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63화 (63/438)

〈 63화 〉 저녁 (3)

* * *

“부장이랑 유은이 오늘 버스킹한 거 본 사람?”

김민우가 물었다. 이 토픽은 불편해서 안 다루기를 바랐는데. 말이 나온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봤지봤지. 키 차이 진짜 내가 다 설레더라.”

그렇게 말을 얹은 3학년 보컬 정이슬이 어니언링을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었다. 작년에 선배들이 김세은과 나를 이런 식으로 은근히 엮어댔었다. 내가 너무 넘겨짚는 게 아니라면 이번에는 서유은과 나를 엮으려는 모양이었다.

“거기서 왜 키 차이를 봐요.”

내가 말했다.

“아니 노래 부르기도 전에 눈에 보이는 게 비주얼인데 그거부터 얘기할 수도 있는 거지.”

정이슬이 말했다.

“솔직히 안 보기가 힘들긴 했어요.”

이지훈이 맞장구쳤다. 이지훈은 은근 눈치가 없었다.

“그니까. 근데 우리 유은이 데려와서 얘기해야 되는 거 아냐?”

그리 말한 정이슬이 허리를 틀어 뒤돌아봤다.

“유은아 테이블 일로 옮길래?”

“아 저...”

“그냥 와.”

정이슬이 다시 뒤돌았다.

“성연이 오른쪽으로 다 일어서서 한 자리씩 옮기자. 유은이 자리 만들게.”

“그냥 저만 일어서서 끝자리로 가면 될 거 같아요.”

내 맞은 편에 앉은 손정우가 일어서서 자기 플레이트를 들었다.

“오 정우 센스. 땡큐.”

정이슬이 양손 엄지를 치켜올리고 다시 뒤돌아봤다.

“어 유은아 접시 나 줘. 김민우 잔 받고.”

“감사합니다아...”

“잔 나 줘.”

“아 넵.”

서유은이 든 접시는 정이슬에게 주고 1학년 여자 키보디스트가 거들은 콜라 잔은 김민우에게 줬다. 키보디스트는 할 일이 끝나 도로 자기 자리에 앉았다. 서유은이 돌아서 내 맞은 편에 앉을 동안 접시와 잔은 손을 거쳐거쳐 이미 반대편에 놓여있었다.

“이온유 지금 여자들한테 삼각형으로 둘러싸였네.”

강성연이 말했다.

“오 그렇네. 우리 여자 부원도 적은데.”

정이슬이 박수를 치며 맞장구를 쳤다.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고 자연스럽게 다음 토픽을 자기 맘대로 가져가는 게 정이슬이 자주 취하는 대화 방식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았다.

“보통 서브 동아리 하면 커플 생긴다잖아. 근데 우리 밴드부는 맨날 성비 다르고 해서 그런 기류도 별로 안 나고, 막 친구 사이로만 남구.”

“누나 민우 형이랑 사귀는 거 우리 다 아는데.”

김수원이 말했다. 김민우가 입꼬리를 실룩이며 웃음을 터뜨릴 뻔하다가 참았다. 정이슬이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

“응? 아닌데? 야 김민우 한 마디 해.”

정이슬이 오른 팔꿈치로 옆에 앉은 김민우를 쿡 찔렀다.

“안 사귑니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가드립니다.”

김민우 옆 자리 3학년 일렉기타리스트가 피식 웃고 말했다.

“우리 뭔 얘기하고 있었지?”

정이슬이 김민우를 쳐다봤다.

“몰라. 온유랑 유은이 버스킹한 거 얘기하지 않았나?”

“어 맞아. 그 얘기해야지.”

응응, 하고 고개를 주억인 정이슬이 나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온유야.”

“네?”

“오늘 버스킹한 거 누가 먼저 하자고 한 거야?”

“그거 유은이가 먼저 하자고 했대요.”

김세은이 대신 답했다.

“응? 어케 알았어?”

“그거 글 써져 있었어요.”

