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금요일 저녁은 술
* * *
밤 8시 18분이다. 3시 40분 쯤에 시작했으니까 4시간 40분 가량을 태워 먹은 거다.
면접 본 신입생 애들은 신경도 안 썼겠지만 우리는 중간에 쉬는 시간도 안 가지고 주욱 진행했다. 나는 화장실도 안 가려고 물도 안 마셨고, 정 목 마르면 한 모금을 머금은 채로 체류시켜 뇌를 속이려 들었다. 저녁은 당연히 걸렀고 애들이 불편할까봐 난방도 따뜻하게 했다. 마지막 면접 본 애들을 돌려보내고 좁혀놓은 후보군의 녹화 영상을 돌려보며 합격자들을 고르는 것까지 다 신중을 기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상태는 노곤하고 배고픈 개새끼들이나 다름 없었다.
“술 고?”
입 걸걸하고 키 작고 거기에 관리 안 한 숏컷, 즉 더벅머리를 해서 백수라는 별명을 가진 백지수가 낸 소리였다. 밴드부실 문을 잠그며 대꾸했다.
“개학식한 지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술이 들어가냐.”
애들이 할 말이 많은지 거의 다 입을 열어 한 명씩 소리를 냈다.
“솔직히 시기 상 개 에바지.”
“백수 새끼잖아 큭큭.”
“나 바로 집 들어가야 돼.”
“나는 됨.”
“술 쓰기만 한 거 왜 마시냐?”
“아 존나 시끄러.”
백지수가 자기 혼자 애들이랑 멀어지면서 말했다.
“됐고,되는 애만 나 옆으로 모여 봐.”
강성연이 제일 먼저 백지수 옆에 붙었다. 애들 중 아무나 붙잡아서 부실 키를 건네고 은근슬쩍 나도 끼었다. 애들끼리 잘 가라고 하는 동안 멤버는 금방 모여서 백지수, 강성연, 송선우, 나로 결정났다.강성연이 오른손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너 혼자 남잔데 빠지면 안 됨?”
송선우가 웃으면서 강성연의 뒤로 가 백허그를 했다.
“에이 왜 그래.”
“뭐, 혼자 남자 맞잖아.”
백지수가 눈살을 좁히고 강성연을 봤다.
“... 집주인은 난데 왜 네가 그래?”
“어... 미안.”
“어.”
백지수가 몸을 돌렸다.
“가자.”
“응.”
송선우가 따라붙었다. 나도 나란히 서서 걸었다.백지수가 나를 쳐다보면서 오른손을 들어 내 왼팔에 주먹을 가져다 댔다.
“근데 너 안 마신다면서 미친 놈아.”
“그런 적 없죠.”
“근데 어디서 마시는 거야?”
강성연이 물었다. 백지수가 강성연을 봤다.
“내 자취방.”
“너 자취해?”
내가 물었다.
“아니 부모님이 그냥 방 구해줬는데?”
“와, 미쳐버린 금수저.”
강성연이 질투했다. 백지수가 강성연을 무시했다.
“암튼 거기 옥상에서 고기 구워먹으면서 마시면 돼.”
“위치 알려주면 얘네들이 허락 없이 막 쳐 들어갈 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선 잘 긋는 송선우가 물었다.
“문 잠그면 되지.”
“뚫을 방법은 언제나 있다.”
강성연이 말했다.
“넌 오지 마.”
“죄송합니다 누님.”
“조심해.”
“넵, 명심하겠슴다.”
송선우가 강성연의 목에 어깨동무 같은 헤드락을 걸었다. 송선우가 키가 크기도 했지만, 강성연이 여자 치고도 키가 작은 것도 있어서 헤드락이 쉬이 걸렸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얘 빼고 우리는 자주 가도 돼?”
백지수가 나를 올려봤다.
“이온유는 된다고 할 때만 와.”
“나는?”
“선우는 괜찮아.”
“지수 짱.”
송선우가 엄지를 올렸다.
“혹시 공유지의 비극을 아십니까?”
강성연이 백지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넌 담부터 안 부를 거야.”
“아 왜요.”
