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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62화 (62/438)

〈 62화 〉 저녁 (2)

* * *

1학년 베이시스트 이지훈이랑 박철현이 왔다. 이지훈은 정우 옆에 앉고 박철현은 내 옆에 앉았다. 메뉴를 대충 결정하고 주문했다.

“부장이랑 유은이 오늘 버스킹한 거 보신 분? 인별에 올라온 거.”

테이블에 양팔을 댄 박철현이 물었다.

“나 봤어.”

김세은이 답하고 나를 쏘아봤다가 유은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쟤 말고 나한테 도와달라 하지 그랬어 유은아.”

“아, 언니는 바쁘실 거 같아서요오...”

“나중엔 몰라도 요즘은 주말엔 별로 안 바빠. 바빴어도 네 부탁이면 시간 만들어서라도 들어줬을 걸?”

“감사해요오...”

백지수가 김세은을 바라봤다. 별 신기한 광경을 다 본다는 듯한 눈치였다.

“근데 선곡은 누가 한 거야? 다 스윽 보니까 사랑 노래만 주구장창 불렀던데.”

백지수가 물었다.

“선곡 유은이가 했어.”

내가 답했다. 김세은이 서유은을 바라보며 눈웃음지었다. 입은 웃음 짓다 말았다.

“곡 리스트 되게 좋던데. 고민 많이 했나보다.”

“아, 아녜요오... 선곡 제가 안 했어요오... ‘falling slowly’ 빼고 다 신청곡 받아서 부른 거예요오... 장난치지 마요 오빠아...”

“오빠라고?”

송선우가 물었다.

“언제부터?”

“오늘부터요오...”

“으음... 그래? 버스킹 끝나고 바로 오빠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본 거야?”

“아뇨오...”

오른팔을 테이블에 대고 턱을 괴고 있던 백지수가 눈을 찌푸리며 오른손 검지로 나를 삿대질했다.

“그럼 이 새끼가 먼저 ‘나 오빠라고 불러도 돼 유은아.’ 이 지랄한 거야?”

“아, 아녜요오... 버스킹 끝나고 서울숲 가서 제가 오빠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봤어요오...”

서유은의 얼굴이 붉어졌다.

“오 서유은 얼굴 빨개지는 거 뭔데.”

이지훈이 말했다.

“레알크크.”

박철현이 받아줬다. 서유은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애 갖고 놀리지 마 미친 놈아. 일루 와 유은아.”

“네에...”

백지수가 서유은을 안았다. 더 정확히 묘사하면, 백지수의 가슴 위에 서유은의 얼굴이 얹어지고 백지수가 서유은의 뒤통수를 감쌌다. 서유은은 백지수의 등 뒤로 두 팔을 감쌌고.

“시작은 지훈이가 했어요.”

박철현이 다소곳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이지훈이 안절부절 못 했다.

“지훈아 너 보고 뭐라 한 거 아냐. 할 것도 아니고. 걍 박철현 보고 뇌절하지 말란 거였지.”

백지수가 말했다.

“음료수 어디에 놔드릴까요?”

직원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유은이 팔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잠시 음료수 교통 정리를 했다. 직원이 돌아갔다.

“근데 나 오늘 정우 말하는 거 못 본 거 같다?”

박철현이 말했다.

“아 저 오늘 말했어요.”

“아니 큭큭, 그게 아니라. 너무 조용해가지고. 너 평소에 활달하잖아.”

“그냥 말할 타이밍이 안 나와서요.”

“인별 안 봤어?”

“보긴 봤어요.”

박철현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마이크처럼 쥐어서 자기 얼굴 앞에 가져다 대고 입을 열었다.

“오. 그럼 감상은?”

그러고는 핸드폰을 든 오른손을 손정우 쪽으로 들이 밀었다.

“그냥... 둘이 잘 어울린다?”

“이거 해석의 여지가 많은 말인 거 같은데요? 무슨 뜻이죠?”

