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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5화 (5/438)

〈 5화 〉 해장 겸 백지수랑 모닝 떡볶이

* * *

깨어났는데 조금 어두웠다. 동이 튼 건지 안 튼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아 핸드폰을 켰다. 7시 17분이었다. 백지수는 아직 자고 있는 건지 집안이 조용했다. 백지수를 깨울까 말까. 씻으면서 고민하다가 나보다 훨씬 오래 잔 백지수가 피곤해할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다른 잔에 물을 채운 뒤 백지수를 깨우러 2층으로 올라갔다.

“야 일어나.”

“어, 으어. 어 나 일어남.”

백지수의 목이 갈라졌다. 물을 따른 컵을 주었다. 뭔가 하고 흘깃 보더니 왼손으로 흰이불을 쥐어서 가슴가를 가리고 오른손으로 컵을 받아서 벌컥벌컥 마신다. 컵을 내게 도로 돌려주고 오른손 손등으로 입가를 닦는다.

“감사.”

“너 침 흘리면서 자냐.”

“뭐, 뭐?”

손가락으로 베개를 가리켰다. 침에 젖어 둥근 자국이 남아 있는 베개를 본 백지수가 베개를 그대로 집어들어 내게 던졌다. 방비를 해두어서 손 쉽게 받았다. 백지수의 다리 곁에 내려놓았다.

“미친 새끼.”

“아침 뭐 먹어야 되냐.”

“아침? 요앞에 새벽부터 여는 분식점 있어.”

백지수가 도로 누웠다.

“너도 가야지.”

“안 매운 떡볶이 먹어?”

“당연하지.”

“근데 몇 시냐.”

“아홉 시. 일어나세요 백수씨."

“벌써?”

백지수가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닿기 전에 먼저 핸드폰을 가져가 주머니에 넣었다.

“너 아홉 시라고 한 거 구라지.”

“그냥 일어나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거다.”

“이십 분만 더 자자.”

백지수가 이불을 도로 덮고 누워 눈을 감았다.

“안 돼 나 배고파.”

하얀 이불 위로 드러난 백지수의 양 상박을 붙잡고 힘을 주어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놀란 눈을 한 백지수가 양손으로 이불을 끌어쥐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왜?”

“막 손대지 마 변태 새끼도 아니고.”

“... 미안해.”

“씻을 거니까 기타방에 들어가 있어. 내가 부를 때까지 거기서 나올 생각하지마.”

“알겠어.”

뻘쭘했다. 기타방에 들어가니 딱히 할 게 없어서 내 기타를 꺼내 튜닝하면서 백지수의 화를 풀 방법이 뭐가 있을까 떠올렸다. 드라마랑 웹툰 많이 본다는데. 방문을 살짝 열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취기를 빌려', '흔꽃샴', '나랑 같이 걸을래' 등 수록곡들을 불렀다. 어느새 백지수가 샤워하고 나와서 왼손에 빨대 꽂힌 초코 우유를 들고 기타방 문을 활짝 열었다. 목에 흰 수건이 걸쳐졌고, 잔머리가 잔뜩 있는 게 물에 빠진 숫사자머리 같았다. 어이 없다는 듯한 웃음을 짓는다.

“너 뭐하냐?”

“노래 연습.”

“소음으로 신고 오면 나만 부모님한테 욕 먹는데?”

“그렇게 크게 들렸으면 화장실에서 소리 치지.”

“... 됐어.”

등 돌린 백지수가 거실에서 구르던 헤어드라이기로 대충 물기만 날리고 바로 외투를 걸쳤다.

“고데기 안 해?”

“그런 걸 내가 하게 생김?”

“넌 남친 안 사귀게?”

“대학생 되면 생기겠지.”

“미리 연습 같은 걸 해야 그때 안 어색하지. 지금 고데기는 있어?”

“있는데 왜.”

“내가 해줄게.”

“...”

“믿어 봐. 나 잘해.”

“... 따라 와.”

백지수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백지수는 어디다 뒀지, 라고 혼잣말하며 화장대 서랍을 뒤적거리다가 고데기를 꺼내 플러그를 꼽았다.

“열보호 에센스 같은 거 없어?”

“그것도 필요해?”

투덜대면서도 서랍을 열어 꺼내준다. 에센스를 받아들었다.

“외투 벗고 앉아.”

“응.”

화장대 거울에 비친 백지수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색해 하는 것 같았다. 에센스를 짜 고르게 발라주었다. 다 바르고 거울을 보는데 백지수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아, 진짜 유난 떠는 거 같다.”

“유난 아냐. 평소에 네가 너무 무감했던 거지.”

옆머리에 왼손을 집어넣었다. 뭐가 간지러운지 몸을 부르르 떤다.

“간지러워도 좀 참아.”

“... 빨리 하기나 해.”

“응.”