“얘는 내가 막을게.”
송선우가 왼손으로 강성연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강성연이 놔달라고 탭을 몇 번이고 쳤지만 교문 앞에 부른 택시를 기다릴 동안 송선우의 헤드락은 풀리지 않았다. 요즘은 복싱을 취미로 배운다더니 이제는 다리가 아니라 팔뚝에도 근육이 들어찬 모양이었다.
백지수의 자취방은 내 집에서 멀어지는 방향에 있었다. 자취방이라길래 학교 근처인가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학교 근처가 아니라서 술을 마시자는 제의를 할 수 있던 거겠지만.
주택가 길목 안으로 조금 들어가니 나온 백지수의 자취방은 옥상이 있는 2층 단독주택이었다.
“미친. 이게 자취방이야? 집이지?”
“별장이라 하지 뭐.”
“다이아수저는 스케일이 다르네.”
“문이나 빨리 열자.”
강성연, 백지수, 송선우, 나였다. 백지수가 키를 집어넣어 대문을 열었다. 수도만 하나 있고 화분 같은 건 하나 없어 휑했다. 눈길을 줄 게 없어 별 말 없이 문을 여는 것만 봤다. 백지수가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먼저 들어가 전등들을 켰다.
“둘러본다 우리?”
송선우가 물었다.
“내 방은 들어가지 마.”
티비 없는 것 빼고는 일반 가정집 같았다. 그러니까, 청소가 되어 있었다. 일층에 방 두 개 이층에도 방 두 개가 있다.
1층 거실에 러그가 깔려 있고, 소파도 있고, 주방에 정수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심지어 식기 세척기도 있고, 테이블도 있고, 화장실에 수납장도 있다. 아, 세탁기도 있다. 가장 놀라운 건 기타방도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치는 건 베이스 뿐일 텐데 일렉, 어쿠스틱, 클래식 기타도 두 대 씩은 장만되어 있다. 송선우와 나는 기타를 기타방 문 옆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2층 방 하나는 화장대와 침대가 있는 침실, 그러니까 백지수 방이고, 다른 하나는 서재로 쓰는지 책장에 책상과 노트북이 있다. 그런데 이 많은 책장에 책이 열 권 밖에 없다. 옷장들도 열어 봤는데 안에 옷걸이만 수십 개씩 있지 옷은 없다.
“얘들아! 도와줘!”
백지수가 1층 주방에서 외쳤다.
“볼 게 딱히 없네.”
“근데 여기서 살아도 될 듯.”
“여기로 이사나 올까?”
송선우, 강성연, 나였다. 내려가보니 백지수가 테이블에 소분된 대패삼겹살, 삼겹살, 목살, 가브리살, 항정살, 쌈장, 김치, 고급 휴대용 가스버너, 집게, 솥뚜껑 같은 불판, 접시 등을 늘어놓고 있었다. 백지수가 분주히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와파도 된다?”
“오 레알이네.”
송선우가 재빠르게 확인하고 말했다.
“비번은 1q2w3e4r이야.”
“확인.”
강성연이 답했다.
“옥상가는 계단 봤냐?”
“어.”
“챙겨.”
들 수 있을 만큼 들고 위로 향했다. 익숙한 초록색 바닥에 나무 평상이 보였다. 평상에는 비를 맞지 않게 널찍한 파라솔이 꽂혀 있었다. 입이 절로 벌어져서 말이 튀어나갔다.
“야 나 여기서 살아도 되냐?”
“어 안 돼.”
“너 집에 뭔 일 있냐? 집 가기 존나 싫어하네.”
강성연이 물었다. 좆까라고 답하고 세팅하는 백지수를 도왔다. 불판이 달궈지자 송선우가 집게를 집었다. 집게가 익숙하게 대패삼겹살로 갔다. 송선우는 부모님이 고깃집을 해서 종종 일을 거들었기에 고기를 잘 구웠다. 보통 평소에 남의 고기를 구워주면 이럴 때에는 다른 사람이 구워주기를 바랄 법도 한데 송선우는 본인이 굽는 걸 선호했다.
“선우.”
“응?”