박철현이 다시 자기 입 앞에 대서 얘기한 다음 손정우에게로 넘겼다. 모두 손정우를 바라봤다. 손정우가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 그게, 유은이랑 온유 형 음색이, 딱 들었을 때 잘 어울리고 호흡이 잘 맞았다는 거였어요.”

손정우가 의미를 잘 모르겠는 제스처를 크게 취해가며 말했다. 상당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박철현 후배 적당히 괴롭혀.”

백지수가 말했다.

“제가 괴롭혔나요 정우씨?”

“네 살짝.”

다들 살풋 웃었다.

“장난이에요.”

“아무리 봐도 진심 약간 담겼는데.”

송선우가 말했다.

“얘들아. 우리 자리 옮기기로 했어. 저기 테이블 넷씩 붙인 데로. 일어나.”

김민우가 어느새 다가와서 말했다.

“그럼 이 테이블 다시 돌려놓을까요?”

내가 물었다.

“어, 그럼 직원분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가위바위보로 옮길 사람 고를까?”

송선우가 물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가위바위보.””

나, 송선우, 박철현, 손정우가 가위를 내고 김세은, 서유은, 백지수, 이지훈이 주먹을 냈다.

“와 이게 한 방에 갈리네.”

박철현이 감탄을 토하고 말했다. 김민우가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위너들은 마실 거 들고 따라 오세요.”

““네.””

김세은, 서유은, 백지수, 이지훈이 일어나서 양손에 음료를 들고 김민우를 따라갔다.

“의자 먼저 옮기자. 그게 편해.”

송선우가 말했다. 각자 하나씩 의자를 들고 옆으로 둔 다음 테이블을 들어 옮겼다. 부원들이 있는 쪽으로 갔는데 다들 서있었다.

“어 부장. 자리 배치 결정해야지.”

김민우가 말했다. 솔직히 이게 뭔가 싶었다. 얼떨떨한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왜 다 굳이 서있어요?”

“나도 몰라요. 빨리 앉게 결정 좀 합시다 부장아.”

“그냥 그거 하죠? 데덴찌?”

“그럼 올리면 왼쪽이고 내리면 오른쪽에 앉는 거야?”

“그건 상관 없지 않아요? 아 한쪽은 창가인가. 일단 하고 얘기할게요.”

“오키.”

나랑 김민우가 손을 앞으로 뻗으니 다들 따라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데덴찌 다 말하는 거예요. 근데 소리 막 크게 내진 말고요.”

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데덴ㅡ찌.””

“손등 올리고 손바닥 내리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손등을 보여서 오른손을 위로 올렸다. 손을 올린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 열 넷이었다.

“오 딱 갈렸어.”

박철현이 감탄했다. 왼쪽 테이블 가까이로 붙어 가운데 쪽으로 걸었다.

“손 든 사람은 내 기준으로 왼쪽, 내린 사람은 오른쪽. 자리는 선착순으로.”

라고 말하고 바로 의자를 골라 앉았다. 내 움직임만 보며 가까이 붙어오던 김세은은 선착순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손을 20도로 뻗어 티 안 나게 의자를 잡을 준비를 했고, 내가 앉는 걸 본 순간 오른쪽 자리 의자를 잡아 앉았다. 내 왼편에는 백지수가 앉았다. 그냥 가까이 있어서 앉은 듯했다. 자리에 앉는 동안 잠시 소란스러웠다. 음료 주인을 찾느라고 아주 개판이었다. 그 소음을 틈타 김세은이 왼손으로 내 오른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오른손으로 김세은의 왼손을 잡았다. 김세은이 손을 뒤집어 손을 맞잡았다.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손가락을 쫙 펴 풀어달라는 의사표현을 했지만 김세은은 소리 없이 웃으며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힘을 줄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잠깐 잡아주었다가 검지로 손바닥을 콕콕 두드려 손을 뗐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 척하면서 두리번거렸다. 다들 자리에 앉았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괜히 허리를 많이 틀어 뒤를 보기도 했다. 방금은 너무, 너무 위험했다.

