해주셔서 감사해요.”
유강은이 미소 지었다. 같이 반을 나갔다.
“온유 쌤 저희 혜린 쌤이랑 밥먹기로 한 거 기억하죠?”
“네 기억하고 있죠.”
유강은이 빙긋 웃었다.
“다음에 봐요.”
“네. 안녕히 가세요.”
“온유 쌤도요. 아 근데 오늘은 진짜 제가 태워줄까요?”
“아뇨 저 걸어가려고요.”
“으음... 네. 진짜 잘 가요.”
“네. 들어가세요.”
유강은이 미소 짓고 뒤돌아 유리문을 나서더니 나를 쳐다보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마주 손을 흔들었다. 유강은이 우산을 펼치고 걸어갔다. 가만히 서 있었다. 움직임을 감지하는 전등이 꺼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변기 앞에 무릎 꿇었다. 위에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잘못 살고 있었다. 세면대에서 얼굴에 물을 끼얹고 거울을 봤다. 불길하고 침울하고 음침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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