송선우가 고기를 뒤적이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고기 왜 굽는다 했었지? 아, 나 뭐라는 거냐.”
강성연이 나를 비웃었다.
“이온유 술도 안 마시고 취했네.”
송선우가 고기를 그릇에 옮겨담았다.
“그냥, 못 구운 고기 먹기 싫어서.”
송선우가 집게로 고기 세 점을 집고 쌈장을 찍어 그대로 입에 넣었다. 집게를 잡은 사람의 특권이었다.
“야. 건 좀 비매너 아니냐?”
강성연이 물었다.
“꼬우면 고기 잘 구워서 네가 집게 들든가.”
할 말을 잃은 강성연이 우선 한 잔 해야지, 같은 소리를 지껄였고 일회용 잔에 담긴 소주를 다 같이 들이켰다.
모두 말 없이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댔다. 불판이 비워지는 일이 없이 고기를 올리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즉석밥을 데워 올 사람을 결정했다. 그러고 보니 쌈 채소가 없었네. 나 말고도 의문을 가졌을 테지만 다 개의치 않아 하는 듯했다. 별 상관 없었다.
뭘 먹지 않을 때 입을 벌리면 기억할 필요도 없는 헛소리를 내뱉었다. 학교 얘기, 최근 본 웹툰 아님 드라마나 영화, 게임, 시덥잖은 음담패설까지. 술 기운이 올라간 상태에서 분위기를 조져놓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서 맥락 없이 말을 하든 별 병신 같은 얘기를 하든 애들은 포용력을 발휘했다.
“아 밴드부 톡방 만들어야 되는데. 귀찮네.”
내가 말했다.
“근데 이번 밴드부 애들 존나 잘 뽑히지 않았냐?”
강성연이 의식의 흐름대로 말했다.
“일단 신청한 애들이 많았잖아.”
송선우가 받아줬다.
“실력 있는 애들 좀 온 건 인정. 근데 모여본 적도 없는데 잘 뽑히긴 뭐가 잘 뽑혔다고. 사람 알아보는 눈깔이라도 있음?”
백지수가 지적했다. 신입부원이 문제가 있는 애다 싶으면 가끔 교체가 이뤄지기도 했다.
“암튼. 근데 눈깔 얘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아까 이온유가 서유은 쳐다보는 거 본 사람 있어?”
강성연이 음흉하게 물었다.
“뭔 개소리하려고 또.”
내가 말했다.
“어땠는데.”
송선우가 강성연 쪽으로 눈을 흘겼다.
“허, 미친 새끼 존나 눈으로 애무하는 수준이던데?”
강성연이 말했다.
“지랄.”
내가 말했다.
“아니 진짜 이 새끼 옆에서 보니까 눈으로 침 바르더라니까? 존나 넌 내 거다 하는 소유욕 담긴 눈. 뭔지 알지? 막 고개 끄덕인 것도 그렇고.”
강성연이 흥분해서 지껄였다.
“내 말이 틀렸냐? 엉? 이온유.”
강성연의 주사는 시비 걸기였다.
“야 너 지금 좀 간당간당한 거 같다?”
송선우가 선을 그어줬다.
“취했으면 집 가서 디비져 자세요 성연아.”
백지수가 말했다.
“술은 내가 너보다 세요.”
강성연이 괜한 술부심을 부렸다.
“그래. 자랑이다 병신아.”
백지수가 말했다. 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나 전화 좀 받을게.”
송선우가 일어났다.
이런 식이었다.
넷이서 소주 네 병을 비우고 맥주도 두 캔씩 마시니 슬슬 술기운이 올라왔다. 배도 채울 만큼 채우니 노곤해져 왔다.
“나 술은 여기서 스탑.”
송선우가 소주잔을 구기며 말했다.
“쫄보 새끼.”
강성연이 공격했다.
“나 여기서 자고 간다.”
내가 선언했다. 몸을 반쯤 휘청이던 백지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술은 얘가 제일 약했는데, 백지수의 술버릇은 너그러워지는 것이었다.
“침대는 안 줘.”
“소파에서 잘게.”