“근데 이렇게 갑자기 자리 바꿔서 직원분들 음식 가져다주실 때 좀 많이 헷갈리시겠다.”

김세은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네, 사이드 메뉴도 생각하면. 또 너희 나눠먹기로 하기도 했고.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다. 다시 자리 바꿔야 되나?”

“자리 다시 바꾸긴 어렵지 않아? 주문한 거 곧 올 건데. 그냥 놓아달라고 하고 우리가 알아서 배분해야지. 근데 메뉴 나눠 먹는 건 어떻게 하기 어렵겠네. 그냥 너랑 나랑 나눠 먹을까?”

“아니 우리 나눠 먹을 수 있잖아.”

백지수가 김세은을 보며 말했다.

“유은이랑 선우 뒤 테이블에 있잖아.”

“으음... 그렇네. 그럼 셋이서 나눠 먹을까? 서로 메뉴 다르잖아.”

“... 그래.”

내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있었다. 조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작게 픗, 하고 터져나왔다. 최대한 참아보려 했는데 어떻게 안 됐다.

“왜 웃어?”

백지수가 물었다.

“내 얘기는 안 듣고 너희끼리 정하는 게 웃겨서.”

“아 그렇네.”

김세은이 말했다.

“누구랑 나눠먹을 건지는 서로 얘기가 맞아야 결정되는 거지.”

김세은이 그리 말하면서 아주 짧은 순간 나를 쏘아봤다. 자기랑만 나눠먹자고 신호를 보낸 거 같은데, 난 백지수 거도 먹고 싶었다.

“셋이서 나눠 먹자.”

“... 응.”

김세은이 답했다. 백지수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너희 뭐 시켰는데?”

백지수 맞은 편에 앉은 강성연이 물었다.

“왜?”

백지수가 물었다.

“메뉴 안 겹치면 나도 나눠먹자고 하려고.”

“너 뭐 주문했는데?”

“올드 패션.”

“나랑 겹치네.”

내가 답했다.

“아, 왜 그거 시키냐.”

“내 맘.”

테이블에 오른팔을 대고 턱을 괸 백지수가 강성연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 종류 먹고 싶음 다른 애랑 나눠먹자 해.”

“그냥 네가 나랑 나눠 먹고 이온유는 김세은이랑 먹는 거는 어때?”

“난 찬성.”

김세은이 말했다.

“난 싫은데?”

백지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에반데.”

“내 식경험 좁히려는 네가 더 에바죠.”

“걍 내가 나눠 먹어줄게 성연아.”

강성연과 한 칸 떨어진 자리에 앉은 김수원이 폰을 보다가 말했다.

“어 감사.”

강성연이 답했다.

“말투 보소.”

“그냥 평상시 나죠?”

강성연이 폰을 꺼내 뭐를 확인했다. 김수원도 다시 폰을 보면서 김수원과 강성연의 대화가 끊겼다. 음식을 가져온 직원이 다가왔다.

“치킨 샌드위치 주문하신 분 어느 분이세요?”

“저요.”

김민우가 답했다. 직원이 물어가며 차차 접시들을 놓았다. 슬슬 음식이 나올 타이밍인 모양이었다. 김민우가 나이프로 오른손을 뻗었다.

“손 대지 마 미친 놈아.”

김민우 옆에 앉은 3학년 보컬 누나가 김민우의 오른손을 때렸다. 그러고는 폰 카메라 렌즈를 음식 가까이 들이댔다.

“아니 내 음식인데 왜 네가 통제를 하세요.”

“사진은 다 찍어줘야지.”

“늬에늬에.”

“처맞을?”

“아, 죄송.”

사진 찍을 사람들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음식이 미리 나온 사람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기다리다가 괜히 식어버리면 안 됐으니까. 우리가 시킨 것도 빨리 나왔으면 했다. 얘기를 나누는 건 피곤한 일이라서 차라리 먹으면서 입 다물고 있는 게 훨씬 나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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