“아 내가 안 읽었나보다. 그럼 유은아. 왜 온유를 콕 찝어서 도와달라고 한 거야?”

“아 그게... 온유 오빠가 부장이시고...”

“오빠아?”

정이슬이 왼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를 줄여 꺄악거렸다.

“유은이 입에서 오빠 소리 나오는 거로 내가 이렇게 설렐 일?”

“어, 언니이...”

“응응. 미안. 계속 얘기해줘.”

“저 사실 더 할 말 없어요오...”

“으음... 그치. 이온유는 이온유니까. 그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지.”

“언니 놀리지 마요오...”

정이슬이 꺄르르 웃었다.

“온유야. 너는 그럼 유은이가 버스킹하자고 해서 한 거지?”

“네.”

“바로 흔쾌히 콜 했어?”

“네 오늘 일정 딱히 없어서.”

“으으음.”

김세은이 의자에서 살짝 일어서서 상체를 올리고 테이블로 팔을 뻗어 감자튀김을 포크로 세 개를 연달아 콕 찍고 도로 자리에 앉아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 짧다면 짧은 순간 몸에 가려 정이슬이 보이지 않았다.

“세은이 감자튀김 좋아했어?”

정이슬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김세은이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네. 저 원래 이런 거 좋아하는데 몸 관리해야 돼서 못 먹은 거뿐이에요.”

“으응. 되게 힘들겠다.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그러면. 막 샐러드 같은 거만 먹어?”

“매일 샐러드만 먹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엄청 자주 먹을 거 아냐.”

“그렇긴 하죠.”

대화하는 걸 보고 있는데 백지수가 오른손 검지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 메모 어플을 키고 무슨 글귀를 적어놓은 화면을 테이블 밑으로 해서 내게 보여주었다.

[너 어장 치냐?]

기침이 나와서 왼손으로 막고 쿨럭거렸다. 갑자기 이게 뭔.

“괜찮아?”

김세은이 고개를 획 돌려 왼손으로 내 등을 토닥였다. 바로 오른손을 올려 안 해줘도 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등을 토닥이고 쓸어주는 식으로 챙겨주면 가까운 사이로 보일 게 뻔했다.

“괜찮아. 고마워.”

“왜 그래?”

“목에 뭐 걸렸나봐. 이젠 괜찮아.”

콜라를 들이켰다. 백지수가 불시에 이런 식으로 기습을 해올 줄은 정말 몰랐다.

“하여간 욕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다 먹으려고 허겁지겁 쳐먹으니까 목에 걸리고 그러는 거지.”

백지수가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언제 허겁지겁 먹었어.”

“입 꾹 다물고 얘기 잘 안 하면서 버거 꾸역꾸역 먹은 게 허겁지겁 먹은 거지.”

“그래도 아직 다 먹지는 않았잖아. 이미 다 먹은 사람도 있는데.”

“죄송합니다...”

케챱을 오른쪽 입꼬리에 묻힌 박철현이 감자튀김이 하나 찍힌 포크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몇 명이 살풋 웃었다. 김민우는 크게 웃었고.

“의도하진 않았습니다.”

“유은아. 그럼 너 사실상 오늘 처음 버스킹해본 거지?”

정이슬이 테이블에 양팔을 대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서유은에게 물었다.

“네, 그렇죠오...?”

“그럼 썰 좀 풀어줘. 어떻게 했는지 처음부터.”

“그냥... 어플로 버스킹 신청하고 전날밤에 온유 오빠한테 전화해서...”

“응응.”

정이슬이 눈을 반짝였다.

“전날밤에 전화해서? 몇 시에?”

김세은이 테이블 밑으로 왼손을 슬쩍 옆으로 해서 내 오른손을 잡으려 했다. 손등을 살짝 어루만지고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식탁 위에 올려 포크를 잡았다. 김세은이 왼손을 도로 자기 허벅지 위에 두었다.