“오키.”
“음? 아니 시발? 둘이 남자랑 여잔데 한 지붕 아래에서 잔다고 시발?”
마지막 잔을 입에 털어넣던 강성연이 귀를 파고 물었다. 백지수가 눈을 찌푸렸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나도 기분 이상해지잖아 병신아.”
“네가 참아.”
송선우가 주섬주섬 쓰레기들을 주워 봉투에 담고 신문지로 기름을 빨아들이는 등 정리하면서 말했다. 장소와 음식을 제공한 백지수는 강성연을 잠깐 째려보다가 팔자 좋게 평상에 늘어져서 핸드폰을 봤다. 아니 존나 내가 이상한 거냐, 라고 혼자 씨부리던 강성연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겠다며 내려갔다. 나는 칫솔도 사오라고 강성연한테 문자를 보내고 송선우를 거들었다. 쓰레기 정리는 간단했다. 어려운 건 언제나 설거지였다. 송선우가 세제로 닦으면 내가 물로 씻어내는 공정을 진행했다.
“야! 이온유! 전화!”
백지수가 쿵쿵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이수아였다. 안 받고 스마트폰 전원을 껐다.
“누구냐 이수아가?”
“아는 애.”
“사귀냐?”
“아니.”
“근데 이 시간에 전화를 건다고?”
“캐묻지 마라.”
“오키.”
“아니 강성연 이 새끼는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알바 뛰고 오나?”
송선우가 급발진했다. 백지수가 흠칫하더니 송선우를 뒤에서 껴안았다. 백지수의 큰 가슴이 송선우의 등 위로 지그시 눌리는 게 보였다.
“선우찡 왜 화났어?”
“아니 지금 존나 날먹하잖아 개새끼가. 정리 좆도 안 하고 멀리 있지도 않은 편의점 가서 아이스크림 산 거로 영웅 행세할 거 생각하면 개 같아서 내가 진짜.”
얘가 괜히 이럴 애는 아닌데. 아이스크림 사러 간 강성연이 돌아올 때까지 서로 말도 안 섞고 핸드폰만 봐서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송선우가 왜 이런 건지 생각했다. 어쩌면 이수아한테 끌린 어그로를 자기한테 돌려서 관심을 차단해 준 것일 수 있었다. 그럼 내가 빚을 진 거였다. 아니 송선우가 빚을 갚은 거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언제 한 번 송선우의 몸매를 칭찬하던 몰상식한 외국인을 만났을 때 눈이 돌아간 송선우가 그 새끼를 팰 뻔한 것을 몸으로 막고 내가 대신 두어대 때려줘서 파출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빚처럼 담아두었는지 송선우는 나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경향이 있었다.
“으아 씨바 편의점 털었다.”
강성연이 돌아왔다. 과일향 전자담배 냄새를 풍기면서. 숙취 해소 음료, 하겐더스, 초코 우유 등 아주 바리바리 싸왔다. 숙취 해소 음료를 털어넣고 하겐더스를 품에 안았다. 쇄골 어림이 찬 것이 제법 기꺼웠다. 송선우는 숙취 해소 음료와 초코 우유를, 강성연은 바 아이스크림 두 개를 먹고 택시를 불렀다.
“자주 와도 되냐?”
빈 소주병 네 개를 품에 안은 강성연이 물었다.
“부를 때만 와.”
아직 화가 안 풀린 듯한 백지수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오늘 잘 먹었어.”
찌그러진 맥주캔이 담긴 봉투를 든 송선우가 신발을 구겨 신으며 미련 없이 말했다.
“어. 담에 봐.”
“온유도 잘 있고.”
“잘 가.”
“우욱, 잘 먹었다 백수야. 온유도 담에 보고.”
강성연이 다행히 실례는 하지 않고 나갔다.
애가 둘이 빠지니 집이 퍽 조용했다. 대충 씻고 소파에 누워 있으니 눈이 반쯤 감긴 백지수가 베개와 담요를 가져와줬다. 백지수가 눈을 비비적 거리며 말했다.
“잘 자라.”
“넌 안 씻냐?”