손에 닿는 감촉은 차갑고 부드러웠다. 대충 관리 하는 거 같은데 모발이 풍성하고 머릿결도 좋았다. 왼손으로 조금씩 나눠 잡고 오른 손목을 돌려 안으로 말았다. 겉단은 뒤쪽으로 가도록 방향을 잡아 컬을 넣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조금씩 독학했지. 어머니한테 해주면서.”

“마마보이였냐?”

“윗머리는 집중해야 되니까 말 걸지 마.”

백지수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이상하게 말을 잘 듣네. 윗머리 볼륨을 살리고 뒷머리도 인컬을 넣었다. 화장대 구석에 구르던 롤빗을 집고 헤어드라이기도 들어서 앞머리까지 방향감을 통일시켰다.

“끝났어?”

“아직. 끝에 살짝 뜬 거만 누르면 돼.”

왼손으로 막아 헤어 드라이기 바람을 집중시키고 지그시 눌렀다.

“이제 끝.”

작은 거울을 들어 뒷머리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백지수는 거울을 처음 본 사람처럼 머리를 만지작 댔다.

“예쁘다. 그치?”

“... 너 나 꼬시냐?”

“꼬시는 거면 나랑 사귀시게?”

“뭐래.”

백지수가 일어서려 하길래 어깨를 눌러 다시 앉혔다.

“뭐 또.”

“생얼로 나가게?”

“내 맘이다.”

“기왕 머리도 한 거 메이크업도 살짝 하자.”

“하.”

거울 속 백지수의 입에 비웃음이 얹혀졌다. 고개가 내 쪽으로 돌려진다.

“야. 네가 뭔데 메이크업을 하라 마라야? 네가 내 남친이야?”

“...”

백지수가 일어서서 외투를 걸쳤다. 그리고 손을 뻗어 손바닥을 보여주길래 주머니에서 백지수의 핸드폰을 꺼내 그 위에 올려주는 척하다가 잽싸게 손을 뺐다. 백지수가 핸드폰을 가져가려고 달려들듯 손을 뻗어왔다. 뒷걸음질을 치면서 핸드폰을 사수했다.

“야! 줘! 빨리!”

갑작스럽게 시작된 게임 덕에 백지수의 얼굴 위에 은은한 미소가 자리한 걸 보고 핸드폰을 순순히 주었다. 받자마자 백지수가 화면을 켰다.

“뭐야 8시 34분? 미친 놈이세요?”

“아침형 인간이라고 불러주세요.”

“넌 뭐 숙취 같은 게 아예 없으세요?”

“내 주사가 일찍 일어나는 거야.”

“와. 넌 2교대 공장근무나 하고 맨날 술이나 퍼먹어라.”

“저주하냐?”

“그냥 너한테 맞는 돈 버는 방식 중에 하나를 제시한 거지.”

“금수저 재수 없어.”

“너네집도 잘 살잖아.”

“금수저까지는 아니지.”

“아 나도 금수저 아니라고.”

“그럼 저 별장은 뭔데. 너 금수저 맞아요.”

그렇게 투닥대면서 분식집으로 갔다. 국물떡볶이 2인분에 구운란 추가, 모듬 튀김, 참치 김밥 한 줄을 시켰다. 아주머니가 음식을 식탁 위에 차차 올려주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수 학생 오늘 머리 예쁘게 했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첨 봤을 때 뒤에서는 못 알아 봤어.”

“아, 네. 감사합니다.”

백지수가 꾸벅 고개 숙였다. 거만한 표정을 짓고 백지수를 봤다. 백지수가 눈을 돌렸다.

“여기는, 지수 학생 남자친구?”

“남사친이에요.”

내가 답했다.

“남사친?”

“그냥 친구요.”

“으응. 아무튼 잘 먹어요.”

아주머니는 수상하다는 듯 눈을 흘기셨지만 일이 있으신지 도로 주방으로 돌아가셨다. 식탁 위에 두 팔을 걸치고 몸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거봐. 내가 예쁘댔지.”

백지수가 등을 등받이에 딱 붙이고 옆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누가 안 예쁘다고 했나.”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잖아.”

“... 아냐. 그냥 좀, 어색해서.”

백지수가 포크를 들어 떡볶이 국물에 튀김을 담그듯 찍어 입에 쑤셔 넣었다. 자기도 배가 고프긴 했는지 나랑 말도 안 섞고 얼굴을 쳐박는 수준으로 먹었다. 분식집 아주머니 솜씨가 좋은 것도 있었다.

“야 말 좀 해.”

“밥 먹을 때는 말 시키는 거 아니래.”

“그건 조선시대 얘기고. 요즘은 가족끼리 얘기할 시간이 식사 시간밖에 없다고 일부러 말하라고까지 하잖아.”

백지수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면서 떡을 다 씹어넘기고 입을 열었다.

“말 꼬투리 잡는거 진짜... 네가 왜 그 얼굴로 여친 없는지 알겠다.”

“왜 갑자기 때려.”