“저 그때 몇 시에 전화했죠?”

서유은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몰라? 그래도 완전 밤은 아니었을 걸?”

“그니까 정확히 몇 시?”

정이슬이 집요하게 캐물었다. 서유은이 폰을 꺼내 스크롤링했다.

“어, 11시 16분에 전화 걸었네요...?”

“그래서, 바로 받았어?”

“네에...”

“크으...”

정이슬이 나를 보며 미소 짓고는 눈을 감은 채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어 고개를 절레절레 했다.

“전날밤에 부탁했는데 바로 알겠다고 한다? 서윗하다 서윗해...”

“그냥 오빠가 전화를 잘 받아주시는 거 같아요오...”

“아냐 얘 전화 안 받을 때도 있어.”

백지수가 투덜투덜 말했다.

“내가 언제 네 전화를 안 받았는데요.”

“있어. 그때 뭐 너 밖에 있거나 했겠지.”

“밖에 있었음 못 받을 수도 있는 거지.”

“유은이였음 받아줬을 거 같애서.”

백지수가 잔을 들어 볼이 살짝 들어가게 사이다를 빨아마셨다.

“직각 삼각형 관계 뭐냐구.”

박철현이 말하고 쿡쿡 웃었다. 서유은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정이슬이 서유은을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그만 놀려요. 유은이 부끄러워하는데.”

내가 말했다.

“지금 유은이 챙겨주는 것도 쏘서윗...”

정이슬이 말했다. 김세은이 왼손 검지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르고 느리게 일어났다.

“어디 가?”

정이슬이 물었다.

“화장실이요.”

“어 응.”

김세은이 멀어졌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자를 보내오거나 할 것 같았다. 나도 빠져나올 핑계를 만들어야 할 듯싶었다.

“이거 먹고 어디 갈까요?”

내가 물었다.

“네가 다 계획 있던 거 아냐?”

정이슬이 질문으로 답해왔다.

“걍 한강이나 갈까요?”

“그것도 좋지. 뭐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버스킹 얘기나 해줘.”

“그냥 장비 챙기고 나가서 한 시간 노래하고 끝났어요.”

“오. 이렇게 둘만의 추억으로 간직하시겠다?”

정이슬이 음흉하게 웃었다. 노골적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서유은이 고개를 숙였다.

“이러다 유은이 울어요.”

내가 말했다.

“응? 진짜?”

정이슬이 서유은을 보았다. 서유은이 고개를 들어 양손으로 손사래쳤다.

“아, 안 울어요오...”

정이슬이 양손으로 자기 볼을 감쌌다.

“아 어떡해. 유은이 진짜 너무 귀여워서 자꾸 놀리고 싶어져.”

“자제하세요.”

김민우가 제지했다. 드드드, 내 폰이 진동했다. 누구인지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일어섰다.

“누구야?”

백지수가 물었다.

“확인 안 해봤어.”

밖으로 나가는 동안 백지수가 나를 쏘아보다 말았다. 폰을 꺼내 확인했다. 김세은이었다. 더 멀리 나가서 문자 앱을 켰다.

[나 나오기는 했는데 전화하는 건 조금 아닌 거 같아]

[내가 나오라고 한 거 바로 눈치채기는 했어?]

[했지. 근데 타이밍이 안 잡혀서.]

[내가 전화 안 했음 못 나왔겠네?]

[응. 센스 최고.]

[기본이지]

김세은이 히힣, 하고 웃는 게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빨리 먹고 빨리 끝내자]

[그게 맘대로 될까?]

[일요일이니까 집 먼 사람도 있을 거고 빨리 해산하는 게 맞을 거다, 대충 그런 얘기하면 되지]

[응. 일단 너 먼저 들어가고 내가 좀 나와 있다가 들어갈게.]

[알겠어]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한숨이 나왔다. 부원이 다 모이기만 하면 기가 빨렸다. 피곤했다. 조금 억울하기까지 할 정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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