“낼 씻음 되지 뭐.”
“... 잘 자.”
“엉.”
백지수가 불들을 끄며 2층으로 올라갔다. 소파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원래 지금은 자는 때가 아니었다. 핸드폰을 켜 메신저를 확인했다. 이수아가 보낸 문자가 쌓여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낸 문자들부터 느긋하게 답장하고 확인했다.
[야]
[언제 오냐?]
[안 오냐?]
[전화 왜 씹냐?]
[야]
[야]
[야]
[니 울 엄마 차단했냐?]
[(화내는 이모티콘)]
[차단 풀어라]
[먼저 울 엄마한테 전화 걸고]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안 하면 죽어]
[오늘 집 오긴 오냐]
[전화 껐냐]
[아, 네가 알아서 해]
뭐라 보낼 말이 없었다. 아무 말이야 보낼 수 있었지만 그래봐야 아예 답장을 안 하느니만 못했다.
불을 키고 밴드부 합격자 명단을 보며 일일이 카톡 친추를 한 뒤 밴드부 단톡방을 만들었다. 환영한다는 인삿말을 대충 끼적였다. 신입생들의 어색한 안녕하세요 릴레이가 이어졌다. 강성연이 은근슬쩍 신입생인 척 안녕하세요 릴레이에 끼어들었다. 강성연이 킥킥거리는 환청이 들렸다. 밴드부 카페 링크를 건 공지를 띄웠다. 공지 안에 카페에 가입 안 하고 자기소개글 안 쓰면 밴드부에서 강제 탈퇴된다는 으름장도 넣었다. 밴드부 버스킹 일정 공지도 띄웠다. 그때는 신입생들은 공연은 못하겠지만 공연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게 일단 와보는 편이 좋다고 써두었다. 단톡방엔 뒤늦게 인사하는 신입생도 있었고, 마주 인사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3학년 선배 한 명이 편히 떠들어도 된다고 했지만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이후엔 개인톡들을 안읽씹하고 한가하게 영상들이나 봤다. 3개를 봤는데 도통 눈이 감기지 않았다. 왠지 답답했다. 불을 끄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정면은 건물들이 가로막아서 눈을 둘 만한 탁트인 곳은 위 밖에 없었다. 밤바다 같은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별이 별로 안 떠 있어서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세보니 열 여섯 개였다. 그것들이 뿌리는 빛살이 희미해서 한 소쿠리에 다 담길 것 같았다.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가드라인에 팔을 걸치고 이수아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세 번 들렸다.
“여보세요.”
ㅡ왜 지금 전화해?
“바빴어서.”
ㅡ지랄, 지가 바쁘긴 얼마나 바쁘면 야근하는 직장인보다 더 전화를 안 받을까.
“그런 사람한테 전화 걸어봤냐?”
ㅡ울 엄마한테 걸어봤었다. 왜?
“어쩌라고.”
ㅡ지가 물어봤으면서 지랄하네.
“넌 왜 전화 걸었냐?”
ㅡ네가 집에 안 쳐 오니까 그런 거 아냐 양아치 새끼야. 어디 있는데?
“친구 집.”
ㅡ아 거기서 잔다는 거지?
“어.”
ㅡ그럼 끊어.
“너 나랑 사이 좋은 척 해야 되는 거 아니냐?”
ㅡ지금은 아니잖아.
“네 엄마한테 그렇게 말한다?”
ㅡ... 왜 살살 긁냐?
“너 좆 같으라고.”
ㅡ아! 존나 싫어 씨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수아였다.
“왜.”
ㅡ왜 끊냐?
“네가 끊으라매.”
ㅡ사람이 끊으랄 때 끊어야지 말하는 도중에 끊는 법이 있냐?
“그래서 더 할 말 있었어?”
ㅡ어. 뒤져 병신아.
이번엔 이수아가 전화를 끊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어디서 개가 컹컹 짖었다. 이수아가 문자를 보내왔다.
[너 지금 울 엄마한테 전화해라.]
무시하고 옥상에서 내려갔다. 혹시 다시 전화가 올까 핸드폰을 꺼버렸다. 이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 *