“넌 누구한테 좀 세게 맞아봐야 돼.”

“이미 너한테 맞았잖아.”

백지수가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 진짜... 너랑 얘기하다가 미치겠다.”

“나 말한 거 별로 없는데?”

“그런데 이렇게 정신 나갈 거 같이 만드니까 문제인 거 아냐 바보야.”

“그런가?”

“어. 넌 여자랑 대화하는 법 좀 배워야겠다.”

떡볶이 국물을 숟가락으로 뜨고 입에 넣기 전에 말했다.

“네가 가르쳐줘 그럼.”

“왜 내가?”

“네가 배우라매? 말한 사람이 책임져야지.”

“좆...”

욕을 도로 집어넣은 백지수가 주위를 두리번댔다.

“싫어.”

“내가 각 잡고 과외하듯이 알려달라 했어? 지금 같은 때 조금씩 알려달라는 거지.”

“... 그래.”

“어떤 식으로 말해야 돼?”

“음. 일단 말 듣고 꼬투리 잡지 마. 우선은 공감, 수긍해줘.”

“알겠어.”

“응. 그런 식으로.”

“근데 그래야 되는 이유가 뭐야?”

“지금 말한 거 별로야.”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궁금한데 어떡해.”

“... 데일 카네기 인간 관계론 읽어 봐.”

“지금 네가 말해주면 안 돼?”

“... 사실 관계든 뭐든 네가 누구를 지적하면 그 사람 무안하게만 만들고 대화를 이어 나갈 여지는 없어지니까 그 순간만큼은 입 다물고 있으라고.”

“응.”

“하아...”

“또?”

백지수가 포크로 떡볶이를 휘저었다.

“이러다 떡볶이 불어터져.”

“그럼 또 그런 대로 맛있잖아? 국물 스며들고.”

“또 또 버릇 기어나온다.”

“아 맞다.”

“지금 하나 배운 것도 똑바로 적용 못 시키면서 뭘 더 배우니 어쩌니 하겠다는 거야.”

“그래도. 지금 배워둬야 하루라도 빨리 나랑 얘기할 때 네가 안 답답해지는 거잖아.”

“흐응, 생각은 가상하네.”

“그니까 알려줘.”

“으음...”

백지수가 왼손은 탁상에 올려 턱을 괴고 포크를 든 오른손은 내게 삿대질하듯 까딱거렸다.

“웬만하면 왜라고 묻지 마.”

왜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갈 뻔했지만 다 잡았다.

“좋아. 왜 그래야 되냐면, 이유를 말해주기 난감한 경우가 많아서 그래. 어쩔 땐 답해줄 이유가 딱히 없기도 하고. 그런데 왜라는 질문은 꼭 답을 요구하는 거잖아? 그래서 왜라는 질문은 답을 요구하는 거면서도 사람을 벙어리로 만드는 역설적인 면모를 갖고 있어. 그래서 일상 대화에서 되도록 왜냐고 질문을 하면 안 되는 거야. 네가 토론이나 문제 해결 상황에 처해 있는 거 아니면, 그냥 왜라고 묻지를 마.”

“너 엄청 똑똑하다.”

“그럼 나 평소에 무시했다는 거야?”

“네가 평소에 가볍고 욕 많이 하고 털털한 면만 보여줘서, 무시까지는 아닌데, 살짝?”

“으... 지금 게 오늘 네가 말한 거 중에 최악이었어. 농담은 남을 까내리는 걸로 하지 마.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남 까내리는 농담이야. 그 농담의 당사자가 되는 걸 그보다 더 싫어하고.”

“오. 그리고 또?”

“아 좀 적당히 해!”

“알겠어.”

배시시 웃었다.

“너 오늘 좀 귀엽다.”

“미친 새끼...”

그 다음부터 백지수는 나는 안 보고 그릇과 접시만 봤다. 내가 현금으로 계산했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네 감사해요.”

분식집을 나왔다.

“너 오늘 뭐할 거냐.”

신호등을 기다리며 내가 물었다.

“몰라 일단 귀가해야지.”

“귀가한다는 게 저기냐 아님,”

“그냥 집.”

“그래.”

“너는?”

“영화나 보러 가려고.”

“혼자?”

“그럼 누가 있냐.”

“몰라. 네 여친?”

“나 여친 없는데.”

“그러냐.”

“어.”

뭔가 이상했다.

“이수아 걔 내 여친 아니다.”

“누가 뭐라 했냐?”

“뉘앙스가 그랬잖아.”

“그래?”

백지수를 봤는데 흐릿한 눈을 하고 횡단보도를 마냥 걷고 있었다. 정말 별 뜻 없었나. 내가 과민반응한 것 같았다. 조금 창피했다. 내가 말했다.

“여서 찢어지자.”

“그래. 잘 가라.”

“어.”

백지수가 자기 별장으로 가는 길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안에 내 기타 두고 나왔는데. 다음에 챙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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